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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그렇게 검은 스타렉스가 사라지고 나자 변은하는 호남정의 사장을 불렀다. 그리고 그 사장에게 천만 원 권 수표 몇 장을 건네며 말했다.
“입단속 좀 부탁드릴게요. CCTV 저장 하드도 저 주시고요.”
호남정 사장도 변은하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의 부탁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여기서 장사하기 어렵단 걸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호남정 사장은 변은하가 건넨 수표를 챙기고 대신 CCTV 저장 하드를 통째 그녀에게 건넸다. 변은하는 그 CCTV 저장 하드를 들고 자신의 사무실로 갔다. 그리고 이 사장이란 놈이 그녀의 물 컵에 수면제를 타는 장면과 그녀가 그 물을 마시고 쓰러지는 장면, 또 놈들이 그녀를 부축해서 가게 밖으로 나가는 장면을 지켜보며 바득 이를 갈았다.
“아아!”
그리고 그가 나타났다. 이후 한 편이 액션 영화가 연출 되었고 변은하는 그에게서 시선을 뗄 줄 몰랐다. 그에게 안겨서 차에서 나올 때는 절로 얼굴을 붉혔다.
“이렇게......결국은 만나는구나. 최민혁!”
변은하는 그와의 만남을 악연으로 치부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오늘 그를 만나고 깨달았다. 그가 그녀의 운명이란 걸 말이다.
최민혁에게 변은하가 첫 사랑이라면 변은하에게 최민혁은 끝 사랑이었다. 당시 최민혁이 변은하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변은하가 최민혁을 더 사랑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최민혁을 떠날 수 있었다. 사랑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불행해 지길 바라지 않았으니까.
“이제는...... 널 놓치지 않을 거야.”
변은하가 다부지게 마음을 먹은 듯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장 실장이었다. 한 시간쯤 걸린다더니 딱 그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네. 실장님.”
-변 사장님 납치를 지시한 놈이 누군지 알아냈습니다.
“누구죠?”
-말씀드리기 전에 요즘 애들이 피죽도 못 얻어먹은 거처럼 영 힘을 못써서.....
장실장이 하는 말이 무슨 소린지 모를 변은하가 아니었다.
“돼지나라에 말해 놓을 테니까 거기가서 회식 한 번 하세요.”
-하하하하. 역시 변 사장님 뿐입니다.
“자. 이제 말해 주실래요?”
-이태복이란 놈입니다.
“이태복이요?”
-왜 요즘 사채업자 터는 간 큰 놈들이 있다는 건 아시죠? 그 주범입니다. 이태복이.
“그 말은 지금 이태복이란 그 자가 절 알고 노렸단 말이네요?”
-그렇죠. 밑에 애들 좀 늘더니 진짜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모양입니다.
“그 놈 잡아 오세요.”
-크음. 그게 좀......
“왜요? 그쪽 조직으로는 안 되나요?”
-그건 아닌데. 그놈들 워낙 쪽수도 많고 다들 한 운동 한 녀석들이라서......
장실장이 말을 돌릴 땐 그의 능력 밖이란 얘기였다.
“알았어요. 그쪽 보스와 직접 얘기하죠.”
변은하는 장실장과 통화를 끝내고 맨 처음 연락했던 태성파 보스 강태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강 사장님.”
통화가 좀 길어졌다. 돈은 좀 많이 들었지만 변은하는 원하는 대답을 태성파 보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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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날 밤에 최민혁과 보낸 달콤한 시간들을 생각하며 강하나는 연말과 연초를 그 어떤 연예인 보다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하나야. 빨리 타.”
“네. 오빠.”
종편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다시 지상파 라디오에 게스트 출연하기 위해서 강하나는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 차에 올랐다. 그러자 차가 바로 출발했고 출연 5분을 남겨 두고 라디오 부스 앞에 대기할 수 있었다.
[여러분의 오후를 책임지고 있는 두 시 오 분에 데이트 표일섭입니다. 오늘은 새해인 만큼 올 한해를 빛낼 예비 스타들과 즐거운 만남을 가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멘트가 있고 라디오 부스가 열리며 3명의 늘씬한 미녀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사회자 표일섭의 입이 귀에 걸렸다.
[와우! 오늘 대박 사건! 다들 예쁘십니다.]
그런 가운데 게스트들인 3명의 신인 여배우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때 가운데 있던 미녀가 강하나를 슬쩍 밀쳤다. 때문에 사회자와 제일 가까이 있던 강하나가 비틀거리며 자칫 사회자의 텀블러를 손으로 칠 뻔했다.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사회자는 수시로 목에 좋은 음료를 마셨다. 그런데 그 음료가 든 텀블러를 강하나가 쳐서 바닥에 떨어트렸다고 생각해 보라?
사회자에게 된통 찍힐 게 뻔했다.
‘이게....’
강하나는 도끼눈으로 옆에 미녀를 흘겼지만 그 미녀는 모른 척 강하나에게서 시선을 돌려 버렸다. 그걸 보고 강하나는 욱했지만 지금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다들 눈부시게 아름다우시네요. 새해부터 이게 웬 횡잰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각자 소개부터 들어 볼까요?]
사회자는 능숙하게 게스트들을 리드해 나갔다. 게스트들도 미리 준비해 온 각자 소개 멘트를 날렸고 말이다. 강하나도 자신을 잘 어필하는 소개를 제대로 해냈다. 그런데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라디오 진행이 꼬이기 시작했다.
바로 강하나를 슬쩍 밀쳤던 그 미녀, 아니 강하나에게는 미친년으로 불리는 신인 여배우 주미예 때문에 말이다.
[미스 쭈! 그러니까 지금 다짜고짜 전화 퀴즈를 하잖거네요?]
[네. 맞아요. 단 전화 거는 상대는 유명인이어야 하고요.]
[오오. 그거 재미있겠다. 어떻게 해 볼까요?]
사회자 표일섭이 부스 밖 PD에게 동의를 구했고 PD는 좋다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좋습니다. 그럼 세 분 모두 핸드폰을 꺼내 주십시오. 그럼 노래 한 곡 듣고 돌아 올 때까지 누구와 다짜고짜 전화 퀴즈를 할지 정해 주세요. 새해엔 이 노래죠. jason mraz- bella luna!]
음악을 틀고 나서 방송 부스 안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3명의 신인 여배우들은 핸드폰의 전화번호부에서 지금 전화를 걸면 받아 줄 동료 연예인을 찾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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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태를 불러일으킨 주범인 주미예는 여유 만만해 보였다. 핸드폰도 보는 척 하고 있긴 했지만 딱 봐도 누구에게 전화를 걸지 그 대상이 정해져 있는 모양새였다. 그때 주미예와 부스 밖의 PD가 눈빛을 교환하는 걸 강하나가 봤다.
‘이것들이.....’
딱 봐도 여기 PD와 주미예는 예사 사이가 아닌 걸로 보였다. 물론 두 사람은 그걸 들키지 않으려 노력 중이었지만 강하나의 날카로운 촉에 걸려 들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누구한테 전화를 하지?’
강하나도 처음엔 연예인 위주로 찾았다. 하지만 그녀와 친한 연예인들은 몇 명 되지 않았고 대부분 바쁜 터라 그녀가 전화를 해도 받을 가능성이 낮았다. 그래서 강하나는 소속사의 동료 연예인으로 눈길을 돌렸다. 왜 서로 돕고 산다고 그들이라면 자신이 불쑥 전화를 해도 태연히 받아 줄 터였다. 그런데 그때 주미예가 또 한 번 초를 쳤다.
“혹시 같은 소속사 연예인들에게 전화하는 건 아니지? 그건 시청자들을 우롱하는 짓이야.”
‘저 미친년이 지금 뭐라고.........’
“맞아요. 저도 그건 아니라고 봐요.”
그런데 주미예 옆의 또 다른 게스트 신인 여배우가 주미예를 두둔하고 나서는 게 아닌가? 그때 사회자 표일섭이 결정타를 날렸다.
“그럼 같은 소속사 연예인은 뺍시다.”
강하나에겐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이렇게 되면 그녀가 전화해서 다짜고짜 퀴즈를 낼 유명인은 없었다.
‘어쩌지?’
그때 그녀 눈에 띈 전화번호 하나가 있었다. 그런데 이름이 없었다. 달랑 하트 하나가 그 이름을 대신하고 있었다.
‘하아. 민혁 오빠가 보고 싶다. 가만......’
주미예는 분명 전화 거는 상대를 유명인으로 한정 지었다. 그렇다면 오성 라이온즈의 에이스 최민혁도 유명인이었다.
‘그래. 오빠한테 하자. 오빠라면 내 전화를 받아 줄 거야.’
강하나는 다짜고짜 전화 퀴즈의 대상을 최민혁으로 정했다. 그 사이 노래가 끝나고 방송이 재개 되었다.
[자. 오늘 아름다운 게스트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앞서 주미예양이 제안 한 다짜고짜 전화 퀴즈를 시작할 텐데요. 그에 앞서 퀴즈 문제부터 고르도록 하죠. 보시다시피 봉투가 3개가 있습니다. 이 중 둘은 난센스 퀴즈고 하나는 좀 어려운 상식 퀴즈입니다. 당연히 난센스 퀴즈를 고르는 게 유리하겠죠? 그럼 어떻게 정할까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주미예가 말했다.
[가위 바위 보로 해요.]
[전 좋아요.]
그리고 주미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신인 연기자, 이름이 박단비라고 했던가? 그녀가 냉큼 동의하면서 세 신인 여배우들은 가위 바위 보를 했다. 그런데 주미예와 박단비가 서로 짰는지 빠를 냈고 재수 없게 강하나가 묵을 내면서 두 사람이 난세스 퀴즈 문제가 든 봉투를 가져 가버렸다.
수준 높은 상식 문제를 받아 든 강하나는 난감해졌다. 그가 전화를 걸 대상은 야구선수다. 당연히 공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 상식 문제를 내도 맞힐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때 강하나의 베스트 프렌드자 최민혁의 여동생이기도 한 최다혜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 오빠? 당연히 무식하지. 돌대가리야. 돌대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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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강하나로써도 최민혁에게 전화를 거는 게 옳은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전화 통화했다가 최민혁의 무식함을 만천하에 알리는 사태만 벌어질지 몰랐다. 그럼 최민혁이 다시는 그녀를 안 보려 할지 몰랐다.
‘그, 그럴 수는 없지.’
그럴 바에야 차라리 그녀의 전화를 안 받을 연예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실격 처리 되는 게 나았다. 강하나가 그렇게 결정을 내렸을 때 주미예가 먼저 상대 유명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중후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타이타닉의 구명보트에는 몇 명이 탈수 있을까요?”
주미예가 그 중년 남성에게 다짜고짜 퀴즈를 냈다. 중년 남자는 잠시 어리둥절해 하는 거 같더니 이내 대답을 했다.
-9명?
딩동댕! 정답임을 알리는 실로폰 소리가 울리고 주미예가 바로 다음 퀴즈를 냈다.
“사람의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갈 때는?”
-으음. 철들 때?
딩동댕!
중년 남자는 비교적 차분히 생각해 보고 주미예가 내는 난센스 퀴즈를 풀었다.
“자아. 여기까지. 모두 7문제 맞추셨습니다. 근데 누구십니까?”
사회자 표일섭은 주미예가 전화 건 중년 남자가 누군지 알고 있는 뉘앙스였다.
-아네. 저는 배우 김희철입니다.
“아아! 연기파 배우 김희철씨였군요.”
그 뒤 사회자 표일섭과 김희철, 주미예 간의 짜고 치는 대화가 있었고 뒤이어서 박단비가 차례가 되어 그녀가 전화를 걸었다. 그녀 역시 중년 남자가 전화를 받았고 다짜고짜 난센스 퀴즈를 냈다.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는 어디일까요?”
-열바다?
딩동댕!
그런데 앞서와 달리 대답이 너무 빨리 나왔다. 마치 박단비가 전화 걸어 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