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4화 잠, 잠깐만!
현묘한 힘 속에서 사망도인 강벽난은 싸늘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말하겠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니 착각하지 말거라."
강벽난은 심호흡을 하며 차갑게 말했다.
그의 앞에 선 '진남'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담담하게 웃었다.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맞다. 너는 내 본체를 사랑하잖아. 맞지? 아니라면 내 본체가 너를 도우려고 할 때 왜 거절했느냐? 답은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그에게 네 마음속 비밀을 들키기 싫은 거잖아?"
'진남'의 말에도 강벽난은 무표정했다.
그녀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사망지기가 피어올랐다.
그러자 주변의 온도가 급속하게 떨어졌다.
"정말 나를 죽일 거냐? 나를 죽이면 진남도 중상을 입는다."
'진남'은 두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이따위 수법으로 다른 사람을 속이는 건 가능하지만 나는 속지 않는다."
강벽난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발끝으로 땅을 차더니, 흑포를 펄럭이며 날아올라 손바닥을 날렸다.
사망지기가 이글거리며 터졌다.
'진남'의 안색이 변하더니 강벽난의 공격을 겨우 피해냈다.
그러나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강벽난은 바로 손바닥을 휘둘렀다.
사망지기들이 커다란 뱀으로 변했다.
그것들은 영성을 가지고 있어, 진남을 물어뜯으려고 달려들었다.
"아!"
사망지사(死亡之蛇)들이 물어뜯자 '진남'이 처량한 비명을 질렀다.
강벽난은 움찔했지만 끝내 참았다.
"하하하!"
그때, 진남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엔 조롱이 가득했다.
"왜 웃느냐?"
강벽난은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도 예상했다. 하역에 있을 때 너는 내가 가진 보물을 탐내서 여러 번 공격했지! 덕분에 나는 매번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 뒤로 나를 몇 번 도와줬지만, 그것도 눈속임일 뿐이다!"
'진남'은 잔뜩 비아냥거렸다.
"나는 처음부터 너를 알아보았다. 네 본질은 악독하고 잔인하며 음험한 여인이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
강벽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거짓이고 눈앞에 있는 것은 진남이 아니라고 스스로 설득했다.
하지만 '진남'의 말은 날카로운 칼처럼 그녀의 가슴에 박혔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하역에 있을 때 여러 번 진남을 죽이려고 한 것도 사실이잖아…….'
'진남'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자 입가에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체내의 힘을 사용하여 사망지기를 누르고 장도를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차가운 칼끝으로 그녀의 가슴을.
그녀의 심장을 다시 한 번 찔렀다.
* * *
창람대륙 반신지국의 유실약원.
오래되고 신비한 대전에 있던 묘묘 공주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피를 왈칵 토했다.
강하던 몸 안이 기운이 순식간에 쇠했다.
그녀의 몸은 마치 보이지 않는 칼에 베인 것만 같았다.
"공, 공주? 이게 무슨 일이에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예요? 왜 본원의 힘이 이렇게나 많이 줄어들었어요?"
대전에서 놀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늘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소란 떨 거 없다. 별일 아니다."
묘묘 공주는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안색이 변하더니, 다시 한 번 피를 토했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 별일 아니라니요!"
여인은 화가 나서 묘묘 공주를 다그쳤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멀쩡하게 있다가 갑자기 본원의 힘을 이렇게나 많이 잃어버리다니요? 혹시 또 몰래 진남을 위해 무슨 일을 하신 거예요?"
"허튼소리 하지 말거라. 그와 상관없는 일이다."
묘묘 공주는 그녀를 흘겨봤다.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요? 지난번에도 그 옥패를 만드느라 많은 본원의 힘을 소모했잖아요. 오늘은 유실약원 선궁에 있었는데 이유 없이……."
여인은 더욱 화가 났다.
"됐다! 그만하거라!"
묘묘 공주는 정색했다.
여인은 그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영패를 꺼내 명령을 내리고 묘묘 공주의 회복을 위해 준비했다.
묘묘 공주는 그녀의 모습에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
묘묘 공주가 매번 화를 내는 척하면 그녀는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제방은 너무 나빠! 자기는 그렇게 뻔뻔한 짓을 하면서 내가 억지로 간섭했다고 이렇게까지 하기야?"
묘묘 공주는 조금 전 벌어진 일을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화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진남……."
묘묘 공주는 그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작은 주먹을 휘둘렀다.
'진남, 반드시 성공해야 해! 제명을 받고 천하를 놀라게 해야 해. 나는 중주에 없지만 여전히 선궁에서 너를 지켜보고 있어!'
* * *
슉-!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진남과 진자래는 동시에 도장에 나타났다.
"축하한다. 적을 이겼기에 진남은 삼 점, 진자래는 이 점을 얻는다. 너희들은 세 번째 관문으로 진급할 수 있다."
제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급할 수 있다고? 그녀들은 어떻게 되었지?"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제사의 말에 따르면 그들 넷은 맹우라서 함께 한다고 했다.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다른 셋도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그들 넷은 모두 진급하지 못하는 게 맞았다.
"임무에서 진짜로 적을 이긴 자는 진급할 수 있다. 그러니 너희 둘은 진급했다. 다만, 적을 이기는 과정이 훌륭했는지 아닌지에 따라 점수가 매겨진다.
그리고 그녀들은 두 번째 임무에 실패했다. 그러니 너희들은 먼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세 번째를 임무를 시작하겠다."
제사가 담담하게 말했다.
진남은 안색이 변했다.
어청동이 실패한 것을 진남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떻게 강벽난이 실패할 수 있지? 그때 그녀의 태도는 이길 확신이 있는 것 같았는데…….'
"설마 나더러 오지 말라고 한 게 보여주기 싫은 게 있어서였을까?"
진남은 마음이 흔들렸다.
"아미타불. 진남 시주, 고맙다. 너에게 신세를 졌구나."
옆에 있던 진자래는 합장을 하고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급할 가치도 없는 작은 일이다."
진남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도장에 흰색 빛기둥이 나타났다.
빛기둥에서 부문들이 나타나더니 이내 부문의 소용돌이가 되었다.
제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에 뛰어들면 세 번째 관문을 할 수 있다."
"강벽난이 하루빨리 임무를 완수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군."
진남은 중얼거렸다.
그는 진자래에게 공수하고는 바로 부문 소용돌이에 뛰어들었다.
* * *
진남은 순식간에 다른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길이가 백여 장 되는 궁전이 있었다.
궁전을 둘러싼 벽에는 오래되고 신비한 그림들이 있었다.
궁전 위쪽에서는 제기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진남은 전신의 왼쪽 눈으로 사방을 살폈다.
역시나 궁전은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방이 크고 제기가 많다는 것 외에 첫 번째 관문과 똑같았다.
'제방은 또 무슨 꿍꿍이를 꾸몄을까?'
"진남 도우, 세 번째 관문에 온 것을 축하한다. 너는 세 번째 관문에 다섯 번째로 진급한 자이고 삼 점을 얻었으니 제궁에서 스무날 동안 머무를 수 있다. 그동안 제기를 흡수하고 제심을 단련하거라."
이때, 묵직하고 힘 있는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진남은 눈을 반짝거렸다.
'내 앞에 네 명이나 두 번째 관문을 통과했을 줄이야. 그런데 제심이라는 건 뭘까?'
제사는 진남의 궁금증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설명했다.
"제명을 받을 때 제명의 공격을 받게 된다. 만약 제심을 완벽하게 단련하면 공격이 작게 느껴지고 그렇지 않으면 크게 느껴진다. 수련하는 시간은 네 점수와 세 번째 관문에 들어온 순서에 따라 결정된다. 점수가 높고 순서가 빠르면 수련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제야 진남은 깨달았다.
"제명쟁탈전에 숨겨진 규칙이 참 많구나. 일단은 빨리 시작해야겠다."
진남은 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는 전신의 혼을 드러내곤 제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제기들은 빠르게 그의 몸에 녹아들었다.
그리고 그의 사지와 뼈에 흘러들어 그의 몸과 하나가 되었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스무날이 되던 날.
궁전 위쪽에서 흘러내리던 제기가 멈추었다.
진남의 몸속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스무날 동안 제기를 흡수한 그의 몸에는 심장 형상이 하나 더 생겼다.
심장은 겉면에 빛이 흐르고 제기가 가득해서 신비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연마되기까지는 거리가 있었다.
후-!
진남은 천천히 눈을 뜨고 혼탁한 기운을 토했다.
그의 몸에서 전의가 뿜어졌다.
스무날이 되었다.
그는 대전에서 나왔다.
이제 마지막 관문을 진행할 때가 되었다.
"아, 진남 도우. 잊어먹고 못 알려 준 게 있다. 세 번째 관문에 들어와서 임무를 완수한 자는 서른 날 동안 제기를 흡수할 수 있다. 그 시간을 다 채워야 너도 대전에서 나갈 수 있다."
세 번째 관문의 제사가 말했다.
"그럼 열흘을 더 기다려야 된다는 말씀입니까?"
진남은 온몸의 전의를 거두고 미간을 찌푸렸다.
제궁에는 더 이상 제기가 없었다.
게다가 영기도 옅었다.
열흘 동안 이곳에서 감오 수행만 진행한다면 시간 낭비였다.
"아, 깜박했다! 내겐 이게 있었지?"
진남은 오른팔을 단천도로 변화시켰다.
그는 첫 번째 관문부터 이 궁전 밖이 궁금했다.
'세 번째 관문이 끝나기 전에 궁전 대문을 베고 나가 볼까?'
"진남 도우, 세 번째 관문의 대문은 부술 수 없다."
세 번째 관문의 제사는 그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그는 이미 첫 번째 관문의 제사에게서 진남이 궁전 대문을 노린다는 말을 들었다.
"왜 열 수 없습니까? 제명쟁탈전에 그런 규칙은 없지 않습니까?"
진남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제사는 입가가 꿈틀거렸다.
이곳은 제궁이었다.
제명쟁탈전에 참가한 천재들은 감히 억지로 궁전 대문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굳이 규칙을 제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진남이 천하의 모든 것을 벨 수 있는 단천도를 가지고 있을 줄을 몰랐다.
"저는 밖을 한번 보고 싶을 뿐입니다. 다른 것은 하지 않겠습니다."
진남은 성큼 나서더니 온몸에서 기운이 가득 솟아올랐다.
단천도에서 강대한 도의가 폭발했다.
"아니, 잠, 잠깐만!"
제사는 다급하게 말했다.
"문을 베지 말거라! 이렇게 하는 게 어떠냐? 열흘 동안 제기를 더 내려주마. 이곳에서 계속 수련하거라!"
진남은 눈을 반짝거렸다.
그는 제사가 궁전 문을 열지 못하게 하려고 이렇게 좋은 조건을 걸 줄 몰랐다.
제사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진남은 칼에 힘을 빼지 않고 물었다.
"그럼 세 번째 관문에 진급한 천재가 몇 명인지 알려 주세요."
제사는 입꼬리를 움찔했다.
하지만 이미 규칙을 어겼으니 한 번 더 어긴다고 해도 문제는 없었다.
"예순일곱 명이 세 번째 관문에 진급했다.
"예순일곱 명이요?"
진남의 눈에 빛을 반짝였다.
제명쟁탈전까지 아직 열흘이 남아있었다.
첫 번째, 두 번째 관문을 넘는 것만 해도 중주의 천재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열흘 동안 세 번째 관문에 진급할 사람은 적어도 몇백 명은 될 것 같았다.
"네, 그렇게 합시다."
진남은 단천도를 거두고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가 다시 눈을 뜰 때는 마지막 폭풍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