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9 재벌에이스 =========================
그렇게 자신감에 넘친 얼굴로 타석에 들어 선 장준범을 상대로 유명철이 던진 초구는 직구였다. 그저 평범한 1400Km/h 초반의 밋밋한 직구. 스트라이크 존으로 그대로 날아온 공은 포수의 미트에 들어갔다.
펑!
“스트라이크! 원!”
장준범은 그 공을 그냥 지켜만 봤다. 스트라이크를 먹은 장준범은 태연한 얼굴로 마운드 위의 유명철을 쳐다보며 히죽 웃었다. 당연히 유명철은 그런 장준범의 얼굴을 봤다. 찌푸려지는 유명철의 얼굴을 보고 장준범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유명철도 그런 장준범에게서 눈을 떼서 포수의 사인을 봤다. 살짝 존을 빠져 나가는 슬라이더! 그게 포수의 사인이었고 유명철은 그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와인드업 후 공을 뿌렸다. 그런데 아까의 앙금이 남은 걸까? 유명철의 슬라이더가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갔다.
좌타석의 장준범은 유명철의 슬라이더가 먼 곳에서 날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빠른 공을 던지지 못하다보니 변화구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슬라이더가 그의 예상 밖으로 날카로웠다.
장준범은 스트라이크 존을 걸칠 거 같기도 하고 나갈 거 같기도 하고 애매한 상황에서 장준범은 쿨하게 그 공도 참았다. 어차피 다음도 있으니까. 애매한 공을 건드려서 땅볼로 아웃 카운트를 헌납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펑!
“스트라이크! 투!”
주심의 콜에 장준범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뭐라 어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히 스트라이크 존을 걸치는 슬라이더였다. 슬라이더는 제구가 어렵다. 그런데 그걸 제구해 내다니. 장준범이 새삼스런 눈으로 다시 마운드 위의 유명철을 쳐다보았다.
유명철은 작심을 한 듯 아예 장준범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째든 현 상황은 0-2로 타자가 불리한 상황. 하지만 장준범은 오히려 지금이 더 편했다. 이제 더 이상 생각하고 자실 것도 없었으니까.
‘존 안에 들어오면 다 걷어낸다.’
그의 컨택 능력을 드디어 발휘 할 때가 온 것이다. 어차피 투수가 던질 공은 직구 아니면 좀 전에 던진 슬라이더 일 터.
‘뭐든 와라. 다 쳐 내 줄 테니.’
그렇게 장준범이 공을 기다릴 때 유명철은 여유 있게 공을 뿌렸다.
“어?”
장준범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유명철이 던진 3구는 그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공이었던 것이다. 바로 크게 위로 솟구쳤다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 커브였던 것이다.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기에 어차피 치지 않아도 스트라이크였다.
부웅!
장준범의 배트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펑!
“스윙! 삼진 아웃!”
주심의 콜이 바로 이어졌고 태산 베어스 최고의 컨택 타자란 장준범이 유명철에게 삼구 삼진을 당했다. 이것이 시사 하는 바는 컸다. 마운드 위의 별거 아닌 투수가 오늘 제대로 긁히고 있단 소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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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명철은 슬라이더와 함께 커브가 제대로 긁혔다. 하지만 그 커브를 3회에 꺼내 쓰지 않았다. 그래도 충분히 타자들을 요리해 낼 자신이 있었으니까.
태산 베어스 2군의 톱타자가 바로 타석에 들어섰다. 유명철은 앞서 장준범을 상대했을 때처럼 초구를 별거 없는 밋밋한 직구로 던졌다.
펑!
“스트라이크! 원!”
유명철은 자신을 얕보고 있는 태산 베어스 2군 타자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었다. 자신을 우습게보고 있는 그들은 자신의 초구가 뭐든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앞선 대타만큼 다음 타석의 톱타자도 일말의 망설임 없이 타석에 들어서서 타격 자세를 취했다. 그걸 보고 유명철은 상대가 이번에도 자신을 얕보고 있음을 직감했던 것이다. 그래서 초구를 또 마음 편하게 스트라이크로 던질 수 있었고. 그리고 알아도 치기 어려운 슬라이더를 또 던졌다.
스트라이크 존을 걸치고 들어가는 슬라이더를 보고 태산 베어스 2군 톱타자도 그 공을 향해 배트를 내밀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땅볼이 나올 수 있었으니까.
펑!
“스트라이크! 투!”
그렇게 태산 베어스 2군의 톱타자도 순식간에 0-2 카운트에 내몰렸다. 그리고 오늘 제대로 긁히는 폭포수 커브가 또 나왔다.
“헉!”
설마 또 커브를 던질까 싶었던 태산 베어스 2군 톱타자는 기겁하며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오늘 유명철의 커브는 언터처블이었다.
부웅!
펑!
“스윙! 삼진 아웃!”
투 타자 연속 삼구 삼진 아웃! 순간 웃고 떠들고 있던 태산 베어스 2군 덕 아웃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그리고 태산 베어스 2군 선수들의 눈에 우습게 여겼던 상대 투수가 서 있는 마운드가 갑자기 높아 보이기 시작했다.
유명철은 잔뜩 경계어린 얼굴로 타석에 들어서는 태산 베어스 2군의 2번 타자를 보고 피식 웃었다.
앞서 대타 장준범의 비웃음을 되갚아 준 것이다. 그 비웃음에 태산 베어스 2군 2번 타자가 이번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자 장준범은 그의 시선을 피해 버리고 와인드 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힘차게 공을 뿌렸다.
부웅!
펑!
“스윙! 스트라이크! 원!”
타자의 배트가 힘차게 돌아갔다. 하지만 그 배트에 걸린 건 아무것도 없었다. 태산 베어스 2군 2번 타자는 직구를 노리고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들어 온 공은 오늘 유명철이 제일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는 두 구질의 공 중 하나인 슬라이더였다. 스트라이크 존을 확실히 빠져 나가는. 그러니 타자가 그 공을 치지 못하는 건 당연했고.
툭!
데구르르!
이어진 2구에 유명철은 바깥쪽으로 정교하게 제구 된 슬라이더를 하나 더 던졌다. 그러자 눈에 익은 공이랍시고 태산 베어스 2군 2번 타자의 배트가 또 나왔다. 하지만 제대로 휘어지는 유명철의 슬라이더를 태산의 타자는 제대로 쳐 내지 못했다.
그 공은 그래도 타이탄스의 1루수 앞으로 굴러갔고 그 공을 잡은 타이탄스의 1루수는 가볍게 1루 베이스를 밟았다. 그렇게 너무도 간단히 4회 말 태산 베어스 2군의 공격이 마무리 되었다.
“아자! 아자!”
유명철은 마운드 위에서 포효했다. 그런 그에게 누구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3회와 4회에 그가 보여준 투구 내용은 완벽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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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초 타이탄스의 공격은 5번 타자부터 시작 되었다. 앞서 최민혁에게 만루 홈런을 맞은 권오성은 4회 말이 진행 되고 있을 때 봉준석 감독을 찾아가서 더 못 던지겠다고 했다. 그런 권오성의 요구를 봉준석 감독은 바로 수용했다. 그래서 불펜이 바빠졌다.
그렇게 서둘러 몸을 푼 태산 베어스의 불펜 투수가 5회 초에 마운드에 올랐다. 불펜 투수의 공은 140Km/h 중 후반대의 직구를 던졌다. 연습투구를 하고 있는 상대 투수의 공을 보며 배터 박스 앞의 타이탄스 5번 타자는 배트를 휘둘러보며 배팅 타이밍을 잡았다.
“플레이 볼!”
바뀐 투수의 연습 투구가 있고 나서 주심이 시합 재개를 외치자 타이탄스 5번 타자가 바로 타석에 들어섰다.
이때 덕 아웃에서 사인이 나왔다. 최대한 길게 승부를 하라고 말이다. 타이탄스 5번 타자는 고개를 끄덕인 뒤 바뀐 투수의 초구를 기다렸다.
펑!
“스트라이크! 원!”
태산 베어스 2군의 불펜 투수 마윤석은 노련한 투수였다. 그리고 타자의 노림수를 간파하는 눈이 탁월했고. 그런 그의 눈에 사회인 야구단의 타자가 잔뜩 호기심 어린 눈으로 타석에 들어서는 걸 보고 생각했다.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내 투구 수를 늘려 보겠단 건가?’
하지만 누구 마음대로? 마윤석은 상대가 기다리면 어떻게 대처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알았다.
펑!
“스트라이크! 투!”
마윤석은 바깥쪽과 몸 쪽을 옮겨가며 스트라이크를 던졌다. 그러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타이탄스의 5번 타자.
그 타자를 향해서 마윤석은 결정구를 던졌다.
‘이걸로 끝!’
그의 손끝을 떠난 공이 포수를 향해 날아가는 걸 보고 마윤석의 입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갔다.
부웅!
그리고 타자의 배트가 허공을 가르고 그가 던진 공이 홈플레이트 앞에서 뚝 떨어졌다. 이미 이 공을 던질 거란 사인을 주고 받은 터라 태산 베어스 2군의 포수는 바운드 된 공을 몸으로 막아냈다. 그리곤 그 공을 주워서 타자의 몸에 터치를 했다.
그렇게 아웃 카운트 하나를 올린 마윤석은 다음 타자인 타이탄스의 6번 타자를 상대로도 똑같이 3구 삼진으로 잡아냈다. 그의 결정구인 포크 볼에 타이탄스 타자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7번 타자는 마윤석의 초구에 기습 번트를 댔다. 하지만 타이탄스의 하위 타선이 앞서 빠른 발을 이용한 플레이를 한 걸 다 알고 있는 마윤석이었다. 그러니 번트에 대비하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살짝 높은 공! 그 공을 건드리면 공은 뜨게 되어 있었다.
틱!
포수 뒤로 튕겨 오른 그 공을 포수가 마스크를 벗고 바로 미트를 내밀었고 그 미트 속으로 타구가 들어갔다.
“아웃!”
주심의 콜 소리를 들으며 마윤석은 불펜 투수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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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초 타이탄스의 공격이 5, 6, 7번의 삼자 범퇴로 허무하게 끝나고 5회 말 태산 베어스 2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태산 베어스 2군 선수들은 전광판의 지금 스코어가 마음에 들 리 없었다. 그래서 5회 말에는 반드시 저 스코어를 뒤집어 놓자며 단단히 기합 들어 있었다. 그때 마운드 위에 앞선 2이닝을 퍼펙트하게 막은 상대 투수가 또 마운드에 올라왔다.
그걸 보고 태산 베어스 2군 감독 봉준석도 눈살을 찌푸렸다. 봉준석 감독은 상대 투수가 그리 위력적인 구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잘 알았다. 힘과 기술에서 자신의 타자들이 밀릴 이유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다들 저 투수의 교묘한 볼 배합에 당하고 있어.’
문제는 그 때문에 봉준석 감독도 딱히 타자들에게 해 줄 말이 없단 것이다.
‘슬라이더와 커브가 좋긴 하지만 그건 하위 타선의 타자들에게나 먹혀든 거고.........’
봉준석 감독은 태산 베어스 2군 중심타자들의 역량을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회에서는 반드시 저 상대 투수를 두들겨서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만들 거라 확신했다.
반면 타이탄스의 윤동준 감독은 고심 끝에 5회 말에도 유명철을 마운드에 올렸다. 원래 그가 유명철에게 기대했던 건 2이닝 정도였다. 그리고 그 2이닝을 유명철은 퍼펙트 하게 막아주었다. 자신의 역할은 충분히 다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윤동준 감독은 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불펜을 운용해도 딱히 유명철 만큼 태산 베어스 2군 타자들을 막아 낼 투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윤동준 감독은 5회 초 타이탄스의 공격 때 따로 유명철을 불러 부탁을 했다.
“명철아. 5회까지만 부탁하자.”
“네. 알겠습니다.”
그 부탁을 유명철이 흔쾌히 받아드렸고. 유명철이 5회까지만 태산 베어스 2군 타자들을 막아만 준다면 6회와 7회에 윤동준 감독은 아예 마무리 투수들을 내 보낼 생각이었다. 그 다음 8, 9회에는...... 윤동준 감독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덕 아웃 벤치에 앉아 있는 최민혁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