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5화 겨뤄보지 않겠느냐?
진남 등은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살폈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광활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폐허에 도착했다.
땅은 여기저기 파이고 혼란한 기운이 느껴졌다.
일부 골짜기에는 썩은 시체들도 있었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몇백 개의 조각상이 있었다.
노인, 아동, 소녀, 청년 등 각양각색의 조각상들은 표정이 다 달라서 인간 세상의 천태만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석상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땅에 무릎을 꿇고 같은 방향으로 양손을 내밀었다.
마치 어떤 특별한 의식을 진행하는 것 같기도 하고 황제를 알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조각상의 손이 향한 방향을 살펴보니 산처럼 웅장하고 유리 재질로 만들어진 궁전이 허공에 떠 있었다.
진남은 동술로 궁전을 살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진남과 팔요마왕 등은 궁전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순수한 선의를 느꼈다.
궁전의 선의는 구리 문밖에 있는 선복도지의 선의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궁전의 순수한 선의는 보라색의 순수한 선의보다 단계가 더 높고 귀했다.
"이 궁전이 무주 선복도지의 핵심은 아닐까?"
팔요마왕이 먼저 반응했다.
선복도지마다 핵심이 있었는데 그곳의 순수한 선의는 다른 곳보다 훨씬 많았다.
그는 아직 이 정도로 대단한 선복도지의 핵심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추측이 맞을 가능성이 컸다.
"너희들은 어떻게 들어온 거냐?"
이때 호통이 울려 퍼졌다.
다른 쪽에 있던 축자황, 고거린, 구계, 가몽, 두월우 등 몇백 명의 무인들은 진남 일행을 느꼈다.
일제히 시선을 돌린 그들은 놀라고 당황했다.
이때, 경각선왕, 회색 가사를 입은 늙은 중 등 패자들도 폐허에 나타났다.
폐허의 상황을 확인 한 그들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런 상황에 놀라기도 했지만,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그들은 곧 진남 일행을 발견했다.
"진남, 죽어라!"
강각선왕은 천둥 같이 외쳤다.
그는 선력을 전부 드러냈다.
"이렇게 빨리 쫓아오다니?"
진남 일행은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들은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날아가려고 했다.
"저 청년이 도기가 잘렸다는 진남인가?"
축자황, 고거린 등은 어안이 벙벙했다.
특히, 이들은 여러 고족과 무상도통의 핵심제자들이라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진남을 주목했다.
"잠깐!"
축자황은 다급히 외쳤다.
"여기서 싸우면 안 됩니다. 싸우기만 하면 조각상들이 깨어나 무력을 사용한 사람들을 죽입니다."
그 말을 들은 강각선왕은 몸이 굳었다.
그제야 갈라진 틈 사이로 아직 피가 마르지 않은 세 구의 시체를 발견했다.
세 시체들은 그와 안면이 있는 자들이었는데 모두 천선 경지 팔 단계였다.
강각선왕과 다른 패자들은 이곳의 기이함에 놀라 식은땀이 흘렀다.
축자황이 조금 늦게 알려줘서 몇백 개의 조각상들이 깨어났더라면 그들은 적어도 중상을 입을 수 있었다.
상고 유적에 있는 금기 같은 살초들이 숨어있었다.
구천지존이라고 해도 이곳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다칠 수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진남 일행은 눈을 반짝거렸다.
"패자들이라는 자들이 겁에 질린 꼴이라니? 부끄럽다. 정말 부끄러워. 너희 같은 적이라면 나도 흥미가 안 생긴다."
수신량은 패자들에게 겁을 먹었지만, 입만 열면 마음과 다르게 비웃는 말이 나갔다.
"너!"
강각선왕 등은 안색이 확 바뀌었다.
패자인 그들이 언제 이런 대우를 받아봤을까?
게다가 상대방은 고작 인선 경지였다.
"내가 뭐! 내 말이 틀렸느냐? 방금 내가 도망친 이유는 너희들을 놀리고 싶어서다. 내가 공격을 하면 오합지졸인 너희들이……."
수신량은 무시하는 말들을 마구 쏟아냈다.
축자황, 고거린 등 천재들은 더 이상 들어줄 수 없었다.
수신량은 매를 벌었다.
"큼큼, 됐다. 더 따져서 무엇 하겠느냐?"
팔요마왕은 화가 난 그들의 표정에 당황했다.
그는 얼른 수신량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들은 이제 겨우 위험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수신량의 조롱에 패자들이 이성을 잃고 공격을 한다면 안 될 일이었다.
진남은 수신량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수신량의 말버릇 때문에 시끄러운 일만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도움이 되는 상황도 있었다.
진남은 수신량의 조롱이 통쾌했다.
"흥."
강각선왕은 진남 일행을 노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선왕들과 귓속말을 나누고 함께 궁전으로 날아갔다.
"저들이 안으로 들어가려는 건가?"
혈안인선은 물었다.
"그런 것 같아. 우리도 가까이 가보자. 다만, 우리는 잠시 기다리자. 축자황과 고거린 등은 이곳에 온 지 한참 되는데 안에 들어가지 않는 걸 보면 분명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팔요마왕은 대답했다.
"그럽시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날아갔다.
무인들은 대부분 강각선왕 등 패자들을 바라봤다.
오직 축자황만이 진남을 수시로 살폈다.
그의 눈에서 빛이 스쳤다.
'동생은 진남의 손에는 이미 일반적인 도기를 능가하는 비범한 선도가 있다고 했다.'
"같이 공격하자!"
강각선왕 등은 빠르게 궁전 앞으로 날아갔다.
강각선왕은 낮게 외쳤다.
다른 사람들은 엄청난 도기를 드러내고 도광을 번쩍이며 도법을 사용했다.
그들은 일제히 유리 대문을 공격했다.
축자황 일행 덕분에 기이한 폐허에서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대전을 공격할 순 있었다.
쿵-!
큰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강기들이 불어왔다.
패자들은 연합하여 공격했고 게다가 최강일격을 날렸다.
그들은 힘을 합치니 엄청 강해졌다.
반보 지존이라고 해도 밀려날 정도였다.
그러나 유리문은 심하게 흔들리기만 할 뿐 금조차 가지 않았다.
"선왕들도 열 수 없다니?"
"이 유리 궁전은 대체 뭐지?"
축자황, 고거린 등 무인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도 시도는 해봤다.
하지만 유리 궁전은 순수한 선의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방어력도 갖추고 있었다.
"이 유리문을 뚫으려면 적어도 삼십 명의 패자가 연합해야 한다. 또, 비범한 도기들의 힘도 빌려야 한다."
팔요마왕도 혀를 끌끌 찼다.
진남은 두 눈에 빛이 돌았다.
유리 궁전이 단지 무주 선복도지의 핵심이라면 이 정도의 신위를 가질 수 없었다.
또, 전에 벌어졌던 이상한 일들까지 더해져 진남은 확신이 생겼다.
'팔안음양화와 축선지수는 틀림없이 궁전에 있어!'
"도우들, 봤느냐? 이 대문을 열려면 구천지존이 직접 오거나 서른여 명의 패자들이 연합해야 가능하다."
강각선왕은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이상한 기운을 드러냈다.
"이 궁전은 신비하고 기이하다. 궁전 안도 평범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각자 세력에 사람을 더 보내달라고 하는 건 어떻느냐?"
그는 전음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말했다.
진남 등은 어리석지 않았다.
그들이 자리를 뜨지 않는다면 반드시 도움을 청할 것을 알아차릴 게 분명했다.
때문에, 그는 전음하지 않고 직접 말했다.
"문제없다. 오늘 이 궁전에 대체 뭐가 있는지 보고 싶구나."
늙은 중 등 패자들은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기이한 선복도지를 종문에 알린다고 해도 구천지존을 불러들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패자를 불러들이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하, 너희들은 역시 쓸모가 없구나. 원래 공격을 하려고 했는데 어쩔 줄 몰라 하니 나도 얌전히 있겠다."
수신량은 그들을 비웃었다.
"얌전히 있기는 개뿔. 항상 뒤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너는 아직도 비아냥거릴 배짱이 있느냐? 서른여 명의 패자들이 온다면 우리가 살 수 있겠어?"
팔요마왕은 눈을 흘기며 중얼거렸다.
"그렇긴 하지. 이곳에서 무력을 쓸 수 없지만, 궁전 안에서는 가능할지도 몰라."
진남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패자가 아니라 구천지존이 온대도 진남은 자리를 뜨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건 그렇지만……."
팔요마왕은 눈을 반짝거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동경과 서경에 이변이 일어났어?"
강각선왕은 신념을 전했다.
이어, 무슨 소식을 받았는지 그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상대방의 눈에서 놀라움을 발견했다.
"응?"
진남은 궁금했다.
동경에 이변이 일어난 것은 백남지화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경은 가본 적도 없는데 왜 이변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동경에 이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많은 세력들이 오는 길일 거다. 그러니 몇 시진이 지나면 다른 패자들도 이곳에 도착할 거다. 도우들, 내가 주변을 살펴보겠다."
문고족의 패자는 살짝 웃고 자리를 떴다.
강각선왕 일행은 서로 자세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진남 등을 싸늘하게 쳐다보더니 시선을 거두었다.
'진남 일행이 궁전에 따라 들어와도 별일은 없을 거다. 그리고 궁전에선 무력을 사용해도 될지도 몰라. 그럼 저들을 없애자. 특히 수신량은 단단히 혼내줘야지.'
축자황, 고거린 등 무인들은 몇 시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흩어져서 주변을 살폈다.
축자황은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한참 지나 그는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이 반짝였다.
"진남 도우 맞아? 나는 축자황이다. 농염족 사람이지."
축자황은 다가와 포권하고 웃었다.
"네 소문은 한참 전에 들었다. 그때부터 존경했는데 오늘 보니 역시 다르구나."
그의 말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어떻게 된 거야? 축자황이 왜 적극적으로 나서서 진남과 친분을 맺으려는 거지?'
강각선왕 등 패자들은 눈썹을 찡그렸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봤다.
진남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축 도우, 이렇게 인사치레할 필요 없다. 할 말이 있으면 하거라."
축자황은 웃으며 말했다.
"하하, 진남 도우는 역시 똑똑하다. 그럼 솔직하게 말하겠다. 진남 도우에게 비범한 선도가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나는 칼을 좋아한다."
주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진남도 눈을 가늘게 떴다.
'축자황이 어떻게 단천도를 아는 걸까? 만중선루가 내 소식을 팔아버린 건가?'
축자황은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생각이 떠올랐는데, 진남 나와 무예를 겨뤄보지 않겠느냐?"
그의 눈에서 보라색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물론, 공평하게 싸울 거다. 만약 네가 지면 칼을 나에게 줘."
그제야 사람들은 알아차렸다.
축자황이 패자들의 체면도 보지 않고 진남에게 먼저 말을 건 이유가 있었다.
진남이 대답하기 전에 축자황은 말했다.
"물론 내가 지면 자묘선염(紫渺仙焰)의 불씨를 너에게 주겠다."
그가 손을 내밀자 손바닥에 자금색 불꽃이 떠올랐다.
작은 한 덩어리였지만 방원 수십 리의 온도가 높아졌다.
사람들은 불꽃 속에 엄청난 위력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자묘선염의 불씨?"
"농염족에서 십 위 안에 드는 불꽃이다."
"축자황은 진남을 끌어들이기 위해 비장의 무기를 모두 꺼냈다."
고족의 무인들은 화염의 내력을 알아보고 탄성을 질렀다.
"정말 좋은 물건이다."
팔요마왕은 눈에 욕심이 가득했다.
진남도 깜짝 놀랐다.
그는 화도선염과 선력을 하나로 합쳤다.
자묘선염의 불씨까지 연화할 수 있다면 그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게다가 진남은 아직 고족 천재와 겨뤄 본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