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4화 질 게 뻔하오
우홍은 당황했다.
그리고 이내 화가 솟구쳤다.
"진남, 네까짓 게 뭔데 나더러 무릎 꿇고 사과하라는 거야? 너 설마……."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초록색 치마를 입은 소녀가 신념을 전했다.
그는 화가 점점 사라지고 두 눈에 조소가 떠올랐다.
"진남, 너는 정을 중하게 여기는구나. 그러나 나에게 네 도려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화나지? 나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게 하라고 했지? 그럼, 너에게 기회를 줄게."
우홍은 더욱 비아냥거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천재무예시합이 열린다는구나. 거기 가서 제대로 싸워보자. 네가 지면 창명목을 내놓거라. 네가 이긴다면 나는 무릎을 꿇고 사과하겠다. 도전을 받아들이겠느냐?"
진남은 궁우태황종에서 기명제자였기에 그들은 다소 조심스러웠다.
억지로 빼앗는다면 영향이 좋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궁우태황종에는 아무 때나 무예를 겨뤄도 된다는 규정이 있었다.
진남에게 모욕을 주고 화를 전부 풀 기회였다.
"진남 사제, 안 돼……."
장공은 얼른 전음했다.
예전의 진남은 강해서 구천선역의 어느 개세천재도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도기가 잘린 지금의 진남은 우홍의 상대가 안 되었다.
진남은 못 들은 척 우홍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사형과 싸우는 건 문제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한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싸우려면 목숨을 걸고 싸웁시다."
우홍의 묘묘 공주와 강벽난을 하찮다고 한 말에 진남은 분노했다.
누구나 역린이 있는데 진남에게는 그녀들과 형제, 가족이 역린이었다.
"목숨을 걸고 싸우자고?"
제자들과 장공은 어안이 벙벙했다.
'진남은 미친 걸까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는 걸까?"
우홍 일행도 그의 말에 흠칫 놀랐다.
그러나 곧 우홍은 비웃음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진남은 일부러 강한 척하는 거다. 우리를 겁주기 위해서겠지. 그게 아니고 비장의 수가 있다고 해도 나도 비장의 수가 있으니 무서울 것이 없다.'
"좋다. 네 말대로 목숨을 걸고 싸우자. 지금 당장 도장으로 가자."
* * *
궁우태황종에서는 내문제자들이 일정한 등급이 되면 여러 가지를 겨루었다.
무예 시합이나, 다도회, 술 연회 등등은 태황지계의 임랑선성(琳琅仙城)에서 열렸다.
임랑선성은 삼십여만 리가 되고 공중에 떠 있으며 모양이 현무 같았다.
성안에는 크고 작은 도장이 있고 도장 주변에는 좌석이 가득했다.
양대 도장 중인 성진도장에 사람이 꽉 찼다.
이들은 궁우태황종, 천허조교, 삼청고교의 태상장로, 장로, 내문제자들이었다.
상행천소선역과 많은 여러 패자들의 세력 그리고 소속이 없는 강한 무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천재무예시합에 참가하러 왔다.
천재무예시합은 천여 년 전에 시작이 되었는데, 삼 년에 한 번 삼대 무상도통에서 열고 있었다.
상행천소선역과 여러 개세천재들이 참가할 수 있었다.
제일선싸움과 다른 것은 개세천재라면 누구든지 참가할 수 있었다.
만소, 서선지, 조리점, 무흔검신 등은 이미 와 있었다.
무예시합은 이미 반은 진행이 되었다.
일부 지선 경지의 개세천재들이 출전하자 도장의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이때, 궁우태황종의 태상장로 다섯이 신념을 전해 도장의 모든 싸움을 당장 끝내라고 했다.
한 태상장로가 자리에서 나서서 포권하고 말했다.
"여러분, 갑자기 생긴 일이라 너그러이 용서해주시오. 우리 종문의 두 핵심제자가 도장을 빌려 생사전을 하겠다고 하오."
그의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이내 사람들은 흥분했다.
천허조교, 삼청고교의 태상장로들과 천선 경지 강자들도 흥미진진해서 지켜보았다.
무상도통에서 핵심제자들은 종문의 기둥이라 무척이나 중요했다.
작은 마찰은 있을 수 있으나 서로 죽이려고 하면 관리자들이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핵심제자들의 생사전은 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그런데 마침 오늘 맞닥뜨린 것이다.
"이번에 오길 잘했다. 이런 싸움을 구경할 수 있다니……."
개세천재들 중에 있던 서선지와 만소는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도장에 두 그림자가 내려왔다.
그중 한 그림자는 그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지, 진남?"
서선지는 경악했다.
"제일선 진남?"
도장의 다른 사람들도 경악했다.
그들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이미 몇 개월이 지났지만, 그들은 진남의 소문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진남이 혼자 몇십 명의 개세천재를 상대하고 도겁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몇십 년 동안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진남이 순식간에 어려움에 봉착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하하! 진남은 아직도 제일선인 줄 아는 거야? 감히 우홍과 생사전을 진행하다니, 이만 살기 싫은 거지."
만소와 서선지와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조리점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속이 후련했다.
그는 진남과 원한이 깊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스승인 남세선왕은 암암리에 용현령과 손을 잡고 진남을 없애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저도 몰래 진남을 적으로 인식했다.
조리점만이 아니라 만소, 서선지 그리고 다른 개세천재들과 많은 강자들도 소식을 전해 듣고 상황을 대략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진남은 철이 없다. 도기도 잘렸는데 창명목을 차지하려고 하다니."
"내 말이. 궁우태황종에서 핵심제자들의 생사전을 왜 말리지 않는가 했어. 이제 보니 위쪽에서 묵인한 모양이군."
"나는 진남이 잘못 없다고 생각해. 도기가 잘렸으니 다시 만들 방법을 찾아야지. 게다가 종주가 줬잖아. 다만, 우홍과 싸우는 건 아니라고 봐."
"그래,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건 아니지. 우홍이 진남을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오늘 중상을 입거나 불구가 될 게 뻔해."
사람들 대부분은 진남이 주제 파악을 못 한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아쉬워서 탄식했다.
진남에겐 구천선역의 전설이라 불릴만한 순간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서선지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잠깐 고민하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홍에게 인사했다.
"우홍 사형, 진남은 제 친구예요. 두 분이 싸울 때 정도껏 했으면 해요. 너무 상하게 하지 마세요."
사람들은 경악했다.
곧 삼청고교의 핵심제자가 될 서선지가 진남을 도우려고 나설 줄 몰랐다.
만소는 안색이 살짝 변했다.
많이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진남, 나는 너에게 신세를 졌다. 그러나 우홍은 내가 건드릴 수 있는 등급이 아니다. 스스로 살길을 도모하거라."
만소는 중얼거렸다.
그의 신분으로 우홍에게 부탁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진남을 위해 그 정도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하, 서선지 사매구나. 걱정 말거라. 나는 정도껏 할 생각이다. 진남 사제는 제일선 아니냐? 온전한 시체를 남겨줘야지."
우홍은 활짝 웃었다.
그러나 그의 말에 무인들은 소름이 돋고 음침한 기운을 느꼈다.
서선지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그녀는 이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얀 손으로 옷깃을 꽉 잡더니 말했다.
"우홍 사형,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진남은 미소를 짓고 그녀에게 전음했다.
"선지, 더 말하지 말거라. 나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다."
그는 평온하고 대범했다.
서선지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는 약해 보이지만 몸속에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던 진남의 옛 모습이 떠올랐다.
진남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같은 등급들 사이에서 진남은 무적이었다.
"잠시 후에 천재무예시합을 계속해야 한다. 지금은 내가 사회를 보겠다. 빨리 시합을 시작하고 빨리 끝내거라."
장공은 도장 위로 날아올랐다.
그는 진남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생사전이긴 하지만 진남은 신분이 있는 자였다.
장공은 진남이 중상을 입으면 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형, 잘 부탁드립니다."
우홍은 인사를 하고 진남을 돌아보며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승선한 지 삼 개월이 지났지? 그럼 나도 경지를 너와 같은 등급으로 제압하고 싸우마. 괜히 내가 너를 괴롭히고……."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진남은 미소를 거두었다.
엄청난 선광이 그에게서 솟구치고 엄청난 위압이 퍼졌다.
무인들은 깜짝 놀랐다.
"반보 천선 경지?"
"진남이 반보 천선 경지에 도달했어?"
"저자는 승선할 때 겨우 지선 경지였다. 삼 개월 내에 이렇게나 진급했다고?"
개세천재들이나 태상장로들이나 천선 등급의 강자들이나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승선한 후에 한 등급 진급하려면 얼마 동안 수련해야 하는지 잘 알았다.
주천지보가 도와주고 선복도지의 가장 깊은 곳에서 수련한다 해도 이렇게 빠를 수 없었다.
"전에 스스로 그 정도에 도달한 것도 이유가 있구나. 역시 대단하다, 대단해."
백발의 천선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진남은 도기가 잘렸지만, 여전히 사극지경이었다.
지금의 수련 속도라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고도 패자가 될 수 있었다.
"이게 뭐가 대단하오? 대단한 기연을 얻어 경지가 진급된 것뿐이오. 도기를 다시 만든 것도 아니잖소!"
"맞소, 저자는 오늘은 우홍에게 질 게 뻔하오."
많은 사람들이 퉁명스레 말했다.
그들은 은근히 질투가 났다.
이런 질투하는 마음 때문에 그들은 더욱더 진남을 무시했다.
우홍도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조롱하듯 말했다.
"너에게 대단한 비장의 수가 있나 했다. 반보 천선 경지로 진급했을 뿐이구나."
그는 지선 정상의 경지였다.
반보 천선 경지와 멀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도경소성을 이루었다.
다른 것들까지 하면 그는 진남보다 훨씬 강했다.
"제일선, 내 공격을 받아 보거라!"
우홍은 긴말하지 않고 체내의 선력을 최대로 움직였다.
선광이 반짝거리고 기세가 솟아오르더니 도의들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의 형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무인들의 눈에 그는 넘을 수 없는 천산처럼 매우 커졌다.
"궁우태황(穹宇太荒), 팔극분선권(八極焚仙拳)!"
우홍은 고함을 지르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방원 삼십여 리의 하늘이 검은색 불바다로 변했다.
불바다의 깊은 곳에 화염 공간이 나타나 거대한 황무지를 휘감았다.
강풍이 사방으로 몰아쳤다.
개세천재들과 무인들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도장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권법에 들어있는 대단한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라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었다.
"너무 잔인하구나! 처음부터 진남의 목숨을 앗아가려 하다니!"
장공은 미간을 찌푸렸다.
체내의 선력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긴장하고 언제든 싸움에 끼어들 준비를 했다.
'진남이 지겠다!'
태상장로와 천선 경지의 강자들은 같은 생각이었다.
이런 권법은 무도사극이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때, 진남이 움직였다.
쿵-!
그가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대단한 힘이 도장에 방원 삼십여 리 되는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었다.
상상할 수 없는 대단한 기세가 그의 체내에서 폭발했다.
좀 전의 진남은 반짝이는 하나의 별이었다면 지금의 진남은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 무리처럼 끝없고 방대했다.
"이건……!"
장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태상장로들, 천선 등급의 강자들, 그리고 정방 등 핵심제자와 반응이 빠른 개세천재들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빠르다! 너무 빨라!'
진남은 속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그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남은 어둠 속으로 날아와 주먹을 날렸다.
우르릉 쿵-!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용 같은 강기의 폭풍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수많은 검은색 화염이 대단한 힘에 부딪혀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