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5화 나를 죽일 수 없다
충격적인 이상을 넋 놓고 바라보던 무인들에게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뭐? 제종과 신과?"
"그것들을 연화하면 스스로 제위에 오르고 봉신할 수 있어?"
"제종과 신과에 천재지보까지 있다니, 제이대륙은 보기 드문 기연지(機緣地)구나!"
"하하하, 증제에 실패한 후에 또 기회가 올 줄은 몰랐어!"
무인들은 흥분했다.
동주나 다른 네 개의 주에서 온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제이대륙은 다른 전승지와 전혀 달랐다.
모든 무인들의 경지가 평범하게 제압되었다.
원래대로면 대제 경지와 무신들이 큰 우세를 차지했었는데, 그 우세가 매우 작아졌다.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회가 생겼다.
크고 작은 세력들은 준비를 시작했다.
세력에 속하지 않은 무인들도 친한 도우와 연락을 해서 연맹을 맺었다.
시간은 흘러 반나절이 지났다.
제이대륙의 앞쪽에 거대한 선문이 엄청난 광채를 일으키며 나타났다.
제이대륙은 세계의 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비월여제와 그녀의 내세가 함께 만들었다.
육천신이나 남천문 등이 나서지 않은 이상 억지로 진입할 수 없었다.
모두 선문을 통과해야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슉-! 슉-! 슉-!
이때,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다급하게 들리고 형상들이 나타났다.
여러 세력의 무신지기와 여러 거물들이 동시에 도착했다.
칠요비선검은 허공에 몸을 숨기고 얌전히 시기를 기다렸다.
일부 오래된 존재들은 여전히 무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외 대륙 전체의 거물들이 전부 모였다.
또 반나절이 지났다.
커다란 선문은 살짝 흔들렸다.
그 속에서 여러 금제들이 운행되더니 주변으로 사라졌다.
쾅-! 쾅-! 쾅-!
전과 달리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우레처럼 연이어 들리더니 형상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무인들은 빛으로 변해 야수들처럼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그들 중에는 무왕 경지들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무인들이 오다니?"
"적어도 몇십 만은 되는 것 같아."
"그뿐이겠어? 뒤에 계속 몰려오는 무인들을 봐봐. 거의 백만은 될 것 같아!"
여러 세력의 거물들 엄청난 장면에 헛숨을 들이켰다.
그들과 진남은 모두 많은 무인들이 몰려들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많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대문의 금제가 전부 열렸어! 빨리 안으로 들어가자!"
반 주 향이 타는 시간이 흐른 뒤, 한 오래된 존재가 눈치를 채고 고함을 질렀다.
* * *
창람대륙의 극남지에 웅장한 문이 흔들림 없이 우뚝 서 있었다.
제이대륙이 열리자 남천문의 영도 의지를 여러 개 보냈다.
스스슥-
천지에 미풍이 불었다.
수피화권이 광채를 풍기며 멀리서 천천히 날아왔다.
이상한 것은 남천문의 영이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했고 천지에 늘여놓은 살진들도 반응이 없었다.
"진짜 너구나! 내 주인이 창람대륙에 온 것을 어떻게 발견했느냐?"
남천문의 가장 깊은 곳에 불완전한 육신이 오른쪽 눈을 뜨고 호통쳤다.
"하하! 그때 일을 아는 사람이 너뿐이겠느냐?"
수피화권은 통쾌하게 웃었다.
"다만, 너는 나보다 더 많은 걸 얻었다. 결국 죽기는 했지만."
수피화권은 말투에 슬픔이 더해졌다.
"나에게 그런 말은 하지 말거라. 무슨 짓을 하려는 게냐? 설마…….."
전신의 육신은 냉랭하게 말했다.
"그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 너뿐이라고 생각하지 말거라. 예전에 그곳에서 벌어진 일을 나도 잘 안다."
수피화권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 것들은 더 말하기도 귀찮다. 지금은 너에게 알려줄 게 있어서 왔어. 그자가 지난번에 구천에 들어가서 도문이 나타나는 바람에 태고금기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수피화권은 담담하게 말했다.
태고금기라는 네 글자를 말할 때 온 천지가 굳어지는 것 같았다.
전신의 오른쪽 눈에 불꽃이 타올랐다.
"허허, 고작 태고금기? 그때 내가 중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갈기갈기 찢어버렸을 거다!"
엄청난 전의가 용솟음쳤다.
커다란 남천문이 세게 흔들렸다.
남천문의 영은 얼음에 빠진 것처럼 온몸이 오싹했다.
하지만 남천문의 영은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의심하지도 않았다.
그는 남천문의 절반을 장악했는데 남천문의 깊은 곳에서 가끔 무서운 기운이 용솟음쳐서 이럴 때가 있었다.
"네 말대로 태고금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의 뒤에 있는 주인을 조심하는 거지."
수피화권이 말했다.
"다른 것들은 너와 말하기도 싫다. 다만, 이 일에 끼어들지 말거라. 아니면 나도 봐주지 않겠다."
전신의 육신이 풍기던 의지가 사라지고 그의 목소리도 작아졌다.
"하하, 다른 사람들은 너를 두려워하고 감히 덤비지 못하겠지. 그러나 나를 위협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수피화권은 크게 웃었다.
그림 속에 있는 흐릿한 청년의 형상은 두 눈을 떴다.
그의 시선은 마치 무상계주(無上界主)의 눈처럼 남천문을 지나 전신의 육신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때 가서 보자. 네 계획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 계획만이 그…… 열 수 있다."
말을 마친 청년은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슉-!
수피화권은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는 다른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모든 것을 증명해줄 것이다.
* * *
반신지국의 제이대륙.
수많은 무인들이 떼지어 거대한 선문에 밀려들었다.
진남과 비월여제는 하루 동안 오천여 리를 날아갔다.
평소였으면 오천 리 정도는 금방 날았겠지만, 지금은 하루를 꼬박 소모했다.
게다가 피곤하기까지 했다.
둘은 점점 속도를 늦추었다.
"이렇게 많은 천재지보를 두고 가다니 아쉽군."
진남은 멀지 않은 곳에서 자라는 혈색 영화를 보며 참지 못하고 말했다.
오는 동안 그는 천재지보들을 천여 가지는 넘게 보았다.
모두 연화하면 큰 이득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세상에는 만일의 경우는 없었다.
진남은 지금 평범한 사람의 몸이라 저장주머니를 열 수도 없고 하나만 연화해도 힘이 꽉 찼다.
"어?"
진남의 눈에 이상한 빛이 드러났다.
이런 기분은 무왕 경지가 된 이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여덟 마리 쉬체 경지의 요수가 다가오고 있어."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비월여제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아름다운 절세의 얼음 형상이었다.
비록 경지가 평범한 사람으로 제압되었지만 그녀는 제이대륙의 주인 중 한 명이었다.
이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마침 잘 됐구나. 요수를 먹어본 지도 한참 되었어."
진남은 나뭇가지를 꺾고 몸을 살짝 긴장했다.
제이대륙에서 요수들은 상대적으로 덜 제압을 받았다.
그것들은 대부분 쉬체 경지였다.
진남은 지금 힘에 대한 이해로 여덟 마리의 쉬체 경지 요수를 쉽게 죽일 수 있었다.
휙-!
이때, 무형의 바람이 불었다.
하늘은 더 환해지고 더 파랗게 변했다.
"내세가 천지규칙을 약간 바꾸었구나."
비월여제는 두 눈에 차가운 파란빛이 드러났다.
"고칠 수도 있어?"
진남은 깜짝 놀랐다.
'천지규칙은 이미 형성이 되었다. 그런데 내세가 평범한 사람의 몸으로 그 정도까지 할 수 있다니?'
어흥-!
앞에 있는 수림에서 포효소리들이 들렸다.
몸집이 산처럼 큰 요수들이 선천지기를 풍기며 달려왔다.
그것들은 고수들과 부딪히며 박살을 냈다.
천지규칙의 미묘한 변화는 요수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들은 쉬천경지로 제압을 당했다가 경지가 한 단계 높아졌다.
"일도천황!"
진남은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는 빠르게 반응하고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휙 날렸다.
나뭇가지는 차가운 빛으로 변해 날아갔다.
진남은 머뭇거리지 않고 먼저 공격을 했다.
그는 발끝을 차고 날아올라 요수들의 두 눈에 주먹을 연거푸 날렸다.
우우-!
사람 모습의 원숭이 요수는 포효를 하더니 털을 곤두세우고 주먹을 날렸다.
펑-!
진남은 거대한 힘이 그의 몸에 부딪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뒤로 몇 걸음 밀려난 후 겨우 멈추었다.
평범한 사람의 몸은 선천경지와 두 경지나 차이가 났다.
진남은 힘에 대해 잘 알았지만, 본질적인 힘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천지를 모두 봉하라!"
비월여제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몇십 리 허공에 차가운 바람이 불고 온도가 싸늘하게 변했다.
여덟 마리의 요수들은 무서운 것을 만난 것처럼 두려운 표정을 드러내더니 꼼짝도 하지 못했다.
"전신 제일 식!"
진남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온몸의 기운이 폭등하더니 고목 하나를 여덟 요수들에게 던졌다.
어흥-!
여덟 마리의 요수는 연신 포효를 하며 발길질을 했다.
펑-!
커다란 나무는 산산조각이 났다.
나무 조각들이 날아가 그것들의 몸에 기다란 상처를 냈다.
그것들은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칠중암진(七重暗勁)!"
진남은 다시 나뭇가지를 꺾어 휘둘렀다.
휙-!
이때, 다급하게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림에서 돌멩이 하나가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진남은 멈칫했다.
들고 있던 나뭇가지가 돌멩이에 맞아 부서졌다.
"누구냐?"
진남은 두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비월여제는 무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공격을 한 사람을 그녀는 알아채지 못했다.
"역시 도겁을 부순 사람답다. 평범한 사람이 되어도 실력이 강하구나."
무덤덤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리거울의 전생이 수림에서 천천히 나왔다.
"전생? 나와 내세는 제이대륙에서 서로를 감지할 수 없게 규칙을 세웠다. 그런데 너희는 우리를 어떻게 발견했느냐?"
비월여제는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었다.
"내세의 진짜 경지는 너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높다. 규칙을 정한 후 살짝 바꾸는 것도 문제가 안 되지."
구리거울의 전생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너는 나의 내세이다. 고작 팔천 년의 시간 동안 구천 선역에서 패자가 된 것은 나도 탄복할 정도이다! 너를 죽이기가 아깝구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말을 마친 전생은 공격을 했다.
그녀는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검을 한 번 휘둘렀다.
그녀가 진남에게 다가왔을 땐 흐릿한 검영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영지를 회복하고 전생의 경지도 늘어난 걸까?'
진남은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는 몸을 움직이며 주먹을 날렸다.
"검영광몽(劍影光夢), 환자허래(幻者??)……."
구리거울은 중얼거렸다.
그녀의 기운은 점점 늘어났고, 휘두르는 검마다 뇌정 같은 기세로 날아왔다.
"과천일격!"
진남은 호통을 치며 검영을 뛰어넘었다.
수많은 권법이 한데 뭉쳤다.
진남은 경지가 눌렸지만 여러 술법들을 장악했기에 아직 그 속의 신비함을 이용할 수 있었다.
어흥-!
여덟 마리의 선천 경지 요수들은 진남을 노렸다.
요수들의 발이 커다란 그물처럼 진남을 덮쳤다.
"전생이 요수들을 조종할 수 있어?"
진남은 몸이 팽팽하게 긴장됐다.
위기감을 느꼈다.
크르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멀지 않은 수림에서 짐승 소리가 커다란 하늘을 가득 채웠다.
땅은 조금씩 흔들렸다.
진남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선천 경지의 요수들이 사방에서 연이어 달려오고 있었다.
적어도 스무 마리는 되었다.
쿵-!
이때, 비월여제가 공격을 했다.
그녀는 허공을 민첩하게 날아다녔다.
그녀는 몸에서 은은한 선인의 빛을 풍기며 손바닥으로 아래를 내리쳤다.
평범한 사람이 된 그녀라도 위력은 당할 자가 없었다.
"비월, 네가 어떤 살술을 펼쳐도 나를 죽일 수 없다."
구리거울의 전생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기운이 또 늘어나 몽환적인 검광을 휘둘렀다.
진남을 제외하곤 그녀를 죽이려는 사람이 강하면 그녀는 상대방보다 조금 더 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