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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무한-70화 (70/250)

70화

황급히 뒤로 물러났으나 핏물이 옷에 튀었다.

부스스!

순식간에 옷이 검게 타들어갔다.

재빨리 입고 있던 장삼을 벗어던졌다.

“크으으.”

살수는 마지막 수도 실패로 돌아가자 독기 어린 눈을 부릅뜬 채 죽었다.

“독하구나!”

무한은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살수에게 기회라는 귀영의 말을 새삼 떠올랐다.

“부주!”

염량이 달려왔다.

검천사위는 무한의 명을 받아 밖에 은신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달려오는 그 잠깐 사이에 일이 끝났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자들이 생각보다 지독하군요. 동귀어진을 서슴지 않다니.”

무한이 왼손에 찬 손목보호구를 보았다.

손목을 잡았던 살수의 손아귀 힘은 강했다. 손목보호구가 아니었다면 살수가 잡은 손목을 쉽게 빼내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면 다른 살수들의 공격에 그 자리에서 난자당했을 것이다.

‘형소에게 단단히 한 턱 내야겠는데.’

평소 착용하고 있는지도 몰랐는데 결정적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잠시 후 문역기가 도주했던 살수를 끌고 들어왔다.

“도주하던 놈을 잡았습니다.”

잡혀 온 살수는 요혈이 짚여 있었는데 눈빛은 마치 죽은 생선처럼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그제야 염량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런 일이 있을 거라 말씀을 하셨어야죠.”

“이들 정도는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살수는 무공 외에도 잔재주가 많습니다. 앞으로는 반드시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염량이 두 번 세 번 당부하고는 죽은 살수들을 살펴봤다.

“살수는 잡히면 자진하도록 훈련을 받습니다. 그래도 막상 죽음 앞에서는 망설이는데 미련 없이 목숨을 끊은 걸 보면 제대로 훈련을 받은 자들 같군요.”

“화수전의 살수라고 합니다.”

“예?”

염량을 비롯한 검천사위가 놀랐다.

그들도 화수전이 어떤 곳인지 안다.

“화수전 살수라니!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염량이 펄쩍 뛰었다.

무한이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 말했다.

“네 분 호위가 제 곁에 있는 한 이들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아 말씀드리지 않은 것뿐입니다.”

“천하상단이지요? 이놈들이 감히…….”

염량이 분노했다.

그도 돌아가는 상황을 아니 대번 의뢰인을 추측해낸 것이다.

“당장 가서 천종해를 잡아오겠습니다.”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갈 것만 같아 무한이 말렸다.

“놈은 제가 처리할 겁니다. 그보다…….”

무한이 도주하다 잡힌 살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입에서 천하상단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염량 대신 문역기가 말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살행에 실패하면 살인멸구를 합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 깔끔하게 죽고 가족이 위로금을 받는 게 낫겠지요.”

“문 호위는 화수전에 대해 아는 바가 있나보군요.”

“예전에 이들을 추적한 적이 있습니다.”

문역기가 죽은 화수전 살수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마도…… 이들은 일반 살수일 겁니다.”

“일반 살수? 등급이 있나요?”

“화수전은 처음에는 대상을 탐색하기 위해 일반 살수를 보냅니다. 청부대상을 해치우면 다행이고 실패해도 그 과정에서 대상의 무공이나 성향을 파악합니다. 그러니 두 번째 시도에서는 거의 대부분 성공한다고 하더군요.”

“으음. 치밀하군요.”

“두 번째 시도도 실패하면 화수전의 고수가 옵니다. 이때는 백이면 백 죽는다고 봐야 합니다. 들리는 말로는 세 번째 시도에서도 실패하면 청부 실패를 인정하고 의뢰비를 돌려준다더군요.”

“그러니까 세 번 시도를 하고 실패하면 승복한다는 말인가요?”

“떠도는 이야기이니 정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세 번 실패한 경우가 없다는 거죠.”

“그러면 이제 두 번째 살수가 오겠군요.”

무한이 잡힌 살수를 보며 말했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형제들을 풀어 화수전을 추적해야겠습니다. 앉아서 기다릴 게 아니라 본거지를 쓸어버려야죠.”

염량이 당장이라도 검천부로 연락할 기세였다.

무한이 고개를 저었다.

“화수전은 나중에 손보기로 하고요. 우선 잡힌 살수가 죽지 않도록 단단히 조치해주세요.”

“부주의 무공을 봤습니다. 죽여야 합니다. 안이하게 대처했다간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조심해야지요.”

무한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나저나 광이 가득 찼겠네요.”

광에는 곽삼양과 자칭 오산사걸이 갇혀 있다.

무한과 귀영은 죽이는 시늉만 했을 뿐 오산사걸도 모두 살려놓았다.

문역기가 살수를 결박하여 광에 가두었다.

주위를 정리한 뒤 염량이 무한에게 물었다.

“부주께서는 이들이 살수라는 걸 어찌 아셨습니까?”

화수전 살수들의 위장은 완벽해서 누가 봐도 뛰어난 목수였다.

심지어 천목투심술로 살펴도 의심스러운 걸 알아내기 어려웠다.

단지 심증만 있었을 뿐.

“몰랐습니다. 다만 의심했을 뿐이죠.”

- 주위에서 평소와 다른 일이 일어나면 화수전이 왔구나, 하고 생각하시라고요.

귀영이 화수전 살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한 말이다.

그런데 정작 귀영은 대문이 부서진 것에 대해 별반 의심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제 발로 목수를 데려왔다.

그러고도 뻔뻔하게.

“저도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다만 부주를 믿었지요. 저의 세 번 살행을 막았잖아요?”

천하상단을 다녀온 귀영은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으음. 호위 맞아요?”

“맞습니다. 저는 치명적 일격을 막는 호위이지 이런 자잘한 살수는 취급하지 않습니다.”

살수들은 정말 목수처럼 대문을 잘 고쳐 놓았다.

그 대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누구시오?”

귀영이 나가더니 의외의 손님을 데려왔다.

“남궁 선배 아니십니까?”

“정말 자네로군.”

헌앙한 청년은 천무관 시절 그나마 가까이 지냈던 남궁명이다.

“선배는 무슨, 출관도 못 했는데.”

남궁명은 무한이 입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가로 돌아갔기에 같이 지낸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검천부주에 올랐다는 소식은 들었네. 서현에 검천부주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혹시나 해서 찾아왔는데 정말 자네였군.”

“남궁세가의 정보망도 대단하군요.”

“하하. 휘주에서 일어난 일을 본가가 모른다면 어찌 오대세가라고 자처할 수 있겠나.”

그러면서 따라온 하인에게 손짓을 하였다.

하인이 커다란 대바구니를 들고 왔다.

“천무관을 나오는 것보다 자네와 헤어지는 게 더 아쉬웠네. 그래서 소문을 듣자마자 달려왔지. 나를 지기라 여긴다면 밤새 술잔을 기울일 수 있겠나?”

남궁명은 처음부터 무한에게 호감을 보였다.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무한에게는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좋지요.”

두 사람이 집 뒤편 마당 탁자에 술과 간단한 음식을 놓고 마주 앉았다.

마당은 좁았지만 아늑했고 담벼락 따라 꽃도 피었다.

남궁명이 술을 따르며 운율을 넣어 읊조렸다.

“좋군. 꽃도 좋고, 술도 좋고…… 지기를 만나니 더욱 좋네.”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며 휘주의 풍광과 천무관 시절 후일담 등을 나눴다.

서너 순배 술이 오가고.

남궁명이 문득 술잔을 내리고는 말했다.

“무슨 일로 찾았는지 묻지 않는군.”

남궁명은 남궁세가의 삼남.

무림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작지 않다. 그런 그가 찾아왔는데 무한은 의도를 묻지 않았다.

천목투심술을 이용하면 의도를 어느 정도 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때 되면 말씀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하……. 자네, 좀 의뭉스러운 면이 있다는 건 아는가?”

“그렇던가요?”

“아니라고 말은 못하겠네.”

무한은 담담히 웃었다.

남궁명이 무한의 잔과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고 말했다.

“별 뜻 없네. 가까이 지내고 싶을 뿐.”

그러고는 자신의 잔을 들어 훌쩍, 비웠다.

“천하상단의 일로 서현에 온 것을 아네.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게.”

“그러지요.”

무한은 순순히 대답했다.

상대의 호의를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보다 남궁세가의 정보력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랐다.

천하상단과의 결별은 서현에서도 아는 이가 없을 텐데…….

백가상단에서도 철저히 함구하고 있는 일인데 남궁세가에서 알고 있다는 건, 천하상단에 귀를 대고 있다는 뜻이다.

“일을 마치고 남궁가에 들렀으면 하네? 여기서 멀지 않다네.”

“알겠습니다.”

무한이 연달아 흔쾌히 대답하니 남궁명은 기분이 좋은지 크게 웃었다.

“그렇게 좋습니까?”

“자네를 보면 반가워 할 분이 계시거든.”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남궁명이 비밀이라도 말한다는 듯 목소리를 죽였다.

“자네를 만나러 간다니 아버님이 한번 보고 싶다더라고.”

무한이 흠칫했다.

남궁명의 아버지라면 남궁세가주 남궁무룡이다.

무슨 이유인지 물어보려는데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이어 귀영이 들어와서 말했다.

“와보셔야겠습니다.”

무한이 앞마당으로 나갔다.

제법 지체가 있어 보이는 관원이 포두, 포쾌들을 데리고 와 있었다.

관원이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서현 현승이다. 이 집에서 사람이 죽고 인질이 잡혀 있다는 게 사실인가?”

무한이 눈살을 찌푸렸다.

싸움이 났다는 걸 관원이 어찌 알았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무림의 일이라는 걸 알 텐데 관원이 나서다니.

일단 순순히 사실대로 말했다.

“사실입니다.”

“서현 한복판에서 사람을 죽이고 가두다니. 모두 포박하고 수색하라.”

현승이 포두에게 명했다.

귀영이 무한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자객이 들어왔는데 죽을 자는 이미 죽고 나머지는 잡아 둔 거야. 사람을 죽이러 온 놈들을 잡은 게 죄가 되나”

현승이 인상을 썼다.

“일개 백성이 감히 관에서 하는 일을 막아? 저놈도 묶어서 현청으로 끌고 가라.”

그러자 옆에 있던 남궁명이 한 발 앞으로 나가며 현승에게 포권을 하였다.

“본인은 남궁가 남궁명이라 합니다. 제 친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군요.”

현승이 흠칫했다.

“남궁가? 남궁세가 사람이오?”

말투가 달라졌다.

남궁명은 무한과 대화할 때와 달리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들어보니 이쪽이 피해자인데 포박하여 압송한다니…… 무슨 죄인지 혐의를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현승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집에서 싸움이 났다는 신고를 받았으나 무림인끼리의 분쟁이라 여기고 모른 척했다.

그런데 천하상단 이소단주 천종해가 은궤를 보내며 은근히 조사를 부탁했다.

부탁이 어렵지도 않았다.

집안을 뒤져 범죄의 혐의를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살인 혐의였으니 나름 명분이 있었다.

‘그런데 왜 여기서 남궁세가가 나오는 거냐고.’

남궁세가는 서현은 물론 휘주 일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무림뿐만 아니라 상계, 관은 물론이고 황실에도 인맥이 있다.

남궁세가의 비위를 거스르면 현승의 자리가 위태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빼든 칼이다. 현승이 짐짓, 정색을 하고 물었다.

“남궁세가의 자제께서 무슨 일로 범죄 현장에 있는 것이오?”

남궁명이 말했다.

“여기는 천하방 검천부의 주인이 머무는 거처인데 관에서 이렇게 난입하다니 놀랍군요.”

현승이 인상을 썼다.

사실 그도 무한이 천하방 검천부주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애송이이고, 사건은 확실하니까 온 것이다.

“놀랍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살인사건이 났으니 당연히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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