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마천 기마대 우두머리가 흠칫하더니 크게 소리쳤다.
“저놈이 검천부 심 씨다! 저놈을 잡으면 천주께서 크게 포상을 할 것이다!”
그러면서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기마대가 양쪽으로 진세를 벌리며 무한을 에워쌌다.
그 사이로 뒤따르던 수백의 마천도들이 밀려들었다.
수많은 마천도들 사이에 에워싸인 무한을 보고 형소가 걱정하였다.
“아무리 무한이 뛰어나도 저건 너무 많잖아.”
“무한의 신법 몰라? 전력질주하면 따를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어. 너나 걱정해. 그 귀왕갑 좀 벗으면 안 돼? 속도가 안 나잖아.”
“무슨 소리야? 귀왕갑하고 내 경공 속도하고는 아무 상관없다고.”
소소와 형소, 남궁우 등은 부상자들에게 말을 내주고 경공을 펼쳐야 했다.
“그럼 원래 그렇게 느려 터진 거야? 그러다 잡히겠다.”
“패천부는 도망치지 않아! 적을 뚫고 갈 뿐이지!”
“으이구. 지금 도주하는 건 대체 누군데?”
“이보전진을 위해 일보후퇴 하고 있는 검천부 무인이지.”
형소와 소소가 티격태격하는 걸 듣고 있던 남궁우가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대군에 쫓겨 간다는 패배감에 침울해하던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남궁우의 웃음이 터지니 모두 돌아봤다.
그러자 옆에서 달리던 백상인이 말했다.
“그래 맞아! 우리는 전열을 정비해서 다시 올 거야!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일 뿐이야.”
그러자 말없이 달리던 현무대원들이 어금니를 콱, 깨물었다.
무한은 자신을 에워싼 마천도들을 둘러보았다.
‘이들이 전부가 아니야.’
남쪽에서 온 병력은 배후를 치기 위한 것일 뿐, 주력은 연합 무력대가 진군하려던 경로에 있을 것이다.
연합 무력대가 퇴각하고 있으니 그들 또한 쫓을 게 분명했다.
무한이 뒤를 돌아보니 후미의 현무대 마지막 조가 막 동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동시에 저 멀리 서쪽에서 거대한 먼지구름이 다가오는 중이다.
먼지구름은 난주 가까이 오면서 남쪽과 동쪽,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중이다.
무한이 자신들을 무시하고 멀리 본대의 상황을 지켜보자 우두머리가 얼굴이 벌게져서는 외쳤다.
“저놈은 전력을 다해 이미 지쳤다. 누가 잡아오겠느냐?”
무한이 힐끔 우두머리를 봤다.
입고 있는 옷은 화려하고, 머리에도 금실로 수를 놓은 값비싼 모자를 쓰고 있다. 마천 십이호교 가문의 수뇌부 정도로 보였다.
우두머리의 명이 떨어지자 기마대가 좌우에서 짓쳐 들었다.
앞뒤로는 마천도들이 무리를 지어 칼과 창을 들고 막아선 상황이다.
양쪽 기마대 선두에 선 무인들이 장창을 휙, 던지더니 말 옆구리에 꽂아둔 도를 뽑아 휙휙, 저으며 달려왔다.
쉬이익!
터엉!
무한은 날아오는 장창 두 자루를 가볍게 쳐냈다.
그사이 당도한 두 사람은 마치 합이라도 맞춘 듯 무한의 앞뒤를 스쳐가며 도를 휘둘렀다.
샤아악!
허공을 가르며 두 자루의 도가 무한의 목과 복부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순간, 무한이 발을 굴렀다.
콰앙!
다시 한 번 땅이 흔들리며 기파가 터지자 두 마리 말이 놀라 앞발을 들어올렸다.
기수들은 마상기예가 뛰어났다. 재빨리 말고삐를 채고 말등에서 몸을 회전하며 무한을 향해 덮쳐왔다.
순간, 무한이 옆으로 돌면서 검을 찔렀다.
“컥!”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비명을 터뜨리며 땅바닥을 굴렀다.
그사이 뒤따라온 기마대가 무한을 향해 장창을 내질렀다.
이러다 한도 끝도 없이 싸움에 말려들 것 같자, 무한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파파팟!
세차게 휘두르는 경천신검에서 검풍과 검기가 휘몰아쳐 나왔다.
마치 회오리바람처럼 일 장 주위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며 무한이 질주하였다.
이를 보는 우두머리의 눈빛이 차갑게 굳었다. 그제야 무한의 무위를 알아채고는 내심 경악하였다.
하지만 인정할 수 없었던지 크게 외쳤다.
“버텨라! 놈이 잠력을 폭발시키고 있다!”
우두머리가 크게 외치고는 말고삐를 채었다.
“이랴!”
우두머리는 수하들을 추풍낙엽처럼 흩어버리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무한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쉬쉬쉭!
우두머리가 말고삐를 놓고는 양손으로 장창을 쥐고 무한을 찔러갔다.
채채채챙!
회오리치듯 몰아치는 검과 뱀의 혓바닥 같은 장창이 순식간에 십여 합을 부딪치고 갈라졌다.
우두머리가 스쳐간 뒤 마천도들이 일제히 긴 창을 내밀어 무한의 앞을 막았다. 마치 창으로 쌓은 벽과 같았다.
그사이 무한을 스치듯 지나쳤던 우두머리가 십여 장 갔다가 말머리를 돌려 다시 달려왔다. 우두머리의 실력도 보통은 아니었다.
무한이 경천신검을 등 뒤 검집에 꽂고 옆구리에서 비도를 뽑아 들었다.
앞으로 무수한 마천의 고수를 상대해야 한다. 자신의 무위를 어느 정도 감춰야 한다는 판단에 비도를 뽑은 것이다.
그러나 우두머리는 이를 보고 다시 한 번 착각했다.
“크하하! 검으로도 상대가 안 되었는데 고작 비도로 나를 막겠다는 것이냐?”
우두머리가 광소를 터뜨리며 달려왔다.
무한의 내력이 바닥났다고 오인한 우두머리는 장창을 콱 움켜잡고 그대로 내밀며 달려왔다.
장창이 무한을 관통하려는 찰나, 무한이 슬쩍 비켜서며 두 자루의 비도를 던졌다.
“흥!”
우두머리는 예상했다는 듯 장창을 든 손을 그대로 옆으로 그으면서 몸을 비틀어 비도를 피하려 했다.
그러나 가볍게 피할 것이라 생각했던 비도가 서로 허공에서 부딪히더니 기이한 곡선을 그리며 그의 가슴으로 날아왔다.
쌔애액!
크게 당황한 우두머리가 창대를 들어 비도를 쳐내려 했으나 어느 순간 갑자기 속도를 더한 비도가 우두머리의 목에 박혔다.
“컥!”
우두머리가 짧은 비명을 터뜨리며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는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아앗!”
마천도들이 크게 놀라 우두머리를 구하려 달려왔으나 이미 늦었다.
우두머리는 말에서 떨어지는 충격으로 머리가 반쯤 깨진 채 몇 차례 땅바닥을 구르다 하늘을 본채 죽었다.
“으허헉!”
“소가주께서 당하셨다!”
“원수를 갚자!”
마천도들이 일제히 광분하였다.
무한은 그제야 죽은 우두머리가 마천 십이호교 가문 중 한 곳의 소가주임을 알았다.
무한이 연합 무력대가 간 곳을 바라봤다.
이미 상당히 멀리 간 상황이다. 더 이상의 살상은 무의미하다. 무한은 곧바로 몸을 날려 질주하였다.
몰려들던 마천도들은 날아가는 무한을 멍하니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무한이 달려간 방향은 연합 무력대가 간 곳이 아닌 난주성 쪽이었다.
난주성을 빠져나온 혈랑의 도주로와 난주 북부에서 천하방을 상대하기 위해 내려오는 마천의 동선이 부딪힌다.
서로가 예상치 못한 조우이겠지만 부딪히는 순간 접전이 벌어질 것이다.
지금은 한 사람의 힘도 아쉬운 상황이니 혈랑이 이끄는 난주 무림인들의 안위도 중요하다.
예상했던 대로 난주성에서 서쪽으로 가는 협곡에서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의외로 혈랑이 이끄는 난주 무림인이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마천의 무리를 협곡에 가두고 양쪽 절벽에서 화살과 쇠뇌, 암기 등을 쏘아댔다.
협곡을 탈출한 마천도들은 대기하고 있던 혈랑대와 다시 혈전을 벌이다 속속 쓰러졌다.
무한의 눈에 절벽 위에서 싸움을 지휘하는 혈랑이 들어왔다.
혈랑은 영리했다.
서쪽에서 오는 대군의 위치를 틈틈이 살피다 어느 순간 크게 호각을 불었다.
삐이익!
예리한 호각소리가 협곡에 울려 퍼지자 난주 무림인들이 썰물 빠지듯 일제히 동쪽으로 빠져나갔다.
‘대략 오백 명 정도 되는구나.’
무한은 난주 무림인들의 숫자를 대충 파악했다.
대부분의 무위는 천하방 연합 무력대에 비해 훨씬 떨어지지만, 그중에 몇몇 고수들이 포함되어 있어 잘만 운용하면 충분한 전력이 될 듯했다.
난주 무림인들이 빠지자 마천도들도 황급히 오던 길로 퇴각하였다.
큰 타격을 입은 마천도들은 난주 무림인들을 쫓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협곡을 빠져나가 전열을 정비하였다.
상황이 마무리되자 절벽 위에서 내려온 혈랑이 무한을 향해 날아왔다.
“아직도 여기서 얼쩡거리고 있다니. 간도 크군. 천하방 무력대들은 어찌 됐나?”
“서남쪽으로 빠졌소. 마천의 대군이 십여 갈래로 갈라져 남하하는 중이오.”
무한이 오다 본 마천의 움직임을 전했다.
“중원으로 가는 건가? 이놈들이 정말 전쟁을 치를 셈이군.”
“가서 직접 마천의 의도를 알아보는 게 어떻겠소?”
“뭐?”
“오늘밤 마천 본진에 잠입할 생각이오.”
“으음. 좋은 생각 같지 않은데. 위험을 자초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야.”
혈랑이 마천 본진 쪽을 보며 말했다.
“보다시피 편평한 고원이야. 아무리 은신술이 뛰어나도 본진까지 들어가기 어렵지.”
“도와줄 사람이 있소.”
“……?”
무한이 시선을 돌려 십 장 거리 바위를 향해 말했다.
“한 번 더 의뢰를 해도 되겠소?”
“……?”
혈랑이 의아해하는 그때, 무한이 바라보는 바위 뒤에서 운객이 걸어 나왔다.
혈랑이 미간을 찌푸렸다.
고작해야 십 장 거리. 고수들에게는 지척이나 다를 바 없는데 운객이 은신한 걸 눈치채지 못했다.
“살수로군.”
혈랑이 운객을 노려보며 아는 체하였다.
운객이 다가와 무한에게 말했다.
“지난번 의뢰비도 아직 받지 않았는데 뭘 또 의뢰한다는 거지?”
“그 기가 막힌 은신술로 우리를 마천 진영에 들여보내줄 수 있소?”
“밑천을 내놓으라는 건가? 그럴 수는 없지.”
운객이 고개를 젓자 혈랑이 허리춤에 찬 한 쌍의 혈랑아를 툭툭 치며 으르렁거렸다.
“이봐, 이건 제의가 아니야. 무조건 해야 하는 거라고.”
“더더욱 하기 싫어지는데?”
운객이 혈랑의 행동을 흉내 내어 옆에 찬 기이한 검을 툭툭, 치며 말했다.
“이 새끼가!”
혈랑아가 뽑히자 운객의 검도 검집을 빠져나왔다.
혈랑아가 허공에서 춤을 추고, 쇠꼬챙이처럼 길쭉한 검이 공간을 파고들며 혈랑의 목을 노렸다.
챙!
혈랑아를 교차하여 막은 혈랑은 몸을 수그리며 홱, 옆으로 몸을 돌렸다.
혈랑의 회전을 따라 혈랑아가 운객의 허리를 파고들었다.
그때 벼락처럼 움직이는 두 사람 사이를 하늘에서 떨어진 검이 갈랐다.
챙!
경천신검이 혈랑아와 쇠꼬챙이 같은 검을 동시에 튕겨냈다.
혈랑의 눈이 그야말로 휘둥그레졌다.
“너, 너…….”
무한이 비약적인 성취를 봤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간단히 자신의 혈랑아를 차단할 줄은 몰랐다.
운객 역시 굳은 얼굴로 쇠꼬챙이 같은 검을 들여다보았다. 혹시라도 손상을 입었을까 보는 척 했지만 가슴은 철렁거렸다.
자신이 찌른 검은 보기에는 한 번 찌른 듯했지만 실제로는 세 번을 찌른 것이다.
무한의 검은 그 세 번 모두를 막아내고 혈랑아까지 가로막았다.
‘갈수록 괴물이 되어가는군.’
볼 때마다 놀라게 하니 따라다니지 않을 수 없다.
무한이 검을 거꾸로 쥐고 포권을 하며 말했다.
“두 분 대협의 흥을 깨뜨려 죄송하긴 하지만 지금 상황을 좀 봐야 하지 않을까 싶소.”
혈랑과 운객의 시선이 무한을 따라 갔다.
마천 본진 쪽에서 이쪽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십여 줄기 인영이 있었다.
한 번에 삼십여 장을 날아오는 걸 보면 보통 고수들이 아니다.
그 뒤로 다시 수백 명이 따라오고 있다.
“끄응!”
혈랑이 침음성을 흘렸다.
“저들 앞에서 두 분의 무위를 선보이는 것도 괜찮기는 하지만…….”
무한이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 것 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