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화 역시 대단한 동술이야!
삼황자는 영패를 받고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어……?"
'선제의 영혼이 나한테 오다니.'
"단청!"
혈익봉황과 진국현무는 동시에 고함을 질렀다.
'저놈은 지급 십품 무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야?'
"제 뜻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마십시오!"
진남은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해명하지 않고 못을 박았다.
"선배님들, 제천도장에서 벌어진 일은 소식이 새어나가지 않게 잘 막아 주시기 바랍니다."
진남은 분천황제 등에게 인사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분천황제 등이 물어보기 전에 진남은 자리를 떴다.
강자들은 넋을 잃고 진남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특히 분천황제와 혈익봉황 등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단청의 행동은 그들에게도 어떻게 된 건지 진실을 말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번 풍파에는 의문점이 많았다. 예를 들면 단청이 왜 선제를 거절했는지, 선제는 왜 사과를 했고 단청에게 무혼의 귀속을 결정하라고 했는지, 소일백호가 어떻게 튕겨 나가고 거의 죽게 되었는지 등등.
심황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온몸이 떨렸다. 흥분해서 떠는 것이었다.
'단청아. 내가 태자가 되는 날 이렇게 큰 선물을 줬으니 어떻게 보답하면 좋겠느냐? 언젠가 내가 정상의 자리에 앉아 분천고국을 다스리게 된다면 분천고국은 너의 든든한 뒷심이 되어주겠다. 어떤 일이 있어도 분천고국은 너를 지지하겠다!'
삼황자는 속으로 단단히 결심을 내렸다.
이어 온갖 뒷수습이 벌어졌다.
분천황제는 대전을 열고 단청에게 의용후(義勇候), 비범후(非凡候), 분천 제 일 천재 등의 영예를 주었다. 혈익봉황과 진국현무는 호국장로가 되었다.
단청의 일에 대해서는 분천황제가 명을 내렸기에 대신들도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여러 소식들이 백호성에 전해져서 백호성이 시끌벅적해졌다.
"그 말 들었어? 단청의 무혼이 지급 팔품이래!"
"당연히 들었지. 혈익봉황과 진국현무 대인을 단청이 부활시킨 건 알고 있어?"
"그 정도야 뭘, 소일백호가 단청에게 진 것도 알아!"
분천고국에 변화가 생기자 문도산과 만향루에도 소식이 전해졌다.
한꺼번에 두 신수가 부활하였기에 분천고국의 실력이 더 강해졌다.
단청은 동주에서 더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물론, 선제의 영혼에 대해서는 분천황제가 모든 대신들더러 피의 맹세를 하게 했기에 아무런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다.
또한, 삼황자가 지급 십품 무혼을 얻게 된 것도 다른 세력들은 전혀 몰랐다. 그 소식이 전해졌다면 또 한 번 폭풍이 불었을 것이다.
* * *
봉황영의 황토 도장.
진남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번 싸움에서 나는 얻은 게 없는 것 같지만 분천황제, 혈익봉황, 진국현무, 태자와 모두 좋은 관계를 쌓았어! 지난 몇 개월을 통해 분천고국의 지지를 얻은 거지!"
진남의 눈에 빛이 스쳤다.
그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사대 세력의 추격을 받는 신분이었다. 몇 달이 지난 지금 그는 분천고국의 지지를 얻었다. 게다가 존자 일 단계, 역천원신으로 진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남은 당당하게 본래 신분으로 동주를 휩쓸 수 있을 것이었다.
"시혈난해가 열리기까지 아직 보름이 남았다. 당청산과 단목 봉주 선배님도 무성 경지로 진급했을까? 나도 얼른 실력을 키워야겠어."
진남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표정이 어두웠다.
'시혈난해는 보름 후에 열린다. 그때가 되면 여러 세력의 제자들이 몰려들 것이다. 당청산 일행은 시혈난해에서 무성 경지를 돌파하는 중인데 사대 세력에게 발견된다면 문도 노조 같은 거물들이 몰려올 것이다. 진짜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는 반드시 가서 당청산 일행을 도와야 했다.
슉!
이때 그림자 하나가 허공을 가르고 날아왔다.
왕노였다. 왕노는 진남을 보자 볼멘소리를 했다.
"황궁에서 연회를 열어 모든 이들이 다 참석했는데 너만 안 갔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게냐?"
진남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며 쓴웃음을 지었다.
"왕노, 저는 연회에 관심이 없습니다."
"됐다. 나는 좋은 소식을 전하려고 온 거다."
왕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단청아, 너 잠룡방(潛龍榜)에 들었다."
"잠룡방이요?"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이건 또 뭐란 말인가?'
"들어본 적도 없느냐?"
왕노는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설명하기 시작했다.
"잠룡방은 상도맹에서 모든 동주의 인재들에게 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순위를 선정하는 조건은 지급 팔품 이상의 무혼을 가지고, 무성 경지 이상인 사람이어야 한다. 즉, 잠룡방에 오른 사람들은 동주의 인재들이다!"
"네?"
진남은 관심이 생겼다.
'동주의 인재들을 전부 모아 놓은 거라고?'
그는 분천고국에만 있었기에 다른 삼대 세력의 인재들을 접촉해보지 못했다. 게다가 사대세력들 중 분천고국이 인재가 가장 적었다. 지급 팔품 이상의 인재도 적풍운 한 명뿐이었다.
그는 지금의 실력으로 잠룡방에서 몇 번째인지 알고 싶었다.
"잠룡방에는 마흔한 명의 인재가 있다. 네 순위를 보거라."
왕노가 손을 흔들자 검은색 오 각의 별 모양 영패가 진남의 손에 떨어졌다.
진남은 존자의 힘을 영패에 주입했다. 영패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광막이 나타났다.
광막에 글자들이 나는 듯이 새겨졌다.
단청, 지급 팔품 무혼, 분천고국 소속. 검법 사용에 능함. 존자 삼 단계와 싸울 수 있음. 분천고국의 풍파에서 적풍운을 이기고 형세를 뒤집었기에 삼십삼 위에 평가됨.
'삼십삼 위?'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평가된 내용은 틀림이 없었다. 다만 조금씩 낮게 평가되기는 했다. 그는 마신포를 얻었기에 무존 경지 사 단계나 오 단계와도 싸울 수 있었다.
"재미있군요. 상역 동주에 이렇게 많은 인재가 있다니!"
진남의 두 눈에 불꽃이 이글거렸다.
제천대전의 풍파는 큰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와 싸운 천재는 없었다. 적풍운은 존자 정상급이기에 진남과 차이가 컸다. 그러니 싸우지도 못했다.
잠룡방 순위를 보자 진남은 안목이 전체 동주로 넓어졌다. 오랫동안 잠들었던 전혈이 들끓었다.
잠룡방이 있다는 걸 안 이후로 진남은 수련에 집중했다. 제후들이나, 대신들이 찾아와도 만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인맥 관리보다는 실력을 키우는 일이 더 중요했다.
눈 깜짝할 새에 사흘이 지났다. 전음 부적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다.
"응?"
진남은 눈을 뜨고 부적을 잡았다. 부적을 확인한 그는 두 눈에 빛이 스쳤다.
부적은 분천황제가 보낸 것이었다.
"삼황자의 운명이 바뀐다고? 재미있는 소식이군, 가서 확인해보자."
진남은 허공을 찢고 황궁으로 향했다. 황궁 밖에는 삼황자의 집사인 임백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진남을 보자 공손하게 말했다.
"단청 대인, 나를 따라오시오."
잠깐 침묵하던 임백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단청 대인, 고맙소."
진남은 얼른 손을 저으며 말렸다. 어르신이라 공손하게 대했다.
임백의 안내를 받고 진남은 황궁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정원에 도착했다. 정원은 방원 백 리나 되었는데 주변에는 어림군 강자들이 어둠 속에 숨어서 지키고 있었다.
정원의 중앙에 주벽화, 진국현무, 혈익봉황, 분천황제가 각각 동서남북을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가운데는 삼황자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삼황자를 중심으로 사방팔방에 정석을 꽂았는데 각각 불, 얼음, 번개, 바람, 비 등의 힘을 대표하며 신비한 자연 대진을 이루었다.
진남이 왔지만, 그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슉 하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나타났다. 적풍운이었다.
적풍운은 봉황영의 장포를 입고 있었는데 미간에 악기가 사라지고 눈빛에 단호함이 가득했다.
"봉황영 구십구기 적풍운이 영장님을 뵙습니다."
적풍운은 진남을 보자 공수하고 인사했다.
진남은 깜짝 놀랐다. 이내 손을 흔들며 담담하게 말했다.
"영장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
적풍운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영장님, 지난날의 제 잘못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짧은 시간에 저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저를 남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영장님으로 모시겠으니 이제부터 무슨 일이 있으면 말씀만 해주십시오. 불바다에 뛰어드는 한이 있어도 완수하겠습니다."
그는 하늘에 대고 맹세까지 했다.
진남은 적풍운의 태도에 마음이 한결 풀렸다.
잘못을 알고 뉘우치는 것도 잘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적풍운은 맹세까지 했으니 진심이 보였다.
적풍운은 곧 무성 경지로 진급하게 된다. 그가 진심으로 진남에게 도움을 준다면 공로로 과거의 잘못을 덮고, 원한도 모두 털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적풍운이 아무리 진심을 보이고 맹세를 해도 진남은 어딘가 불편했다. 그는 적풍운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
"영장님, 스승님과 거물들은 진법을 펼치고 현묘한 이치를 깨우치는 중입니다. 이런 때에 우리 둘이 무도에 대해 교류하는 건 어떻습니까?"
적풍운이 멋쩍게 말했다.
"성진각에서 영장님의 동술을 목격했는데 엄청 강했습니다. 영장님의 동술은 대체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적풍운은 얼른 덧붙였다.
"걱정 마십시오. 경지를 영장님과 같은 단계로 억제하겠습니다."
그는 단청이 아직 자신을 완전히 용서하지 않은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요구를 제기하는 건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았다.
"좋다."
진남은 시원하게 대답했다. 동술을 알고 싶다니 이 기회에 실력 발휘를 하고 적풍운을 완전히 굴복시키려고 했다.
"고맙습니다. 영장님!"
적풍운은 인사를 하고 기운을 드러냈다.
그의 두 눈에 빛이 반짝거리더니 백호의 눈동자로 변하고 악기를 풍겼다.
악기는 실체로 변해 회오리바람이 되어 날아왔다.
"이건 백호살력동(白虎殺力瞳)이라고 합니다. 위력이 대단하니 영장님, 조심하십시오."
적풍운은 외쳤다.
"백호살력동이라고 했느냐? 역시 보통이 아니구나."
진남은 감탄했다.
그러나 악기 회오리바람 앞에서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회오리바람이 두 장 가까이까지 왔을 때 진남의 왼쪽 눈에서 번개가 번쩍거렸다.
"부셔라!"
호통 소리와 함께 성공지뇌가 진남의 왼쪽 눈에서 나왔다. 성공지뇌는 엄청난 기운으로 회오리바람을 산산이 부쉈다.
"대단하구나!"
적풍운은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쉽게 독기 회오리바람을 부수다니, 역시 대단한 동술이야!'
"영장님, 이 정도 위력으로는 백호살력동의 상대가 못 됩니다."
적풍운은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의 두 눈에서 흰빛이 쏟아졌다. 흰빛은 몇십 마리의 호랑이 형상으로 변하여 포효하면서 달려들었다.
백호살력동의 무서운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적풍운은 자신이 있었다. 진남의 동술이 강하다고 해도 이 초식을 상대하려면 엄청난 힘을 들여야 했다.
"그래?"
진남은 담담하게 웃더니 여전히 표정 변화 하나 없고 발걸음도 옮기지 않았다.
몇십 마리의 백호 그림자가 진남의 코앞에서 포효했다. 사방에서 모두 백호 형상이 나와 진남은 도망갈 데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