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8화 연환전장
"자네들 통령은 어디 있소?"
진남은 빠르게 물었다.
진남의 모습을 본 좌천수는 진남이 통령의 옛 친구라는 걸 확신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통령은 지금은 다시 만날 때가 아니라면서 후에 기회가 되어야만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하셨소."
"응? 다시 만날 때가 아니라고?"
진남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슨 뜻이지? 설마 궁양이 어려움에 부딪혀 지금 만날 수 없나? ……됐다. 궁양이 이렇게 말하는 건 이유가 있을 거다. 그의 행방이라도 알았으니 충분하다.'
속으로 실망했지만, 진남은 내색하지 않았다.
"아, 깜빡했소. 이 물건이 아직도 내 손에 있는데……."
진남은 명성고성에서 얻은 구자천신과 연관 있는 얼굴 없는 조각상이 생각나 좌천수를 보며 공수하고 말했다.
"좌 통령, 자네들 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좌 통령께서 대신 전해줄 수 있겠소?"
"말을 전해달라고?"
좌 통령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아직도 진남이 불편했다.
그는 통령이 너무 의리를 중하게 여긴다고 생각했다.
옥간 같은 귀중한 물건을 진남에게 주는 건 손실이 크다고 생각했다.
옥간의 가치가 무척 컸다.
흑룡이 줄곧 욕심냈고 얼마 전에 곽무룡 등 제자들이 비싼 가격을 제시했다.
그러나 혈갈은 거절했다.
'한데, 나더러 말을 전해달라고?'
진남은 제방 서열 구십육 위의 천재이지만 좌 통령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제명쟁탈전이 시작되면 제방 서열 삼십 위에 든 천재들도 많이 죽을 것이었다.
진남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좌천수는 뭔가 생각난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을 전해주는 건 문제 없소. 나도 자네에게 할 말이 있소. 우리 통령은 줄곧 자네를 개세천재라고 칭찬하고 스스로 자네보다 못하다고 했소.
나는 천재와 사귀는 걸 좋아하오. 내가 자네보다 나이도 많으니 선배나 마찬가지요. 처음 후배를 만났는데 선배로서 후배에게 선물을 줘야 하지 않겠소? 이 삼원중수(三元重水)는 내가 주는 선물이요."
말을 마친 좌천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몸에서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그가 왼손을 휘두르자 손바닥만 한 파란색 물방울이 진남을 향해 날아왔다.
커다란 독실이 바다가 된 것처럼 철렁철렁 파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좌천수 옆에 서 있던 수포를 입은 노인은 동정하는 표정으로 진남을 바라보았다.
그는 삼원중수의 위력을 잘 알았다.
지난번에 제방 서열 팔십삼 위의 천재는 온갖 수단을 써 겨우 버텼다.
상처도 꽤 입었다.
'진남은 아마 중상을 입겠지?'
진남은 눈길이 싸늘해졌다.
그는 좌천수가 자신을 공격할 줄 몰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왼쪽 눈을 움직여 삼원중수의 오묘함을 꿰뚫어 봤다.
물방울은 큰 산을 부술만한 방대한 힘이 있었다.
"오늘 자네에게 통령의 형제가 약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겠소."
진남은 결심하고 왼손을 뻗어 삼원중수를 잡았다.
"손으로 잡겠다고?"
좌천수와 수포를 입은 노인은 깜짝 놀랐다.
'삼원중수는 위력이 대단하다. 근데 한 손으로 잡겠다고?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그때, 놀랄 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진남의 왼손이 삼원중수를 잡는 순간 강대한 중력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진남의 왼팔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펑 하는 큰소리와 함께 진남의 발밑에 틈이 생겼다.
틈은 주변으로 퍼져 커다란 거미줄처럼 순식간에 독실을 가득 채웠다.
"받, 받았어……?"
좌천수와 수포를 입은 노인은 믿기지 않아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짐작이 틀리지 않다면 진남 봉주의 왼팔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역시 좌천수는 혈갈 부통령이라 빠르게 알아차리고 감탄했다.
"대단하오, 실로 대단하오. 오늘 나는 견식을 넓혔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남이 말했다.
"미안하오. 이 선물이 나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소."
진남은 왼손 다섯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쿵-!
삼원중수가 폭발하여 안개로 변하여 독실에 가득 찼다.
바다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를 본 좌천수와 수포를 입은 노인은 마치 벼락을 맞은 것만 같았다.
"이 말을 전해주시오. 선배님, 얼굴 없는 조각상을 찾으러 오십시오."
진남은 두 사람을 힐끗 보더니 돌아서 떠나갔다.
독실 안의 좌천수와 수포를 입은 노인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숨을 들이켰다.
'삼원중수다! 받으려고 해도 큰 힘을 써야 한다!'
'그런데 가볍게 움켜쥐어 산산조각 내다니? 대체 얼마나 대단한 힘이 있는 거지?'
그들은 진남이 진정한 힘을 쓰지 않았다는 걸 몰랐다.
"통령의 옛 친구는 보통이 아니오. 통령이 왜 옥간을 저 자에게 줬는지 이해되오. 저자의 진짜 전력은 서열 구십육 위 정도가 아닐 거요."
좌천수는 저도 모르게 감탄하더니 소리쳤다.
"어서 사람을 시켜 진남 봉주가 한 말을 통령에게 전하시오! 거기 서서 뭐 하는 거요? 아, 아니요. 내가 직접 가겠소!"
좌천수는 미처 반응하지 못하는 수포를 입은 노인을 혼자 남겨두고 독실을 나갔다.
* * *
같은 시각, 잔양성 거리.
진남은 뭔가 생각하더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궁양이 콕 집어서 곽무룡 삼대 제자, 표묘환부의 반제 등의 정보를 나에게 알려준 건 여러 세력이 나를 쫓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건가?'
"한마디도 없이 이렇게 큰 선물을 준비했구나."
진남은 중얼거리며 다시 신식을 옥간에 주입했다.
독실 안에서 그는 연황전장의 지도를 자세히 확인해 보진 못했다.
'연황전장에는 예로부터 전기가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기의 강도에 따라 외(外), 중(中), 내장으로 나뉜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전기가 짙고 무인에 대한 영향도 더 크다.
연황전장에는 아무런 전기가 없는 채색대로가 있다. 채색대로를 따라 바로 반신지국에 들어갈 수 있다.'
"응? 이 열몇 곳은 연황전장의 금지구나. 예전에 싸움에 참가했던 무제들도 함부로 가지 못했다고?"
진남은 자세히 살펴봤다.
잠시 후, 그는 지도에 그려진 내용을 전부 기억했다.
"먼저 중장으로 가보자. 진짜 그런 물건이 있다면 연황전장에 온 보람이 있을 거야!"
진남은 결심하고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예전에 연황전장에서 수없이 많은 싸움이 일어나 수많은 강자들이 죽었다.
강자들의 시체는 전기의 영향을 받아 기이한 변화가 생겼다.
어떤 이는 악마가 되고 어떤 이는 수라가 되고 또 어떤 이는 무주무혼(無主武魂), 제술이상, 무주무수(無主武樹)가 되었다.
그는 무주 무조 나무가 마음에 들었다.
진남은 아홉 그루의 무조 나무를 진급해야 하기에 다른 천재들보다 몇 배나 어려웠다.
만약 무주무수를 연화하면 빠르게 진급시킬 수 있을 터였다.
* * *
진남이 잔양성을 떠난 후 잔양성의 대문 앞에 제의를 입고 얼굴을 가린 여인이 나타났다.
"예쁘구나!"
"면사포를 쓰고 있는데 예쁘다는 거요?"
"기품, 몸매만 봐도 알 수 있소. 가보겠소?"
"죽고 싶소? 제기의 옷을 입은 걸 보지 못했소?"
얼굴을 가린 여인이 잔양성에 오자 거리에 있던 무인들은 흥분하여 소곤거리며 여인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봐, 유영루의 무인들, 다 나오거라."
얼굴을 가린 여인은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길옆에 있던 무인들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표정이 변하지 않고 나서지도 않았다.
"말을 듣지 않는구나."
얼굴을 가린 여인은 귀찮은 듯 새하얀 손으로 붉은색 영패를 꺼내 흔들었다.
무인들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적귀령?'
'적귀령을 갖고 있다니?'
화르륵-
무인들은 놀라는 동시에 빠르게 반응하였다.
그들의 몸에서 흑기가 솟아오르더니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그들은 빠르게 움직여 얼굴을 가린 여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길옆에 있던 무인들은 안색이 변했다.
'저 여인은 신분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것 같구나.'
얼굴을 가린 여인이 말했다.
"진남은? 그가 잔양성에 온 걸 안다."
"진남이요?"
유영루의 제자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공손하게 말했다.
"어르신께 아룁니다. 진남 봉주는 방금 잔양성을 떠나 연황전장에 들어갔습니다."
"연황전장에 들어갔다고?"
얼굴을 가린 여인은 화가 난 듯 이를 깨물며 말했다.
"이 자식, 매번 내가 오면 떠나는구나. 전혀 나를 안중에 두지 않는구나. 흥!"
그녀는 말하면서 연황전장 방향으로 걸어갔다.
몇 걸음 가더니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제자들에게 신념을 전했다.
"돌아가 너희들 주인에게 알리거라. 진남은 나의 사람이니 아무도 그자를 공격할 생각하지 말라고."
* * *
그 시각, 진남은 시커먼 땅 위에서 앞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앞에는 끝없는 땅이 있었다.
하늘 가득한 전의와 깨진 커다란 궁전 법보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연황전장의 외장이었다.
진남은 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체내의 모든 힘을 드러낼 것 같았다.
그는 기분이 좋았다.
하늘 가득 퍼진 전의는 그의 집처럼 익숙했다.
마치 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았다.
"연황전장에서 다른 사람들은 깊게 들어갈수록 더 세게 눌렸다. 그러나 나는 깊게 들어갈수록 더 큰 힘을 폭발시킬 수 있다."
진남의 왼쪽 눈에 찬란한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끝없는 전의가 그에게 도움이 되었다.
"응? 저것이 바로 채금대로인가?"
진남은 속도를 늦췄다.
그의 왼쪽 앞 몇십 리 밖에 하늘로 끝없이 뻗은 일곱 가지 색이 나타났다.
"진짜 기이하구나."
진남은 그쪽으로 날아갔다.
무지개 같은 큰길을 본 그의 눈에 이상한 빛이 반짝거렸다.
그는 방금 왼쪽 눈으로 꿰뚫어 봤다.
채금대로는 하나의 법보처럼 하늘 가득한 전의의 영향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력으로도 파괴할 수 없었다.
한참을 관찰하던 진남은 몸을 돌렸다.
연황전장의 모든 것들이 그에게 딱 맞았다.
그는 빨리 실력을 일정한 수준까지 높여야 했다.
그러고 다시 반신지국에 갈 생각이었다.
한참을 날던 진남은 땅 위의 골짜기, 틈, 흔적 등이 점점 많아지는 걸 발견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옅은 의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드디어 뭔가 나타났구나."
진남은 눈에 빛이 반짝거리더니, 다섯 손가락 끝에 도기를 반짝였다.
진남은 세 시진을 더 날았다.
그는 적지 않은 마물도 죽였다.
다만 마물들은 악념, 살념 등이 변한 것이라 강하지 않았다.
그는 몇 번 죽이고는 더는 공격하지 않고 떠나갔다.
또, 그는 기운이 약한 보물들을 만났을 때도 손을 쓰지 않았다.
이런 보물들은 지금의 그에게는 아무런 작용이 없었다.
"중장에 도착했다. 이제 압박이 조금 느껴지는구나."
진남은 앞을 바라보았다.
시커먼 땅 위에 골짜기가 사방으로 뻗어있고 매우 난잡했다.
일부 땅은 아직도 암홍색을 띠고 예전에 싸우던 의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일부는 엄청난 이상으로 변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예전의 싸움들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알 수 있었다.
휙-!
이때, 엄청난 살기를 띤 화염 화살이 날아왔다.
진남은 왼손을 내밀어 화살을 잡고 고개를 돌렸다.
공격한 사람은 십 리 밖에 있는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등에 화살통을 메고 손에 활을 잡고 있었다.
시뻘건 두 눈은 살기가 엄청났다.
생전에 강자였던 걸 알 수 있었다.
그림자는 진남의 능력을 느낀 듯 그림자는 바로 돌아서 도망쳤다.
"도망치려고?"
진남은 빠르게 쫓아왔다.
그는 순식간에 그림자의 머리 위에 도착한 후 주먹을 날려 그림자를 부쉈다.
"응? 이건 뭐지?"
아래의 골짜기에서 진남은 흰색 손바닥을 발견했다.
손바닥에서 기이한 작은 꽃이 많이 자랐다.
"진짜 깨끗한 힘이구나. 손바닥은 전기의 영향으로 이보가 된 것 같구나."
진남은 눈에 기이한 빛이 스치더니 손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