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7화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느냐?
"나는……."
대장로는 심호흡하더니 말했다.
"당청산! 진남이 네 사제이고 천도문에 온 것이 규칙에 어긋나지 않지만, 반드시 도왕비 심사를 거쳐야 한다! 만약 도의가 부족하면 들어갈 수 없다. 이게 규칙이다! 게다가 진남은 우리 문파 추적 명단 백은 등급에서 삼 위인 자이다. 그러니 도의가 반 장 깊이는 되어야 천도문에 들어갈 수 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도왕비에 도의를 반 장이나 남기는 일은 진남이라도 불가능할 것이었다.
다른 세력에서 가장 강한 무인이라 해도 흔적을 조금밖에 남기지 못했다.
이는 대장로가 일부러 진남을 곤란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다른 방식으로 진남이 천도문에 입장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도제도 당청산을 지지한다. 그래서 진남이 당청산과 함께 있다면 나는 그를 공격하지도 못해. 그런데 진남이 천도문에 들어오지 못하면 또 그를 혼내 줄 기회도 없구나. 아쉽다……'
가장 우울한 사람은 최립허였다.
진남을 단단히 혼내 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몇 마디 비웃을 기회밖에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당청산은 말없이 진남을 바라보았다.
"좋습니다. 대장로. 반 장 깊이만큼 칼로 흔적을 남기면 되지요? 나중에 딴말하기 없습니다."
진남은 공수하고 말했다.
"나는 천도문 대장로이다. 그런 내가 한 말을 번복하겠느냐? 네가 도왕비에 도의로 반 장 깊이의 흔적을 새긴다면 다른 세력의 천재들과 같은 대우를…….'
대장로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그때,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슉 하는 소리와 함께 진남이 손을 썼다.
그는 오른손을 펴더니 손바닥을 세워 칼처럼 휘둘렀다.
그러자 엄청난 도의가 뿜어져 나와 도왕비를 베었다.
쿵 하고 커다란 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높고 우뚝 솟은 도왕비가 두 동강이 났다.
잘린 면은 깔끔했다.
도왕비가 박살이 났다.
"이게 대체……."
"도왕비가 잘렸다!"
"진남의 도의가 이렇게 대단했어?"
"진남은 용제원 내문제자 일 위야, 아니면 천도문 내문제자 일 위야? 내가 보기에 당청산의 도의만이 진남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대장로와 다른 장로들, 최립허 일행 그리고 다른 세력의 제자들은 숨을 멈추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도왕비는 강력한 이보였다.
지금까지 박살을 낸 사람은 없었다.
"자, 가자!"
당청산은 대장로를 힐끗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남은 공수를 하고 당청산의 뒤를 따라갔다.
둘은 당당하게 정문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가자, 빨리 가서 장로 회의를 열자!"
대장로는 정신을 차렸다.
그는 둘의 뒷모습을 보며 음침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손을 흔들며 허공을 찢고 사라졌다.
다른 장로들은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진남이 천도문에 가서 도왕비를 박살 냈다는 소문이 천도문 전체에 퍼졌다.
양대 도제 외의 모든 사람은 깜짝 놀랐다.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당청산과 진남이 사형제였어?"
"듣자 하니 동주 어느 하역에서 함께 왔다고 하던데, 사형제일 수도 있지."
"도왕비를 박살 냈다니……. 천도문 내문제자들 중에서도 당청산 사형의 도의만이 진남과 견줄 수 있겠어!"
"지금 장로 회의가 열렸대. 진남을 죽이려는 게 분명해!"
"허허, 당청산 사형이 지키고 있는데 누가 감히 건드려?"
제자들의 떠드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다른 세력에서 온 천재들도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천도문 제자들의 예상대로 장로 회의에서는 한바탕 논쟁을 펼쳤지만,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진남은 천도문의 뺨을 때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한가?
당청산의 사형은 천도문 도제였다.
도제가 있는 한 아무도 당청산을 건드릴 수 없었다.
천도문의 진전제자 서열 일 위가 직접 나선다면 또 모를까.
* * *
내문 제이 대전.
대전은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내문제자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최립허의 안색을 보자 알아서 입을 닫았다.
"후!"
최립허는 힘껏 숨을 내쉬었다.
그는 표정이 밝아지며 말했다.
"진남이 천도문에 들어온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다. 문무(文舞) 사저가 구도고봉이 열릴 때 천재도회(天才刀會)를 열고 싶어했지? 문무 사저에게 진남을 요청하라고 해야겠어."
"좋은 생각입니다!"
"사형은 역시 똑똑하십니다. 그럼 다른 사람 손을 빌려 진남을 죽이거나 진남에게 모욕을 줄 수도 있겠습니다."
내문제자들은 한마디씩 했다.
문무는 천도문의 진전제자였다.
제방 서열은 이십칠 위이고 최립허와 함께 천도문 양대 도제 중 천광도제(千光刀帝)의 제자였다.
구도고봉이 열리면 여러 세력의 칼을 쓰는 무인들이 모여든다.
문무는 그 말을 듣고 흥미가 생겨 천재도회를 열어 그들을 만나보려 했다.
문무는 천도문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천도문의 적들이었다.
그녀는 한 달 동안 추살 명단 천도문 청동 등급과 백은 등급의 적들을 쫓아다닌 적도 있었다.
그녀가 진남을 만나면 당청산 때문에 당장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진남에게 재수 없는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 * *
내문 제일 대전.
천도문 전체에 긴장감이 돌았지만 제 일 대전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 같았다.
대전은 단정하고 깔끔했다.
나무 의자 두 개와 탁자 하나가 있고, 나무 탁자에는 두 쌍의 수저와 두 개의 찻잔이 있었다.
진남은 마치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청산은 대전에 들어서자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살기가 사라졌다.
그는 진남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등에 멘 흑도를 의자에 내려놓고 보기 드문 미소를 지었다.
"맹아, 진남이 왔다."
흑도는 작게 진동하며 즐거워했다.
"사저, 오랜만입니다."
진남은 코끝이 찡했다.
그러나 곧 감정을 추스르고 미소를 지었다.
"들어가서 스승님과 사형들을 만나고 오너라."
당청산이 말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새하얀 벽에는 청룡 성주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청룡 성주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옆에는 단목봉주, 나 봉주, 장 봉주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의 기교가 뛰어나서 그림 속 사람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스승님, 그리고 사형들……."
진남은 넋을 놓고 서 있었다.
청룡성지에서 있었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참혹한 운명이었지만 진남에게는 아직 당청산이 있었다.
그와 당청산은 청룡 성주, 단목봉주, 나 봉주, 장 봉주의 뜻을 어깨에 짊어졌다.
진남은 이들이 죽은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있다고 생각했다.
진남은 바로 무릎을 꿇고 절을 세 번 하고 작은 방에서 나왔다.
"비양 성지에서 네가 나에게 청룡 성지를 잊지 말라고 해줘서 너무 고맙다. 때로는 저도 몰래 주화입마에 빠지는 경우가 있어서 화성(畵聖,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에게 청해 스승님과 사형제들의 초상화를 그려 나를 지켜보게 했다."
당청산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혼탁했던 그의 두 눈이 맑아졌다.
"진남,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선택한 길이다. 나는 살신과 하나로 되기로 했다. 살신을 뛰어넘으려면 내가 먼저 살신이 되어야 한다."
"살신을 뛰어넘으려고 스스로 살신이 되겠다고요?"
진남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는 앞서 당청산이 순위전에서 싸우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방금 도장에서 한 행동도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당청산은 이제 자신의 길을 찾은 것이었다.
"선배님, 축하드립니다."
진남은 진심으로 말했다.
"선배님께서는 꼭 성공하실 겁니다. 그럼 저를 더 잘 지켜주시겠지요."
"이 녀석……."
당청산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는 진남이 이런 상황에서 농담할 줄은 몰랐다.
진남은 제방 서열이 이미 당청산을 뛰어넘었다.
물론 당청산이 한 달 동안 폐관 수련을 하느라 싸우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실력만 놓고 본다면 진남과 당청산 중 누가 이길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진남, 네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느냐?"
당청산은 웃음을 거두며 젓가락을 들었다.
"선배님은 어느 정도입니까?"
진남은 소리 없이 옆에 있던 나무에서 나뭇잎 세 개를 뜯었다.
정원 분위기가 갑자기 변했다.
의자 위에 놓은 흑도가 얌전히 두 사형제를 지켜보고 있었다.
"너는 이길 수 있을 것 같구나!"
당청산은 두 눈에서 엄청난 살기를 뿜더니 젓가락을 날렸다.
"선배님은 제 상대가 안 됩니다."
진남도 전의를 폭발하더니 나뭇잎을 날렸다.
쿵-!
나뭇잎과 젓가락이 부딪치며 엄청난 강풍을 일으켰다.
커다란 그림자 두 개가 끝없는 허공에 우뚝 서 있었다.
두 그림자는 전신과 살신의 의지였다.
당청산은 한 걸음 나섰다.
그의 체내에서 살기의 파도가 밀려오는 것 같았다.
그는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엄청난 기운을 풍겼다.
마치 살신이 나타난 것 같았다.
살신경은 동급들 사이에서 천하무적이었다.
살신의 의지는 엄청 대단한 존재였다.
당청산은 진남의 선배였다.
또, 진남이 아는 사람 중 유일하게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상대이기도 했다.
"전천전지, 무소불전, 무소불승!"
진남의 흥분해서 피가 들끓었다.
짙은 전의가 상승하고 체내의 여덟 개의 전신의 나무가 움찔거리며 싸우고 싶어 했다.
둘 사이에는 소리 없는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만일 최립허가 가운데 꼈더라면 둘이 주고받는 의지에 중상을 입었을 것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대단한 힘을 주고받았겠는가?
"녀석, 역시 대단하구나! 됐다. 더 하면 진짜 싸우겠다!"
당청산은 진남을 한참 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살기를 거두었다.
"하하, 사형의 살기야말로 정말 강합니다!"
진남은 호탕하게 웃었다.
정원은 다시 조용해졌다.
둘은 잘 알고 있었다.
전신이나 살신은 둘 다 횡포하고 비범한 의지라서 진짜로 싸우면 한쪽이 죽지 않고는 끝날 수 없었다.
방금 두 의지가 신경전을 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
당청산은 영패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진남, 천도문 진전제자이자 제방 서열 이십칠 위인 문무가 너를 오늘 밤 천재도회에 초대했구나."
당청산은 말을 이었다.
"천재도회는 꽤 재미있다. 마침 이번 기회에 여러 도의를 만나보거라."
"도회 말입니까?"
진남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사흘 후에 구도고봉이 열린다. 이건 내 영패이다. 가지고 있으면 천도문의 두 금지를 제외한 곳은 다 갈 수 있고 너를 건드리는 사람도 없을 거다. 나는 폐관 수련을 더 해야겠다."
당청산은 흑도를 칼집에 꽂더니 진남에게 영패를 던져주고 떠나갔다.
"역시 열심히 하시는구나……. 그래, 좋다. 마침 천도문의 여러 도기들을 볼 수 있는 기회이니."
진남은 고개를 젓고 나갈 준비를 했다.
바로 그때 미풍이 정원에 불어왔다.
진남은 안색이 변하고 마음이 서늘해졌다.
그는 왼쪽 눈에서 보라색 빛을 반짝이며 주변을 살폈다.
"누구냐?"
진남은 낮은 소리로 호통쳤다.
"대단하구나! 역시 당청산의 사제야. 내가 누구냐고? 굳이 따지면 너는 나를 사형이라고 불러야 한다."
호탕한 웃음과 함께 중년 사내가 정원에 나타났다.
중년 사내는 옷차림이 단정하지 않고 긴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잠에서 금방 깬 것처럼 눈이 풀렸다.
진남은 전신의 왼쪽 눈으로 살펴보았다.
그는 중년 사내의 체내에서 엄청난 도의를 느꼈다.
중년 사내는 경지가 적어도 무조 정상급은 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