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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62화 (6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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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뭐 어째든 박단비는 계속 난센스 퀴즈를 냈다. 그런데 상대가 자신의 분량에 신경을 쓴 탓에 답은 그리 많이 맞추진 못했다. 이상하고 엉뚱한 답을 늘어놓으면서 박단비를 곤욕스럽게 만들기도 했고 말이다.

“남자가 가장 좋아하는 집은?”

-이거 참. 이거 맞추면 욕먹는 거 아닌지 몰라. 에이 몰라. 정답은 계집!

딩동댕!

[여기까지입니다. 어디보자. 아아. 아쉽네요. 6문제 맞추셨습니다. 자. 그럼 이 분은 또 누구실까요?]

-안녕하십니까? 개그맨 양배춥니다.

“아아. 양배추씨. 오랜 만입니다.”

사회자 표일섭도 개그맨 출신인지라 양배추와는 잘 아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앞서 김희철 때처럼 표일섭과 양배추, 박단비 간에 형식적인 대화가 오고갔다. 양배추는 어떡하든 좀 더 오래 방송에 나오고 싶어 했지만 노련한 사회자 표일섭이 알아서 양배추와의 통화를 끊었다. 그리곤 마지막 남은 강하나를 보고 표일섭이 말했다.

“자. 이제 가장 기대가 되는 분이십니다. 아시겠지만 가지고 계신 봉투에는 수준 높은 상식 문제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좀 똑똑하신 분을 선택하여야겠지요. 그럼 전화를 걸어 주십시오.”

강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요즘 가장 바쁜 연예인인 유재식에게 전화를 걸려 했다. 어차피 그에게 전화를 걸어도 그는 받지 않을 테니까. 그럼 강하나가 미안하다며 자연스럽게 다짜고짜 전화 퀴즈를 포기할 생각이었다.

“어?”

그런데 긴장한 나머지 전화를 잘못 걸었다. 그녀가 진짜 걸고 싶었던 상대. 지금 가장 듣고 싶은 목소리의 주인공. 바로 최민혁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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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나는 다급히 전화를 끊으려 했다.

-여보세요.

그런데 최민혁이 전화가 울리기 무섭게 강하나의 전화를 받아 버렸다.

“..............”

순간 강하나는 얼어버렸는데 그때 사회자 표일섭이 그녀보고 빨리 문제를 내라고 제스처를 취했다. 그걸 보고 강하나는 수준 높은 상식 퀴즈를 다짜고짜 최민혁에게 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으로, 사리(事理)에 옳고 그름을 돌보지 않고, 자기(自己) 비위에 맞으면 취(取)하고 싫으면 버린다는 뜻의 고사성어는?”

당연히 최민혁이 이걸 알 리 없었다.

-감탄고토

딩동댕!

그런데 그걸 최민혁이 맞췄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강하나가 다음 퀴즈를 냈다.

“4대 중증질환은 암, 심장, 뇌혈관, 그리고 이것을 뜻하는데요. 이것은 무엇일까요?”

-희귀난치성 질환

딩동댕!

최민혁은 강하나가 내는 퀴즈는 족족 다 맞췄다. 그렇게 4개를 맞추고 나자 갑자기 문제가 급격히 어려워졌다. 문제를 내는 강하나도 전혀 모르는 그런 문제가 말이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발사체로 자국 위성을 자국 땅에서 발사하는데 성공한 나라를 일컫는 말로.....”

-스페이스클럽(Space club)

딩동댕!

그런데 최민혁은 어려운 문제일수록 더 빨리 풀었다.

“미 연방정부 재정 긴축·정부지출 자동 삭감을 의미하는.....”

-시퀘스터(Sequester)

딩동댕!

최민혁이 문제도 다 내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려운 문제를 초 스피드로 맞추자 사회자 표일섭뿐 아니라 방송 부스 밖의 PD와 작가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부의 급작스런 지출 축소 및 중단으로 인해 유동성이 위축되면서 경제에 큰 충격을 주는 현상을.....”

-재정절벽

딩동댕!

“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국제 투기자본을 규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자본이 급속하게 유입되거나 빠져나가면 통화 가치가 급격하게 등락해 외환위기를 부를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단기적 자금 이동에 부과하는 세금은?”

-토빈세!

딩동댕!

“복지는 좋지만 내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 것은 싫다(NOOMPㆍNot Out Of My Pocket)라는 심리를 지칭하는.........”

-눔프 현상!

딩동댕!

“국제해사기구(IMOㆍ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의 산하기관인 국제유류오염재해보상기구에서 운영하는 기금으로 회원국의 해양을 지나는 선박이 사고로 인해 기름이 유출됐을 때, 주변 지역 피해당사자들에게 피해를 보상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이 기금은 뭘까요?”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Fund)

딩동댕!

“................”

그리고 방송 부스 안에 잠시 침묵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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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 라디오 방송의 PD와 주미예는 서로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 주미예의 소속사 대표의 소개로 그녀와 인연을 맺게 된 두 시 오 분에 데이트의 PD는 주미예를 띄워 줄 요량으로 신년 특집 방송을 기획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미예를 비롯해서 앞으로 뜰 것이 확실한 여배우를 섭외했고 말이다.

그 섭외에 SQ엔터테이먼트에선 강하나 보다 급이 떨어지는 신인 여자 연기자가 게스트로 참가시키기로 했다. 그런데 그 신인 여자 연기자가 갑자기 집에 일이 생겨 출연이 어려워지자 강하나가 대신 땜방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주미예는 강하나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주미예가 노리는 역할을 강하나가 죄다 가져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두 시 오 분에 데이트의 PD에게 부탁을 했다. 오늘 방송에서 강하나를 제대로 엿 먹이자고 말이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이 다짜고짜 전화 퀴즈였고 두 시 오 분에 데이트의 PD는 강하나가 문제를 내도 절대로 이길 수 없게 뒤쪽에는 그도 모르는 어려운 문제를 내 놓았다.

“맙소사!”

그런데 그 어려운 문제를 강하나가 다짜고짜 전화를 건 남자가 다 맞혀 버렸다. 목소리만 들어도 두 시 오 분에 데이트의 PD인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남자가 말이다.

[우와! 만점이 나왔습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강하나양. 대체 누굽니까?]

방송 부스 안의 정적을 사회자 표일섭이 깼다.

“오, 오빠. 소개 좀....”

강하나가 조심스럽게 얘기하자 전화기 너머로 최민혁이 자신을 직접 소개했다.

-네. 안녕하십니까. 오성 라이온즈에서 공을 던지고 있는 최민혁입니다.

“.............”

최민혁의 소개에 방송 부스 안이 또 한 차례 더 정적에 휩싸였다.

[저, 저.....그러니까 지금 전화하고 계신 분이 오성 라이온즈의 에이스 최민혁 선수란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와아. 대박! 저 팬입니다.]

앞선 두 게스트들이 전화한 대상들과 달리 사회자 표일섭은 진심으로 최민혁과 강하나와 얘기를 나눴다.

[아아. 그러니까 강하나양의 베스트 프렌드가 최민혁 선수 여동생이란 말이로군요. 전 또 두 분이 사귀는 줄 알았는데. 아쉽네요.]

-하하하하. 하나와는 좋은 오빠 동생 사이니 오해 말아 주십시오.

최민혁은 진짜 야구 선수 맞나 싶게 언변도 뛰어나고 똑똑했다.

[최민혁 선수. 저 진짜 놀랐습니다. 보통 운동하시는 분들은 책과 별로 안 친하거든요. 그런데 최민혁 선수는 다른 거 같습니다. 평소에도 책을 많이 보시나 봅니다?]

-네. 시합 뛰고 연습할 때 빼고 시간 날 때면 주로 책을 보는 편입니다.

[오늘 다짜고짜 전화 퀴즈에서 우승하셨는데 소감 한번 들어 보죠.]

-운이 좋았습니다. 제가 아는 문제들이 나와서요. 그리고 우리 하나 많이 사랑해 주십시오.

최민혁의 팬답게 사회자 표일섭은 최민혁과 강하나가 빛날 수 있게 좋은 방향으로 방송을 진행 시켜 주었다. 덕분에 강하나의 인지도는 더 올라갔고 최민혁이 의외로 똑똑하단 소문이 세상에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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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집으로 가던 중 여동생 최다혜가 생각나서 차를 갓길에 잠깐 정차시키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려 했다. 그런데 강하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뭐지?”

최민혁은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그랬더니 뜬금없이 강하나가 퀴즈를 내기 시작했다.

상식 문제인데 최민혁에게는 별거 아닌 수준이었다. 그래서 답을 척척 말해 줬더니 그때마다 딩동댕 실로폰 소리가 났다. 그렇게 10문제를 다 풀고 나자 강하나가 라디오 방송 중이라고 했다.

차성국은 연예 오락 프로그램이 아닌 경제 프로에 몇 번 출연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방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능수능란하게 방송에 임했다. 당연히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준 강하나를 띄워 주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그렇게 강하나와 통화를 끝내고 최민혁이 여동생에게 다시 전화를 하려니 최다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최민혁은 여동생의 전화를 바로 받았다. 그랬더니 최다혜가 빽하니 소리를 쳤다.

-오빠! 지금 어디야?

“외출 했다가 들어가는 중인데 왜?”

-빨리 와. 지금 양가에서 우릴 찾고 있어.

“양가?”

-친가와 외가에 신년 인사 올리러 가야지.

“아아!”

차성국에게는 친가와 외가란 말이 외국어, 아니 외계인어나 마찬가지였다. 부친이 누군지 모르고 컸고 모친은 고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생겨난 친가와 외가에 가야 한다니 약간 멘붕이 왔다.

-빨리 와. 나 지금 배고프단 말이야.

“배고프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어.”

-내가 끓이면 맛없단 말이야. 그러니 오빠가 빨리 와서 끓여.

“하아. 알았다.”

아무래도 자신의 여동생에게 자신은 식모로 밖에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최민혁은 곧장 집을 향해 차를 몰았고 도착해서 집안 거실에 들어서자 막 씻고 나온 듯 최다혜가 펑퍼짐한 옷에 머리에 수건을 돌돌 말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최민혁과 눈이 마주치자 바로 엄지 손끝을 그녀 뒤쪽, 부엌을 가리키며 말했다.

“라면!”

최민혁은 집에 오자마자 부엌으로 들어가야 했다.

“내가 무슨 부엌데기도 아니고.....”

그때 거실에서 최다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나 좀 맵게. 땡초 넣어서 끓여 줘.”

최민혁은 기가 차하면서도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 위에 그걸 올리고 있었다.

송송 썬 파와 땡초를 맨 마지막에 넣고 라면을 냄비째 식탁에 올려 놓으며 최민혁이 외쳤다.

“라면 먹어!”

“알았어.”

최다혜가 신난 얼굴로 부엌으로 들어와서 식탁에 앉는 걸 보니 그나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역시 요리는 만드는 것보다 그걸 맛있게 먹어 주는 사람을 볼 때가 더 뿌듯하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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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룩....쩝쩝.....맵다....매워......후루룩.”

최다혜는 연신 맵다면서 라면 국물을 계속 떠먹었다. 그렇게 라면 한 냄비를 국물째 다 마신 최다혜가 배를 만지며 말했다.

“잘 먹었다.”

그리고 식탁에서 일어나며 최민혁에게 물었다.

“어딜 먼저 갈 거야?”

그 말에 최민혁은 그제야 최다혜가 양가에 가야 한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넌 어디부터 갔으면 싶은데? 네가 가자는 데부터 먼저 갈게.”

최민혁이 슬쩍 그 책임을 최다혜에게 떠넘겼다. 그러자 최다혜가 잠깐 고심을 하더니 최민혁에게 말했다.

“그럼 친가부터 먼저 가.”

“왜?”

최민혁은 그냥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그러자 최다혜가 그 이유에 친절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그야 친가에는 밥을 안 주잖아.”

식순이 최다혜 다운 답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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