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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56화 (56/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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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쐐애애액!

유명석의 손끝에서 공이 빠져 나오자 최민혁도 곧바로 타격 자세에 들어갔다. 볼 카운트가 타자에게 불리한 상황인지라 지금 최민혁은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공은 다 반응을 해야 만 했다.

벌써 18.44미터의 절반을 날아 온 공은 최민혁의 몸쪽 스트라이크 존을 걸치며 들어왔다. 포심이라면 무릎 높이의 스트라이크고 슬라이더라면 홈플레이트 앞쪽에서 바운드가 될 만한 공이었다.

최민혁은 포심에 타이밍을 맞추고 오른발을 내뻗었다. 그러다 홈 플레이트 앞쪽에서 공이 꿈틀대자 디딤 발을 밀어내며 최대한 타이밍을 늦췄다. 그리곤 동시에 손목을 움직여 바닥으로 떨어지는 공을 그대로 걷어 올렸다.

따악!

경쾌한 타구 소리와 함께 공이 하늘 높이 뻗어 올라갔다.

“어어!”

“저거 천장 때리는 거 아냐?”

최민혁이 친 타가는 높이 포물선을 그리다 급기야 최대 높이 67.59m에 이르는 고척돔 천장까지 솟구친 뒤 시야에서 잠깐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진 타구는 몇 초 뒤 나타나서 천천히 낙하를 했는데 타이탄스의 중견수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다가 워닝 트랙 근처에서 걸음을 멈추고 전광판 쪽으로 몸을 돌렸다.

누가 보면 중견수가 공을 잡을 거처럼 보였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중견수가 나름 폴짝 뛰기까지 했지만 공은 전광판 하단을 때리고 그라운드로 다시 넘어왔다. 그때 크로노스 덕 아웃이 웅성댔다.

“돔 천장 맞고 떨어지는 볼은 펜스를 넘어 가면 홈런 맞아?”

누군가의 물음에 또 누군가가 아는 척을 했다.

“볼이 천장 어디를 때렸는가가 중요해. '고척 스카이돔 그라운드룰'에 따르면 파울 지역에서 천장에 맞고 떨어지는 타구는 파울이고, 이 공을 야수가 잡으면 파울 플라이 아웃이 돼. 반면 내야 페어 지역에 들어갔을 경우 천장에 맞고 떨어진 공을 잡으면 아웃, 잡지 못하면 인플레이가 되고. 최민혁의 타구는 천장에 맞은 위치 자체가 내야 페어지역이었으니 그 볼이 펜스를 넘어가면 인플레이가 선언돼서 홈런이 되는 거지.”

“뭔 말을 그렇게 어렵게 해. 그냥 홈런이라고 하면 되는 거지. 야! 벌써 온다. 나가자.”

실제 그 얘기를 하는 동안 최민혁이 다이아몬드 루상을 다 돌아 본루(홈 플레이트)를 밟고 있었다.

덕 아웃의 크로노스 선수들이 우르르 나가서 홈런을 치고 돌아 온 최민혁을 열렬히 환영했다.

“오늘도 펄펄 나네. 날아.”

“투수 그만 두고 타자로 전향 하세요. 최 선수.”

“오늘 득점은 혼자 다 하시네. 뭐 그래도 기분은 좋네. 하하하하.”

최민혁은 사람들에 휩싸여서 그들의 칭찬과 격려, 그리고 온정 넘치는 터치를 받자 기분이 묘했다. 차성국은 샐러리맨, 즉 직장인으로 누구보다 빠른 초고속 승진으로 임원까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주위의 수많은 질시와 질투를 받았고 경쟁자로부터 견제 역시 만만찮았다. 누구 하나 그를 좋아하지 않았고 좋아해도 그게 진심이 아니란 건 그 사람을 대해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진심으로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최민혁의 활약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기뻐해 주고 있었다.

‘이래서 최민혁이 그렇게 야구를 하라고 난리였구나.’

신병(神病)에다가 몽유병까지 만들어 가며 자신을 괴롭혔던 최민혁의 몸이 왜 그랬는지 일견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더불어 최민혁 자신도 이제 야구가 좋아졌다. 기업인으로 재벌이 되는 것만큼이나 야구로써 최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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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4였던 전광판 스코어가 16대 6으로 변했다. 물론 10점이란 큰 점수 차로 뒤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8회 말의 추격하는 2점은 크로노스 선수들의 막판 뒷심을 발휘 하게 만들었다.

최민혁 다음 타석의 크로노스 4번 타자 이정길이 최민혁에게 3연타석 홈런을 맞고 반쯤 넋이 나간 유명철의 초구를 받아쳐서 1, 2루간을 꿰뚫는 적시타를 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타석의 5번 타자 역시 행운이긴 하지만 유격수 키를 훌쩍 넘기는 텍사스 성 안타를 쳤다.

“좋았어. 우리도 할 수 있다.”

“그래. 10점 그 까짓 거 별거 아냐.”

그로 인해 크로노스 선수들의 사기가 급격히 올라가자 타이탄스의 감독인 윤동준이 마운드에 올랐다.

“더 던질래? 아님 바꿔 줄까?”

윤동준 감독의 그 물음에 유명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 던지겠습니다.”

이대로 맥없이 마운드를 내려갈 순 없었다. 그건 오늘 타이탄스에 들어 온 유명철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앞서 불펜에서 투구 할 때 자신과 비슷한 구속의 공을 던져 대는 타이탄스의 투수들을 보고 유명철은 여기가 정글임을 깨달았다. 정글에서 약한 놈은 강한 놈에게 잡혀 먹히거나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여기서 강판 되어 내려간다면 유명철은 다른 타이탄스 선수들에게 약한 놈으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높았다.

“좋아. 그런 근성. 하지만 2점까지야. 그 이상 주면 바로 바꾼다?”

그 말 후 윤동준 감독은 유명철의 어깨를 툭 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걸 보고 크로노스 감독과 선수들은 다들 의아해 했다.

“안 바꾸네?”

“그러게. 뭐 우리한테야 더 좋지만.”

경기는 속개 되었고 1사 1, 2루 상황에서 타석에 선 6번 타자는 유명철의 공을 때릴 자신이 없자 번트를 댔다.

툭!

하지만 운 없게 번트를 댄 공이 투수 앞으로 빠르게 굴러갔다. 이대로라면 투수 유명철이 잡아서 3루나 2루로 던져 선행 주자를 잡고 잘하면 병살로도 이어 질 수 있는 상황.

“엇!”

안전하게 공을 잡은 유명철이 상황 판단을 마치고 3루로 공을 던지려 할 때였다. 갑자기 발이 미끄러지면서 그만 철퍼덕 그라운드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사이 2루의 크로노스 선수가 3루로 슬라이딩을 했고 3루로 던지기 늦은 상황이라 유명철은 몸을 일으키면서 동시에 몸을 1루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1루를 향해 빠르게 송구를 했다.

팡!

유명철의 공이 마운드에서 직구만큼이나 빨리 2루수 글러브에 꽂혔다. 하지만 1루심의 선언은 세이프였다. 간발의 차이로 타자가 베이스를 밟는 게 빨랐던 것이다.

“하아!”

긴 한숨을 내 쉬며 유명철은 마운드로 복귀했다. 1사에 어쩌다 만루 상황까지 허락하게 됐는지 유명철 자신도 잘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차리면 됐다. 유명철은 글러브를 벗어 무릎 사이에 끼고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어떡하든 정신을 추스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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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아아아!”

반대로 1사에 만루 상황이 되면서 크로노스 측 분위기가 급격히 달아올랐다. 유명철은 나름 정신을 차리려 했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때문에 급격히 제구가 흔들렸다.

“볼 포!”

그런 가운데 크로노스의 7번 타자는 인내심 있게 기다렸고 결국 투 쓰리 풀 카운트 상황에서 유명철의 슬라이더를 참아냈다.

“나이스! 형철이 잘 참았다.”

“좋았어. 득점이다."

그로인해 밀어내기로 크로노스는 1점을 더 올릴 수 있었다. 사실상 최민혁이 개입 되지 않은 상태에서 타이탄스를 상대로 얻어 낸 유일한 점수였다. 그리고 크로노스 선수들은 여기서 더 점수를 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펑!

하지만 아니었다. 갑자기 제구가 돌아온 유명철은 특유의 140Km/h 대의 직구를 뿌려댔고 그 공 앞에 크로노스의 하위 타선은 무기력했다.

“스윙! 삼진 아웃!”

유명철은 크로노스의 8번, 9번 타자를 모두 삼구 삼진으로 돌려 세우고 유유히 마운드를 내려갔다.

유명철이 갑자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건 타이탄스 불펜에서 투수 한 명이 나와 대기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바로 윤동준 감독의 스타일이었다. 경쟁 상대를 보여 줌으로써 선수들로 하여금 투쟁심을 끓어 올리게 만드는 것.

그걸 본 순간 유명철은 윤동준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 왔을 때 했던 말이 생각났다. 2실점하면 바로 투수를 바꾸겠다고 한 그 말말이다.

윤동준 감독의 판단은 옳았다. 유명철이 경쟁자를 보는 순간 투지가 불 타 올랐고 그 투지는 유명철의 긴장과 초조함을 단박에 짓눌러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유명철은 크로노스 선수들에게 언터처블로 통했던 이전 유명철의 모습으로 돌아 갈 수 있었고 간단히 이닝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유명철은 덕 아웃에 들어서며 윤동준 감독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돌아온 윤동준 감독의 대답은 그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괜찮아. 잘했어.”

“네?”

“네 덕에 9회 말에도 그 녀석이 타석에 설 수 있게 됐잖아.”

“네에?”

황당한 눈으로 윤동준 감독을 쳐다보는 유명철에게 윤동준 감독이 말했다.

“아이싱 해.”

어깨를 식히란 말은 유명철이 더 이상 마운드에 오를 일이 없단 소리였다.

“전 더 던질 수 있습니다.”

유명철의 말에 윤동준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더 던질 수야 있겠지. 하지만 그 녀석은 어쩔 건데?”

“..........”

윤동준 감독의 입에서 그 녀석이란 말이 나오자 유명철의 말문이 탁 막혔다. 그런 유명철을 보고 윤동준 감독이 기대어린 얼굴로 말했다.

“해명이하고 녀석하고 한 번 붙여 볼 생각이다. 너도 그 결과가 궁금하지 않아?”

왠지 신이 나 보이는 윤동준 감독을 보고 유명철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도 당연히 궁금했던 것이다. 그럴 것이 그가 아는 이해명 투수는 150Km/h대의 공과 포크볼이 환상적인 최고의 클로저였다.

타이탄스엔 원성우란 클로저도 있었지만 역시 진짜 클로저는 이해명으로 보면 됐다. 원성우는 부상을 당했고 지금은 고쳤다고는 하지만 직구 구위가 떨어져 아직 다 회복 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그에 비해 이해명은 멀쩡했다. 그가 야구를 잠정적으로 못하게 된 건 다 사정이 있어서였고 말이다.

이해명은 마당발로 선수협회장을 맡았었는데 몇몇 선수의 권익보호를 위해 구단과 충돌을 했고 그게 빌미가 되어 전 구단과 계약 상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때문에 구단에서 방출 된 이해명은 그와 인연이 깊은 윤동준 감독 밑에서 1년 동안 몸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올해엔 그가 뛸 프로 팀을 찾아서 마운드에 반드시 오를 생각이었다. 이해명의 몸 상태는 최고였다. 예전 전성기 때의 구속과 구위를 완전히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타이탄스도 곧 독립구단이 될 테지만 이해명의 프로 팀 재 입단이 그 보다 더 빠를 거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의 모든 프로 팀이 이해명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장 1군 무대에 올려도 통할 클로저인 이해명은 즉시전력감인지라 모든 구단이 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해명과 최민혁의 승부라? 투수이기 이전에 야구인인 유명철도 당연히 궁금했다. 하지만 문득 의문이 일었다. 굳이 최고의 클로저 이해명 투수까지 내 보내서 최민혁과 맞대결까지 시켜야 하는가를 두고 말이다.

최민혁이 어제 오늘 보여 준 타자로서의 능력은 그가 야구 천재임을 충분히 입증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최민혁은 어째든 투수였다. 타자로서 이제 몇 번 타석에 오른 최민혁에게 프로 무대에서도 최고 클로저로 검증 된 투수와 맞상대를 하게 한다? 과연 그게 공정한가? 또 이렇게 까지 해서 윤동준 감독이 얻고자 하는 게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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