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세전혼-883화 (883/1,498)

883화 청성천국(?聖天國)

"저는 지금 지신 정상의 경지입니다."

진남은 혈안천신의 의혹을 알아차린 듯 옅은 미소를 짓고 말했다.

동시에, 기운을 거두며 형상에게 말했다.

"선배님, 역기지인이……."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형상이 말했다.

"네 몸속에 생겨난 것은 역기지심(逆忌之心)이다."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역기지심이요?"

진남은 역기지체라는 선술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역기지심은 무엇인지 잘 몰랐다.

"역기지체를 연마하려면 먼저 역기지심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심인(心印)을 열고 역기지심을 방출해야 역기지체가 만들어진다.

형상은 설명을 이어갔다.

"역기지체는 다른 선술과 다르다. 역기문 장로의 인도가 없이 강제로 수련하면 주화입마에 빠지고 잘못된 길에 들어선다. 즉, 외부인들이 몰래 배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만든 장치이기도 하다."

진남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구천선역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세력들에게나 핵심 선술과 핵심 공법은 모든 것의 기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무상도통에 무인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것은 거기에 구천지존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속에 문도법이 있기 때문이었다.

"선배님, 심인은 어떻게 열면 됩니까?"

진남은 물었다.

"심인을 열려면 어떤 곳에 가야 한다."

형상은 잠깐 고민하더니 말했다.

"부생천경이라는 곳을 아느냐?"

혈안천신은 화들짝 놀랐다.

"부생천경이요? 부생선왕(浮生仙王)의 휘하에 있는 선복도지 말씀이십니까?"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곳에 가야만 합니까?"

선복도지는 패자만이 차지할 수 있는 곳이었다.

패자의 세력에 가입하지 않고는 선복도지에 들어갈 수 없었다.

강제로 들어가면 죽을 수 있었다.

형상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곳에 가야만 한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거라. 상행천소선역에 외부인의 출입을 허락하는 선복도지가 몇 곳 있다. 그들이 반포한 임무를 완수하거나 충분한 이득을 주면 된다."

혈안천신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부생천경에 들어가는 영패를 얻으려면 쉽지 않다……."

쉬운 일이었다면 그들은 육황전장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진남은 전에 어떤 세력에도 구속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니면 그냥 세력에 들어가서 쉽게 입장할 수도 있었다.

형상은 옅은 미소를 짓고 말했다.

"때문에, 영패는 내가 이미 준비했다."

그는 손가락을 튕겼다.

손바닥만 한 정석으로 만든 낡은 영패가 진남과 혈안천신의 손에 떨어졌다.

영패에는 수많은 문자가 있었고 가슴 떨리는 기운을 풍겼다.

그것은 패자의 기운이었다.

"이게 부생천경에 들어가는 영패입니까?"

혈안천신은 살짝 놀랐다.

손에 들고 있는 영패는 예전에 봤던 영패들과 전혀 달랐다.

"이 영패는 몇천 년 전에 얻은 것이지만 부생선왕이 살아있다면 가져가도 아무 문제 없다."

형상은 말했다.

"그럼 우리 지금 부생천경으로 갑시다."

진남은 바로 대답했다.

그는 선복도지라는 곳이 대체 어떤 존재인지 가보고 싶었다.

지난번에 구리거울이 그의 말에 답해줬더라면 진남은 지금쯤 구리거울 휘하의 선복도지에서 폐관 수련 중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래, 너희들을 육황전장에서 내보내마."

형상은 고개를 끄덕이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전송진법이 두 사람 발아래로 뻗어나갔다.

"선배님, 이만 가보겠습니다."

진남은 공수했다. 그리고 곧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 * *

같은 시각.

상행천소선역 비월여제 휘하의 선복도지 가장 깊은 곳.

하늘에서 눈꽃이 흩날렸다.

이때, 엄청난 청색 빛이 번쩍했다.

눈꽃들은 한기를 잃고 따뜻하게 변했다.

눈꽃 아래 비월여제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그녀는 검은 머리카락이 허리에 닿고 흰옷이 살짝 흔들렸으며 외모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잠시 뒤, 예고도 없이 그녀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폭발했다.

기운은 계속 늘어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패자가 알아볼 수 있는 경지를 벗어났다.

"삼생겁이 부서진 후 수련 속도가 백 배는 빨라졌어. 이제 도경 원만 경지에 이르렀으니 지존의 위치를 돌파하면 되겠다."

비월여제는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었다.

마치 그녀의 눈에 구천지존이 되는 것은 작은 일인 것 같았다.

"응?"

그녀는 손목의 붉은 끈을 통해 진남이 전해온 신념을 느꼈다.

"이곳으로 오라고 해야 하나……."

비월여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구천선역에 돌아온 후 여러 강한 무인들을 시켜 생선을 구워오게 했다.

그것도 인선 경지의 선어(仙魚)들이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구운 생선들은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육질이 부드럽고 향긋한 냄새가 사방을 진동하던 예전의 맛이 아니었다.

그녀는 생선을 굽는 사람이 달라서 맛이 달라진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진남은 평범한 무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지존이 되면 그더러 오라고 해야겠다."

* * *

한참 뒤, 진남과 혈안천신은 하늘에 나타났다.

"부생천경은 상행천소선역의 북쪽에 있다.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니 바로 날아가도 된다."

혈안천신은 말했다.

둘은 동시에 강한 빛으로 변해 날아갔다.

가는 내내 아무 일도 없었다.

이틀이 지나서 그들은 멈추었다.

앞쪽에 높낮이가 다르고 기운이 다른 거대한 고성들이 여든여섯 개 나타났다.

성에는 무인들이 가득해서 북적거렸고 방대한 세력 같았다.

부생선왕은 패자가 된 후 명을 내려 자신이 머무르는 곳 방원 만 리 이내에서 싸우지 못하게 했다.

덕분에 많은 무인들이 이곳에 몰려들었고 아예 자리를 잡은 무인들도 있었다.

몇천 년이 흘러 이곳은 지금의 규모를 이루었다.

여든여섯 개의 성은 '여든여섯 군'이라고 불렸다.

"청성천국(?聖天國)은 보이지 않습니까?"

진남은 전신의 금동으로 한 바퀴 훑어보더니 의혹이 가득한 채로 물었다.

여든여섯 군은 천지영기 외에 다른 곳보다 선의를 더 많이 풍길 뿐 특이한 점은 없었다.

"기다려 보거라."

혈안천신은 신비한 표정으로 한 성에 들어섰다.

잠시 뒤 돌아온 그는 진남에게 옥병을 건넸다.

"이 안에 있는 빗물을 두 눈에 떨구거라."

옥병에는 다섯 방울의 맑고 투명한 물방울이 떠 있었다.

물방울이 풍기는 영기는 미약했다.

그러나 진남은 그 속에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재미있습니다."

진남은 입꼬리를 올리고는 물방울을 눈에 떨구었다.

물방울이 눈동자에 닿는 순간 그는 몸을 흠칫 떨었다.

마치 무언가 느낀 듯이 고개를 들고 여든여섯 군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고 새파랗던 하늘이 순식간에 변했다.

얼핏 보면 하늘은 거대하고 청색 빛이 반짝이며 수많은 선의가 드리운 신비한 구름층 같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거대한 구름층은 크기가 오만 리가량 되는 구름송이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구름송이들은 도합 구백아흔아홉 개였다.

"이게……. 선복도지인가?"

진남의 단단한 마음도 충격을 받았다.

눈앞에 벌어진 정경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아름다웠다.

게다가 수많은 구름층의 깊은 곳에서 엄청난 힘이 계속 솟구쳐서 진남은 스스로가 작게 느껴졌다.

여든여섯 군도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청성천국은 남천문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청성천국은 구백아흔아홉 개의 청성선운(?聖仙雲)으로 만들어졌다. 이곳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힘은 경지를 돌파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육신을 세례하고 신력을 정화하며 신술을 더 빨리 장악할 수 있다고 하더구나."

혈안천신은 감탄했다.

"수많은 개세천재뿐만 아니라 천선 경지 강자들도 이곳에 와서 폐관 수련을 한다."

진남은 설명을 듣는 동안 많이 차분해졌지만, 여전히 살짝 흔들렸다.

그는 이런 선복도지를 왜 패자가 되어야 가질 수 있는지 깨달았다.

천하의 무인들을 굴복시킬 실력이 없는데 엄청난 복지를 가진다면 반드시 반란이 생기고 공격을 받을 수 있었다.

"부생선왕은 청성천국에 독특한 성을 만들어 무인들을 맞이한다. 우리도 가보자."

혈안천신의 말이 끝나자 그들은 여든여섯 군에 들어가 전송대진을 타고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슉-!

진남이 진법에 떠오르는 순간 신비하고 순수한 기운이 그의 몸에 스며들었다.

진남은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의 식해에서 조용하게 있던 역기지심도 무언가 느끼고 미약한 검은 빛을 반짝였다.

"강자가 이렇게 많아?"

진남은 깊이 느낀 뒤 고개를 들었다.

그는 깜짝 놀랐다.

기세가 높은 성에 오가는 무인들이 수도 없이 많아 시끌벅적했다.

거리는 매우 넓었지만 오가는 무인들 때문에 비좁아 보였다.

진남은 무인들이 대부분 지신 경지와 천신 경지라는 것을 발견했다.

일부는 인선 경지거나 더 높은 경지였다.

진남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장면이었다.

진남은 선복도지의 영향을 과소평가했다.

"내가 방금 알아봤어. 외부에서 온 무인들이 폐관 수련을 할 수 있는 곳은 청성대공간이라고 하는 곳인데 성의 중앙에……."

혈안천신은 말하면서 진남을 데리고 앞으로 걸어갔다.

이곳은 육황전장과 달랐다.

육황전장에서는 진남에게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이곳에서 그들은 먼지처럼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다.

* * *

잠시 후, 진남과 혈안천신은 성의 중앙에 도착했다.

커다란 도장에는 이미 무인들이 꽉 차 있었다.

앞쪽에는 높이 서른 장, 넓이 스물여섯 장의 금색 수정이 있었고, 그 위에는 옛 문자들이 반짝였다.

수정의 뒤쪽에는 높이가 백 장이 되는 흰색 구리 문이 있고, 양쪽에 흑포를 입고 얼굴이 보이지 않는 무인 여덟 명이 지키고 있었다.

"어머, 음양무화과 하나만 따도 삼품 청성에 들어가서 한 달 수련할 수 있고 제한 조건이 없어? 이건 어느 장로가 반포한 거지?"

"천신 경지 무인 화간리(花間離)를 죽여야 이품 청성에서 열흘 수련할 수 있다고?"

"오늘은 왜 칠품 청성의 임무가 없지?"

무인들은 금색 수정을 보며 수군거렸다.

진남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상황을 파악했다.

청성대공간은 일품에서 십품으로 나뉘었는데, 일품이 가장 안 좋고 십품이 가장 좋았다.

좋은 자리일수록 이득이 더 많은 게 분명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금색 수정에 반포한 여러 임무들을 완수하거나 엄청난 비용으로 다른 사람의 영패를 사야 했다.

또, 육품 이상의 공간은 조건 제한이 있었다.

임무를 완수하고 이득을 줘야 할 뿐만 아니라 패자 등급의 내문제자 이상은 되어야 했다.

팔품 이상의 공간은 개세천재거나 무상도통의 내문제자, 혹은 패자 세력의 장로 이상이어야 했다.

"역기문이 준 영패로 몇 품 청성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진남과 혈안천신은 같은 생각을 하고 서로 마주 봤다.

그리고는 곧 앞으로 다가갔다.

도장엔 무인들이 계속 들락날락했다.

적어도 몇만 명은 되었다.

대부분은 임무들을 확인하러 온 자들이고 일부는 청성대공간에 들어가려고 줄을 선 자들이었다.

진남과 혈안천신의 앞에는 서른다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응?"

진남은 문득 익숙한 두 개의 기운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아본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

멀지 않은 곳에 소붕왕 만소와 명음 태자가 몇십 명 천신 정상의 경지 무인들의 옹호를 받으며 다가왔다.

"진남?"

소붕왕 만소와 명음 태자도 멈칫했다.

그들이 청성천국에 온 주요한 이유는 명음 태자의 구액귀신체가 육황전장에서 중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청성천국은 특이한 힘을 가지고 있어 명음 태자의 상처를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곳으로 왔다.

소붕왕 만소는 마침 천신 경지를 돌파하는 시기라 함께 왔다.

그들은 설마 진남도 이곳에 올 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