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8화 장난일 뿐이야
양송은 입꼬리를 올리고 크게 웃었다.
"하하, 누가 오나 했더니 네가 올 줄이야! 진남, 이번 제방 심사에서 운이 참 좋았지? 내가 제대로 기억했다면 네 무혼은 천급 일품이고 제방 서열 이천여 위지? 게다가 심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경지도 무조 일 단계일 테고."
양송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어서 말했다.
"진남 도우, 내 말이 맞느냐?"
임묘가와 정부회는 깜짝 놀랐다.
그들은 소일천랑을 타고 나타난 진남이 그 정도 실력밖에 안 될 줄은 몰랐다.
정신을 차린 임묘가는 안색이 어두워지고 정부회는 표정이 밝아졌다.
삼황자는 여전히 평소와 같았다.
진남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역시 천도문의 제자답구나. 네 말이 맞다. 나는 고작 무조 경지 일 단계이다."
"진남……."
임묘가는 입을 열려고 했다.
"장로, 걱정 마시오. 진남이 왔다는 건 확신이 있다는 뜻이요. 설마 죽으러 왔겠소?"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삼황자가 웃으며 말했다.
동주에서도 진남은 늘 그랬다.
보기에는 약해 보여도 마지막에는 상황을 뒤집었다.
임묘가는 멈칫하더니 중요한 것을 깨닫고 잠자코 있었다.
양송은 진남이 그의 말을 인정하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진남과 현월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다시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임 장로, 사람들이 다 모였으니 지도를 꺼내 운소산맥으로 갑시다. 그 전에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진남 도우와 현월 도우는 이 일을 용제원에 알려서는 안 됩니다.
둘째, 보물을 얻기 전에는 연합해서 모든 위기를 물리칩시다. 운소산맥의 깊은 곳은 위험 요소가 많습니다. 마지막에 보물을 발견하면 각자 능력대로 가져가는 게 어떻습니까?"
양송은 심사숙고 끝에 이런 결론을 얻었다.
물론 그가 지금 나서서 지도를 빼앗아 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진남과 현월이 용제원의 사람들에게 이 상황을 알린다면 좋을 게 없었다.
그는 용제원의 장로가 올까 봐 두려운 게 아니었다.
그도 천도문의 제자이기에 그를 보호해줄 사람이 있었다.
다만, 이번 운소산맥행은 역천개명을 할 수 있는 기연과 연관되어 있는데, 장로들이 끼어들게 된다면 그들에겐 기회가 없을 것이었다.
그들이 역천개명하고 싶은 것처럼 장로들 역시 역천개명을 원했다.
양송과 하호, 정부회는 멍청한 사람들 아니었다.
진남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목숨을 잃지는 않을 자신은 있을 것이다.
진남이 믿는 구석이 있다면 그들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마지막에는 믿는 구석이 더 강한 자가 승자였다.
"좋다!"
임묘가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협력해야 보물을 찾고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다.
아니면 아무도 이득을 얻을 수 없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튕겨 반쪽짜리 지도를 꺼냈다.
"둘이 하나가 되어라!"
정부회도 손을 휘둘러 반쪽짜리 지도를 꺼냈다.
두 지도는 서서히 합쳐지더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춰졌다.
웅-!
지도는 합쳐지더니 가볍게 진동하며 역천의 기운을 풍겼다.
"사람들이 이 지도에 역천개명할 기연이 있다고 하는 이유가 있었네."
진남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는 만상옥간으로 중주에서 돌아다니는 여러 지도를 확인한 적이 있었다.
지도가 역천개명의 기연을 가졌는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지도의 기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역천개명의 기연을 표시한 지도들은 모두 역천기운이 맴돌았다.
역천개명엔 등급이 있었다.
예를 들면 황급에서 현급 무혼이 되는 것도 역천개명이었다.
그러나 그런 역천개명은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천급 사품 이상으로 역천개명할 수 있어야 큰 기연이었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기연인지는 지도만으론 판단할 수 없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가서 확인해야 했다.
덕분에 중주에서는 도박이 나타났다.
역천개명의 기연을 표시한 지도를 팔면 많은 무인은 무작정 지도를 사댔다.
그들 중엔 역천개명을 해서 실력이 엄청 높아진 사람도 있고 쫄딱 망하거니 심지어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운소산맥의 깊숙한 곳에 있구나. 함께 갑시다!"
정부회는 눈을 반짝거리며 먼저 마광으로 변해 날아갔다.
양송과 하호 그리고 다른 흑포 노인도 그 뒤를 따랐다.
임묘가는 진남을 보며 심호흡을 하더니 손을 휘둘러 빛으로 삼황자를 감쌌다.
"저놈들은 우리를 너무 업신여기는군!"
현월은 불쾌한 듯 말했다.
소일천랑일족의 소주인 그는 처음으로 이런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수습 탈것의 신분이라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진남의 명에 따라야 했다.
"됐소. 그만 투덜거리고 따라갑시다."
진남은 현월의 머리에 타고 서서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지었다.
'업신여김을 당하면 또 어떠한가? 나는 무조 경지 일 단계가 맞다. 다만 다른 무조 경지 일 단계와 조금 다를 뿐이지.'
* * *
운소산맥은 중주의 백 개의 산 중 하나였는데, 적마산맥 못지않았다.
적마산맥과 다른 점이라면 운소산맥은 '백장무(百障霧)'라 불리는 안개가 덮여 있었다.
이 안개는 흰색이고 독성이 없었다.
다만, 동술이 아무리 강해도 백 걸음 밖은 뚫어볼 수 없었다.
무인들은 운소산맥에서 걸으면 구름 위를 걷는 듯하다고 느껴 운소산맥이라고 불렀다.
슉-!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정부회, 양송, 하호, 흑포 노인 그리고 임교가, 진남, 현월, 삼황자, 천기견들, 천기서는 운소산맥의 아래에 도착했다.
"운소산맥의 백장무는 역시 명불허전이다. 아무리 동술을 펼쳐도 백 걸음 밖은 보이지 않는구나."
양송은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안개가 가득해서 깊게 보이지 않았다.
신식도 아무런 작용을 발휘하지 못했다.
"사형, 저도 안 보입니다."
옆에 있던 하호도 고개를 끄덕이곤 진남에게 시선을 돌렸다.
"진남 도우, 용제원에서 파격적으로 들인 인간족 제자라고 들었다. 그러니 비록 무혼은 별로지만 수단이 대단하겠지? 운소산맥에서 네가 길을 안내하는 게 어떠냐?"
"하하! 그거 좋은 생각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진남 도우의 수단을 좀 보여주렴."
정부회와 흑포 노인도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운소산맥에는 위기가 가득하다. 무조 경지 오 단계라고 해도 산맥의 깊숙한 곳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보물을 찾으러 왔으니 함께 탐험해야 하지 않느냐?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건……."
임묘가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운소산맥에서 길을 안내하는 일은 무척 위험했다.
정부회 일행은 단순히 진남을 괴롭히려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커다란 손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렸다.
"상관없다. 내가 길 안내를 맡을게."
진남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임묘가는 놀란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녀는 진남이 나설 줄은 몰랐다.
그러나 진남의 눈을 본 그녀는 침묵했다.
양송, 하호, 정부회는 그 모습을 보자 입꼬리가 올라갔다.
'멍청한 놈! 몇 마디에 바로 미끼를 물다니!'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신비한 백장무는 진남에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진남은 왼쪽 눈으로 백장무를 뚫어 볼 수 있었다.
"갑시다!"
진남은 말싸움하기도 귀찮았다.
누가 앞장을 서던 그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만만하게 보였나 봐? 운소산맥에서 혼내줘야겠군.'
사람들은 진남을 따라 운소산맥에 들어섰다.
얼마 후 그들은 운소산맥의 깊숙한 곳에 이르렀다.
양송, 하호, 정부회는 올라갔던 입꼬리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들의 눈엔 의문이 가득했다.
진남을 바라보는 시선이 전처럼 냉랭하지 않았다.
오는 내내 그들은 요수 한 마리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현월 덕분에 요수들이 가까이 오지 못한다고 해도 아무런 위험과도 부딪히지 않았다.
이런 산맥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요수가 아니었다.
깊숙이 숨어있는 금제들과 엄청난 힘을 가진 기이한 풀과 꽃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위험을 마주하지 않았다는 건, 진남의 동술이 백장무를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요수가 왔다! 머리 세 개 달린 무조 삼 단계의 요수이다!"
진남은 걸음을 멈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러나!"
양송은 표정이 무거워졌다.
도의가 그의 온몸을 감쌌다.
하호, 정부회 등은 몸을 잔뜩 긴장하고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머리 세 개 달린 무조 경지 삼 단계의 대요는 그들에게 큰 위협이 아니었다.
하지만 운소산맥에서 싸우는 기척이 크게 들리면 주변의 강자들이 모여들거나 더 강한 요수를 불러들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임묘가와 삼황자는 표정이 이상했다.
한참이 지나자 양송 일행도 이상함을 느끼고 진남을 쏘아보았다.
"오는 내내 다들 말 한마디 없길래 장난친 거야."
진남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너……!"
양송과 하호는 표정이 사나워졌다.
'장난이라고?'
'우리를 놀린 거겠지.'
"진남 도우, 이런 장난은 적게 하는 게 좋을 거다. 이런 야산은 용제원 장로들이라도 당장 달려오는 건 불가능할 거다."
양송은 숨을 깊게 내쉬며 쌀쌀맞게 말했다.
그가 한 말의 뜻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현월은 그 말을 듣자 불만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낮게 으르렁댔다.
"가자."
진남은 눈을 가늘게 뜨고 어깨를 으쓱하더니 계속 걸었다.
그는 위협당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나 지금은 실력을 펼칠 때가 아니었다.
임묘가도 있는데 여섯 개의 무조 나무를 보여주는 건 좋지 않았다.
사람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후, 진남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진짜 요수가 왔다! 무조 사 단계인 요수 두 마리이다!"
양송, 하호, 정부회는 안색이 살짝 변했다.
'무조 사 단계의 요수 두 마리라니!'
'힘을 좀 뺄 것 같구나!'
그러나 양송 일행은 진남의 웃는 듯한 표정을 보자 알아차렸다.
그들은 진남에게 또 속은 것이었다.
"진남, 너……!"
양송 일행은 두 눈에서 불꽃이 이글거리고 살기를 드러냈다.
"자자, 아직 목적지엔 도착도 못 했다. 그런데 서로 싸우고 죽이고 할 거냐?"
임묘가는 어느새 진남의 곁에 서서 느긋하게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기쁨이 스쳤다.
'거들먹거리더니 꼴좋다. 너희들이 진남을 앞장서라고 등 떠밀었잖아. 설령 놀렸다고 해도 뭐가 어때서? 백장무를 못 꿰뚫어 보는 너희들 탓이지 뭐!'
"왜 화를 내실까? 무인들끼리 장난을 칠 수도 있지. 물론, 나도 분수가 있어서 이런 장난은 두세 번 하면 끝이야. 더 하지도 않아."
"두세 번?"
양송 일행은 숨이 턱 막히고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올 것처럼 화가 났다.
'또 한 번 더 할 거라는 말이지?'
"그래, 역시 인족봉 제자답구나. 너를 과소평가했다."
양송은 심호흡하며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지도를 보면 보물이 있는 곳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진남이 잠깐 우쭐대게 두어도 괜찮았다.
양송 일행이 지금 공격하지 못하는 건 임묘가 때문이었다.
그들이 연합한다고 해도 임묘가 일행을 죽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이 죽지 않으면 소식을 밖에 퍼뜨릴 것이고 수많은 강자가 몰려들 수 있었다.
그러니 함께 보물이 있는 곳까지 간 다음 해결을 보자고 생각했다.
거기에 도착하면 임묘가 일행 중 도망가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들이 보물을 가진 후라서 괜찮았다.
"이제 가자."
진남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두 주 향이 타는 동안 진남은 속도도 늦어지고 한마디 말도 없었다.
양송 일행은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진남이 계속 장난을 친다면 그들은 화가 나서 공격을 할지도 몰랐다.
갑자기, 진남의 눈이 커졌다.
"누군가 왔다! 무조 정상급의 강자다! 얼른 기운을 숨겨!"
진남은 수림 속에 숨더니 기운을 숨기고 호통쳤다.
임묘가는 얼른 제술을 사용해서 삼황자를 감싸 돌처럼 생기가 없게 위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