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6 재벌에이스 =========================
“네에. 잘 들었습니다. ‘한 떨기 할미꽃’님 노래 실력이 정말 대단하시네요.”
MC윤봉규가 곧장 무대에 오르며 말했다. 보통 이럴 때 그는 별 말 없이 무대에 올라서 관중들에게 조용히 투표 해 줄 것을 말한다. 그게 MC로서 중립을 지키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오늘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그것이 투표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신나고 열정적인 무대였습니다. 정말 노래 잘하시네요. ‘한 떨기 할미꽃’님! 자아. 그럼 투표를 시작해 볼까요?”
MC윤봉규는 의도적으로 무대에서 필요 없는 멘트를 날렸다. 그가 그런 이유는 최민혁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2라운드에서 최민혁이 떨어지길 바랐다. 그 때문에 그 상대인 ‘한 떨기 할미꽃’를 대 놓고 편애하는 방송을 한 것이고.
물론 이런 무대에서 MC의 영향력은 컸다. 때문에 관중들이 투표하는 데 분명 영향력 미쳤을 터였다. 그 때문에 MC윤봉규는 노우석PD에게 지적 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가 더 이런 짓을 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쿨하게 노우석PD에게 말했다.
“미안.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
그 사이 ‘한 떨기 할미꽃’에 대한 투표가 끝났다.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MC윤봉규가 웃는 가운데 대왕 쥐 가면을 쓴 최민혁이 무대에 올랐다. MC윤봉규는 ‘한 떨기 할미꽃’과는 완전 상반되게 굴었다.
“준비 다 됐으면 시작해 주세요.”
최민혁을 보고 떨떠름하니 그 말만하고 무대를 나와 버린 것이다. 최민혁은 그런 MC윤봉규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물론 그런 그의 얼굴을 아무도 볼 수 없었지만.
최민혁이 무대 한 가운데 서서 호흡을 고른 뒤 됐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무대 위의 모든 조명이 꺼지고 최민혁 한 명에게 단독 조명이 비춰졌다. 그리고 흐르는 노래의 전주.
그 전주를 듣고 제일 먼저 패널 석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패널들 얼굴에 다들 안타까움이 묻어 나왔다.
“하아! 고백?”
그럴 것이 전에 고백을 불렀던 출연자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패널들도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패널들의 반응처럼 최민혁이 부를 노래가 임재호의 ‘고백’ 임을 알게 된 관객들의 얼굴이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다들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주가 끝나고 최민혁이 첫 소절을 불렀을 때였다.
“어찌 합니까아~ 어째야 할까요오~..............”
패널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관객들의 실망스러웠던 두 눈에서 순간 기대에 찬 눈빛을 마구 내뿜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 된 최민혁의 폭발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무대에 패널들은 물론 관객들 역시 흠뻑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하지만 그녀 하나만은 내게 허락 하소서어~”
그렇게 최민혁의 무대가 끝이 났다.
“...............”
그리고 이어진 적막. 그 적막을 깬 것은 패널 석 위의 작곡가 박인석이었다.
짝짝짝!
그의 박수에 반응해서 패널들이 박수를 치고 뒤이어서 관중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무대가 박수로 가득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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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이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 MC윤봉규는 최민혁이 2라운드에서 떨어질 걸 확신했다. 앞에 보여 준 ‘한 떨기 할미꽃’의 무대가 그만큼 대답했던 것이다.
“새끼가 까불고 있어.”
물론 섭외 과정에서 자신이 잘못 하긴 했다. 최민혁에게는 묻지도 않고 일방적인 섭외를 한 게 사실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자신에게 최민혁이 그러면 안 됐다.
“내가 누군 줄 알고.........”
MC윤봉규는 오늘 촬영이 끝나면 최민혁을 섭외 하는 데 이용해 먹은 강하나도 섭외 취소를 시켜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구도로 계약 한 거나 마찬가지지만 MC인 그의 능력이라면 출연자 하나 출연 못하게 막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MC윤봉규는 최민혁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자신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 지 말이다.
“어어.....”
그런데 아무래도 그 생각이 잘못 된 거 같았다. 최민혁이 고백의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MC윤봉규는 그걸 깨달았다.
“씨발.........”
그리고 최민혁의 노래를 듣고 넋이 나간 관중들의 반응을 보고 입에서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안 그래도 앞선 무대에서 관중들의 이목을 집중 시켰던 최민혁이었다. 그런 그가 1라운드에서 선보인 목소리와는 또 딴판인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자 관중들은 그에게 완전 매료 되었다.
특히 여자들은 최민혁을 향해 마구 하트를 뿅뿅 날려대고 있었다. 남자들 역시 다들 입을 쩍 벌리고 그의 노래에 집중하고 있었고.
‘가면 노래왕’의 MC만 5년 째인 윤봉규였다. 척 보면 알았다. 이건 볼 것도 없이 ‘천하무적 대왕 쥐’의 승리였다.
“저 새끼 대체 뭐야? 뭔 투수가 이렇게 노래를 잘 해?”
강하나가 노래를 잘한다고 하긴 했지만 요즘 노래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래서 그 말을 간과했는데 이건 가수 뺨칠 수준이었다.
“우와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
최민혁의 노래가 끝나자 관중들이 함성과 함께 일제히 일어나서 기립 박수를 쳤다. 앞선 ‘한 떨기 할미꽃’이 억지로 관중들을 일으켜서 함성과 박수를 유도 했다면 이번엔 관중들의 자발적인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역시 확연히 차이가 났다.
72대 95!
MC윤봉규의 도움이 있었음에도 ‘한 떨기 할미꽃’은 최민혁의 상대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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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윤봉규는 어쩔 수 없이 승자인 최민혁과 인터뷰를 했다.
“승리하셨는데 소감 한 마디.......”
“네. 기쁩니다. 그리고 저의 노래를 들어 주신 관중께 고맙다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하지만 최민혁과 인터뷰가 껄끄러웠던 MC윤봉규 간단한 질문만 하고 2라운드 첫 번째 무대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곧장 2라운드 두 번째 무대가 시작 되었고 ‘훨훨 나는 귀뚜라미’가 먼저 무대에 올랐다.
‘훨훨 나는 귀뚜라미’는 노우석 PD가 달리 자신이 노래왕이 될 거라 확신한 게 아니란 걸 그 무대에서 증명했다.
“와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
그의 노래가 끝나자 앞선 ‘천하무적 대왕 쥐’와 같이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기립 박수를 쳤던 것이다.
그 뒤에 ‘훨훨 나는 귀뚜라미’를 상대로 무대에 오른 ‘감다 만 태엽 시계’도 나름 열창을 했다.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의 ‘감다 만 태엽 시계’는 파워풀하게 노래를 불렀지만 관중들의 기립 박수까진 이끌어 내지 못했다. 그리고 곧 투표 결과가 공개 되었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훨훨 나는 귀뚜라미’의 승리였다. 그렇게 노래왕에게 도전할 도전자를 가려 낼 3라운드 무대의 최종 출연자가 결정 되었다. 그리고 그 무대가 열리기 전 10분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최민혁은 대기실로 가서 물을 마시고 짧지만 휴식을 취했다. 그때 그의 대기실에 노크 소리가 들리곤 이내 문이 열렸다. 그리고 FD가 불쑥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최민혁은 금방 시간을 확인한 터라 아직 출연 전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FD가 그의 대기실에 나타났다?
최민혁의 시선이 FD의 손으로 향했다. 그러자 그의 양손에 펜과 종이 서류가 들려 있었다. 그걸 보고 최민혁의 눈이 반짝 빛났다.
“최민혁 선수. 정말 이렇게 노래를 잘 하시는 줄 몰랐어요.”
“네. 고맙습니다.”
FD의 칭찬에 최민혁은 겸손히 반응했다. 그때 그가 최민혁에게 바짝 다가오더니 그 앞에 들고 있던 서류와 펜을 내밀며 말했다.
“이거 출연 계약선데 사인 좀 해 주세요.”
“...........”
하지만 최민혁은 그 출연 계약서를 멀뚱이 쳐다만 볼 뿐 아예 펜을 집지도 않았다. 그걸 보고 FD가 말했다.
“시간 없는데 빨리 사인 좀.......”
그때 최민혁이 말했다.
“사인 할 수 없을 거 같네요.”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FD가 최민혁을 쳐다보자 최민혁이 계약서의 내용을 꼭 집어 말했다.
“여기 보면 노래왕이 되고 나면 계속 방송에 출연을 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전 출연이 불가능합니다.”
“네에?”
“다음 주 주중에 괌으로 전지훈련을 가야 하거든요.”
“..............”
최민혁의 그 말에 FD는 제대로 뒤통수를 후려 맞은 거 같이 두 눈이 곧 튀어 나올 듯 한 얼굴로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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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의 말을 듣고 난 FD는 골치가 아파왔다. 그럴 것이 당연히 사인하고 끝낼 일이 갑자기 엄청난 대형 악재로 바뀐 것이다.
‘어째 친하게 굴더라니.......’
FD는 이일을 시킬 때 노우석 PD가 이상하게 그의 어깨를 다독거린 이유를 이제야 알 거 같았다. 하지만 이런 일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그는 어떡하든 최민혁에게 출연 계약서에 서명을 받아 내야 했다.
“전지훈련 도중에 잠깐 국내에 들어오셨다가 녹화하시고 또 괌으로 가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최민혁 선수가 노래왕이 된것도 아니고요. 그러니 일단 사인을 하시고..........”
FD는 끈질기게 최민혁을 설득했다. 이 정도면 귀찮아서 사인을 해 줄만 하건만 최민혁은 끝끝내 출연 계약서에 사인을 해 주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짧은 휴식 시간이 끝났다.
“그럼 이따 봐요.”
FD는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나지만 3라운드가 끝나면 최민혁에게 출연 계약서의 사인을 받아 낼 자신이 있었다. 막말로 최민혁이 3라운드에 떨어지면 그가 사인 받으려고 이렇게 귀찮게 굴 필요도 없었으니까.
“와아아아아!”
관중들의 환호성과 함께 촬영이 재개 되었다. 3라운드에 진출한 가면 쓴 출연자 두 명이 무대에 올라 있었고 그들 사이에 MC윤봉규가 서 있었다.
“드디어 노래왕에 도전할 도전자를 뽑는 3라운드 무대가 시작 되었습니다. 앞 선 무대에서 기립 박수를 이끌어 냈던 두 출연자들이 나란히 3라운드에 올랐는데요. 노래왕께서 어떻게 들으셨나요?”
MC윤봉규는 왕좌에 앉아 있는 현 노래왕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그러자 노래왕이 바로 대답했다. 물론 음성이 변조 된 채.
“두 분 다 실력이 출중하셔서 걱정입니다. 6주 연속 우승을 바라봤건만 잘하면 오늘 이 자리에서 내려 와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아. 왕의 자리를 지켜 낼 자신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뭐 꼭 그런 말은 아니고. 저도 비장한 각오로 임해야겠다 이런 말이죠.”
“비장한 각오라? 그 말씀은 오늘 비장의 무기가 준비 되어 있단 말인가요?”
“뭐 그렇다고 봐도 되고요.”
“오오. 기대 됩니다. 자아. 노래왕의 말을 들으셨죠? 각자 노래왕에게 한 마디씩 해 주십시오.”
MC윤봉규가 마이크를 먼저 ‘훨훨 나는 귀뚜라미’에게 내밀었다.
“5주면 충분한 거 같습니다. 이제 그 자리에서 내려오시죠?”
‘훨훨 나는 귀뚜라미’의 그런 도발적인 말에 왕좌에 앉아 있던 노래왕이 덤벼 보라면 손짓을 했다. 그 장면을 찍으며 노우석 PD이 입에 귀에 걸렸다. 그에 촉이 말해 주고 있었다. 이 장면이 나가면 시청률이 급상승 할 거란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