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6화 제일선의 실력
"진남, 설마 제일선이라는 자가 축자황의 도전장에 겁을 먹은 게 아니지?"
강각선왕은 차갑게 웃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눈치를 주었다.
"제일선이 싸움을 두려워하겠느냐?"
"이건 공평한 싸움이지 않느냐? 축자황이 세력을 내세워 너를 괴롭힌 것도 아니잖아?"
"하하, 겁을 먹고 대답을 못 하는 것 같구나."
사람들은 눈치를 채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남은 무인들은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치켜보고 있었다.
강각선왕 등의 격장법은 아주 간단했다.
그러나 간단한 방법이 때로 매우 큰 효과가 있었다.
수신량의 조롱도 같은 도리였다.
그의 조롱에 패자들은 화가 나서 실수를 할 뻔했다.
"축 도우의 성의 있는 도전을 내 어찌 거절하겠느냐? 다만, 이곳에서 무력을 사용할 수 없으니 어디 가서 겨루면 좋겠느냐?"
진남은 아무렇지 않게 되물었다.
축자황은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을 하더니 대답했다.
"이곳에서는 싸울 수 없다. 그런데 우리 밖에 나가면 되지 않느냐? 우리 선마도세를 하자. 그거면 충분하다."
말을 마친 뒤 그는 돌아서서 강각선왕 등에게 공수했다.
"선배님들, 제가 칼을 너무 가지고 싶어서 실례를 범했습니다. 선배님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십시오. 그리고 밖에서 진남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고 선마도세를 해주십시오."
강각선왕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농염족의 핵심 제자인 축자황은 장래가 창창했다.
그러니 그가 신세를 지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축자황이 먼저 무예 대결을 제안한 것은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들은 진남이 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축자황은 패자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무인들에게 다시 말했다.
"도우들, 내 체면을 봐서 싸움을 구경하고 싶으면 선마도세를 하기를 바란다. 아니면 내가 좀 난감하구나."
대부분의 무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축자황의 체면은 봐줘야 했다.
또, 그들이 선마도세를 하지 않으면 진남이 위험에 뛰어들지 않을 것 같았다.
"진남, 네 생각은 어떠하느냐?"
축자황은 살짝 웃으며 물었다.
진남은 감탄했다.
그의 일처리는 꼬투리를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팔요마왕, 선마도세를 믿어도 됩니까?"
진남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고 전음했다.
살선고지에서 팔요마왕은 선마도세를 했지만 맹세를 깨고 진남을 탈사하고 연화하려고 했다.
팔요마왕은 헛기침을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선마도세는 믿어도 된다. 아무리 탁월해도 한 시진 내에 맹세를 깰 수 없다."
그제야 진남은 시름을 놓았다.
"좋다. 그럼 네 말대로 하자. 너와 무예를 겨루겠다."
진남은 축자황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런데……."
진남은 숨을 고르고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는 뭐가 그런데야? 축자황이 이 정도까지 했는데 또 무슨 할 말이 있느냐?"
농염족의 패자는 불쾌해서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보거라."
축자황의 미소가 서서히 사라져갔다.
"사실 별거 아니다. 난 이제 지선 정상의 경지이고 도기를 다시 만들었다. 공평하게 싸울 필요 없으니 어떤 수단이라도 쓰거라."
진남은 차분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먼저 무예를 겨루자고 도전장을 내밀고 공평하게 싸우려 했다.
때문에, 진남도 도기를 다시 만든 일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상대가 정정당당하게 도전하면 그도 정정당당하게 적을 패배시킬 것이다.
"네가 지선 정상의 경지라는 것은 알아차렸다. 그러나 나도……. 응? 방금 뭐라 했어? 도기를 다시 만들었다고?"
무심코 말을 하던 축자황은 정신이 번쩍 들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 도기를 다시 만들었다고?"
강각선왕 등 패자들과 천재들 그리고 소속이 없는 무인들도 충격을 받았다.
일부 무인들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도기를 다시 만드는 일은 엄청나게 힘들었다.
그런데 진남은 도기를 잘린 지 삼 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도기를 다시 만들었을까? 궁우태황종의 대폭적인 지지를 받았나?'
"어때, 내 동생과 겨뤄볼 거야?"
수신량은 여전히 비아냥거렸다.
팔요마왕은 기가 막혔다.
'이놈은 입만 살아서 끼어들지 않는 곳이 없구나. 무슨 일만 있으면 쫓아와 비아냥거리네.'
하지만 수신량의 말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강각선왕 등 패자들은 진남이 바닥을 치던 그 진남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다.
홀로 서른여 명이 되는 천재들을 휩쓸던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했다.
강각선왕은 앞서 오회생이 중요한 순간에 공격을 하지 않았다고 그의 스승에게 알렸다.
하지만 오회생의 스승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침묵을 한참 지키던 그는 탄식했다.
"진남의 도기가 잘리지 않았더라면 몇천 년 후에는 여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턴데."
여제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구천선역의 무인들 중 여제가 무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자가 있을까?
모두 침묵하고 적막이 흘렀다.
축자황은 망연자실했다.
상황이 그의 의지대로 움직일 줄 알았다.
그런데 진남의 아무렇지 않은 한마디에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도기를 다시 만든 진남에게 내가 상대나 될까?'
"축 도우, 지금 겨룰 수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진남은 상대방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방을 배려했다.
무예 겨루기는 일반 싸움과 달랐다.
일반 싸움은 계략과 수단을 사용하고 심지어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고 사용한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이기면 되었다.
상대방의 보물을 빼앗거나 다른 것도 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예를 겨루는 일은 겨루는 것보다 약속을 지키는 게 더 중요했다.
축자황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겨룰 것인가 말 것인가? 내가 이길 가능성은 있는 거야?'
짧은 순간에 그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표정이 진지하고 두 눈에도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내가 먼저 도전장을 내밀었는데 어찌 물러설 수 있겠느냐? 누가 이길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는 농염족의 핵심제자였다.
절세의 천재가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강각선왕 등 패자들과 무인들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
강각선왕이 나섰다.
"진남, 너는 제일선이다. 제일선 싸움에서도 혼자 서른 명이 거의 되는 개세천재들을 휩쓸었다. 그런데 축자황과 단독으로 싸운다면 불공평하지 않겠느냐? 축자황 일행 다섯과 싸우는 건 어떠하냐?"
강각선왕은 두 눈이 차가웠다.
'진남이 도기를 다시 만들었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예로부터 도기를 다시 만든 사람도 많았다.'
강각선왕은 진남이 도기를 다시 만든 후 실력에 전혀 영향이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시간도 고작 삼 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진남은 지선 정상의 경지에 이르고 도경을 회복했다.
즉, 진남은 아직 허약한 상태일 것이었다.
물론 축자황이 혼자 싸운다면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다섯이 힘을 합치면 승산이 있었다.
축자황 일행이 졌다고 해도 강각선왕 일행은 손해 볼 게 없었다.
행여 축자황 일행이 이기면 진남을 죽이고 미래의 큰 위험을 없앨 수 있었다.
"일 대 오로 싸우라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저들이 좋다면 저는 문제 없습니다."
진남은 평온하게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제일선의 자신과 패기를 느꼈다.
"안 돼, 절대 안 돼."
팔요마왕은 손을 내저었다.
"너희들은 고작 자묘선염을 내놓으면서 오 대 일로 싸우겠다니? 다른 네 명도 보물들을 걸어야 한다."
강각선왕은 콧방귀를 뀌었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자네들 생각은 어떻소?"
그는 패자들을 둘러보았다.
"사숙, 제가 겨뤄보고 싶습니다."
고거린, 구계, 가몽, 두월우 중에서 망설이지 않고 나선 사람도 있고 망설이다가 나선 사람도 있었다.
'진남도 겁을 먹지 않는데 우리가 두려울 게 뭐가 있을까?'
그들은 제일선이라는 진남이 대체 어떤 재간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좋다. 그럼 각자 선마도세를 하거라."
강각선왕과 늙은 중 등 패자들은 서로 마주 보더니 말했다.
그들은 선마도세를 하는 한편 결정을 내렸다.
결과가 어떻든지 종문에 이 일을 알려야 했다.
다시 일어선 절세의 천재를 그들은 홀시할 수 없었다.
진남 일행은 축자황 등과 함께 선마도세를 하고 위풍당당하게 구리 문에서 나왔다.
현재 동경과 서경은 매우 기이한 상태였다.
수많은 세력들이 두 곳에 모여들어 혼잡했다.
그러나 아무도 무주 선복도지에서 무예를 겨룬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진남 도우, 잘 부탁한다."
축자황, 고거린 등은 한 줄로 서서 진남에게 공수했다.
전에 그들은 진남을 무시했다.
그러나 지금은 무척이나 정중했다.
"도우들, 시작하자."
진남의 오른팔이 부서지며 칼로 변했다.
"역시 대단한 선도구나."
축자황은 눈앞이 환해졌다.
그는 고함을 지르며 선력을 최대로 모았다.
기세가 폭발하고 몸에서 보라색 불꽃을 뿜었다.
그가 장악한 것은 자묘선염이었다.
고거린, 구계 등도 경지를 드러내고 사방을 흔들었다.
고거린의 이마에 새겨진 옛 글자가 반짝거리며 옛 기운을 풍겼다.
두월우는 태액지기(太厄之氣)가 온몸을 감싸며 갑옷으로 변했다.
"대룡횡천!"
진남은 사정없이 공격했다.
주변에 용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진남은 마치 천룡이 된 것처럼 천하에 군림했다.
"분멸팔황술(焚滅八荒術)!"
"보제고불(菩提古佛)!"
"고지의(古之意)!"
축자황 등은 법인을 만들었다.
불꽃, 불광, 의지, 극생검기, 재난 등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그것들은 방대하고 순수한 선의를 전부 흡수할 수 있었다.
천선 경지 이하의 무인들과 천선 일, 이 단계의 무인들은 가슴에 파문이 일었다.
다섯 천재들은 핵심제자 등급이 되었고 대경 소성이나 도경의 문턱에 닿은 자들이었다.
때문에, 그들이 사용하는 선술의 위력 또한 대단했다.
그러나 용의 포효에 다섯 사람들의 기세가 눌렸다.
이어, 방대한 용발이 다섯 선술을 내리쳤다.
선술들은 흩어졌다.
진남은 순식간에 우세를 차지했다.
"이, 이게 제일선의 실력이야?"
인선 경지 무인들은 넋을 놓고 중얼거렸다.
"이게 뭐가 대단해? 진남은 내 공격을 세 번 정도 막을 수 있으니 저 정도는 당연하잖아?"
수신량은 또 상대방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무인들은 그를 무시했다.
팔요마왕은 어이가 없어서 수신량을 힘껏 걷어찼다.
'이놈이 조심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자기 편도 조롱하다니.'
수신량은 난감했다.
그는 자신이 왜 입만 열면 비아냥거리는지 알 수 없었다.
스스로 통제할 수도 없었다.
진남과 다섯 천재들의 싸움은 점점 격렬해졌다.
축자황 등은 엄청난 압력을 느껴도 굴복하지 않았다.
선술들이 연속으로 펼치고 서로 합이 좋았다.
다만, 진남의 실력이 너무 강했다.
그는 선동으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 속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축자황 일행은 진남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도우들, 이대로 싸우면 승산이 없다.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은……."
구계가 낮게 전음했다.
"그렇게 하자."
축자황 등은 고개를 끄덕였다.
축자황은 앞장서서 법인을 바꾸었다.
먹구름이 사방에서 밀려오고, 깊은 곳에서 보라색 불꽃이 비처럼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