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2화 사람 형상의 지보
붉은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은 곧게 가장 가운데의 궁전으로 걸어갔다.
궁전은 다른 궁전들과 달리 빛을 반짝거렸다.
여러 가지 상고 요수의 형상이 가끔씩 나타나 궁전을 돌며 날아다녔다.
궁전은 웅장하지 않고 면적이 천 장밖에 안 되었지만, 사람들은 위엄을 느꼈고 긴장했다.
진남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중년 사내의 말에 따르면 이번 법선대회에 강씨 가문에서 사람이 많이 왔다고 했다.
다섯 명의 준제 중에서 세 명이 왔는데, 강회명 외에 다른 두 명은 강씨 가문의 이 장로 강회의(薑懷義)와 삼 장로 강광(薑廣)이었다.
세 번째 부류의 젊은 인재들도 절반이나 왔는데 육칠십 명이 되었다.
주재 경지에 도달하고 신왕 경지를 초월하지 않았으며 나이가 천 살이 넘지 않은 무인들은 모두 법선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씨 가문은 양으로 우세를 차지하려 하지 않았다.
아니면 강씨 가문에서는 천여 명의 제자들을 파견해 법선대회에 참가시킬 수 있었다.
주위의 궁전에서 많은 강씨 가문의 사람들이 나와 걸어 다녔다.
그들은 붉은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이 진남과 함께 온 걸 보고 살짝 당황하더니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인사도 하지 않고 못 본 척했다.
주재 경지나 주경의 존재들이나 모두 마찬가지였다.
진남은 멋쩍었다.
중년 사내의 말이 맞았다.
그의 몸은 강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있어 가치가 매우 컸다.
하지만 강씨 가문의 사람들은 그를 반기지 않았다.
이는 강홍수 때문이었다.
붉은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은 대전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공손하게 인사하고 한 손에 결인하여 굳게 닫힌 문을 두드렸다.
그가 문을 두드릴 때마다 물결이 일었다.
"가주, 진 서방이 뵙기를 청합니다."
노인은 공손하게 말했다.
잠시 후 안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거라."
말이 끝나자 굳게 닫혔던 대문이 천천히 열렸고 연기가 날아 나왔다.
진남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몸이 방대한 근원의 힘의 세례를 받은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좋은 물건이다.'
진남은 속으로 몰래 칭찬했다.
대전에 들어서자 진남은 많은 눈길이 자신을 바라보는 걸 느꼈다.
진남은 내색하지 않고 앞을 바라보았다.
대전 가운데는 향로가 세 개 있었고, 매우 진귀한 선향이 타고 있었다.
연기가 날아 나올 때마다 향로에는 신비한 부문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대전의 상석에는 몸집이 커다란 중년 사내가 앉아 있었다.
중년 사내는 흰 두루마기를 입었고 허리춤에 파란색, 남색, 보라색 세 개의 고옥이 걸려 있었으며 품위가 느껴졌다.
중년 사내는 아무런 기운도 풍기지 않았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으며, 눈빛이 따뜻했다.
그를 마주하자 봄바람을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가 바로 강씨 가문의 가주 강회명이었다.
강회명의 왼편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고 오른편에는 칠십 살 정도 되는 노인이 앉았다.
노인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있었는데, 마치 잠이 든 것 같았다.
평범한 노인이라고 여기고 무시하기 쉬웠다.
하지만 진남은 무시하지 않았다. 그는 잘 알았다.
강회의는 소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좋아했고 강광은 노인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를 좋아했다.
노인은 분명 강씨 가문의 준제 중 한 명인 강광이었다.
대전의 양옆에는 열 명씩 앉아 있었는데, 모두 젊은이들과 소녀들이었다.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화려한 복장을 입었고 은연중에 옅은 선광이 뿜어져 나왔으며, 어떤 이들은 옷차림이 소박하고 매우 평범했다.
모두들 기운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진남은 느낄 수 있었다.
강회명과 강광은 선산처럼 사람들이 우러러보았고 흔들 수 없었다.
스무 명의 강씨 가문의 젊은 인재들도 모두 경지를 가늠할 수 없었다.
진남은 세 명밖에 꿰뚫어 보지 못했다.
두 명은 무상천존 정상의 경지였고 한 명은 무상천존 소성 경지였다.
이들은 강씨 가문의 저력의 작은 일부분이었다.
강회명과 강광을 제외하고 강씨 가문의 젊은 천재들만이라도 대상계를 충분히 파멸시킬 수 있었다.
'강홍수는 없나?'
진남은 한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는 여섯 명의 여인이 있었다.
여인들은 생김새가 예쁘고 몸매가 유혹적이었으나 절선계의 삼 대 선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환, 여기 와 앉거라."
강회명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왼쪽의 빈자리를 가리켰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절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그가 자리에 앉는 순간 대전 안에 콧방귀를 뀌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무 명의 강씨 가문의 젊은 인재들 중 거의 절반이 하찮다는 듯한 눈길로 진남을 바라보았다.
진남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었다.
그는 경지가 주경밖에 안 되고 강씨 가문의 사위라 아래뻘이었다. 그러나 그는 요광계의 제일가문 진씨 가문의 주인이기도 했다.
"환, 종천성에서 잘 지냈느냐?"
강회명은 웃으며 물었다.
진남이 대답하기 전에 왼쪽 가장 뒤에 있던 청년이 조롱하듯 말했다.
"매형은 이번에 나가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조씨 가문 조원(趙元)의 혈선기린을 보고 깜짝 놀라 기절했습니다. 우리 강씨 가문의 체면을 단단히 세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젊은 인재들은 큰 소리로 웃었고 더 무시하는 눈빛으로 진남을 바라보았다.
청년의 맞은편의 안색이 하얗고 매혹적인 기운을 풍기는 여인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강관(薑寬), 비꼬지 말고 제대로 말하거라. 내가 보기에 형부는 자신을 잘 아는 것 같다. 홍수 언니와 함께 오 계의 모임에 참가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아니면 며칠을 기절했을 것이다."
대전에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누님의 말이 맞습니다. 매형은 자신을 제대로 알고 선견지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형을 따라 배워야 합니다!"
강관은 더 환하게 웃었다. 그의 말은 사람을 더 기분 나쁘게 했다.
강미(薑眉)는 더 말하려 했다.
이때 왼쪽 첫 번째 자리에 앉은 중후한 젊은이가 손에 들었던 찻잔을 쾅 하고 내려놓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관, 강미, 그만하거라! 계속 매형과 버릇없게 굴면 가만있지 않겠다!"
대전 안의 웃음소리가 멎었고 강관과 강미는 고개를 숙였다.
오른쪽에 앉은 얼굴이 옥처럼 하얀 젊은이가 옅은 미소를 짓고 말했다.
"강관, 강미, 강성(薑聖) 형님의 말을 듣거라. 조원은 수작을 부려 매형을 기절시켰을 것이다. 나중에 조씨 가문과 제대로 따져야 한다."
진남은 눈빛이 묘해졌다.
'스무 명의 젊은 인재들 중에서 왼쪽 첫 번째와 오른쪽 첫 번째 자리에 앉은 걸 보아 이들은 강씨 가문의 걸출한 인재이고 범상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내 편에 서서 말하다니?'
강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그를 미워해야 했다.
그의 장인어른인 강회명도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강곡(薑曲)의 말이 맞다. 환이는 이미 우리 강씨 가문의 사람이 되었다. 절대 다른 사람들이 마음대로 괴롭히게 해서는 안 된다.
강관, 강미, 너희 둘이 조씨 가문을 찾아가 따지거라. 그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적계를 몇 명 혼내주거라."
강회명은 눈빛에 위엄이 가득했다.
강관과 강미는 연달아 대답했다.
"환,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마음에 드느냐?"
강회명은 고개를 돌리고 진남에게 물었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고 눈빛이 부드러웠다.
진남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회명이 또 말했다.
"환, 너 마침 잘 왔다. 방금 너의 두 처남이 줄곧 너를 찾았다."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강성은 진남이 의아해하는 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진남을 마주 보며 공수했다.
"매형, 누님은 이미 응천 경지의 신왕이고 영롱신체의 소성을 이루었으며 제공과 제술도 수련했습니다. 누님은 매형의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저는 매형이 저를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강곡도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억울한 척 말했다.
"매형, 강성(薑聖) 형님의 편을 들면 안 됩니다. 강성 형님은 실력이 대단하고 저력도 강합니다. 그러나 저는 다릅니다. 저는 강성 형님보다 십 년이나 늦게 신체를 각성했고 여러 면에서 강성 형님보다 약합니다. 그러니 매형 저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강성의 눈에 싸늘한 빛이 스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젊은 인재들은 다른 생각이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진남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강성과 강곡은 모두 경지가 나보다 더 높다. 나는 고작 주경인데 왜 나더러 도와달라는 거지?'
의문을 말하려던 진남은 자신의 체내에 제신과 제기 그리고 많은 비장의 수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진남은 경지가 약해 그것들의 존재를 느낄 수 없고 그것들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강성과 강곡은 무상천존의 경지를 초월했기에 그것들을 충분히 움직일 수 있었다.
그것들은 신위를 조금밖에 드러낼 수 없었다.
그러나 강성이나 강곡과 같은 등급의 젊은 인재들에게는 엄청난 도움이었다.
그의 몸은 사람 형상의 지보였다.
누가 그의 몸을 얻으면 매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어쩐지……."
진남은 강성과 강곡이 왜 이런 태도로 자신을 대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강관과 강미는 그들의 사주를 받고 일부러 대전에서 진남을 비하했고 강성과 강곡은 진남의 호감을 얻기 위해 그들을 꾸짖었을 수 있었다.
진남은 강회명의 옆에 있는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은 강광이 생각났다.
강홍수의 남편인 진남은 강홍수를 도와줘야 했다.
강홍수는 강하지만 다른 계에는 강홍수와 비슷한 존재들이 적지 않았다.
'강성과 강곡이 강회명의 앞에서 대놓고 나에게 도와달라고 다투는 건 강광의 사주를 받은 것이 아닐까?'
"강성, 강곡 너희들은 조급해하지 말고 자리에 앉거라."
강회명은 손짓으로 그들을 제지하고 웃으며 진남에게 말했다.
"환, 부담스러워하지 말거라. 가족인데 네가 도와주고 싶은 자를 도와주거라. 네가 홍수를 많이 걱정한다는 것을 안다. 네가 홍수를 도와주려고 하면 홍수도 기뻐할 것이다."
강회명의 말을 듣고 진남은 대전 안의 상황을 이해했다.
진남은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흥미진진한 척하며 물었다.
"아버님, 법선대회가 어떤 것인지 저는 아직 모릅니다. 제가 어떻게 도와줘야 합니까?"
전에 만났던 중년 사내는 경지가 약했고 중요한 정보를 몰랐다. 진남도 자신의 몸이 전에 법선대회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때문에, 그는 모르는 척 떠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사람들은 이 몸을 방탕한 자라고 생각했다. 전에 알았다 해도 까먹었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그의 말에 대전 안의 젊은 인재들의 눈에 경멸의 빛이 스쳤다.
앞서 법선대회에 대해 그들은 전에 진환을 빼놓지 않고 공개적으로 의논했었다.
그런데 진환이 그들의 말을 조금도 듣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에 다시 물을 줄이야.
"매형, 제가 대답하겠습니다."
강곡은 이때다 싶어 서둘러 말했다.
"매형, 우리 절선계에 천 년이나 계주가 나타나지 않은 걸 알 겁니다. 이번 법선대회는 계주지위(界主之位)와 큰 연관이 있습니다."
전에 만났던 중년 사내에게서 들은 적 있기에 진남은 크게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중년 사내는 잘 몰랐다.
평범한 무인들도 모르고 강씨 가문 같은 선제가문만이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