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7화 벌써 나타날 줄이야
"윤회묘(輪回墓)."
화간도는 반응이 빨랐다.
그가 법인을 만들자 수많은 도의가 용솟음치더니 거대한 고묘(古墓)가 나타났다.
진남은 칼을 휘둘렀다.
엄청난 도기가 고묘를 부수었다.
남은 도기는 다섯 사람에게 부딪혔다.
개세천재들은 뒤로 밀려나고 기혈이 흐트러졌다.
"무슨 경지가……."
사인선, 화간도 등은 경악했다.
윤회묘는 화간도가 수련한 문도법에 윤회대전(輪回大典)의 윤회의지 그리고 윤회종의 금술을 결합하여 만든 것이었다.
천신 경지의 개세천재들은 물론이고 인선 경지 일 단계가 되는 자도 한 방에 윤회묘를 부술 수 없었다.
'진남은 승선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경지를 가진 거지?'
그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임청파 등이 보이지 않는 게 혹시 진남이 그들을 전부 죽인 건가?'
"붕멸영역, 궁우지국(穹宇之國)."
진남은 법인을 만들었다.
그러자 수많은 흑점이 날아가 그들을 덮었다.
이어 어둠 속에서 환상의 신국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그들을 진압했다.
다섯 개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진남이 손가락을 튕기자 무주궁도가 다시 나타나 그들을 가뒀다.
이제 그가 진압한 개세천재는 마흔셋으로 늘었다.
진남은 보천정으로 날아가서 계속 연화했다.
하늘을 가득 채웠던 이상도 드디어 흩어졌다.
얼떨떨해 있던 무인들은 흠칫 놀라 얼른 확인했다.
"열두 개의 수선도가 사라졌어."
"저기 봐. 진남이 보천정을 연화하고 있어."
"뭐? 보천정을 연화한다고?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이변이 일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아직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았어. 그런데 어떻게 보천정을 연화할 수 있지?"
"자, 자세히 살펴봐. 임청파와 수신량 일행이 사라졌어."
무인들은 경악했다.
자신들의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다들 멍청하지 않았기에 바로 상황을 알아차렸다.
임청파, 수신량 등은 다른 개세천재들과 마찬가지로 진남의 그림에 진압된 게 분명했다.
'아니면 갑자기 사라졌을 리 없잖아? 그리고 진남이 보천정을 앞당겨 연화할 수도 없잖아?'
큰 충격이었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진남은 서른여 명의 개세천재를 진압했다.
승선방 서열 십오 위에 드는 자들도 있었다.
'이 정도로 하려면 얼마나 대단한 실력이거나 경지여야 할까?'
* * *
우르릉-!
양계에서 귀가 아플 정도로 큰소리가 울려 퍼졌다.
커다란 보천정에서 금빛들이 용처럼 솟아올라 진남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위엄 있는 목소리가 사람들 귓가에 울려 퍼졌다.
"백종대전(百宗大戰)은 이로써 마무리를 하겠다. 낙하종이 양계제일종이 되었다.
말이 끝나자 진남에게서 엄청난 기운이 퍼지고 눈부신 선광들이 등 뒤에서 찬란하게 빛났다.
방원 이십 리의 하늘은 시커멓게 변하고 수많은 뇌광들이 구름 속에서 번쩍거렸다.
"진남이 승선을 시작한 거야?"
아래에 있던 무인들은 중얼거렸다.
승선하는 일은 무인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특히, 개세천재들에게 더욱 중요했다.
승선하지 못하면 몇십 년을 낭비할 수 있었다.
다음번에 승선한다면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 훨씬 앞설 수도 있었다.
진남에게 진압당한 임청파 등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종문에서의 지위가 예전에 비해 확연히 떨어질 것이다.
"보천정의 내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이야."
진남은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그는 보천정을 연화하고 많은 일들을 알게 되었다.
보천정은 구천지존의 제일법보이자 정상급 도기였다.
보천정에 봉인되어있는 거수는 벌선수(伐仙獸)로, 반보지존 경지였다.
구천지존이 어떤 재난을 겪고 죽는 바람에 보천정도 중상을 입고 양계로 떨어졌다.
보천정이 가진 비밀과 용도 등에 대해서 진남은 아직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진남은 승선하는 일이 더 급했다.
"모두 연화하자!"
진남이 외쳤다.
그의 납계에서 이십여 개의 기연과 전승들이 날아올랐다.
엄청난 선의를 가진 그것들은 어느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다.
진남은 손가락을 튕겼다.
불꽃이 나타나 그것들을 태우고 흡수했다.
진남은 선광이 늘어나고 방대한 먹구름도 삼십 리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만 리가 되고 금색 뇌정이 가득한 옛 그림이 구름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무인들은 몸이 굳었다.
그들은 커다란 돌이 가슴을 누르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만소가 불러들인 뇌겁은 지금에 비하면 어른과 아이처럼 차이가 컸다.
"서, 선도뇌겁(仙圖雷劫)?"
무인들은 반응하고 또 놀랐다.
선도뇌겁은 아주 오래전에 존재했던 뇌겁이었다.
개세천재가 승선할 때도 그것을 불러내지 못했다.
그것이 나타났다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
도겁을 한 자는 동급자들 사이에서 만고무적이 될 수 있었다.
"수선도!"
진남은 고함을 질러 열두 개의 수선도를 불러냈다.
그리고 정혈을 각각 주입하여 연화를 하고 주인이 되었다.
크라아아-!
열두 개 비범한 동물의 포효가 허공에서 울려 퍼졌다.
길이가 만장 되는 흉악하고 패기가 넘치는 고룡, 온몸이 핏빛이고 살기가 넘치는 혈봉(血鳳), 고의(古意)가 유유하게 흐르는 청우 등 형상들이 나타나더니 진남의 몸속으로 사라졌다.
진남의 몸속에 순수한 힘이 무척이나 많이 쌓였다.
도광(道光)도 방대하고 순수한 힘이 섞여 점점 더 찬란하게 빛이 나고 살짝 돌파한 것 같았다.
천지 사이에도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상고 선인들은 대도의 부름을 받고 시광(時光)의 큰 강에서 나왔다.
고금을 타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도 있고 시를 읊고 노래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소리가 커다란 양계의 구석구석에 울려 퍼졌다.
몇십만 리가 되는 먹구름과 선도뇌겁들이 합쳐지더니 오만여 리 되는 태고도록(太古圖錄)으로 변했다.
도록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높이 쌓여 형용할 수 없는 백골천산을 이루었다.
산꼭대기에 지고한 태고왕좌(太古王座)가 우뚝 서 있었다.
"이게 뭐야?"
이번에는 무인들뿐만 아니라 입도 벙긋하지 않던 양계의 오래된 존재들까지 경악했다.
이런 뇌겁은 그들도 본 적이 없었다.
"파괴하라!"
진남이 고함을 지르자 붉은색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의 의지는 최고로 상승하더니 단천도와 융합되어 도광을 이루었다.
도광은 하늘로 솟구쳐 도록을 베었다.
신비한 도록은 산산조각 났다.
태고의 뇌겁은 도겁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도겁하는 사람이 대단하다는 것을 천지에 알리는 의미가 있었다.
쿠쿠쿠쿵-!
진남에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그에게서 선위가 품어졌다.
그의 육신은 선구(仙軀)로 변하고 신력도 선력으로 바뀌었다.
기세도 순식간에 폭등했다.
인선 경지 일 단계.
인선 경지 삼 단계.
인선 경지 육 단계.
진남의 경지는 인선 경지 구 단계가 되고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힘이 늘었다.
승선지조에서 진남은 체내에 엄청 많은 힘을 모았다.
저력이 가득한 그의 힘이 폭발하자 위력이 대단했다.
승선이 원만하게 진행되고 체내의 신력이 선력으로 완전히 탈바꿈되기 전에 전신도문이 당돌하게 빛을 뿜었다.
전신도문의 흡입력이 진남의 몸속에 아직 남은 힘과 돌파하는 힘을 전부 흡수했다.
"응?"
진남은 표정이 살짝 변했다.
'중요한 순간에 전신의 도문이 왜 나를 방해하는 거지?'
이때, 오래되고 위엄 있는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주인님, 제 평생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구백구십구 년 동안 폐관 수련을 하고 깨달은 대도입니다. 지금 그것을 전수해드리겠습니다.
주인님, 명심하십시오. 전도선전은 광고의 도라고 불리지만 주인님의 도가 아닙니다. 주인님은 자신의 도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이 아직 주인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열세 개의 발을 가진 태고도룡들이 진남의 머릿속으로 날아들었다.
그것들은 허구인 것 같기도 하고 실존하는 것 같기도 한 낡은 도비(道碑)로 변했다.
도비에는 네 개의 패기 넘치고 의지가 강인한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전도선전(戰道仙典).
그 아래에는 전도선전의 총강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문도법과 달리 고작 한 줄밖에 없었다.
'전도는 전신의 도가 아니고 싸움의 도도 아니라 전패(戰覇)의 대도이다.'
"전패의 대도?"
진남은 깜짝 놀랐다.
다른 문도법은 한 가지 의지나 혹은 여러 의지가 존재했다.
그러나 전도선전은 커다란 희망 같았다.
이 문도법을 수련하는 것은 대도를 이기기 위해서라고 했다.
'대도는 허무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신비한 존재인데 어떻게 이길 수 있다는 말인가?'
"승선을 완수해야 각성할 줄 알았는데 벌써 나타날 줄은 몰랐다."
진남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전도선전은 전신의 도였고 상상할 수 없는 신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타나 방해하는 바람에 진남은 완전한 인선 경지가 되지 못했다.
진남은 진정한 인선 경지가 되려면 아직 조금 부족했다.
그런데 이곳은 승선지조의 마지막 선고였고 끝나기 직전이었다.
수피화권은 진남이 인선 경지를 돌파해야 묘묘 공주와 강벽난을 살리는 방법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아니지, 나는 선혼과 선구를 갖추고 선겁도 이겨냈다. 신력이 선력으로 바뀌려면 아직 조금 부족할 뿐이다. 이런 상황은 개세기연이 필요한 게 아니라 성대한 장면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어."
진남은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구천선역에서 인선 경지가 되려면 굳이 선고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선고마다 기연이 있고 성대한 장면이 만들어졌기에 더 유리할 뿐이었다.
"나는 승선을 거의 완수했어. 아무리 강한 무인이라 해도 내 신력이 조금 부족한 것을 알아볼 수 없다. 그럼 제일선 싸움에 참가해도 되겠어."
제일선 싸움은 무척이나 성대한 장면이었다.
어떤 선고도 따라갈 수 없었다.
많은 패자, 천선, 지선들이 많이 오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진남이 이길 수 있다면 진정한 인선 경지가 될 수 있었다.
찌이익-!
이때, 양계의 하늘에 지존의 검이 스친 것처럼 팔십여 리 되는 기다란 틈이 생겼다.
그 사이에서 폭풍이 휘몰아쳤다.
"양계는 한 시진 후 닫힌다. 계속 머무른다면 죽임을 당할 수 있으니 떠날 사람들은 틈 사이로 나가거라."
늙은 목소리가 다시 천시 사이에 울려 퍼졌다.
"공주, 강벽난 조금만 더 기다려줘."
진남은 중얼거리고 승선에 성공한 만소에게 올라탔다.
"가자."
다른 무인들도 반응하고 하늘로 날아갔다.
* * *
같은 시각, 상행천소선역 유월도성.
며칠 전 명월천궐은 끝이 나고 음양소세계가 승선지조의 마지막 선고가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모여 마지막 결과를 기다렸다.
많은 무인들이 계속 모여들었다.
맹구궁에서 연 도박은 이미 마무리가 되었지만, 일부 무인들은 사적으로 도박판을 벌이고 큰돈을 벌려고 했다.
"백종대전이 곧 끝날 거다."
"지금까지 승선한 개세천재는 둘 뿐이다. 큰 사건이 있었던 게 틀림없어."
예전과 달리 대부분의 무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많은 소식을 알고 있는 것은 전에 승선에 성공하고 양계에서 나온 무인들이 상황을 말해줬기 때문이었다.
주전에는 맹구궁, 잔월천선 등 거물들이 다시 모였다.
대전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이게 마지막 기회라 그들이 데려온 개세천재들이 승선에 성공하지 못할까 걱정스러웠다.
구홍, 서선지, 혈안인선은 숨을 참고 정신을 집중했다.
오직 맹구궁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구궁금선종의 소종주인 그가 먼 길을 달려 이곳까지 오고 지금까지 머문 것은 진남의 처참한 몰골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어떤 상고체질과 겨루어도 그의 홍운지체가 더 강했다.
그 누구도 그를 이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