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7화 비열한 수단을 사용하는군
"홍룡성주,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인데 이 열다섯 개를 모두 주시겠습니까? 이정도야 홍룡성주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거라 생각됩니다."
진남은 손을 뻗어 하나하나 가리켰다.
"좋소! 다른 것도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더 가져가시오. 동생, 출세하게 되면 이 형님을 잊으면 안 되오."
홍룡성주는 통쾌하게 대답했다.
진남은 사방용도 등 열다섯 개의 보물을 가져갔다.
그리고 건곤검결의 절반을 전수해준 뒤 인사를 나누고 홍룡성을 떠났다.
진남과 셋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이들이 다시 만날 일은 거의 없었다.
"이제 용상도에 가야겠다."
진남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 * *
용상도는 홍룡성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나는 가장 동쪽이고 하나는 가장 서쪽에 있었다.
열 시진을 날아간 진남은 허공에서 나와 걸음을 멈추었다.
"이게 상고시대 천존이 있던 곳인가?"
진남은 고개를 들고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이상한 빛이 스쳤다.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용 모양의 섬이 반 공중에 떠 있었다.
섬에는 여러 이상들이 번쩍거리고 방대한 선의가 흘러내렸다.
섬과 천지는 마치 한 몸처럼 구별되지 않았다.
한참을 쳐다보면 귓가에 용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스스로 매우 작게 느껴졌다.
"천존이 있던 곳조차 이리 평범하지 않으니 검곡도통과 다른 대세력들은 또 얼마나 대단할까?"
진남은 중얼거렸다.
아쉽게도 임효지의 기억 조각들에 검곡도통에 대한 것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진남은 검곡도통의 정보를 하나도 얻지 못했다.
진남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앞으로 날아갔다.
'용머리'까지 날아갔을 때 진남은 사방에서 무지갯빛이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것을 발견했다.
패자, 구천지존, 주경 강자, 그리고 주재도 더러 있었다.
입구에 난 대문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해서 여간 북적한 게 아니었다.
용도천존이 정한 규칙에 따라 현상령을 받아야만 정식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현상령을 반포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무인들도 오는 중이었다.
진남은 그동안 정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진남은 사람들 틈에 끼어 용상도에 들어갔다.
섬 안에서 외부 무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그리 크지 않았다.
단지 몇백 개의 거리가 있고 양쪽으로 선궁들이 늘어서 있었다.
더 앞에는 웅장한 산들이 있고 이상들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부서지기를 반복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잡았다.
섬에 상고 보물지 등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진남은 주변을 훑어보다가 가운데 있는 도장으로 다가갔다.
강자들이 가득 모이고 무인들이 많았지만 섬에는 규칙이 있었다.
섬에서 함부로 무력을 사용하면 엄벌을 받게 되었다.
때문에, 북적거리긴 했지만 질서가 유지되었다.
잠시 후, 도장의 왼쪽에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였다.
무인들은 길게 줄을 서서 현상령을 받았다.
도장의 오른쪽에는 엄청 큰 공간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곳에 가지 않았다.
그곳에 천공전이라는 궁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남은 살펴보고 고민하더니 맨 뒤에 줄을 섰다.
시간이 넉넉하니 쓸데없는 일이 생기지 않게 규칙에 따라 행동했다.
반 시진이 지나고 진남의 순서가 되었다.
그는 선석을 지불하고 신분 영패를 보여주고 수피권서를 받았다.
수피권서에는 옛 글자들이 있고 사방용도의 대략적인 모양이 그려졌다.
진남은 더 보지 않고 사람들 무리에서 빠져나와 천공전으로 가려고 했다.
이때, 놀라움이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임효지?"
진남이 고개를 돌려보니 멀지 않은 곳에 파란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피부가 하얗고 신비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 옆에는 체구가 크고 보라색 무늬가 있는 두루마기를 입은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눈매가 날카롭고 비범해 보였다.
진남은 몸을 흠칫 떨었다.
어떤 기억이 하나 밀려왔다.
강렬한 원망이 그의 마음에 끊임없이 자라났다.
"장우아? 황보소기?
진남은 눈을 가늘게 떴다.
용상도에 온 무인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이들을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이들과 '인연'이 있는 것 같았다.
"임효지, 이번에는 정말 놀랍더구나. 너를 다시 보게 됐다. 네 경지로 암류살의 을(乙) 자 정상급 살수 둘을 죽이다니."
황보소기는 그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우리가 너를 과소평가했다. 옛정을 생각해서 경고하는데 그 반지를 내놓거라."
장우아의 두 눈에는 정이 전혀 담겨있지 않았다.
그녀는 냉담하게 말했다.
"그럼 나와 황보 사형이 네 싸구려 목숨은 살려줄게. 아니면 이제 네가 상대해야 할 자는 을 자 정상급 살수가 아니라 갑(甲) 자 정상급 살수가 될 거다."
보통은 누군가를 협박할 때 현장에 사람이 많으면 전음했다.
장우아가 대놓고 협박했기에 많은 무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황보소기잖아?"
"황보소기는 검곡도통의 진전제자자 아버지가 검곡도통의 부종주이며 이미 삼십 년 전에 천존 경지에 이르렀어."
"그래서 저 여인이 사람이 많은 곳에서 대놓고 협박을 하는구나."
"역시 천존도통에서 살아남기도 쉽지 않구나. 큰 인물에게 미움을 받으면 동문의 정도 없이 죽음뿐이야."
무인들은 고개를 저었다.
황보소기는 주변의 말들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뒷짐을 쥐고 진남을 내려다봤다.
두 눈에 경멸을 감추지 않았다.
"우아가 그리 말하니 네 하찮은 목숨은 살려주마. 하지만 반지를 내놓아야 할 뿐만 아니라 나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세 번하고 영원히 제오소선역에서 사라지거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거라."
황보소기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는 일부러 모욕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임효지는 그와 장우아의 일을 알게 되고 사람들 앞에서 독설을 내뱉었다.
임효지를 붙잡은 그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는 임효지에게 이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려주려고 했다.
"절을 하라고?"
진남은 어이가 없었다.
상고시대는 후세들보다 휘황찬란했지만 권세를 믿고 사람을 괴롭히는 자들도 여전히 있었다.
상고시대가 휘황찬란하기 때문에 황보소기 같은 주재초기들도 심성이 후세들보다 더 건방졌을 수도 있었다.
"알아서 꺼지거라. 쓸데없는 말을 하기 싫다."
진남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황보소기와 장우아에게 사람 됨됨이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황보소기에게 꺼지라고 한 거야?"
무인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진남의 경지가 주경정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황보소기와 장우아의 태도를 보면 진남은 신분이 높지 않았다.
그런데 저런 말을 한다는 것은 죽으려고 작정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더러 꺼지라고?"
황보소기는 눈이 가늘어졌다.
장우아는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알던 사람이 맞아? 임효지는 배짱이 있는 자가 아니었는데?'
"그래, 그래. 임효지, 나에게 감히 그딴 식으로 말했으니 오늘 너를 없애버리겠다!"
황보소기는 엄청난 기운을 드러냈다.
사방이 흔들렸다.
진남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두 눈이 시커멓게 변하고 마의가 용솟음쳤다.
황보소기는 갑자기 손을 거두고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임효지, 저급한 수단으로 나를 약 올려서 용상도의 규칙을 어기게 하려는 거였어? 너도 참 순진하다. 하지만 그딴 말을 내뱉었으니 용상도를 나가면 사는 게 죽기보다 못하게 만들어주마."
장우아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임효지, 역시 내가 너를 제대로 봤어. 너는 여전히 유치하고 멍청해."
진남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그는 변명도 하기 싫었다.
이들을 상대로 입씨름을 하는 것은 그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짓이었다.
"너……."
황보소기는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임효지가 감히 나를 무시해?'
"황보 형, 왜 이러시오? 누가 형님을 화나게 했소?"
이때, 호기심이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슴에 발가락이 아홉 개인 금룡이 새겨진 흰색 두루마기를 입은 중년 사내가 멀리서 다가왔다.
그의 뒤로 똑같이 흰색 두루마기를 입은 형상들이 따라왔다.
그들의 가슴에도 금룡이 있었지만 발가락이 여덟 개였다.
"엽(葉) 집사(執事)?"
황보소기는 소리가 나는 쪽을 확인하고 기뻤다.
'왜 방금 이자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저자에게 큰 재난이 닥치겠구나."
무인들은 속으로 탄식했다.
용상도에는 다섯 명의 전주가 있었는데 모두 주재정상이고 용도천존의 심복들이었다.
전주 아래에는 도합 열여섯 명의 집사가 있었는데 모두 주재 경지였다.
집사들은 거리와 선궁의 안전과 평화로움을 지키는 자들이었다.
황보소기의 표정을 보니 엽 집사와 사이가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엽 집사, 마침 잘 오셨소. 이자가 방금 폭언을 내뱉고 또 나를 공격하려고 했소. 용상도의 규칙에 따라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소?"
황보소기는 냉소를 짓더니 진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
다른 무인들은 어이가 없었다.
진남은 주경정상이고 황보소기는 주재대성이었다.
진남이 아무리 겁이 없어도 황보소기를 공격할 리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게 권력이었다.
논리도 없고 도리도 따지지 않으며 대충 이유를 둘러대면 되었다.
"엽 집사, 이녀석을 단단히 혼내주고 괴롭혀주면 내가 자네를 밀어주겠소."
황보소기는 신념을 전했다.
엽 집사는 눈에 빛이 스쳤다.
그는 바로 꿍꿍이가 생겨 진남을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용상도에서 감히 트집을 잡아 말썽을 일으키다니, 배짱도 크다! 용상도의 규칙대로 너를 사흘 가두고 잘 가르쳐야겠다!"
말을 마친 그는 손을 흔들었다.
"이리 오너라! 이놈을 끌고 가거라!"
뒤에 있던 제자들은 우르르 달려들었다.
진남은 입을 삐죽거리고 말했다.
"엽 집사, 너무 경솔하게 법을 집행하는 게 아니오? 분명 저자가 나를 공격하려고 한 건데 저자의 말만 듣고 믿는 거요? 자네는 용상도의 집사요 아니면 검곡도통의 집사요?"
황보소기와 장우아는 그의 말을 듣고 표정에 비웃음이 가득했다.
'임효지는 참 유치하구나! 누가 잘못했는지 그리 중요한 것 같으냐?'
엽 집사의 눈에 하찮다는 듯한 기색이 스쳤다.
"나는 용상도에 백 년 동안 있으면서 경솔하게 집법을 한 적이 없었다. 네놈이 죄를 인정하지 않으니 내가 직접 네 죄를 증명해주마."
말을 마친 엽 집사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주경 초급 단계의 무인을 가리키며 물었다.
"도우, 방금 이자가 황보소기를 공격하려고 한 게 맞느냐?"
주경 초급 단계의 무인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그는 고민하지도 않고 대답했다.
"맞습니다."
엽 집사는 옆에 있는 구천지존에게도 똑같이 질문했다.
구천지존 역시 같은 대답을 했다.
"집사 말씀이 맞습니다. 집사, 이자는 간이 부은 놈입니다. 집사께서 제때 오시지 않으셨다면 황보 도우를 공격했을 겁니다."
엽 집사는 여러 무인들에게 질문을 했다.
그들은 엽 집사의 말에 긍정적인 대답을 했을 뿐만 아니라 진남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웠다.
상황을 잘 모르는 무인이 보았다면 진남이 겁을 상실하고 용상도의 규칙을 어겼다고 믿었을 것이었다.
"비열한 수단을 사용하는군."
진남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엽 집사가 질문을 던진 자들은 주경이나 구천지존들이었다.
이런 경지의 무인들은 상관없는 사람 때문에 엽 집사와 황보소기의 미움을 사는 짓을 할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