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0화 못 참겠습니다
"대라혈망(大羅血網)!"
왕전혈은 입을 쩍 벌리고 대량의 피를 뿜어냈다.
피는 터지면서 혈무가 되었다.
혈무들은 다시 모여서 커다란 그물이 되어 오동방 등을 덮고 뒤로 당겼다.
오동방 등은 그물에 갇혀 왕전혈 앞으로 끌려왔다.
"정혈화신(精血化身)!"
왕전혈이 몸에서 아홉 방울의 더 짙은 피를 뿜어내자 아홉의 사람 그림자가 되었다.
왕전혈과 똑같이 생긴 그림자였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왕전혈은 이미 이겼는데, 왜 아홉 분신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왕전혈과 그의 아홉 분신은 동시에 흩어지며 오동방 등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왕전혈과 그의 분신들의 두 눈에 혈광이 스쳤다.
그들은 사정없이 다리를 들어 오동방 등의 발과 목목의 손바닥을 밟았다.
우두둑-!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퍼지고 오동방 등 열 명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왕전혈은 그들의 뼈를 밟아 부러뜨렸으니 어찌 아프지 않겠는가?
용제는 벌떡 일어났다.
그는 두 눈에 지독한 살기를 드러냈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왕전혈이 아홉 분신을 만들어 낸 것은 오동방 등을 괴롭히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다.
"용제, 규칙은 자네가 정한 것이오. 손뼈를 부러뜨린 것은 불구를 만드는 것과 한참 머오. 그러니 간섭하면 안 되오. 참을 수 없다면 저들이 먼저 패배를 인정하면 되오."
흑동대제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용제는 화가 나서 왕전혈을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견뎠다.
이번에는 아까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왕전혈은 용제원 제자들을 중상 입히지 않는 선에서 괴롭혔다.
"용제원 제자들, 패배를 인정하겠느냐? 네놈들은 잡것이다. 중주의 무인들도 다 잡것들이고. 그리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패배를 인정하거라."
왕전혈은 열 사람을 내려다보며 냉소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이제 오동방 등이 패배를 인정한다면 그의 말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오동방 등은 절대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동방 등은 그의 말을 듣자 살의를 짙게 드러냈다.
"패배를 인정하라고? 어림없다……."
오동방, 목목 등은 온몸에 빛을 뿜으며 격렬하게 반항했다.
"불복하는 거냐?"
왕전혈의 눈에 조롱이 드러났다.
그는 다시 다리를 들었다.
그러자 발에서 짙은 핏빛이 반짝이며 열 명의 손을 힘껏 밟았다.
우두둑-!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오동방, 현월, 목목 등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커다란 아픔에 그들의 표정이 뒤틀렸다.
"패배를 인정하겠느냐? 용제원과 중주의 무인들은 잡것이 맞다고 인정해라. 그럼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겠다!"
왕전혈은 큰소리로 외쳤다.
"꺼져……."
오동방 등 열 명은 핏빛으로 가득 찬 두 눈과 일그러진 표정으로 왕전혈을 노려봤다.
"하하하, 자존심이 강하구나? 좋다! 좋아! 하지만, 나는 오늘 너희들의 패배를 받아내고 내 말에 동의하게 할 거다!"
왕전혈은 피식 웃으며 다시 한 번 다리를 들어 오동방 등 열 명의 종아리를 힘껏 밟았다.
우두둑-!
또다시 폭발음이 온 도장에 울려 퍼졌다.
오동방 등 열 명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오동방, 그리고 너희들, 얼른 패배를 인정하거라!"
용제는 끝내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그래!"
"패배를 인정해!"
"그만 버티거라!"
"너희들 마음을 알고 있으니 속지 말고 어서 패배를 인정하거라."
용제원의 제자들, 그리고 다른 세력의 장로들과 제자들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들은 차마 오동방 등이 계속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오동방 등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뻘게진 두 눈을 부릅뜨고 왕전혈을 노려봤다.
'아프면 어때?'
'우리는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
'용제원과 중주의 무인들은 모두 잡것이 아니다!'
"한번 보자! 너희들 오늘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왕전혈은 냉소를 지으며 다시 다리를 들어 세차게 밟았다.
우두둑-! 뿌드득-!
뼈 부러지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처음에는 양손 그다음엔 두 다리를 부러뜨렸다.
왕전혈은 오동방 등의 온몸의 뼈를 다 부러뜨릴 생각이었다.
도장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여전히 굽히지 않는 오동방, 현월, 목목 등 열 사람을 보자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떨리고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그들은 매우 어리숙해 보이고 매우 둔한 방식으로 용제원과 전체 중주의 존엄성을 지키고 있었다.
* * *
한 줄기 빛이 놀라운 속도로 광망도장을 향해 날아왔다.
진남이었다.
"응?"
진남은 바로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등제의식은 시끌벅적해야 마땅한데 왜 아무 소리도 없는 거지?'
진남은 전신의 왼쪽 눈을 굴려 도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험상궂은 얼굴로 오동방 등을 걷어차며 뼈를 부러뜨리는 낯선 사내를 보았다.
낯선 사내는 그들을 뼈를 부러뜨리며 뭐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반면 오동방 등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로 이를 악물고 참으며 굴복하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남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이내 그는 숨을 몇 차례 들이쉬었다.
순간, 가슴에서 커다란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몸에서 살의가 터져 나왔다.
'용제원 사람들을 모욕하다니! 죽으려고 작정했구나!'
쾅-!
순간 진남의 몸에서 엄청난 도기가 터져 나왔다.
멀리서 보면 운석처럼 별이 하늘에서 내려와 광망도장으로 날아온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두 개의 거대한 기운이 광망도장을 빠져나와 진남을 향해 날아왔다.
진남의 머릿속에 어떤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남, 멈춰라!"
그 목소리는 궁양이었다.
궁양은 광망도장에서 진남의 기척을 눈치채고 사마공과 함께 날아올랐다.
"궁 형?"
진남은 이곳에서 궁양과 마주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연황전장에서 혈강의 통령이 되지 않았나? 왜 갑자기 여기에 온 거지?'
"진남, 길게 말하지 않겠다. 반신지국의 삼대 세력이 중주를 욕되게 하고 용제원을 욕되게 하는 것은 네가 나서도록 강요하기 위해서이다. 너는 절대 갈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난다!"
궁양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비록 중주가 수모를 당하는 것을 보고 그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궁양은 진남을 더 신경을 썼다.
그는 진남이 조금이라도 위험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흠흠!"
옆에 서 있던 사마공은 낮게 기침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는 궁양의 태도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반신지국의 삼대 세력, 중주 전체, 그리고 용제원을 모욕한다고요?"
진남은 눈을 가늘게 떴다.
공포스러울 정도로 강렬한 붉은빛이 그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점점 피어났다.
반신지국 삼대 세력은 남천신지, 요지성지, 무도종이었다.
그들이 일부러 중주를 모욕하고 용제원을 모욕해서 진남이 나서게 억압한다니.
이는 남천신지 사람의 계략임이 틀림없었다.
다른 두 세력 때문에 그와 조금도 원한이 없었다.
궁양은 이 광경을 보자 아차 싶었다.
그는 진남의 성격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진남은 일단 결정을 내리면 무슨 일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았다.
"진남, 그의 말이 맞다. 오면 안 된다! 걱정하지 말거라. 여기 일은 내가 잘 처리하마!"
이때, 위엄 있는 목소리가 진남, 궁양, 사마공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용제였다.
그도 진남의 기운을 눈치채고 진남을 막으러 온 것이었다.
용제원은 이미 무수한 수모를 당했다.
이미 그 많은 수모를 감당했는데, 진남이 상대방의 계략에 걸려 큰 위험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요신은 이미 진남을 보호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만약 위기가 생긴다면 용제도 진남을 도울 힘이 없었다.
용제의 말이 끝이 나자 오래되고 위엄있는 목소리가 오랜만에 진남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진남, 이번엔 절대 공격하면 안 된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이번에 용제원을 함정에 빠뜨린 사람은 지난번에 너와 싸웠던 삼대 무혼을 가진 남천신지의 성경천이다. 그는 너를 나타나게 하려고 이번 일을 꾸민 것이다.
일단 네가 무도규칙을 초월한 일이 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무한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다!"
목소리는 무연각이었다.
궁양과 사마공 그리고 용제는 무연각이 진남에게 전음한 것을 몰랐다.
진남이 전에 무연각을 찾지 못했던 이유는 무연각은 최근 들어 삼대 세력을 조사하러 다녔기 때문이었다.
무연각은 삼대 세력이 중주를 짓밟고 용제원을 모욕해서 진남에게 나타나도록 억압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성경천? 나를 나타나게 하려고 억압한다는 말입니까? 제가 무도규칙을 초월한 것을 천하에 폭로하려고요?"
진남은 침묵했다.
진남이 침묵하자 궁양은 타일렀다.
"진남, 용제 선배님의 말이 맞다. 지금 올라가면 안 돼.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 네가 경지가 높아지고 나서 그들에게 오늘의 원수를 갚는다고 해도 늦지 않다."
옆에 있던 사마공은 이 말을 듣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지만, 궁양의 체면을 봐서 말을 하진 않았다.
어쨌든 모든 것은 진남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원장님, 궁 형."
한참 침묵하던 진남이 불쑥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궁양과 사마공, 그리고 용제는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진남은 고개를 들었다.
잔잔한 눈길 속에서 엄청난 불길이 솟아올랐다.
분노였다.
"알고 있습니다. 이건 음모입니다. 제가 가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압니다!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만 참으면 나중에라도 보복할 수 있다는 걸!
……하지만 못 참겠습니다. 누구든지 감히 내 친구, 형제, 가족에게 손을 댄다면 나는 반드시 피로 갚게 할 것입니다! 만일 이번에 가지 않는다면 저는 이번 생에 더 이상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진남의 눈빛은 단호했다.
그는 발끝을 차더니 궁양과 사마공을 돌아 도장으로 날아갔다.
이것이 바로 그 진남이었다.
'위험하니 참으라고?'
진남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지킬 사람들을 건드린 놈은 반드시 죽일 것이었다.
"저 녀석……."
궁양은 씁쓸하게 웃었다.
역시 이번에도 그는 진남을 말리지 못했다.
"그냥 가게 두시오. 에잇, 안 그래도 저 나쁜 놈들이 거슬렸소. 진남이 가서 단단히 혼내주게 하시오! 무슨 일이 벌어지든 꼭 죽으라는 법은 없지 않소?"
사마공은 흥분했다.
그는 진남이 싸우는 것을 지지했다.
'그게 진짜 무인이고 사내지!'
광망도장에서 용제는 얼떨떨해졌다.
그는 진남을 막고 싶었다.
그러나 진남의 눈빛은 아까 오동방 일행들의 눈빛처럼 그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결국 막을 수 없게 했다.
* * *
광망도장.
도장은 여전히 조용했다.
왕전혈은 계속해서 발길질했다.
그러나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오동방 등의 뼈를 벌써 몇백 개는 부러뜨렸다.
하지만 여전히 패배를 인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어떡하지? 만약 이 사람들이 끝까지 굴복하지 않으면 장내에 있는 다른 무인들도 이런 감정이 옮을 것이다.'
"죽여라!"
바로 그때였다.
왕전혈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삼대 세력의 장로와 제자까지 경외하게 만든 그 신비로운 청년은 삼대 무혼을 가진 성경천이 나선 것이었다.
성경천은 무도규칙을 초월한 자가 계속 나타나지 않자 기다리기가 귀찮았다.
그래서 한 번에 잔인하게 죽여버리라고 한 것이었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순간 왕전혈의 표정이 살벌해지고 두 눈에 혈광이 번뜩였다.
그와 아홉 분신은 발밑에 혈검을 뿜어내고 오동방 등의 머리를 걷어찼다.
대제, 장로, 제자들은 일순간 마음이 흠칫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왕전혈이 그들 아홉 명을 죽일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왕전혈, 미쳤어?'
"……!"
용제는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는 잠깐 넋을 놓고 있었다.
그래서 왕전혈이 갑자기 오동방 등을 죽이려고 하는 걸 막기엔 늦어버렸다.
'이대로 목목 등이 밟혀 죽는 걸 지켜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