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0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그 시각 윤회성전 밖.
진남은 무언가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금색 글자가 허공에서 날아오더니 천극방의 영의 목소리로 변해 천지에 울려 퍼졌다.
"천 형이 이렇게 신기한 수단도 할 줄 아는구나……."
진남은 중얼거렸다.
그는 쓸 수 없는 수단이었다.
"동쪽의 고신전(古神殿)?"
천극방의 영의 말을 들은 진남은 두 눈에 빛이 스쳤다.
그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작은 소세계 전체에 흉악한 야수들의 포효가 메아리쳤지만 정작 다가가면 아무것도 없었다.
"소세계의 생령들이 윤회성전에 끌려가 강제로 환생한 거 아니겠지?"
진남은 문득 드는 생각에 식은땀을 흘렸다.
윤회성전은 난폭하기 그지없었다.
진남이 주제와 황보절이 동시에 환생한 몸이 아니었더라면 윤회성전의 잔인한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더 조심해야겠다."
진남은 눈빛이 차분해졌다.
* * *
시간이 흘러 어느덧 다섯 시진이 지났다.
진남의 앞에 하늘 높이 솟은 웅장한 산이 나타났다.
산꼭대기에는 낡은 선궁이 떠 있었다.
선궁은 여덟 개 조각달의 빛을 받아 무척 신성하게 느껴졌다.
마치 신들이 살고 있는 것 같고 보기만 해도 두렵고 감히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신전은 평범하지 않구나!"
한참을 살피던 진남은 혼잣말을 했다.
진남은 윤회성전의 '윤회'라는 단어가 어떤 것을 떠올리게 하는 것 외에 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었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고신전은 달랐다.
고신전은 위능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무인들은 동술로 고신전과 천지가 하나처럼 융합되어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 고신전의 깊은 곳에서 엄청난 힘이 용솟음치며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었다.
"근원지체!"
진남은 수정으로 변해 선광을 뿜으며 다가갔다.
진남이 고신전 가까이에 다가가자 굳게 닫혔던 문이 스르륵 열렸고 안에서 방대한 옛 의지들이 밀려왔다.
진남은 손가락을 튕겨 도광을 고신전으로 날려 보냈다.
한참을 기다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진남은 그제야 고신전에 들어섰다.
대전은 방원 몇십 장이 되었고, 벽에 걸린 금빛 불꽃이 활활 타오르며 내부를 환하게 비추었다.
진남은 대전에 가지런히 놓인 조각상들을 발견했다.
조각상들은 도합 아흔아홉 개였다.
조각상들은 각기 다른 무인이었고 살아서 숨 쉬는 것 같았으며, 비록 생기는 없어도 패기는 여전했다.
어떤 이들은 표정이 싸늘했고 어떤 이들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조각상들은 다 젊은 사람들 같다."
조각상들을 살펴본 진남은 중년 사내나 노인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 음산한 목소리가 대전의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졌다.
"촌놈, 고신전은 네가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너도 힘들게 수련을 했을 테니 당장 썩 꺼지면 죽이지 않겠다."
'기영?'
진남은 살짝 미소를 짓고 말했다.
"선배님, 저는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룡지부를 주십시오."
고신전의 기영은 어이가 없었다.
"진룡지부를 가지고 싶다고? 내가 너를 한 방에 때려죽일 수도 있는데 겁이 나지 않느냐? 고작 천존 경지를 죽이는 건 나에게 엄청 쉬운 일이다."
"겁이 나지 않습니다."
진남은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저는 윤회성전도 자유롭게 드나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고신전을 무서워하겠습니까?"
고신전의 깊은 곳에 있던 기영은 손을 살짝 떨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는 이미 공격을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진남이 윤회성전에 들어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오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에 바로 공격하지 않았다.
윤회성전은 엄청난 곳이었다.
고신전의 기영도 용혼이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환생을 했을 수도 있었다.
"쓸 데가 있습니다."
진남은 침묵이 한참 흐르자 기영의 기가 꺾였다는 것을 눈치챘다.
"제가 선배님에게 신세를 지는 거라고 생각하고 진룡지부를 주십시오."
고신전의 기영은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래, 네가 괜찮은 사람인 것 같으니 인정을 베풀겠다. 하지만 진룡지부를 직접 줄 수 없다. 고신전의 규칙대로 네가 조각상 하나를 이기면 가질 수 있다."
진남은 눈썹을 추켜세웠다.
고신전의 기영은 이어서 말했다.
"걱정 말거라. 조각상들은 너와 동등한 경지로 전력을 제압할 것이다. 이곳에 있는 조각상들은 모두 절세의 천재들이고 같은 등급에서 무적이다.
다만 이들과 싸울 때 다른 물건의 힘을 빌리면 안 되고 네 힘만 사용해야 한다. 이기지 못한다면 나도 도와줄 수 없다."
고신전의 기영은 진남이 윤회성전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보물의 힘을 빌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없던 조항을 더했다.
"잠시 후에 그것을 풀면……."
고선전의 영은 중얼거렸다.
그는 진룡지부를 진남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같은 등급에서 무적이라고? 외부 힘을 사용할 수 없어?'
진남은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선배님, 알겠습니다. 공격하십시오."
고신전의 기영은 말없이 의지를 움직였다.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머리에 금룡관을 쓴 조각상이 덜컹덜컹 소리를 냈다.
잠잠하던 조각상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하고 난폭한 기운이 뿜어져 대전 전체가 흔들렸다.
"오? 확실히 강한 것 같군……."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몸에서 전혈이 꿈틀댔다.
이곳이 전력을 많이 제압했지만 천존이 된 이후 그럴싸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던 진남은 흥분되었다.
"또 사람이 왔느냐? 누군가를 폐인으로 만들어 본 지 오래되었다. 그 기분이 무척 그립구나……."
조각상이 깨어나 입을 열었다.
그의 말투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조각상의 이름은 연단청(燕丹靑)이었고 생전에 엄청 흉악한 자였다.
"보자, 재수 없이 나에게 걸린 놈이 누군지……."
연단청은 고개를 돌리고 진남을 바라보았다.
진남을 확인한 순간 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였어?"
연단청은 놀라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어? 나를 아느냐?"
진남은 의아했다.
그는 연단청을 만난 적이 없었다.
"너 왜 경지가 천존 정상밖에 되지 않느냐? 참, 생각났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지……."
연단청은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도우, 이번 관문을 통과했다."
연단청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네 상대가 되지 못하니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오늘 일을 기억하고 나중에 너무 세게 때리지 말거라."
말을 마친 연단청은 다시 조각상으로 변했고 더 이상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이, 이게 무슨 상황이지?'
고신전의 기영도 어안이 벙벙했다.
'연단청은 가장 용맹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바로 패배를 인정하다니? 이 청년은 저쪽 세계의 촌놈 아닌가?
연단청이 어떻게 이 청년을 아는 걸까? 연단청이 겁을 먹은 것 같기도 했어.'
"연단청, 규칙에 따라 너는 반드시 손을 써야 된다……."
고신전의 기영은 반응하고 다급하게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연단청은 웅웅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고 진남에게 주먹을 살짝 휘둘렀다.
이에 진남은 반사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펑-!
연단청은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났다.
"제가 졌습니다."
그는 다시 조각상으로 변했다.
* * *
진남은 진룡지부를 받고 선궁을 떠날 때까지도 어리둥절했다.
그는 연단청을 어디서 만났던지 생각나지 않았다.
선궁의 기영은 진남을 촌놈이라고 했다.
또, 연단청은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만났을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연단청은 나를 어떻게 알까? 연단청은 왜 나중에 세게 때리지 말라고 했지? 설마 연단청도 나처럼 시공을 넘어 과거로 온 자일까?'
진남은 그런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진남도 후세에서 상고시대로 왔다.
"에잇, 그만 생각하자."
진남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몸 안에 있던 선광에 신념을 전했다.
"효지, 조금만 기다리거라. 계현 녀석이 실력이 안 되어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천극방의 영이 전음했다.
시간이 남은 진남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방대한 감지력을 드러내고 이 천지의 남다른 기운을 느꼈다.
여덟 시진이 지났다.
진남이 얻은 진룡지부는 뜨거워지더니 무늬마다 눈부신 선광이 뿜어져 나왔다.
마지막에 용의 포효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진룡지부에서 엄청난 힘이 뿜어져 나왔으며 진남을 감싸고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진남은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더니 다른 세상에 도착했다.
천극방의 영, 맹리아, 계현, 용도천존 그리고 우공노조와 좌현노인도 도착했다.
"천극방의 영은 역시 선천지보의 기영답소. 이렇게 빨리 진룡구도를 통과하다니, 축하하오."
좌현노인은 말했다.
"자네, 실력이 훌륭하구먼. 내 예상보다 훨씬 훌륭하오. 이번에는 내가 좌현 영감탱이에게 졌소."
우공노조는 천극방의 영을 바라보며 감정을 조절하고 말했다.
"나를 도와 좌현 영감탱이를 무너뜨릴 생각이 있소? 그럼 자네가 엄청난 조화를 이루게 도와주겠소."
좌현노인은 미소를 짓고 말했다.
"우공 도우,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적합하다고 생각하시오? 천극방의 영은 자네가 아닌 나를 도울 거요.
천극방의 영, 자네는 선천지보의 기영이오. 주선신비와 연관된 일에 참견한다면 중상을 입을 거요."
천극방의 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맞소. 하지만 좋은 점을 충분히 많이 준다면 나는 모험을 할 수도 있소."
좌현노인과 우공노조는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머뭇거리지 말고 우선 제동을 돌려보냅시다."
좌현노인은 말을 하고 양손으로 법인을 만들어 허공에 주입했다.
허공에 시커먼 입구가 천천히 나타나고 안에서 기이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좌현노인과 우공노조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고 천극방의 영과 진남 등이 뒤를 따랐다.
입구에 들어서자 곧게 뻗은 시커먼 통로가 보였다.
통로는 끝이 보이지 않고 사방에서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남 등은 온몸에 소름이 돋고 위험을 느꼈다.
"이건 무슨 통로입니까? 노래에서 엄청 불길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진남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게 바로 통유신도이다. 엄청 신비한 옛 통로이다. 이 통로를 통해 주선신비의 깊은 곳에 갈 수 있다. 이 통로는 나와 좌현 영감탱이만 불러올 수 있다."
우공노조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주선신비를 상, 중, 하 세 구역으로 나눈다면 나와 좌현 영감탱이는 상층 구역만 장악했다. 중, 하 두 구역은 너무 위험하고 많은 비밀이 얽혀있다. 우리는 알고 있지만,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억지로 쳐들어가면 우리도 죽을 수 있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주선신비에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거라."
진남 등은 깜짝 놀랐다.
천극방의 영도 눈가에 놀라운 빛이 스쳤다.
천극방의 영이 천극방의 위능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기영은 법보 전체를 조종할 수 있었다.
주선신비에 기영이 둘씩이나 나타난 것도 이상했는데 이런 비밀까지 있을 줄은 아무도 생각 못 했다.
'주천불사산도 비슷하다. 주심도 선배님은 산령이지만 산 전체의 힘을 천극방의 영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없다.'
진남은 생각했다.
사실 진남의 생각이 틀렸다.
기영들 대부분은 법신을 전부 장악하지 못했다.
무인들이 힘을 사용해야 기영들은 그 흐름에 따라 힘을 전부 펼칠 수 있었다.
천극방의 영 같은 경우는 대상계에서 유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