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2화 내세도(來世都)
"이게 무슨 일이지?"
"의자가 왜 나타난 거야?"
섬에 있던 무인들과 지존혈대에서 폐관수련 중이던 무인들은 경악했다.
몇천 년 동안 지존혈대에서 열여섯 개의 의자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었다.
진남은 고개를 들었다.
"일단 가보자."
그는 영생지화를 거두고 청색 빛으로 변하여 오른쪽 첫 번째 의자로 날아갔다.
예로부터 오른쪽이 상석이었다.
"우리도 가보자!"
다른 무인들도 정신을 차리고 법인을 만들고 빛으로 변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존혈대에 전에 없던 이변이 생겼다는 것은 대기연일 수 있었다.
물론, 커다란 살국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확인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대기연이면 엄청난 좋은 점을 얻고 명을 바꾸고 실력이 늘 수 있었다.
진남이 먼저 첫 번째 의자에 내려섰다.
의자에 발이 닿는 순간 그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절세의 왕이 되었고 천지의 무인들이 자신의 상대가 아닌 것 같았다.
"진남 도우, 명성은 진작 들었다. 아끼지 말고 가르침을 주기 바란다."
고족에서 온 절세천재가 진남에게 도전했다.
그는 태고의 창을 들고 있었는데 칼끝이 예리해서 모든 것을 뚫을 것 같았다.
진남은 그를 공격하지 않았다.
하지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은 의자에서 십 장 떨어진 곳까지 날아오더니 산에 막힌 것처럼 더 오지 못했다.
"한 사람이 들어가면 다른 사람은 못 들어가는구나!"
다른 무인들은 이내 눈치를 챘다.
그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더욱 격렬하게 싸웠다.
귀청이 찢어질 듯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지존혈대에는 몇천 년 동안 내려오는 규칙이 있었다.
그러나 규칙은 실체가 없었다.
깨달음을 얻고 있을 때 적의 공격을 받는다면 무척 위험한 일이었다.
그런데 의자는 달랐다.
창을 든 절세천재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했다.
진남은 그 모습을 보자 웃으며 말했다.
"괜찮다. 나중에 시간이 많으니까."
절세천재는 고개를 끄덕이고 인사를 하더니 자리를 떴다.
이제 진남을 노리는 무인들은 없었다.
"편하구나."
진남은 중얼거리고 의자를 살폈다.
그가 온 이후로 의자는 잠잠했으며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위에 새겨진 무늬는 어떤 그림이고 무언가 기록한 것 같았다.
한참 살펴도 알아볼 수 없자 진남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둥-!
그의 식해에서 구리종이 울려 퍼졌다.
머릿속에 어떤 장면이 펼쳐졌다.
끝없는 핏빛 속에 크기가 굉장하고 꿈쩍도 하지 않는 성이 떠올랐다.
다만, 이 장면은 망사를 씌운 것처럼 흐릿하고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열여섯 개의 혈왕의 의자는 열여섯 개의 전승이다. 네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고 여섯 개의 관문이 있다. 왼쪽과 오른쪽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 다른 길을 선택함에 따라 다른 결과가 있다. 모든 것이 원법이다……."
늙고 우렁찬 목소리가 진남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존혈대에 열여섯 개의 전승이 숨겨져 있었어?'
슉-!
이때, 무주궁도가 깨어나 혼돈스러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펼쳐진 장면을 지나 혈성에 들어갔다.
시공간이 멈춘 것 같았다.
펼쳐진 장면의 모든 것들이 또렷하게 보였다.
진남은 충격을 받았다.
하늘 높이 솟은 성벽에는 용과 봉황 등 요수들의 조각이 몇백 개 있었다.
모두 엄청 크고 천지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흘겨볼만한 기세를 풍겼다.
조각상들은 바위로 조각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요수가 연화한 것이었다.
그들은 생전에 경지가 구천지존까지 이른 자들이었다.
'몇백 명의 구천지존이 된 대요들로 성벽을 만든 자는 대체 누구일까?'
진남은 마음이 요동쳤다.
그립고, 가깝고, 익숙함이 섞인 복잡한 감정이 솟구쳤다.
진남은 엄청난 성지에 그에게 속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다.
"한 방울의 피가 이곳에 있을까?"
진남은 심호흡을 했다.
그의 마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전신의 왼쪽 눈을 처음 만날 때와 비슷했다.
"주인님, 의, 의지를 전부 사용하여 성, 성 가운데 있는 간판을 응시하십시오. 그, 그리고 성을 지존혈대에서 불러내십시오……."
도령은 띄엄띄엄 말했다.
무주궁도는 계속 빛을 뿜으며 펼쳐진 장면으로 사라졌다.
"성에 있는 간판을 응시하라고?"
진남은 정신을 가다듬고 의지를 전부 모아서 살펴보았다.
성 중앙에는 간판이 있었다.
간판에는 힘있게 씌여진 세 글자가 있었다.
'내세도(來世都)!'
"내세도? 나를 가리키는 건가? 전생이 피 한 방울을 남길 때 이 장면을 예상했나?"
진남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정신을 집중하여 간판을 살폈다.
그는 신비한 상태에 돌입했다.
그는 어떤 계단에 도착하여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끝에 도착하자 속박과 봉인이 사라졌다.
"재미있구나."
허령천계에 있던 비월여제는 붉은 끈을 통해 진남의 상태를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진남이 지존혈대에 온 이후로 그녀는 몰래 뒤를 밟는 주경 강자들을 무시하고 진남을 살폈다.
비월여제가 살피는 것을 진남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진남은 그의 심장 부근에서 신비한 마기가 다시 흘러나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전과 다르게 마기는 뱀 모양으로 변해서 몸을 구부렸다.
마기의 텅 빈 눈은 진남의 심신과 하나가 되어 엄청난 성과 내세도라는 세 글자를 볼 수 있었다.
패자 정상급과 절세천재 만립은 엄청난 수단을 사용하여 혈왕의 의자에 도착했다.
잠시 후, 두 개의 이상이 나타나고 수많은 선기가 흩어졌다.
그들은 내세도의 신비함을 느끼지 못하고 늙고 우렁찬 목소리에 따라 열여섯 개의 무상 전승을 선택했다.
다른 무인들은 잘 알지 못했지만, 일부 상황을 추측하고 더 격렬하게 싸웠다.
어느덧 세 시진이 지났다.
많은 무인들이 중한 상처를 입고 어쩔 수 없이 섬으로 돌아갔다.
열여섯 개의 의자 중 절반은 임자가 생겼다.
"몇천 년 동안 잠잠하던 지존혈대가 진남의 출현으로 이런 변화를 일으키다니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붉은색 관을 메고 얼굴이 창백한 청년이 나타났다.
무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음일?"
화존좌경과 우경에서 음일은 명성이 자자했다.
그는 일대 귀주의 자식이기도 했고 신분이 대단했다.
또, 여러 전장에 자주 드나들며 시체를 수집하고 습격을 해서 사람들의 미움을 샀다.
무인들 대부분은 그를 미워했다.
이때, 섬의 위쪽 허공에 선광들이 떠올라 오래된 대진을 이루었다.
대진에서 형상들이 나타났다.
"선령족의 육경음?"
"농염족의 축염과 문고족의 고소요도 왔어?"
무인들은 깜짝 놀랐다.
싸우던 무인들도 그들에게 시선이 쏠렸다.
한 번에 네 명의 절세천재가 나타나는 일은 드물었다.
육경음은 파란색 치마를 입고 머리를 얹어 쇄골을 드러냈다.
그녀는 손목에 흰색 옥팔찌를 하고 있었고 패자대성의 기운을 풍겼다.
축염, 고소요도 패자대성이었다.
두 달은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절세천재들은 많은 돌파를 할 수 있었다.
육경음은 음일을 힐끗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첫 번째 자리에 앉아 눈을 감은 진남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도우들, 다 왔으니 모습을 드러내거라. 숨어있을 필요가 없다."
"하하, 육도우의 감지 능력은 따를 자가 없다."
보라색 짧은 머리카락의 청년이 호탕하게 웃으며 나타났다.
그의 뒤로 눈빛이 날카롭고 강한 기세를 풍기는 중년 사내 두 명이 따라왔다.
"시도족은 대단하구나. 은천수를 세 마리나 잡다니."
음일의 창백한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제칠 천지성구는 시끌벅적하구나."
평온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머리에 검은 띠를 묶고 눈동자가 검은색인 청년과 머리에 붉은 띠를 묶고 눈동자가 붉은색인 여인이 나타났다.
동시에, 섬의 구석 허공이 비틀렸다.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등에 '참' 자를 새긴 형상이 셋 나타났다.
"또 참창종이야?"
육경음, 고소요, 축염, 음일 등 절세천재들의 눈에 빛이 스쳤다.
참창종은 진남과 무슨 사이기에 번마다 도와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겨우 이 정도밖에 안 왔어? 많은 사람들이 제칠 천지성구로 온다며? 실망이다, 실망이야!"
감탄이 울려 퍼졌다.
열 명의 흑포인이 멀리서 다가왔다.
그들 중 아홉은 흰색 해골이었는데 텅 빈 눈에 초록색 불꽃이 타올랐다.
말을 한자는 양손이 백골이고 얼굴에 신비한 핏빛 무늬가 가득했다.
"시도족의 항원승이다!"
"묘문의 흑홍쌍선도 왔구나."
"태고금기의 역류오자(逆流五子) 중 한 명인 몽산악(蒙山嶽)도 왔어!"
무인들은 그들을 보자 경악했다.
제일 천지성구 외에 유명한 절세천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드물었다.
무인들은 그들이 진남 때문에 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하, 몽산악, 그리 말하지 말거라. 피천고교의 도우들도 먼 곳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태고금기와 시도족 그리고 묘문도 많은 강자들을 동원하여 은천수를 찾지 않느냐?"
음일은 웃으며 말했다.
보는 이들은 등골이 오싹했다.
몽산악은 그를 힐끗 보더니, 대답하지 않았다.
육경음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도우들, 이곳에 온 목적은 다르지만 다 진남과 연관이 있지 않느냐? 방금 물어봤는데 의자에 앉으면 다른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하더구나. 의자마다 전승과 기연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알아보니 의자를 덮은 힘은 엄청 강하긴 하지만 우리가 연합하여 공격을 하면 부술 수도 있을 것 같구나. 도우들 생각은 어떠하냐?"
항원승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좋다."
몽산악은 어깨를 으쓱하며 동의했다.
"축 도우, 고 도우 너희들이 먼저 공격하거라."
육경음은 손으로 그들을 가리켰다.
축염과 고소요는 진남을 보자 두 눈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둘은 결국 눈부신 선광을 드러냈다.
"구천제일염(九天第一焰)!"
"고지혼래(古之魂來), 이왕강(離王降)!"
둘은 법인을 만들었다.
엄청난 불꽃과 웅장한 형상이 동시에 진남이 있는 의자로 날아갔다.
쿵-!
항원승, 몽산악과 그들 뒤에 있던 패자들도 강한 기세를 드러내며 절세의 검처럼 날아갔다.
육경음은 법인을 만들었다.
선광들이 허공에서 내려와 그들의 몸에 떨어졌다.
많은 무인들은 가슴이 설렜다.
다섯 절세천재와 십여 명의 패자 정상급 강자가 연합하여 공격하니 그 힘이 엄청났다.
음일은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다.
그는 참창종의 제자들 중 앞에 선 청년에게 물었다.
"너는 구홍이었던가? 왜 공격하지 않느냐? 혈왕의 의자가 부서진 다음에 진남을 구하려면 엄청 시끄러울 거다."
구홍은 음일을 무시했다.
길을 떠나기 전 남세지존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의 임무는 진남을 지키는 것이 맞았다.
다만, 진남이 거의 죽기 직전에 나서면 되었다.
진남은 밖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진남은 의지를 내세도라는 세 글자에 집중했다.
그의 머릿속에 수인(手印, 보살의 서원을 나타내는 손의 모양, 또는 수행자가 손이나 손가락으로 맺는 인) 그림들이 떠올랐다.
진남의 몸은 저도 몰래 수인을 따라 만들었다.
반 시진이 지나고 진남은 결인을 절반이나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