소설리스트

지존무한-244화 (244/250)

244화

무한도 비무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일부러 기준을 세울 필요는 없어. 이번 비무대회에서 저절로 기준이 설 거야.”

“어떻게?”

“지켜봐.”

무한이 씨익, 웃었다.

“무림 사상 최초 맹주 비무대회를 개최하겠소!”

대장로 우학진인이 비무대회 개최를 선포하자 장내가 화끈 달아올랐다.

“와아!”

맹주를 비무로 선출하는 건 유례없는 일이었으니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당연했다.

이어 첫 출전자들의 비무가 진행되었다.

비무대에서 강기가 연달아 터졌다. 명성을 얻고자 참전한 이도 모두 한가락 하는 이들이니 후기지수 비무대회와는 확연히 달랐다.

첫 대진부터 중상자가 나왔다. 실력이 비등비등한 고수와 고수의 싸움이니 부상을 피할 수가 없었다.

무한은 첫날 비무대회에서 다섯 번째로 출전했다.

무한의 상대는 강소성에서 고수로 군림하는 도객 마영도였다.

“하하. 전 천하방주와 비무를 하게 되다니. 가문의 영광이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란 각오가 얼굴에 쓰여 있었다.

아니, 왠지 자신 있어 하는 표정 같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한은 며칠 전 벌어진 후기지수와 별반 차이가 없는 나이다. 무한이 천하제일인이라는 말은 따갑게 들었지만 사람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그 수준 차이를 알 수가 없다.

‘어린놈이 천하제일인의 진전을 받아 신공을 지녔다지만, 무공은 결코 신공만으로 승부하는 건 아니지.’

마영도의 눈빛에서 속을 읽은 무한이 담담히 웃으며 마주 포권을 하였다.

“시작하시오.”

우곽이 비무를 알리자 마영도가 기세 좋게 도를 세웠다.

순간, 무한이 일장을 후려쳤다.

퍼억!

바람 한 점 부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마영도가 도를 든 채 비무대 밖으로 십 장이나 날아가 처박혔다.

“…….”

“…….”

장내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아무리 무공이 고강해도 그렇지, 일장에 상대를 비무대 밖에 처박아 버리다니.

앞으로 마영도는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이건 너무 하잖아. 그래도 한두 차례 손을 섞을 기회는 줘야지.

그런 시선으로 무한을 보았다.

무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무대를 내려왔다.

형소가 무한의 한 말의 뜻을 알고는 내심 웃었다.

‘앞으로 나오는 놈들마다 일장에 처발라주겠다는 거로구나.’

소마와 피전격이 흥미로운 눈으로 이를 지켜봤다. 부담 없이 지켜만 보는 그들로서는 아주 재밌는 광경이었다.

“어쩐지 무공이 더 강해진 것 같지?”

“으음, 한 발 다가가면 두세 발짝 도망가는군.”

후기지수 비무대회까지만 해도 서로 멀리 떨어져 앉았던 두 사람이 어느 사이 나란히 앉아 관전을 했다.

무림맹 장로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마영도라면 그래도 강소 제일고수로 꼽히는 자인데…….”

“예의상 몇 합은 받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나 다음 날에도 무한은 마찬가지로 일장에 상대를 날려버렸다.

무한의 비무가 가장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절대고수들은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상대 역시 진경 이상의 고수들이다. 그런 고수를 일장에 날리면서 큰 부상을 입히지 않는다는 건 무위의 격차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흘째 되는 날 상대는 아예 기권을 해버렸다. 일장에 비무대 밖으로 날아가 처박히는 수모를 겪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흘째 되는 날.

수십 명에 달했던 출전자가 여섯 명으로 줄었다.

무한이 첫 순서였는데 상대는 하남의 고수 진권 복정이었다.

복정이 비무대에 올라 정중하게 포권을 하였다.

벌써 내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는지 옷이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다.

“심 대협의 일장은 정말 신묘하오. 권법가로서 꼭 받아내겠소.”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일장을 받아내는 게 목적이라는 뜻이다.

무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역시 예의 일장을 쳐냈다.

콰앙!

역시 바람 한 점 일지 않은 장력이 복정을 치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복정이 날아갔다. 다만, 볼썽사납게 처박히지는 않고 허공에서 몸을 뒤척여 내려섰다.

복정이 침중한 안색으로 포권을 하였다.

“사정을 봐주셔서 감사하오.”

비틀거리며 자기 자리로 가서 앉는 복정의 얼굴에 뿌듯함이 어렸다. 나는 일장을 받아냈어, 적어도 처박히지는 않았다고 하는 표정이다.

사실 지금 남은 여섯 명은 현존 강호의 최고수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대로 줄을 세워 십대고수로 불러도 된다.

그랬기에 다음 두 차례의 비무는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수준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평생 가도 보기 어려운 고수들의 격전을 보며 무림맹주의 수준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자기도 모르게 인식을 하였다.

이렇게 무지막지한 고수들도 무한의 일장에 허망하게 날아가니…… 무림맹주는 그야말로 천하제일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혔다.

콰쾅!

이어진 비무는 공교롭게도 양패구상하여 두 사람 모두 다음 비무를 기권하였다.

마지막 비무의 승자는 호남의 검객 천중일검이었다.

피전격이 천중일검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 골치 아픈 인간이 맹주를 하겠다고 나설 줄이야.”

호남이 본거지인 흑천도 천중일검이 머무는 계림은 건드리지 않았다. 성격이 괴팍한 데다 한번 검을 뽑으면 끝장을 보는 인간이니 은근히 한 수 접어주는 것이다.

그날 저녁.

최종 비무를 하루 앞두고 무한이 자신의 거처에서 운기조식을 하고 있는데 형소가 찾아왔다.

“내일 비무는 시간을 좀 끌어주지?”

비무가 거듭되면서 무한의 맹주 등극은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됐어. 아무래도 도천부의 잔존 세력 같아. 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파악할 시간이 필요해.”

비무가 시작되며 무한은 군사부 수석조사관을 그만두었다. 그러기에 도천부 잔존 세력이 들어왔다는 정보는 형소에게 처음 듣는 것이다.

“맹주 선출 비무대회가 열리면서 새로이 관객들이 들어왔는데 아무래도 최종 비무에서 혈겁을 일으킬 생각인 듯해.”

“감히 그럴 수 있을까?”

현 무림맹주 형일천과 마천의 소마, 흑천의 피전격, 그리고 심무한이 있는 자리다.

그 외에도 무림맹 장로와 무수한 고수들이 있는데 도천부 잔존세력이 준동한다고?

무한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사대일 수도 있어. 무공만 사람을 살상하는 게 아니잖아.”

형소는 죽기를 각오한 결사대가 폭약을 터뜨리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었다.

“만일 그렇다면 고수들을 죽이지는 못해도 일반 무인들 다수가 피해를 입을 거야. 무림맹의 잔치에 재를 뿌리겠다는 의도지. 고씨 형제는 악만 남았어.”

무림맹으로 오는 후기지수 암살 배후가 고씨 형제로 드러나자 형소는 무력대를 동원하여 추적을 하는 중이다. 궁지에 몰린 고씨 형제가 자폭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차라리 지금 잡아들이지.”

“동조하는 세력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 내일 비무장에 가면 알 수 있겠지. 이번에 뿌리를 뽑으려면 상대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야 해.”

“알았어.”

무한이 형소의 복안을 받아들였다.

이튿날.

천중일검이 두 자루의 검을 들고 비무대로 올라왔다.

“자네가 검을 버렸다는 말은 들었네. 나는 평생 검을 손에서 놓지 않았지. 이번에 내가 출전한 것은 자네와 검을 나누고 싶어서였네.”

천중일검이 검 하나를 무한에게 던져주었다.

“맹주의 자리는 원치 않아. 자네가 맹주일세. 다만, 내공을 쓰지 않고 오로지 검법만으로 대결하기를 원하네.”

무한이 물끄러미 손에 잡힌 검을 내려다보았다.

경천신검을 깨뜨린 이후 검을 잡지 않았다. 아니 잡을 필요가 없었다. 언제든 강기로 이뤄진 검을 형성할 수 있었으니까.

오랜만에 검을 쥐자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천중일검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무한은 앞선 비무에서 천중일검이 이미 검을 버리고도 남을 수준임을 알았다.

그래도 그는 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는 평생 검사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자였다.

“좋습니다.”

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중일검이 검을 세웠다.

“경천십이식! 언젠가는 꼭 넘어야 할 벽이라고 여기고 살아왔네. 오늘이 그날이 되었으면 좋겠군. 선공하겠네.”

천중일검이 선배의 체면을 버리고 선공을 했다. 무한을 상수로 인정한 것이다.

파파팟!

예리한 검광이 무한을 에워쌌다.

무한이 경천십이식 일초를 펼쳤다.

천의격, 지천격, 회천격……

식을 거듭할수록 검은 빨라졌고 비무장에는 거센 검파가 휘몰아쳤다. 내공을 썼다면 이미 비무장은 흔적도 없이 날아갔을 것이다.

공격일변도의 경천십이식을 내공 없이 초식만으로 펼치니 자리에 있는 절정 이상의 고수들은 정신없이 비무대를 바라봤다.

상승검법을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그 자체가 기연이었다.

일류고수들 가운데 오성이 뛰어난 자들은 연달아 펼쳐지는 무한의 검식에 현기가 담겨 있음을 알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다. 절정 이상의 고수들은 각자 얻는 바가 달랐다.

소마가 이 광경을 보고 탄식을 하자 피전격이 중얼거렸다.

“미친놈이군. 자기 검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다니…….”

“본다고 이해할 자가 몇이나 되겠소.”

“…….”

소마의 대답에 피전격이 입을 닫았다.

그랬다. 절정 이상의 고수들이 무한의 경천십이식에서 각자 깨달음을 얻기는 했지만 그 수준에 머무를 뿐이다.

심지어 상대하는 천중일검마저도 자신의 검법을 돌아볼 수 있을 뿐 무한의 검식을 감히 따라할 수가 없었다.

파파팟!

이윽고 최후의 절초 경천격이 펼쳐졌다.

이전 십일식의 정수가 모인 경천격이 펼쳐지자 내공이 실리지 않았음에도 하늘에서 우르릉,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비무대를 보다 깜짝 놀랐다.

그때,

“쳐라!”

형소의 준엄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동시에 일반 관객이 몰려 있는 동서, 그리고 남쪽 사면 여기저기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일반 무림인 복장을 한 이들이 역시 일반 무림인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크윽!”

“피해라!”

놀란 이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자연 비무도 멈췄다.

천중일검은 무한이 검을 접자 곧바로 서서 눈을 감았다. 방금 비무를 복기하려는 것이다.

무한은 검을 늘어뜨린 채 비무대 아래를 둘러보았다.

변복을 한 신검대와 무적대가 곳곳에서 무인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무림맹이 사람을 잡는다!”

아우성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형소가 외쳤다.

“비무장에 폭약을 지닌 악도들이 잠입했소. 관계없는 자는 그 자리에 엎드리시오.”

순간, 쾅 하는 폭음과 함께 남쪽에서 폭약이 터졌다.

폭약을 몸에 지닌 자는 물론 주위 몇몇 사람이 육편이 되어 날아갔다.

그러자 신검대와 무적대의 움직임이 한층 빨라졌다. 이어 무림맹 무력대가 사람들을 갈라 치며 밀려들었다.

순식간에 무력대가 진입하자 더 이상 폭약은 터지지 않았다.

폭약을 몸에 두른 도천부 잔존세력들은 두셋으로 조를 짠 무력대에 의해 제압되어 꼼짝하지 못했다.

“크으윽! 이 새끼들아 놔라! 다 죽여 버리겠다!”

제압된 자들 중에 광기 어린 목소리로 연신 발악을 하는 자가 있었다.

담철조가 그자의 얼굴을 잡아당기자 인피면구가 뜯겨 나왔다.

드러난 이는 고성후의 차남 고마였다.

담철조가 고마를 끌고 비무대로 올라와 무한 앞에 세웠다.

“맹주, 처리하실 일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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