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5화 뭘 주면 좋을까?
"이곳이 상고시대의 대상계구나."
명초노조는 중얼거렸다.
그는 고비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명초노조가 사는 후세에는 대상계 전체를 통틀어도 주재 강자가 몇십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는 이미 몇천 명의 주재 강자들이 있고 또 계속 모여드는 중이었다.
번영과 쇠퇴라는 단어의 의미가 유난히 부각되는 순간이었다.
'태고로 오기를 잘한 것 같다.'
진남은 간만에 몸속의 피가 뜨겁게 끓었다.
진남은 시공법칙(時空法則) 때문에 싸움에서 모든 것을 펼칠 수 없고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모임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이제 시간이 거의 된 것 같다. 창과 다른 사람들도 이미…….'
진남의 머릿속에 생각이 스쳤다.
그는 동허지동을 사용하여 무인들을 빠르게 살폈다.
진남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추었다.
진남은 가슴이 쿵쿵 뛰었다.
두 청년이 천존의 위압을 풍기는 짐승 담요를 깔고 앉아 있었는데 앞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선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었다.
그들은 다른 무인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여유로워 보였다.
그중 한 청년의 표정이나 풍기는 기운은 진남이 알던 것과 많이 달랐다.
하지만 진남은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바로 미래의 주선제일인인 백종생이었다.
백종생과 술을 마시는 청년에게서도 진남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그자는 바로 사 대 무상천존들 중 영항천존인 주제였다.
진남은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고 기분도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황보절도 진남의 전생이었다.
하지만 진남은 황보절을 만났을 때와 주제를 만났을 때 느낌이 전혀 달랐다.
진남은 이상하기도 하고 막연하기도 하며 따뜻함도 느꼈다.
진남은 심호흡으로 기분을 다스리고 사방을 살폈다.
"황보절과 심약주재도 이미 와 있었어?"
진남은 익숙한 형상을 찾았다.
이십여 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은 기운이 많이 변했다.
황보절과 심약주재는 엄청난 돌파를 이루었다.
"응?"
진남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살기를 뿜었다.
흰색 도포를 입고 얼굴이 새하얀 청년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청년은 주제, 황보절, 심약주재와 달랐다.
주제, 황보절, 심약주재는 주변에 커다란 공간이 있고 무인들이 접근하지 못했다.
하지만 청년의 주변에는 몇십 명의 무인들이 모여 웃고 떠들며 화목한 분위기를 풍겼다.
진남은 청년을 만난 적이 없었기에 청년의 외모나 모든 것들이 낯설었지만 청년의 기운이 엄청 익숙했다.
바로 미래에 사 대 무상천존이 될 창이었다.
"임 형, 왜 그러시오? 원수를 발견했소?"
계현은 궁금해서 물었다.
진남의 시선이 닿은 곳을 확인한 계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것도 아니오."
진남은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보니 지금의 창은 아직 천제결을 만들지 못했겠구나.'
진남은 생각했다.
시공지력을 거스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아니면 지금이 창을 죽일 절호의 기회였다.
진남은 계속 다른 사람들을 살폈다.
웬일인지 엽소선은 보이지 않았다.
천존전장에서 곧 두각을 드러낼 통천도수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후세의 진남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모습일 수도 있었다.
"임 형, 저자들만 살피지 마시오. 임 형이 폐관 수련을 한 이십여 년 동안 대상계에 수많은 천재들이 나타났소. 새로 극천방의 서열 백오십 위 안에 든 자들만 해도 여섯 명이나 되오."
계현은 감정을 다스리고 말했다.
"여섯 명이나 늘었소?"
진남은 깜짝 놀랐다.
천극방의 백오십 위 안에 들었다는 것은 주재정상의 경지를 돌파했고 천존 거물들과 싸울 실력이 된다는 뜻이었다.
"그럼. 붉은색 치마를 입은 여인을 보시오. 이름은 안군경(?君卿)이고 천방도통(天方道統)의 제일진전제자요. 또한, 천방도통 종주의 딸이고 천극방에 백사십칠 위를 했소. 대략 한 달 전에 저 여인은 천존 초급의 거물과 싸워 이겼소. 내가 들은 소식에 의하면 천방도통의 주재 강자들은 이번 기회를 포기하고 저 여인을 천존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요.
저기 회색 두루마기를 입고 얼굴에 핏기가 없는 소년은 음방한(陰放寒)이라 하오. 저자는 상고백족 천음족(天陰族)의 소족장이고 그의 스승은 천존정상급 거물인 구음천존(九陰天尊)이오. 천극방 서열 백삼십이 위인 엄청 대단한 녀석이요.
삼 년 전에 나와 고비 그리고 명초노조가 한 기연이 있는 곳에서 저자와 만나 싸운 적이 있소. 그때 우리가 빨리 도망갔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녀석의 손에 죽을 뻔했소. 에잇, 그 일만 생각하면 화가 나오. 저 녀석은 너무 건방지오. 혹시 기회가 되면 임 형이 저 녀석을 좀 혼내주시오.
저기 짧은 머리 중년 사내를 보시오. 이름은 나진후(羅震候)이고 소속이 없는 무인이요. 저 녀석은 운이 좋게 이십 년 전에 완전한 천존전승을 얻었소. 그 뒤로 실력이 쭉쭉 늘어 천극방 서열 백사십이 위를 했소.
……."
계현은 엄청난 공을 들인 게 분명했다.
그는 천극방 서열 이백 위 안에 든 주재강자들을 진남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전호(展昊), 칠해도통(七解道統)의 제일진전제자, 천극방 서열 백삼십구 위.
임소의(林素衣), 백대고족 영롱고족(玲瓏古族)의 제일천재, 천극방 서열 백삼십칠 위.
무형노인(無形老人), 소속이 없는 신비한 무인. 신분과 배경이 불분명함, 싸우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천극방 서열 백삼십 위. 진짜 실력은 더 강할 수도 있음.
그 외에 백오십일 위에서 이백 위까지의 주재 강자들도 있었다.
진남은 이십육 년 동안 공백기가 있었기에 집중해서 들었다.
진남은 동술을 사용하여 계현이 언급한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물론 이번 모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들은 단연 주제, 창 등이었다.
하지만 남은 천재들도 무시하면 안 될 정도의 실력을 가졌다.
그들 대부분은 비범지도를 장악했고 스스로 만든 공법도 있었다.
그들 중 아무나 후세에 가도 엄청 눈에 띄고 서열도 높았을 것이었다.
시간은 조금씩 흘러갔다.
멀리서 온 주재 강자들이 점점 많아졌다.
천존전장에 있던 주재 경지의 강한 생령들도 몰려들었다.
생령들은 평생 천존전장에 묶여 있어야 하고 천존지과가 그들에게 효과도 없었다.
하지만 생령들은 성대한 모임을 직접 구경하고 싶었다.
일부 생령들은 주재 강자들의 시체에도 큰 흥미를 두었다.
어느새 하늘이 어두워졌다.
수많은 별들이 밤하늘에서 반짝거렸다.
성변지지는 조용해지기는커녕 더욱 열기가 넘쳤다.
드디어 어둠이 물러가고 날이 밝기 시작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성천력 이천삼십일 년으로 들어서기 직전이었다.
철썩-!
방대한 힘을 가진 보이지 않는 파도가 신비한 곳에서 성변지지로 흘러왔다.
엄청난 바람이 사람들을 스치고 지나 사람들의 옷자락이 펄럭거렸다.
진남 일행은 정신을 차리고 앞을 살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성변지지의 무인들은 일제히 앞을 바라보았다.
천지는 잠잠해지고 귓가에 바람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은은한 압박감을 느꼈다.
"왔다!"
진남의 두 눈에 빛이 스쳤다.
근원지체가 된 후로 진남은 천지의 모든 것들에 대해 잘 느낄 수 있었다.
진남은 성변지지의 무형의 법칙들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 것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예고도 없이 희뿌옇게 밝던 하늘이 아홉 가지의 색으로 변해 구석구석을 비추고 무인들을 비추었다.
진남은 동허지동을 최대로 사용하여 앞을 살폈다.
창, 주제, 황보절, 엽소선, 심약주재, 통천도수, 그리고 다른 천재들까지 모두 상고 동술을 사용했다.
열 그루의 천존나무가 나타날 때마다 강자들은 오묘함을 꿰뚫어 보고 자그마한 단서라도 잡으려고 애를 썼다.
진남은 동력으로 앞에 있는 폐허에 열 개의 대문이 열린 것을 발견했다.
바다처럼 웅장한 열 개의 기운이 순식간에 문을 통해 나타났다.
무인들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하늘 가득 채운 아홉 가지 색깔의 빛들 사이로 높이가 구만 구천구백아흔아홉 장이 되는 커다란 나무 열 개가 나타났다.
나무들은 모습이 거의 똑같아서 구별이 되지 않았다.
수많은 나뭇가지들이 사방으로 뻗어 천지를 가득 채웠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뭇잎들이 각각 서로 다른 빛과 기운을 뿜고 있었다.
나뭇잎마다 규칙의 진리와 최상의 도리를 품고 있어 하나만 가질 수 있어도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열 그루의 천존나무는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크고 용처럼 생긴 나뭇가지들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허공의 깊은 곳으로 날아가 박혔다.
둥-!
천지에 묘연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남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열 그루의 천존나무가 풍기는 엄청난 흡입력을 느꼈다.
천존나무는 성변지지 주변의 힘들까지 전부 빨아들였다.
천존나무가 빨아들이는 양이 어마어마했다.
슈슈슉-!
천궁의 아홉 가지 색깔의 빛들이 엄청난 흡입력을 만난 것처럼 열 그루의 천존나무 위쪽으로 빨려갔다.
하늘은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무인들은 열 그루의 천존나무 위쪽에 몇십 장이 되는 아홉 가지 색깔의 꽃봉오리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꽃봉오리는 천천히 피어나는 중이었다.
무인들은 꽃봉오리가 품은 방대한 생기와 끝없는 오묘함 그리고 새 생명의 힘을 느꼈다.
성변지지에 침묵이 돌았다.
그러나 무인들은 이내 반응했다.
"저것이 바로 전설 속의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아니냐?"
"스승님께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설명해주셨지만 믿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이었구나!"
"열 그루의 천존나무는 신기하기 그지없다. 대상계의 수많은 기이한 화초들 중에서 최고의 존재이다."
수많은 목소리들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무인들 대부분은 표정이 격앙되고 흥분되었다.
"이 속도대로라면 반 시진 후면 천존지과도 나타날 거야……."
진남은 나무를 살펴보고 중얼거렸다.
진남은 문도지지에서 통천도수를 통해 주경으로 진급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와 지금 상황이 비슷했다.
진남은 통천도수가 두 그루의 천존나무를 연화한 것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 * *
그 시각 천극방의 신비한 곳.
천극방의 영은 옛 서적에 푹 빠져 있었다.
진남이 간 이후로 천극방의 영은 줄곧 옛 서적의 비밀을 연구했다.
"어? 천존나무가 나타났어?"
천극방의 영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 또 있더라? 아, 맞다. 진봉화 녀석 교활하게 나를 속여 진남에게 선물을 주게 했지……."
천극방의 영은 이마를 탁- 쳤다.
그는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뭘 주면 좋을까?"
천극방의 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에 빠졌다.
'법보를 줄까? 천재지보를 줄까?
안 돼, 안 돼. 너무 좋은 걸 주면 임효지를 편애하는 것 같고 평범하면 내 체면이 서지 않는다. 그럼 공법을 줄까? 이것도 안 돼. 내 공법들 중 임효지의 대동천결보다 강한 것도 없다.'
"참, 그 녀석이 천존전장에 갔지. 내가 만약……."
천극방의 영은 두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래, 그래. 그거면 일석삼조다. 녀석에서 '선물'도 되고 연마할 수도 있고……."
천극방의 영은 허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