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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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새끼 죽여!”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놈들이 저마다 무기를 들고 데일을 향해 돌진했다.
그 순간 데일은, 열어둔 운전석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든 후 오른쪽을 향해 냅다 질주했다.
‘곧이다.’
세바스찬은 무너진 벽돌 위에 고정해 놓은 저격총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저격총에 달린 8배율 숏스코프 화면이 창고 오른편을 주시 중이었다.
“놈들을 창고 오른쪽으로 끌어내겠습니다. 그 순간을 노려주십시오.”
데일의 말을 기억하며 세바스찬은 확대된 스코프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때, 창고 오른쪽에서 눈밭 위로 까만 인영이 스프링처럼 튀어나왔다. 낯선 하얀색 외투를 입은 은발의 남자, 그였다.
그를 잡기 위해 침입자들이 한 방향으로 우르르 달려나갔다. 창고 뒤에 가려 보이지 않던 놈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이다.’
은발 남자의 속도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데일과 창고의 거리가 빠르게 멀어졌다. 그를 쫓는 무리 역시 창고와의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창고 뒤편에 숨어 있는 놈들이 더는 없다고 판단이 섰을 때.
‘지금이다.’
타깃은 이미 십자 조준선 안에 들어와 있었다. 창고와의 거리가 제일 가까운 놈이었다.
달리다 지쳤는지 멈춰 서서 밭은 숨을 내뱉고 있는 놈을 향해.
-타앙!
총성과 함께 놈이 풀썩 쓰러졌다.
세바스찬은 쉬지 않고 바로 다음 타깃을 조준했다.
-타앙!
동료들이 쓰러지자 당황해 우왕좌왕하던 놈들이 몸을 숨기려 다시 창고 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둘 순 없지.
세바스찬이 빠르게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타앙!
그러나 사격 속도는 놈들이 달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놈들이 창고 뒤로 숨어버리면 어쩌지.
몇 놈을 눕혔지만 여전히 놈들은 다수였다.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기는 세바스찬의 손에 조급함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타앙!
“이런 씨…….”
처음으로 빗맞은 총알이 나오자 세바스찬이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때였다.
밤하늘 위로 무언가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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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좀 쏴.”
“그러십니까.”
‘영감, 진짜였네.’
데일은 눈앞에서 하나둘 푹푹 쓰러져 가는 적들을 보며 생각했다.
좀 쏜다더니.
분위기로만 봤을 때도 허풍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실제로 본 노인의 사격 솜씨는 실로 놀라울 만큼 깔끔했다.
‘잘하면 손 안 대고 코 풀 수도 있겠는데.’
거친 육탄전을 벌이게 될 것을 예상하고 뛰어들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자신이 미끼 역할만 잘 해주어도 노인이 다 쏴 눕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데일의 행복한 상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적들이 창고로 유턴해 달리면서 빗맞는 총알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안 되지.’
데일의 한 손엔 위스키병이 들려 있었다. 그가 다른 한 손으로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빼 들었다.
-치익.
라이터의 불이 위스키병 입구에 옮겨붙자, 그가 상체와 오른팔을 살짝 뒤로 젖혔다.
-휘익.
순간, 적들은 제 머리 위를 날아가는 화염병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다음 목격한 것은, 총알을 피해 창고 뒤로 숨으려던 놈들이 불타는 모습이었다.
“으아아악!!”
창고 뒤가 불바다였다.
앞은 불바다요, 옆은 저격수의 총알이 날아오고, 뒤엔 이 추위에 맨 종아리를 드러낸 웬 미친놈이 웃고 있었다.
직접 싸우는 장면을 목격하진 않았지만 왠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놈한테 다가가면 죽는다는 것을.
“…….”
어디로 가야 살 수 있을까.
슬슬 눈치만 보던 놈들이 두 갈래로 갈렸다. 한 무리는 온 길로 도망을, 나머지 한 무리는 미친놈에게 가보기로 했다.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놈들과 도망치는 놈들을 보며 데일은 잠시 고민했다.
자신에게 오는 놈들만 처리해도 창고 안의 둘을 구하는 데는 문제가 없겠지만, 도망치는 놈들을 남겨두면 노부부의 후일에 피곤한 일이 또 생기고 말 것이다.
-탕! 탕!
그 점은 노인 역시 알고 있던 모양이다. 데일이 고민하기 무섭게 저 멀리서 날아온 총알이 도망치는 놈들의 머리에 박혔다.
그래 주면 고민할 게 없지.
데일이 날렵하게 몸을 날렸다.
무기가 단검이라 긴 무기를 든 놈들에 비해 리치가 짧다는 약점이 있었다. 단검은 상대의 안으로 파고들어야만 했다.
적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제법 여유롭게 방어 태세를 취했다.
그러나 데일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적들의 코앞으로 파고들었다. 그가 접근한 걸 알고 무기를 휘둘렀을 땐, 이미 데일의 단검이 목 언저리를 뚫고 있었다.
푹, 푹, 푹. 몇 번의 칼질만으로 눈 위에 서 있는 사람은 데일 한 명뿐이었다.
‘남아 있는 놈은 없는 건가.’
대충 정리가 끝난 것 같았다.
얼굴에 튄 핏방울에서 혈향이 진득하게 올라왔다. 단검에 묻은 피를 눈 위에 털어낸 데일이, 손등으로 제 볼을 문질렀다.
그때.
“안 돼애애!!”
창고 안에서 여자의 절규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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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통나무 사이에 얼굴을 집어넣고 바깥 상황을 살폈다.
“저 새끼 죽여!”
누군가의 고함과 함께 데일이 한 방향으로 냅다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여러 명이 그 뒤를 쫓았다.
나는 걱정 반, 염려 반으로 창고 오른쪽 벽에 붙어서 뛰어가는 남자의 등을 바라보았다.
빠르긴 무지하게 빨랐다.
문제가 있다면…….
‘구하러 와준 건 고마운데 왜 바지는 두고 나온 거지.’
달리는 데일의 패딩 아래는 맨 종아리였고 맨 종아리에 군화 비슷한 걸 신고 있었다.
맨 종아리에 군화, 패딩 입고 맨 종아리에 군화라니.
데일은 뛰면서 고개를 돌려 저를 쫓아오는 놈들을 확인했다. 마치 그 모습이 자신을 쫓는 경찰들을 손쉽게 따돌리며 희열을 느끼는 바바리맨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
됐어. 날 구해주면 됐지, 무슨 불만이람.
복장이 저러면 어때, 음. 목숨을 살려주겠다는데.
그나저나 이어지는 세바스찬 할아버지의 사격 실력이 대단했다. 할아버지가 쏜 총알은 백발백중이었다. 데일의 뒤를 쫓는 놈들이 눈 위로 푹푹 쓰러졌다.
“할머니…….”
플로라 할머니에게 이제 우린 살았어요! 라는 눈빛을 보냈다. 나와 똑같은 눈빛으로 할머니가 대답했다.
“내 남편이…… 좀 쏴.”
“멋져요!”
한쪽 눈을 찡긋하며 엄지를 위로 세웠다. 플로라 할머니가 치켜든 엄지를 보며 웃으며 곁으로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대로 죽는 건가 싶어 눈앞이 까매졌었는데, 이제 정말 살았구나 싶었다.
나처럼 통나무 틈 너머로 바깥 상황을 살피는 할머니의 표정 역시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근데 도와주지 않아도 되려나…….”
“저희가 나가봤자 도움이 될까요. 거치적거리기나 할 것 같은데.”
“음, 아무래도 그렇겠죠?”
사실 나 역시 속으로는 걱정됐다. 적들이 머릿수도 압도적으로 많았고, 무기도 훨씬 다양하게 소지하고 있었으니까.
설마 데일이 무기도 없이 빈손인 건 아니겠지?
“아, 음…….”
달려가는 데일의 손에는 웬 위스키병 말고는 무기가 안 보이던데.
무기가 있다고 해도 작은 단검 한 개가 다일 것 같고…….
“벨, 아까 그 창을 데일에게 건네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아!”
상황을 잘 봐서 무기만 건네줄 수 있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내가 아까 창을 쓰고 어디에다 뒀더라. 아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텐데.
그러나 창은 보이지 않았다.
왜…….
“벨!!!”
플로라 할머니가 다급히 외치며 나를 밀쳤다. 나는 몸이 뒤로 넘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왜 날 밀지?
이유를 깨달은 것은 엉덩방아를 찧고 나서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안 돼애애!!”
내가 창을 찔러넣어 상대를 해쳤던 그 틈. 그 틈으로 들어온 창이 할머니의 오른 어깨를 파고들었다.
“헤…… 헤헤헤…… 했다. 내 동생의 복수…… 했어. 흐헤헤…….”
적들이 데일을 잡겠다고 모두 이동할 때, 조용히 홀로 남아 틈에 끼어 있던 창을 빼낸 이가 있었다.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틈새로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그리고 어떻게 된 영문인진 모르겠지만, 곧 그 웃음소리는 끔찍한 비명으로 바뀌어 사라졌다.
통나무 틈새로 일렁이는 화마의 불길이 보였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다친 할머니를 내 허벅지 위에 눕혔다.
찢어진 어깨를 비집고 검붉은 피가 앞다투어 흘러나왔다. 푹 패인 살갗을 손바닥으로 꾹 눌러 지혈하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내 패딩의 붉은 소매 위로 더 검붉은 혈흔이 흘러내렸다.
“벨, 다치지 않은 거죠?”
힘겹게 다른 한 손을 들어 올린 할머니가 흘러내린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이미 붉은 핏방울이 튄 할머니의 얼굴 위로 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피와 눈물이 뒤섞이는 바람에 할머니의 얼굴은 아주 엉망이었다.
“왜 저한테 이렇게까지 하신 거예요……. 흑, 저는 속으로 계속 의심만 하고…… 왜 저를…….”
팔을 드는 게 힘이 드신 모양이었다. 내 볼을 쓰다듬는 손이 달달 떨렸다. 할머니의 손이 눈 앞을 가리는 눈물을 훔쳐주었다.
“글쎄…… 나도 모르겠네. 아가씨가 우리 세나를 닮았다 해도 진짜 세나는 아닌데, 왜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지.”
볼을 어루만지던 손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