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
출혈이 너무 심해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그때, 밖에서 전기톱 소리가 난다 싶더니 창고 한쪽 벽을 잘라내고 두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플로라!!”
내게 안겨 있는 할머니를 향해 세바스찬 할아버지가 뛰어들었다.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 당황한 할아버지의 손이 할머니를 잡지도 못하고 어쩌지도 못하고 그저 허공을 떠돌다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지혈부터 하세.”
그가 북, 상의를 찢어 할머니의 어깨에 둘렀다.
“안으로 데려가서 침대에 눕혀야겠어. 내 등에 업혀주겠나?”
“예.”
데일이 다가와 내게서 할머니를 부축해 할아버지의 등 위로 눕혔다.
그때, 할머니의 머리 위로 금빛 별이 떴다.
[불우이웃을 발견하였습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불우이웃에게 희망의 종소리를 울려주세요.
탐색된 불우이웃: 플로라]
“잠깐만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할머니를 업고 일어나려던 할아버지를 향해 손을 뻗자, 그가 멈칫했다. 데일도 이유를 몰라 날 보며 눈을 깜박였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종을 꺼내 들었다.
-딸랑.
[스킬 ‘연민(Lv.1)’이 발동합니다.]
데일에게 그랬던 것처럼 금빛 빛줄기들이 나타날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곧이어 또 다른 상태창이 떴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상태창이었다.
[불우이웃(Lv.2)의 레벨에 따라 2레벨 스킬이 필요합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다른 설명을 읽을 새도 없이 내 손가락이 예를 눌렀다.
그리고 연이어 뜬 2레벨 스킬 사용 불가 창이 떴을 때, 참지 못한 세바스찬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험악하게 인상을 썼다.
“장난은 상황을 봐가면서 하게!!”
“그래. 일단은 부인을 안으로 모시는 게 먼저야. 어르신, 가시죠.”
두 사람이 내게서 등을 돌렸다.
할머니를 업은 할아버지 뒤로 데일이 주변을 살피며 창고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이 한 말에 어떠한 대꾸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상태창이 떠 있는 허공만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2레벨 스킬은 클래스(Lv.2)에서 사용 가능합니다.
현 클래스(Lv.1)로 2레벨 스킬을 사용하려면 자원이 소모됩니다.
소모 자원: 각성자의 생명력]
[스킬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각성자의 생명력이면 내 생명력을 대가로 내줘야 한단 소리야? 생명력이면 얼마나? 1년? 2년? 10년 치? 도대체 얼마나 가져가겠단 소리야.
아니면 단순히 건강이 약해진단 소리인가? 스킬 사용 대가로 생명력씩이나 요구하면서 설명이 너무 부족한 거 아냐?
“…….”
예와 아니오 사이에서 내 손가락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창고를 나선 세 사람이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업혀 가는 할머니의 등을 바라보았다. 황급한 얼굴로 뛰어와 나를 밀치던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허공에 떠 있던 손을 내렸다.
“사용해.”
이제는 사용이 되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이어서 뜬 창은 다시 한번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스킬 ‘연민(Lv.2)’을 임시 개방하기 위해 소모한 각성자의 생명력과 ‘첫 번째 신뢰’로 얻어낸 응원 버프가 반응합니다.]
[각성자의 생명력 X 응원]
[클래스 ‘종의 요정’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종의 요정(Lv.1)’
⇒ ‘종의 요정(Lv.2)’]
[클래스 레벨 업에 따라 하위 스킬 ‘치유(Lv.2)’를 각성합니다.]
[스킬 ‘연민(Lv.2)’이 발동합니다.]
‘아예 레벨 업을 해버렸네.’
종이 눈부신 빛을 발했다. 발아래서 전신을 타고 올라오는 미약한 바람이 느껴졌다.
바람의 세기가 점점 강해지더니 곧 몸 주위로 금빛이 뒤섞인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보니, 그 금빛은 내 몸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금빛 바람이 밤하늘을 날았다. 날아간 바람은 황금색 별빛이 되어 세 사람에게로 쏟아져 내렸다.
‘예쁘다…….’
마치 어렸을 때 봤던 마법 소녀의 마법 같아.
스킬이 잘…… 사용된 건가?
두 남자가 고개를 들어 자신들의 몸으로 떨어져 내리는 별빛을 바라보다가, 그 별빛이 흘러나오는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몸속에서 뭔가가 쑥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아…… 어지러워…….
왜 이렇게 세상이 흔들리냐.
“야!!”
데일이 이쪽을 향해 뛰었다. 뛰어오는 데일의 패딩 아래로, 내가 그에게 건네주었던 수건이 팔랑이며 떨어졌다.
오, 마이 아이즈.
“데일, 가서 빨리 바지 입…….”
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암전됐다.
❅
-타닥타닥.
옆에서 느껴지는 조금 덥다 싶을 정도의 온기와 장작 타는 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푹 자고 일어난 모양인지 몸과 정신이 모두 개운했다.
상체를 일으키자, 이마 위에 올려져 있던 물수건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식탁에 모여 있던 세 사람이 동시에 이쪽을 돌아보았다.
“깼구나?”
“정신이 들어요, 벨?”
“…….”
플로라 할머니와 세바스찬 할아버지가 서둘러 내가 누워 있는 소파 옆으로 다가왔다.
“여보, 잘 보고 있어요. 난 물수건 갈아올 테니까…….”
“아뇨, 할머니. 저 말짱해요. 가실 거 없어요.”
정말 그랬다. 아무래도 내가 쓰러졌다가 지금 깬 모양인데, 영양 주사라도 맞은 듯 몸이 가뿐했다.
“정말 괜찮아요?”
“네.”
플로라 할머니가 손에 든 물수건으로 내 이마를 부드럽게 닦아냈다. 바라보는 표정이 애틋하고 따스했다.
“다행이네. 정말 다행이야…….”
“전 정말 괜찮은 것 같아요. 할머니는요? 할머닌 괜찮으신 거예요?”
차오른 눈물을 물수건으로 찍어내는 할머니의 얼굴을 살폈다.
‘아, 뭐가 이렇게 많이 떠 있는 거야.’
실수로 클릭 연타했을 때의 화면처럼, 시야에 시스템 창이 우르르 떠 있었다. 나는 일단 할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보기 위해 창들을 모두 옆으로 밀어냈다.
피를 많이 흘린 할머니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는데, 지금 내 앞에 계신 할머니는 혈색이 도는 건강한 얼굴빛이었다.
“아…… 다행이다. 다행이에요, 진짜.”
안심이 되자 몸이 추욱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벨 양이 절 살려준 거죠?”
“쌤쌤…… 아니, 비긴 거죠.”
빙그레 웃음 짓자, 그녀가 날 따라 웃었다.
“벨이 각성자인 줄은 몰랐네. 혹시 능력을 써서 날 살리느라 많이 무리한 건 아니죠? 이렇게 정신을 잃었던 걸 보면…….”
“제가 얼마나 누워 있던 거죠?”
“하루를 꼬박 정신을 잃고 누워만 있었어요.”
“아…….”
나는 힘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냥…… 남편이랑 같이 쉬지 않고 여행을 하다 보니, 피로가 많이 누적됐던 것 같아요. 무리한 건 전혀 없는걸요.”
“그럼 내가 죄스런 마음을 좀 덜어도 되겠다, 호호.”
“죄스럽다뇨, 할머니…….”
말을 흐리며, 그때까지 식탁에 앉아 이쪽을 보고만 있던 데일을 바라보았다. 무덤덤한 시선이 내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사람이 정신을 잃었다 깨어났는데 괜찮냐는 말 한마디를 안 하는 저 꼬라지…….’
나도 모르게 인상을 구기자, 남자가 날 따라 인상을 구겼다.
뭐, 어쩌라고? 하는 저 띠꺼운 표정. 확 그냥, 아효…….
그때, 내 옆에 있던 세바스찬 할아버지가 데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벨 양이 깨어났으니 자네도 이만 가서 눈 좀 붙이고 오게.”
“괜찮습니다, 어르신.”
뭐야, 그렇다는 건 밤새 잠 안 자고 날 간호라도 했다는 거야?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이번엔 남자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제 아내 곁엔 제가 있어야죠.”
“하긴, 이제 막 깨어난 아내를 두고 잠이 올 리가 없지.”
은근히 남편끼리 공감대를 형성 중인 둘 사이로 할머니가 내게 불쑥 물었다.
“벨, 배고프죠? 온종일 자느라 아무것도 못 먹었으니 얼마나 배가 고프겠어.”
먹을 걸 가지고 오겠다며 할머니가 일어섰다.
“아뇨. 제가 식탁으로 가서 먹을게요. 가져다주실 필요는 없…….”
나는 뒤돌아 가는 할머니를 따라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갑자기 할머니의 머리 위에 떠버린 금빛 별을 보고 소파에 그대로 앉을 수밖에 없었다.
‘저 별이 왜 또 뜬 거지?’
경험으로 추측하건대, 별이 뜬 대상은 무언가가 결핍된 상태일 확률이 높았다.
전날 입은 부상이 아직 다 낫지 않으신 걸까?
“할머니?”
“응?”
부엌으로 가는 그녀를 부르며 팔을 뻗자, 플로라 할머니가 돌아와 내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가져다줄 테니까 편하게 여기서 먹어요.”
“…….”
머리 위 별이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점점 빠르게 회전하는 별을 보다가 시선을 내려 할머니와 눈을 맞췄을 때였다.
그녀가 사랑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스킬 사용 대상이 시전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합니다. 퀘스트 목표가 달성됩니다.]
[히든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폭죽이 터지는 이미지와 함께 시야에 새로운 창이 와다다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