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2화 혼인
몇 시진 뒤.
진씨 가문은 시끌벅적했다.
용호, 사마공, 유실약원과 전족, 천기족 등등이 연이어 도착했다.
그들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연회를 열었다.
진천, 이계, 막소리, 유실약원의 현임 족장은 밀담을 나누고 진남을 방으로 불렀다.
"아버지, 제가 잔소리하려는 건 아닙니다. 아무리 무도의 길에 흥미가 없다고 해도 아예 수련하지 않는 건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진남은 저도 몰래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말을 했다.
차하계에서 무도대제는 낮은 경지가 아니었다.
수명이 천 년 혹은 몇천 년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진천은 백여 살인데 이미 머리카락이 하얗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해서 나이 든 노인처럼 보였다.
"이 녀석아, 아직도 모르겠느냐? 너는 네가 가야 할 길이 있고 나는 내 인생이 있다. 그리 오래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진천은 퉁명스럽게 꾸짖고 화제를 돌렸다.
"방금 그녀의 스승과 족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틀 후, 황혼 무렵에 식을 올리고 너희를 정식으로 인연을 맺게 하자고 하더라."
진천은 이어서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식은 그리 복잡하게 할 필요 없다. 혼수와 예물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틀 동안 묘묘 등과 만나지 말거라."
진남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진천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저장주머니에서 고적을 꺼내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이 책은 네 선조 할아버지께서 만드신 비적이다. 진씨 가문의 적자가 혼인을 할 때 전수하는 것이다. 이제 시기가 온 것 같구나. 너는 주경이 되어 선조 할아버지를 뛰어넘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견식이 넓고 이해도 깊다. 어떤 일은 네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일 거다. 이틀 동안, 고적을 잘 읽어보고 전부 익히도록 하거라."
진남은 궁금한 표정으로 고적을 받아서 살폈다.
그는 첫 줄에 쓰인 힘 있는 글자를 확인했다.
'음양결합의 도는 변화가 많고 신비함도 많다. 경지가 아무리 강해도 다 익힐 수 없다. 나는 많은 규수들을 만나 심혈을 기울이고 모색을 한 끝에 겨우 조금 알게 되었다. 경험을 이 책에 모았으니 후손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진남은 저도 몰래 책을 펼쳤다.
그림이 나타났다.
최고의 화가가 그렸는지 인물의 표정 행동 등이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그림은 저도 몰래 푹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진남이 고개를 들어보니 진천의 커다란 뒷모습만 보였다.
시간은 조금씩 흘러 이틀이 지났다.
진씨 가문은 채색 등을 걸고 선향을 태우고 진법들을 움직였다.
몽롱한 빛이 사방을 환하게 비추었다.
진남은 옷을 바꿔 입었다.
금색 두루마기를 입은 그는 위풍당당했다.
진천, 이계, 막소리, 유실약원의 족장은 붉은색 두루마기를 입고 상석에 앉았다.
다른 사람들은 양쪽으로 쭉 앉았고 가운데에 빈 공간을 남겨두었다.
입도지주는 활짝 웃으며 영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이번에 따라와 묘묘 공주나 강벽난처럼 진남과 인연을 맺고 삼방이 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진남의 친구들과 친척들과 친하게 지내고 진천과 안면을 틀 생각이었다.
그녀의 노력은 효력을 보았다.
진천은 이미 그녀를 며느리들 중 한 명으로 인정한 것 같았다.
입도지주는 문득 옆에 있는 빙설 같은 여인을 보며 질문했다.
"비월여제, 꼬마 부군과 혼인을 할 생각이 없어요?"
"내가 왜 진남과 혼인을 해야 해?"
비월여제가 반문했다.
입도지주는 경악했다.
"서, 설마 꼬마 부군을 안 좋아해요?"
비월여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좋아한다는 게 뭐냐?"
입도지주는 말문이 턱 막혔다.
그녀도 좋아한다는 게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그녀의 느낌이었고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입도지주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비월여제는 이런 것에 대해 무지하거나 아무런 느낌이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
입도지주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비월여제의 무예 재능이 그리 뛰어나니 감정 문제를 모르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입도지주는 잠깐 생각하고 대답했다.
"그건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그 사람이 없을 때 보고 싶고 위험해지면 걱정되고 그 사람을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는다면 좋아하는 거래요."
그녀는 활짝 웃으며 계속 말했다.
"잘 모르실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무도를 수련하는 길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어요. 천 년이 될 수도 있고 만 년이 될 수도 있으며 더 길 수도 있죠. 그 긴 시간 동안 쭉 혼자면 안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도려를 찾아 서로 돕고 같이 성장하며 기회가 되면 자식도 낳고 후대를 남기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비월여제와 꼬마 부군도 도려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비월여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이런 것들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입도지주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진남과 도려가 되는 것도 괜찮았다.
적어도 나쁘지 않았다.
"천존이 된 다음에 다시 보자."
비월여제는 그때가 되면 당당하게 진남더러 매일 고기를 구워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표정이 편안해졌다.
입도지주는 그녀가 이해했다는 것을 알았다.
'꼬마 부군, 나 같은 여인을 또 어디 가서 찾아? 비월여제가 도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면 삼방을 나에게 양보해도…….'
입도지주는 기분이 좋았다.
만고를 놀라게 한 비월여제가 자신을 언니라고 모실 생각만 해도 흐뭇했다.
"금(琴)과 비파를 울리고 가인을 맞이하겠습니다!"
이때, 창람대륙의 근원의 힘과 다른 사 대 대륙의 근원의 힘이 변한 다섯 명의 사회자가 높이 외쳤다.
금과 비파 소리가 섞여서 기쁜 곡조가 울려 퍼졌다.
진남이 고개를 돌리자 금색 봉황 치마를 입은 묘묘 공주와 강벽난이 보였다.
그녀들은 금색 봉황 치마를 입고 머리를 얹었으며 화장을 살짝 했는데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전설 속의 신녀(神女)들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 같았다.
진남은 황홀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드디어 함께하게 되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
"부모님께 인사를 올리고, 스승님께 인사를 올리며, 선배님들께 인사를 올리시오!"
다섯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에 진남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쟁반에 올린 영주를 진천 등에게 공손하게 건넸다.
묘묘 공주와 강벽난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래그래!"
진천은 활짝 웃으며 쭉 들이켰다.
그는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내 말을 명심하거라. 이제부터 공주와 난난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네가 그녀들에게 잘못을 하면 구천선역에 있더라도 찾아가서 혼내주겠다. 그때 가서 내가 무정하다고 하지 말거라!"
진천은 웃음기를 싹 빼고 진지하게 말했다.
진남은 어이가 없었다.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셨네요? 그리고, 공주와 난난이의 말을 내가 감히 안 들을 수가 있겠어요?"
"아저씨, 고맙습니다."
묘묘 공주와 강벽난은 얼굴이 발그스레해서 말했다.
"하하하, 아직도 아저씨라 부르느냐?"
궁양 등이 놀려줬다.
"고맙습니다. 아, 아버님."
묘묘 공주와 강벽난은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동심지인(同心之印)을 맺었으니 앞으로 어떤 경지에 이르거나 위험한 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거나 떠나지 않겠습니다. 평생 함께하겠습니다."
진남은 두 여인을 바라보았다.
두 여인도 진남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수인이 만들어지고 드디어 단단히 합쳐졌다.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들이 척척 진행되었다.
창람대륙에 있는 진남의 조각상들에서 빛이 번쩍였다.
무인들은 조각상을 올려다보며 한편으로는 놀라고 한편으로는 기뻤다.
진묘원년이 생긴 이후로 조각상에서 이런 이상이 생긴 건 처음이었다.
천하의 중생들이 그들을 주목하고 축복했다.
두 여인이 먼저 방에 들어갔다.
진남은 경지를 봉인하고 술잔을 들고 인사를 올렸다.
하객들이 실컷 즐기고 흩어졌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달빛이 비치고 별들이 반짝거렸다.
진남은 화원을 지나 여인들이 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문을 천천히 열었다.
달빛이 방 안으로 쏟아졌다.
묘묘 공주와 강벽난은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고 양옆에 향초가 타고 있었다.
촛불과 달빛이 그녀들의 수줍은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진남은 넋을 놓고 그녀들을 쳐다봤다.
"계속 볼 거야?"
묘묘 공주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기분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이상했다.
그녀는 진남과 잠자리를 한 적도 있지만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럼, 계속 봐야지."
진남은 정신을 차리고 살짝 웃었다.
그는 문을 닫고 말했다.
"공주, 난난 이제 마지막 의식이 남았다. 경지를 봉인해야 돼."
진남은 손가락을 튕겨 방에 금제를 둘렀다.
그는 경지를 봉인하고 동시에 영혼과 식해를 모두 봉인했다.
선조 할아버지는 음양결합의 도를 행할 때 조금씩 진행하라고 했다.
또, 도려가 처음으로 결합을 할 때는 평범한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했다.
진남은 선조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감히 거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묘묘 공주와 강벽난은 의아했다.
'왜 우리는 그런 말을 못 들었지?'
지혜로운 강벽난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녀도 경지를 봉인했다.
미풍이 불어 촛불이 꺼지고 방안에는 달빛만 남았다.
그녀들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진남이 어느새 그녀들 앞에 서 있었다.
그의 두 눈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렸다.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읍."
묘묘 공주는 입술에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소남자, 박력 있어!'
강벽난은 몸을 살짝 떨었다.
뜨겁고 커다란 손이 어느새 그녀의 허리를 타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 * *
다음 날 아침.
끼익-!
굳게 닫혔던 방문이 열렸다.
방 안에서 나온 진남은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는 정신이 맑고 기분이 상쾌하며 표정이 밝았다.
이미 주경 강자가 되고 구천선역에서 온 세상을 진압하는 최강의 존재였지만 그래도 어떤 일들은 선조들이 더 잘 알았다.
선조의 가르침이 옳았다.
"녀석아, 이리 오너라!"
진천의 부름이 들렸다.
진남은 두 여인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방문을 조심스레 닫고 의사대전으로 향했다.
진천은 전날 입었던 붉은색 두루마기를 갈아입지 않고 선차를 따르고 있었다.
진남이 오자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진남,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천지도 늙어가고 대도도 소멸할 때가 있다. 아무리 강한 무인도 죽을 거고 사라질 거다."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진천은 이어서 말했다.
"그건 네가 나보다 더 잘 알 거다. 그래서 한마디 해야겠다. 지금 너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높은 경지를 추구하거나 위대한 꿈을 이루는 게 아니라 후대를 남기는 일이다."
진천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공주와 난난이 네 아이를 가지면 그때 구천선역으로 돌아가거라. 아이는 이 할애비가 키우마!"
진천의 두 눈에 뜻 모를 빛이 떠올랐다.
그는 명예도, 이익도, 경지도 욕심나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불꽃이 진씨 가문에 태어나기를 바랐다.
진남은 옅은 미소를 짓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