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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전혼-608화 (608/1,498)

608화 순원상선주

"누구를 죽인다는 거냐?"

진남은 시선이 차가워졌다.

"거야 당연히 너희들……."

용의 혼은 돌아서서 고함을 지르려다가 진남과 시선이 마주치자 눈이 작아지고 두려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아홉 개의 무수가 솟아올라 그를 진압하던 공포스러운 장면을 잊을 수 없었다.

눈앞의 사내는 창람의 무도규칙을 초월했다.

촤륵-!

진남은 오른손을 휘둘렀다.

단천도기가 용의 혼을 박살 냈다.

산골짜기 전체가 조용해졌다.

흑룡 통령과 흑룡 강자들은 넋을 놓고 그 장면을 지켜봤다.

진남이 용의 혼을 베는 것에 그들은 놀라지 않았다.

진남의 단천도는 세상 만물을 벨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용의 혼이 두려워하는 표정을 똑똑히 보았다.

'용의 혼이 진남에게 두려움을 느꼈어?'

'설마…….'

사람들은 놀라서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은 믿을 수 없었다.

'고작 무조 육 단계인 진남이 반제 등급의 지옥전천룡을 죽일 수 있을까?'

믿을 수 없었지만, 그들이 진남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이 사내는 단천도를 가졌다는 것만 대단한 게 아닌 것 같다…….'

산골짜기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흑룡의 강자들은 파란색 불을 피우고 커다란 철 지지대를 만들어 용을 구웠다.

그 위에 영약으로 만든 조미료를 뿌리기도 하고 영약을 부숴서 호랑이 기름에 넣고 용 고기에 바르기도 했다.

잠시 후, 향기로운 냄새가 산골짜기에 퍼졌다.

진남은 냄새를 맡고 노랗게 구워진 용 고기를 보자 식욕이 생겼다.

"진남."

그때, 청아한 목소리가 월광동 입구에서 울려 퍼졌다.

진남과 흑룡 일행은 소리를 따라 돌아보고 넋이 나갔다.

묘묘공주는 흰색 치마로 갈아입었고 나왔다.

치마 위에는 금사로 수놓은 봉황 그림이 있었고, 그녀는 홍목 비녀로 머리를 올려 하얀 목을 드러냈다.

그녀는 목에 선기를 풍기는 청색 옥 목걸이를 걸었고 팔에는 진천이 준 옥팔찌를 했다.

월광동에서 쏟아져 나오는 달빛이 그녀를 감쌌다.

그녀의 완벽하고 영롱한 몸매는 중생들 위에 군림한 신명의 기운을 풍겼는데, 사람의 심신을 혼미하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는 그림 속 선녀 같았고 인간 세상에 내려온 신녀 같았다.

"아, 아름답다……."

흑룡의 부통령은 저도 몰래 중얼거렸다.

그는 부통령이 된 이후 얼마나 많은 여자 무인들을 만났는지 모른다.

절세미인이라고 불리는 여인들도 간혹 있었지만, 지금처럼 넋을 놓은 적은 없었다.

"멍하니 서서 뭐 해. 얼른 올라오거라."

묘묘공주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곧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그녀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어? 어어, 그래."

진남은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월광동에 날아올랐다.

월광동은 전과 달라졌다.

벽에는 옛 그림들이 걸려있었는데 그림에는 용도 있고 봉황도 있으며 오래되고 기이한 나무와 신비하고 아름다운 칠색 꽃들이 그려져 있었다.

달빛을 받은 그림은 살아있는 것 같았다.

"공주, 이, 이건 왜 이렇게 한 거야?"

진남은 뒤늦게 심장이 뛰었다.

"이건……."

묘묘공주는 눈을 굴리더니 말했다.

"순원상선주는 얻기가 무척 어려운 귀한 술이야. 그래서 마시기 전에 예의를 차려야지. 아니면 이 술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아, 그렇구나."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

"이건 팔선봉신탁(八仙鳳神卓)이야. 팔선목으로 만들었지. 이건 오제주배(五帝酒杯)야. 어떤 대제가 술을 무척 좋아해서 특별히 만든 술잔이라고 해. 가장 좋은 술을 마실 때 사용하는 거지. 그리고 이건……."

묘묘공주는 납계에서 물건들을 꺼내 차례로 놓았다.

"공주, 용 고기가 익었습니다."

이때, 동굴 밖에서 흑룡 통령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 가져오너라."

묘묘공주는 눈을 반짝거렸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흑룡 통령은 대답을 하고 여섯 개의 홍옥 쟁반을 들고 왔다.

팔선봉황탁에서 풍기는 팔선의 기운은 쟁반에 담긴 노란 용 고기를 감쌌다.

향기롭던 고기 냄새에 미묘한 변화가 생겨 마치 신선들의 음식 같았다.

"오호, 고기를 잘 구웠구나. 다들 수고했다. 이 술은 너희들이 마시거라."

묘묘공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손을 흔들어 다섯 주전자의 영주를 흑룡 통령 일행들에게 주었다.

"이, 이건…… 적염홍천주(赤焰紅天酒)?"

흑룡 통령은 보고 들은 것이 많았다.

그는 바로 술을 알아보고 몸을 떨었다.

그는 적염홍천주를 멀리서 한 번 본 게 다였다.

그것을 마실 실력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공주는 한 번에 다섯 주전자나 내놓았다.

"고맙습니다, 공주."

흑룡의 강자들은 격동되어서 얼른 인사를 했다.

묘묘공주는 입을 다물고 웃었다.

그녀가 손을 휘두르자 보이지 않는 금제가 동굴 입구를 막았다.

월광동은 조용해졌다.

"순원상선주도 됐다."

묘묘공주는 진남의 앞에 앉아 운소고목 통을 꺼냈다.

그녀는 다섯 손가락에 영광을 뿜으며 조심스럽게 나무 마개를 열었다.

진남은 눈을 깜박하지도 않았다.

공주가 이런 대우를 하는 순원상선주가 대체 어떤 맛인지 그도 궁금했다.

나무 마개를 뽑는 순간 청색 빛이 뿜어지고 짙은 술 향이 흘러나왔다.

진남은 저도 몰래 숨을 들이켰다.

온몸이 시원하고 심신이 안정되어 모든 고민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술 향은 묘묘공주가 친 금제도 뚫고 월광동 밖으로 흘러나가 산골짜기를 가득 채웠다.

"이건……."

흑룡 통령 일행은 놀란 표정을 드러냈다.

그들은 술을 잘 몰랐지만, 술 향만 맡아도 적염홍천주보다 훨씬 좋은 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떠냐, 좋지?"

묘묘공주는 으쓱해서 진남을 바라보았다.

"술 향만으로도 심신을 감동시키는구나. 순원상선주는 역시 선주다."

진남은 감탄했다.

그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술 향을 맡자 흥미가 생겼다.

묘묘공주는 그 말을 듣자 달콤하게 웃었다.

그녀는 순원상선주를 오제술잔에 각각 따랐다.

금빛과 청색이 섞인 술이 술잔에 흘러들자 잠잠하던 오제술잔에서 대제의 빛을 뿜었다.

빛은 다섯 마리의 용으로 변하더니 주변에서 헤엄쳤다.

좋은 술을 술잔에 따르니 다섯 용이 춤을 췄다.

진남은 눈앞이 환해졌다.

그는 마음이 급해져서 손을 뻗었다.

빨리 순원상선주의 맛을 보고 싶었다.

"잠깐."

묘묘공주는 진남의 의혹이 가득한 표정을 보며 말했다.

"순원상선주는 양이 적어서 우리 둘이 각각 석 잔밖에 마실 수 없다. 그러니 마시기 전에 축배의 말을 하는 건 어때? 이런 기회는 흔치 않잖아."

"축배의 말을 하자고?"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응."

묘묘공주는 진남을 바라봤다.

그녀의 커다란 두 눈이 달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녀는 술잔을 들고 말했다.

"첫 잔은 네가 현령종에 있을 때 나를 만난 것을 축하해. 이건 하늘이 정해준 것이기에 도망갈 생각을 하지 말고 내 말을 잘 들어야 해."

"하하, 가슴에 새기마!"

진남은 호탕하게 웃었다.

둘은 술잔을 부딪치고 고개를 들어 단숨에 마셨다.

술이 목구멍을 적시자 수많은 향기로 변했다.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한 기분이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아올랐다.

진남도 참지 못하고 '좋다'라고 외쳤다.

'이런 게 진짜 선주다!'

그때, 방대하고 웅장한 순원의 힘이 밀려왔다.

마치 진남의 몸속에 끝없는 바다가 생겨 그의 몸은 터질 것 같았다.

순원상선주는 유실 약원 장로가 삼 년 동안 공들여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맛도 좋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무조 정상급의 강자도 한 번에 다 들이키면 그 힘에 중상을 입을 수 있었다.

"거두거라!"

진남의 몸속에서 아홉 개의 무수가 동시에 울리더니 엄청난 흡입력을 발휘하여 순원의 기를 빠르게 흡수했다.

진남은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아홉 개의 무수가 있었다.

하지만 무제 강자도 감당하기 어려운 영주라면 그도 감당할 수 없었다.

"이 술은……."

순원의 힘을 흡수한 진남은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는 아홉 개의 무수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한 잔 술에 진남의 무수는 전부 반 장씩 성장했다.

'이대로라면 석 잔을 다 마시면 경계를 돌파할 수 있지 않을까?'

"어, 너 돌파하지 못했어?"

묘묘공주는 눈을 크게 뜨고 진남을 살폈다.

그녀는 마치 호기심이 많은 아이 같았다.

그녀는 순원상선주 한 잔이면 진남의 다섯 무수가 돌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하, 너 나한테 숨기는 게 적지 않구나."

묘묘공주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자 입을 삐죽거리며 작은 주먹을 휘둘렀다.

그녀는 두 번째 잔을 따라주며 당부했다.

"진남, 한입에 다 마시지 말거라. 석 잔밖에 없어서 천천히 마셔야 해."

"음, 맞아."

"그럼 빨리 나에게 고기 먹여줘야지? 왜 이렇게 멍청해!"

"방금 그런 말이 없었잖아."

"휴, 그걸 꼭 내가 말해야 해? 스스로 알아서 해야지. 내가 방금 왼쪽 손을 탁자 위에 올렸잖아. 이렇게 명확한 행동도 안 보여?"

"……나를 괴롭히는 거지?"

"하하, 내가 너 괴롭히는 거 이제야 알았어?"

둘은 달빛을 받으며 팔선봉선탁자에 앉아 용 고기를 먹고 선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선주 때문인지 진남은 평소와 달랐다.

그는 말문이 트인 것처럼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심지어 재미있는 말도 여러 개 해서 묘묘공주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 * *

월광동 밖에 있는 흑룡 일행은 동굴 안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흑룡 강자들은 놀란 표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적염홍천주보다 몇 배 더 좋은 술이야!'

'진남이 단숨에 한 잔을 마셨어!'

'그들은 적염홍천주 한 잔을 마시더라도 엄청난 힘으로 진압해야 했다.

"설마…… 그 용도……."

강자들은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그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반제 등급의 지옥전천룡을 경지가 고작 무조 육 단계인 진남이 죽였을까?'

* * *

바로 그때, 전황고림.

세 그림자가 귀신처럼 수림 속을 날아다녔다.

그들은 허무노인, 진후, 남궁위였다.

"어? 술 향기가 무척 짙구나!"

진후는 걸음을 멈추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상한 술 향기이다. 향만 맡아도 평범한 술은 아니구나. 이건 선(仙)과 연관이 된 선주다!"

허무노인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술을 좋아해서 술에 대해 조금 알았다.

"설마 진남 그놈인가?"

남궁위는 저도 몰래 물었다.

"아닐 거다."

진후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진남은 용제원의 봉주일 뿐이다. 큰 신분이나 지위가 없다. 그러니 좋은 영주를 가지고 있을 리도 없지! 어찌 되었든 한번 가보자!"

허무노인과 남궁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뒤에 어떤 기연을 만난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발걸음을 멈추거라. 앞은 너희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한 노인이 그들 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허무노인 일행은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이곳에 다른 사람이 있을 줄 몰랐다.

"누구냐?"

허무노인은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다."

노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살고 싶으면 얼른 가거라."

말이 끝나자 노인의 주변으로 제광이 떠올랐다.

허무노인 일행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제광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반제거나 진짜 무제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반제나 무제나 그들 셋이 건드리는 건 무모한 선택이었다.

게다가 앞에서 풍기는 술 향으로 보아 이곳에서 그들이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가자! 우리 다시 상의해보자!"

허무노인은 낮게 전음하고 바로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

진후와 남궁위는 아쉬웠지만 차마 드러내지 못했다.

그들은 아쉬움만 잔뜩 안고 얌전히 자리를 떴다.

노인은 그들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돌아서서 산골짜기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는 탄식하더니 허공에 천천히 녹아들어 천지와 하나가 되었다.

허무노인 일행들이 이 모습을 봤다면 자신들이 옳은 선택을 했다고 기뻐할 것이었다.

아니면 그들은 무제 강자와 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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