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3 재벌에이스 =========================
문상일은 유태국에게 자신이 직접 법무 1팀을 이끌고 강동경찰서로 가겠다고 해 놓고 실제로는 본사로 가서 그 동안 자신이 포섭해 둔 본사 사람들을 만났다. 유태국의 몰락이 시작 되었으니 새판을 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때 문상일 법무실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헉!”
확인하나 박규철 회장이었다. 놀란 문상일은 혹시나 기대어린 얼굴로 그 전화를 받았다. 유태국을 대신해서 자신이 그가 맡아 온 역할을 대신하게 될지 모른단 막연한 기대를 이때 문상일은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화를 받자마자 그의 귀를 쩌렁쩌렁하게 울린 건 박규철 회장의 호통소리였다.
-너 이 새끼 지금 뭐하는 거야? 빨리 유태국이 빼 내오지 않고. 본사와 계열사 홈페이지에 그런 동영상을 올린 새끼 찾아서 법적 책임도 반드시 물어.
“네. 회장님.”
박규철 회장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문상일의 대답을 듣자 바로 전화를 끊었다. 문상일은 벌레 씹은 얼굴로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법무 2팀 애들 몇 명 데리고 지금 즉시 강동 경찰서로 가 봐. 그래. 회장님 지시니 어쩔 수 없어. 일단 유태국이 빼내. 가능하지?”
경찰서에서 사람 하는 빼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것이 설사 살인 현장에서 검거 된 살인자라 하더라도 말이다. 오성그룹 법무실의 힘은 그 정도로 막강했다. 때문에 문상일은 법무 2팀의 부 팀장과 그 밑에 팀원 몇 명만 가도 강동 경찰서에게 유태국을 빼내 올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냥 그를 경찰서에서 빼내 올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말이야. 시간은 좀 끌어. 최대한. 내일까지. 아니면 오늘 저녁까지라도. 무슨 말인지 알지?”
유태국의 복귀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그의 그룹 내 입지와 영향력은 추락할 터였다. 물론 박규철 회장이 아직 유태국을 버리지 않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어디 한결 같던가?
지금 박규철 회장이 잘 몰라서 그렇지 유태국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그라고 해도 유태국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 만큼 유태국은 사실상 추락하는 비행기나 마찬가지였다.
“경찰서도 한 시간 쯤 뒤에 가. 내가 책임 질 테니.”
박규철 회장은 분명 빨리 유태국의 경찰서에서 빼내라고 했다. 하지만 경찰서에 잡혀 간 사람을 그날 밤이나 다음 날만 빼내도 그건 빠른 조치였다. 물론 그 사실이 알려지면 박규철 회장에게 욕을 얻어먹을 테지만. 그 정도 욕은 얼마든지 얻어먹을 수 있었다. 유태국의 목만 제대로 물어뜯을 수 있다면 말이다.
법무 2팀의 부 팀장과 통화 후 문상일은 자신이 불러 모은 본사 사람들과 같이 근처 횟집으로 향했다.
새판을 짜는데 술이 빠질 수 없지 않은가? 자신을 오성그룹의 실질적인 2인자 자리에 올려 줄 사람들이었다. 문상일은 오늘 그들에게 아낌없이 돈을 쓸 생각이었다. 그래야 그들이 더 소문을 낼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 들 테니까.
결국 권력은 사람 싸움이었다. 본사에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의 영향력도 그 만큼 커지는 법.
오성그룹 법무실장이 제 2의 유태국의 자리를 노리고 사람들 포섭 작업에 들어갔을 때 오성그룹 본사 다른 핵심부서 장들 역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 법무실장 문상일처럼 유태국의 목을 제대로 물어뜯어서 그의 숨통을 끊어 놓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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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강동 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서장실을 찾아갔다.
“어서 와라.”
“유태국은요?”
“취조실에 있다. 갈까?”
모친은 시간에 쫓기는 듯 조급해 보였다. 그런 모친에게 최민혁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온 이상 이 일은 우리가 의도한 대로 흘러 갈 테니까요.”
“태평하긴. 그래도 상대는 오성그룹의 실세다. 오성그룹의 법무팀이 뜨면 내 힘으로는 유태국을 지켜 내기 어려워. 그 전에 빨리 그 자로부터 자백을 받아 내야 해.”
모친도 오성그룹 법무 팀만큼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긴 검찰과 법무부, 법원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그들이 경찰서에서 그간 빼내 간 자들이 얼마던가? 조사만 하면 확실한 물증과 증인을 확보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들을 놓아 주어야 했을 때 모친의 속도 부글부글 끓었을 터였다.
최민혁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실제 차성국도 그렇게 몇 차례 경찰서에서 나오기도 했었고. 현 대한민국에서 오성그룹의 법무팀은 확실히 법 위에 존재했다. 그런 그들이 경찰서에 나타나면 경찰서장인 모친도 별 수 없이 유태국을 내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뜨기 전에 유태국의 자백을 받아 낼 테니 염려 마세요.”
최민혁은 모친을 진정 시킨 뒤 시간을 확인하고 바로 움직였다. 사실 최민혁도 오성그룹에서 법무팀이 오기 전에 이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그들이 작정하고 덤비면 최민혁이 뭘 하기도 전에 자칫 그들이 유태국을 빼내 갈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신은 최민혁의 편인 모양이었다. 오성그룹의 법무팀은 아직 강동 경찰서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최민혁은 모친과 같이 유태국이 취조를 받고 있는 취조실로 향했다. 그리고 취조실 뒷방에서 특수 유리벽 너머로 유태국을 봤다. 유태국은 능구렁이처럼 형사의 강도 높은 취조를 잘도 대충 넘어갔다. 불리한 진술은 절대 하지 않고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얼굴이 초조해지고 있음을 최민혁은 눈치 챘다. 그리고 그가 전화를 걸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최민혁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어머니. 전화하게 해 주세요.”
“뭐?”
최민혁의 말은 한시라도 빨리 취조를 해서 유태국에게 자백을 받아내도 시원찮을 판에 그에게 전화를 걸 수 있게 한다는 건 빠져 나갈 구멍을 내 주겠단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놈에게 문제가 생겼어요. 그러니 따른 수를 찾는 거고요. 어차피 저 놈은 전화하기 전에 입을 열 놈이 아닙니다. 제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니 유태국이 전화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모친은 최민혁의 말을 믿고 취조실의 형사에게 전화를 해서 유태국이 전화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최민혁은 유태국이 전화를 하자 바로 세나에게 말했다.
‘누구랑 통화하는 지 알 수 있지?’
[당연하죠. 마스터의 추적 능력으로 그 정도는 가능하거든요. 어디 보자. 지금 유태국은 오성그룹 박규철 회장의 수행비서와 통화 중입니다.]
‘역시......’
유태국은 오성그룹 법무 팀을 믿지 못해서 박규철 회장을 직접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좋았어.’
이는 오성그룹 내 하이에나들이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단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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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모든 게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음에 흡족해 하며 모친에게 말했다.
“어머니. 이제 직접 들어가세요. 그리고 제가 말하는 대로 유태국에게 질문을 하시면 됩니다.”
모친은 요즘 현장에서 경찰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최소형 무전기 본체를 호주머니 속에 넣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로 인해 무전기를 통해 취조실 유리벽 너머에 있는 최민혁과 소통이 가능해진 것이다.
모친은 곧장 취조실로 향했고 혼자 취조실 유리벽 너머 뒷방에 남은 최민혁은 팔짱을 꼈다. 잠시 후 모친이 취조실에 나타나고 유태국을 취조하던 형사가 취조실 밖으로 나갔다.
취조실에는 모두 3대의 카메라가 작동 되고 그 안의 말은 전부 다 녹음이 되고 있었다. 최민혁은 그래서 최대한 신경을 써서 유태국에게 질문할 말들을 생각했다.
우선 유태국의 입에서 오성그룹 전 비서실장 박주혁을 살인 교사한 것을 인정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건 최민혁에게 있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자백 능력을 사용하면 되니까. 자백 능력은 강요와 다르다. 그가 죄가 없다면 자백을 한다 해도 문제 될 것이 없으니까.
모친은 경찰 경력 30년의 베테랑답게 능숙하게 유태국을 취조했다. 하지만 유태국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쾌한 얼굴로 모친을 쏘아보았다. 하긴 그의 손에 직접 수갑을 채운 경찰이 눈앞에 있으니 그걸 지켜보는 게 기분 좋을 순 없을 터였다.
“어머니. 유태국을 똑바로 쳐다보시고 이렇게 물어 보세요. ‘당신이 박주혁 전 비서실장을 죽이라고 지시 했나요?’라고요.”
최민혁이 마이크에 대고 말하자 모친이 유도 질문을 멈추고 갑자기 유태국을 쏘아보며 물었다.
“당신이 박주혁 전 비서실장을 죽이라고 지시 했죠?”
대뜸 묻는 모친의 물음에 유태국은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확 얼굴이 일그러진 그가 막 모친에게 뭐라고 말하려 할 때였다. 최민혁은 유태국에게 자백 능력을 사용했다. 그러자 유태국이 또 한 번 움찔하더니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때 최민혁이 마이크에 대고 다시 말했다.
“어머니. 한 번 더 물어 보세요.”
최민혁의 그 말을 들은 모친이 다시 유태국에게 물었다.
“유태국. 당신이 박주혁 전 비서실장을 죽이라고 지시 했잖아?”
그러자 유태국의 입이 바로 열렸다.
“네. 맞습니다. 제가 지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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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숙 총경은 아들인 최민혁의 말을 믿었다. 하나 뿐인 아들이 아니던가? 게다가 요즘 들어 이상하게 아들의 말이 믿음직스런 그녀였다. 그런 아들이 이상한 일에 연루되어 서울경찰청장의 눈 밖에 나면서 그녀도 자기 자리를 지키기 어려울 지경에 처했다. 그러자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그녀도 가만있을 수 없게 되었다.
생각 같아선 사표 던지고 경찰 생활을 접을까도 싶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자신의 아들을 그냥 둘 서울경찰청장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욱 이 자리를 내려 놓을 수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아들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어떻게 서울경찰청장과 싸워야 할지 그 길을 제시해 주었다. 총경에 불과한 그녀로서는 까마득히 높은 서울경찰청장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유명해진다면 얘기는 달랐다.
민정숙 총경은 아들이 물어다 준 대박 사건을 직접 현장에서 진두지휘해서 해결했고 그로 인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게 되었다. 더불어 국민적 관심은 함께.
바로 이때 최민혁은 서울경찰청장을 잡을 미끼를 물어왔다. 바로 오성그룹의 실세인 비서실장 유태국! 그 자를 앞에 두고 취조를 하던 민정숙은 아들이 시킨대로 그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유태국이 바로 실토를 하는 게 아닌가?
‘뭐 이런........’
예상치 못한 유태국의 반응에 민정숙이 더 놀랐다. 그때 그녀의 귀로 아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진정하세요. 카메라가 어머니의 모습도 찍고 있습니다.
아들의 말에 민정숙은 바로 표정을 고쳤다. 그대 아들의 말이 뒤이어 들려왔다.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그에게 언제 어디서 어떤 목적에서 살인을 교사하게 되었는지 수사 원칙에 따라 물어 보세요.
아들의 그 말을 듣고 민정숙은 차분히 유태국에게 물었다.
“전 비서실장 박주혁은 언제 죽이라고....................”
민정숙은 10여 분간에 걸쳐서 질문을 했고 유태국은 그때마다 모든 걸 체념한 얼굴로 사실대로 대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