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1화 제방 순위가 지금 변한다고?
"일전에 황후 마마께 신세를 진 일이 있어 한 번 도운 겁니다. 이제부터 우리 둘 사이의 인과는 이걸로 끝이 났습니다."
진자래는 합장을 하고 손가락을 튕겨 불광을 백령의 몸속에 주입했다.
그러자 백령의 몸이 빠르게 회복됐다.
불광은 그녀의 경지를 회복시킬 수 없었지만, 경맥 등을 회복시켜 다시 무예를 수련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진남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원하던 결과를 얻었다.
백령은 경맥을 회복했지만 몇십 년은 걸려야 다시 지금 정도의 경지를 수련할 수 있을 것이었다.
"진남 시주, 예불사에서 기다리겠다. 너와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야 할 일이 있다."
진자래는 불호를 외치고 금광이 되어 날아가 성 안에 떨어졌다.
커다란 석상은 잠잠해졌다.
황성의 사람들과 거물들은 여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예불사?"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진자래가 모습을 드러낸 게 백령 때문만은 아닌가?'
"진남, 그럼 우리는?"
흑룡 통령은 정신을 차리고 떠보듯 물었다.
"이 일은 이미 끝났소. 흑룡 성원들을 전부 오라고 해서 미안하오. 이걸 받으시오. 내 작은 성의요."
진남은 웃으며 상자를 건넸다.
상자에는 무야반신이 만든 도법이 들어있었다.
"응?"
흑룡 통령은 상자를 훑어보더니 스멀스멀 올라오는 우울한 기분이 금세 사라졌다.
그는 무척 기뻤다.
'이렇게 큰 선물을 줄 줄은 몰랐네.'
"하하,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명령하시오."
흑룡 통령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수호자들과 황제 일행을 노려보고 콧방귀를 뀌더니 제기 흑룡 배에 올라갔다.
"자! 돌아가자!"
그의 명령에 모든 흑룡 무인들이 진남에게 공수하고 발끝으로 땅을 차며 배에 올라탔다.
제기 흑룡이 움직이더니 허공을 뚫고 황성에서 사라졌다.
수호자들과 황제 왕립풍, 백상생, 두 왕들 그리고 상서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움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들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진 장군, 이번에 도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옥간을 받으십시오."
진남은 손가락을 튕겼다.
진장려는 정신을 차리고 얼른 옥간을 받았다.
신식으로 옥간을 훑어본 그는 얼굴이 환해졌다.
옥간에는 열다섯 개의 완전한 제술이 있었다.
"그리고 진 장군, 한 가지만 더 부탁합시다. 백청련이 아직 천지 감옥에 있습니다. 그녀를 구해주고 이것을 전해주십시오."
진남은 당부하며 다른 옥간을 건넸다.
"걱정 말거라. 지금 바로 가겠다."
진장려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백청련이 부러웠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진남은 공수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제야 옆에 있던 황제 왕립풍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진남, 우리는……."
"걱정 마십시오. 저는 관련 없는 이들한테 피해 주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진남은 그 말만 남기고 돌아보지도 않고 사라졌다.
황제와 수호자들은 그 말을 듣고 진장려가 들고 있는 두 개의 옥간을 보자 기분이 씁쓸했다.
얼마 후, 황성은 다시 예전의 활력을 되찾았다.
무인들은 모두 진남에 대해 떠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남은 그들 마음속에 큰 인상을 남겼다.
* * *
황성의 북쪽에는 오래된 거리가 있었는데, 진남은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앞에는 방원 팔십여 리가 되는 절당이 있었다.
절에는 향이 타고 목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진남은 절당을 훑어보았다.
절당에는 악귀 감옥 못지않은 도의가 흘렀다.
"진남 시주, 안으로 들어오너라."
진자래의 목소리가 절당에서 울려 퍼졌다.
꽉 닫혀있던 나무 문이 스르륵 열렸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었다.
진자래는 커다란 나무 아래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돌 탁자가 있었다.
탁자 위에는 기이한 돌들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불타 무슨 일이냐?"
진남은 물었다.
"진남 시주, 내가 남주에서 역천개명한 것을 알고 있느냐?"
진자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자래의 일은 전설처럼 중주에 퍼졌기에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진자래는 남주에서 천급 오품 무혼을 얻고 중주에 온 후 이성 세력인 보제사에 들어갔다고 했다.
지금은 마녀 천천에게 패하여 삼 위였지만, 그때는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제방 이 위였다.
그런 그는 허공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사흘 밤낮을 불법을 읊어 마도 대제를 물리치기도 했다.
진자래는 절세천재라는 이름에 알맞은 자였다.
"내가 역천개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한 선배님의 도움 덕분이었다."
진자래는 진남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내 추측이 맞는다면 네가 남주에 수련을 하러 온 이유는 황성의 도의 때문이지?"
진남은 살짝 놀랐다.
"어떻게 알았느냐?"
그는 천황도제는 황성에 있는 천황도술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우연이다. 또한 나 스스로의 인과이기도 하다."
진자래는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이번에 온 것은 백령에게 진 신세를 갚기 위함도 있지만, 그 선배님에게 진 신세를 갚고 너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나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진남은 생각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는 천황도술을 깨우치러 온 것이기에 자신의 실력으로 깨우쳐야 했다.
"진남 시주, 오해하지 말거라. 내가 너를 돕는다는 말은 단지 속도를 빨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깨우치는 일은 네 스스로 해야 한다."
진자래는 미소를 짓고 말했다.
"게다가 내가 너를 돕는 것도 수련 중의 일부가 아니겠느냐?"
진남은 그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았다.
'천황도제는 진자래가 역천개명을 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어찌 보면 미리 판을 짠 게 아니었을까?'
"좋다!"
고민을 거듭하던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자래는 속도를 빠르게 할 뿐 결국 진남은 스스로 깨우쳐야 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나는 너에게 신세 하나를 진 것이다."
진남은 진자래를 보며 말했다.
이유 없이 호의를 받을 수 없었다.
둘은 결국 제명쟁탈전에서 적이 될 수도 있었다.
"진남 시주, 아주 빠른 시일 내에 너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진자래는 두 눈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문득 귀엽고 장난스러운 얼굴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진자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망설였지만 결국 물어보지 않았다.
"진남 시주, 먼저 기이한 도의를 깨우치거라. 다 깨우치고 나면 다시 나의 석상 앞에 오너라."
진자래는 말을 마치자 몸이 점점 옅어지더니 금빛으로 변해 먼 곳으로 날아갔다.
진남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악귀 감옥에 들어가 기이한 도의를 깨우치기 시작했다.
열흘 동안 진남은 악귀 감옥, 예불사, 백씨 가문 저택, 황궁 금지 등 기이한 곳을 다니며 기이한 도의를 전부 깨우쳤다.
그의 이마에 나타난 모든 도문들은 하나로 합쳐져 흐릿한 '황' 자로 변했다.
진남은 온몸에 황의 기운이 점점 짙어졌다.
열흘 동안 황실, 진씨 가문, 백씨 가문, 왕부 등 여러 거물급 세력들이 진남을 연회에 참석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진남은 전부 거절했다.
황제는 아무도 진남을 방해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
* * *
열하루가 되던 날 아침.
진남을 발끝으로 땅을 차고 빛이 되어 성 중앙에 있는 석상의 어깨로 날아갔다.
석상을 지키던 병사들은 깜짝 놀라 화를 내려다가 진남의 얼굴을 확인하고 공손하게 물러갔다.
"진남 시주, 이제 시작해보자."
석상이 금빛으로 반짝이더니 진자래가 깨어났다.
"그래!"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전신의 왼쪽 눈을 움직이며 집중했다.
"인과윤회(因果輪回), 세간무법(世間無法), 만불행주(萬佛行走), 도세무강(渡世無疆)"
진자래는 두 손을 합장하고 우렁찬 목소리를 냈다.
황성에 있던 무인들은 깜짝 놀랐다.
그의 손바닥에서 눈부신 불광이 뿜어지더니, 불광이 홍수처럼 황성을 덮었다.
"응?"
진남은 두 눈에 이상한 빛이 스쳤다.
그는 황성의 무인들이 전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거리마다, 건물마다, 나무마다 심지어 돌멩이까지도 옅은 도의를 풍겼다.
몰라서 보면 황성은 마치 도의로 된 성 같았다.
이중 진씨 가문, 백씨 가문, 황궁, 악귀 감옥, 예불사, 향루 등의 도의는 검은색을 띠어 다른 곳과 달라 보였다.
무척 눈부시고 두터웠다.
"진남 시주, 보이느냐?"
진자래가 물었다.
그는 볼 수 없었다.
다만 예전에 선배가 말했던 방법대로 할 뿐이었다.
"보여."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고 두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황성에서 겪은 것들을 떠올렸다.
그의 마음속에 희미하게 깨달았던 것들이 또렷해졌다.
그는 손가락으로 한곳 한곳 짚었다.
손가락이 닿는 곳은 모두 의미가 있는 장소였다.
"거리에서 처음 분쟁이 생겼다."
"향루에서는 도움을 받았지."
"진씨 저택에서는 크게 싸웠다."
"백선각에서는 돌을 베며 황후를 만났다."
"감옥에서는 화를 내서 사람들을 놀래켰지."
"그리고 불타를 다시 만나 도의를 깨우쳤다."
그는 손가락으로 마지막 장소를 가리켰다.
놀라운 장면이 벌어졌다.
황성의 도의들은 오래된 거리, 향루, 진씨 저택 등에 미친 듯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오래된 거리, 향루 내부, 진씨 저택 대문, 백선각 내부, 악귀 감옥 안쪽, 예불사 밖의 모든 도의들이 빛으로 변해 하늘로 솟구쳤다.
어둠 속에서 태고의 형상이 무궁무진한 도의를 붓처럼 휘둘렀다.
한 획씩 긋어지더니 마지막엔 커다란 글자를 이루었다.
'황(荒)'
그러나 이 모습을 황성의 무인들은 볼 수 없었다.
그들은 다만 진남이 진자래의 어깨에 앉아 있고 석상에서 금빛을 뿜는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하하! 역시 그렇구나."
진남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가 황성에서 겪은 일들은 모두 의미가 있었다.
모두 수련을 위한 준비였다.
그는 기이한 곳의 도의를 전부 깨달은 후 전체 성의 도의를 깨달았다.
그래서 황 자 나타난 것이었다.
진불회가 나타났기에 그는 한 걸음을 적게 가고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대단하다. 이도 결국 수련의 시작일뿐이다. 천황도제 선배님의 신통함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진자래는 감탄했다.
그는 황이라는 글자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황은 그저 글자 불과했다
황 자의 도의를 전부 흡수하면 그때부터 진정한 깨우침이 시작되었다.
"이번에 네 덕이 컸다. 다른 말은 더하지 않겠다. 그리고 나는 이제 폐관수련을 해야겠어."
진남은 포권했다.
"그래."
진자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남은 심호흡하고 신념을 전부 미간에 있는 흐릿한 글자에 주입했다.
그의 미간에 새겨진 글도 황이 틀림없었다.
그는 황을 통해 황자 도의를 흡수해야 했다.
바로 그때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진남의 가슴에 네 개의 용 그림자가 나타나 서로 엮이더니 가운데 숫자가 계속 변했다.
"응?"
진남과 진자래는 깜짝 놀랐다.
'제방 순위가 지금 변한다고?'
진남은 납계에 넣은 유영루 특수 영패가 강렬한 빛을 뿜는 것을 발견했다.
유영루에서 소식을 전한 것이다.
유영루에서 스스로 나서 소식을 전한다는 건 큰일이라는 뜻이었다.
진자래는 무언가 깨달았는지 보기 드물게 표정이 변했다.
"뭐야? 신방이 연 제명쟁탈전이 끝났어? 열세 명의 천재가 제명을 얻는다니?"
"열세 명의 천재?"
진남은 깜짝 놀랐다.
예로부터 신방이나 제방이 연 제명쟁탈전에서 제명은 일곱에서 아홉 개였다.
많아봤자 열 개였다.
지금껏 예외는 없었다.
'그런데 오늘 열세 개가 나타났다니?'
진남과 진자래는 서로 마주 보았다.
그들은 상대방의 시선에서 신광이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무제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여 많은 비밀들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제명쟁탈전이 앞당겨 열리고 이변이 일어난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다만 그들이 아직 모를 뿐이었다.
"신방의 제명쟁탈전에 열세 개의 제명이 나타났다고 하니 제방의 제명쟁탈전에도 열 개 이상의 제명이 나타날 거다. 진남 시주, 그때가 되면 나는 너와 연합할 수 있다."
진자래는 정신을 차리고 가볍게 웃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명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좋은 일이었다.
기회가 그만큼 많아진다는 뜻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