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성가신 상황
홍노와 무인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계무명은 진남을 진압하려 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태도를 바꾼 것이었다.
'진남이 범씨 가문의 명예 장로라 해도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
진남은 냉담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범호는 사람들을 훑어보며 위엄 있게 말했다.
"됐다. 오해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다들 물러가거라."
무인들은 계속 있고 싶었지만 범호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서 이내 떠났다.
대전은 순식간에 텅텅 비었다.
"두 분……."
홍노는 한쪽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계무명이 싸늘하게 그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맹주가 며칠 자리를 비웠다고 상도맹을 관리하는 법을 잊었느냐? 진남 소우에게 원석 십만 개를 보상해줘라. 이번 일은 이렇게 마무리 짓자."
"원석 십만 개요?"
그 말에 홍노는 안색이 변했다.
'원석 십만 개를 내놓으라니, 전 재산을 합쳐도 모자랄 텐데…….'
진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계무명의 태도가 이상했지만, 정확히 어디가 잘못됐는지 몰랐다.
"계 성주, 원석 십만 개는 됐습니다. 제가 상도맹에 온 것은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이 소식은 홍노가 알아봐 주십시오."
진남은 담담하게 말했다.
진남의 화도 많이 가라앉았다.
"진 장로, 고맙소. 정말 고맙소."
홍노는 그 소리에 기뻐서 얼른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는 저장 주머니를 건넸다.
"이번 일은 상도맹에서 잘못했소. 그러니 장로께서는 화를……."
진남은 저장 주머니를 힐끔 쳐다봤다.
그 속에는 삼만 개의 원석이 있었다.
진남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홍노는 즉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의 진남은 실력이든 배경이든 그가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먼저 가시오. 나와 성주는 마침 토론할 일이 있소. 자네가 오면 그때 다시 알려주지."
범호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진남은 공수하고 홍노와 함께 이 층으로 들어왔다.
이 층은 어두컴컴했다.
어둠 속에 사람의 그림자가 흔들거렸다.
홍노가 나서서 호통을 쳤다.
"여봐라, 귀빈께서 소식을 알아보시겠단다."
깡마른 사내가 다급히 달려 나오더니 아첨하듯 웃었다.
"어떤 소식을 알아보시겠습니까?"
"묘묘 공주, 당청산, 사마공……."
진남은 이름을 하나하나 읽었다.
깡마른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전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뛰어나오더니 난감해서 말했다.
"말씀하신 분들은 상도맹에서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습니다. 다시 잘 생각해보십시오. 동주에 있는 게 맞습니까?"
진남은 어리둥절해졌다.
'당청산 일행이 상역에 왔다면 상도맹의 능력에 어찌 아무런 소식도 못 알아보겠는가?'
"그럼 진남을 찾아주시오."
진남이 느긋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깡마른 사내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다시 나온 사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분도 정보가 없는데……."
"없소?"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곁에 있던 홍노는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없다니? 어떻게 아무런 정보도 없을 수 있느냐? 얼른 다시 찾아보거라.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면 내 오늘 너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홍노, 괜찮습니다. 못 찾으면 그만둡시다."
진남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
홍노는 노여움을 거두며 미소를 지었다.
"아니면, 며칠 후에 다시 알아보겠소? 어떤 정보는 우리 맹주만 볼 수 있소. 맹주는 며칠이 지나야 상도맹에 돌아올 수 있소."
"좋습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번뜩였다.
정말 이상했다.
진남과 상도맹 사이에는 원한이 있었기에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다는 건 말도 안 되었다.
무슨 이변이 생긴 게 분명했다.
진남은 일 층으로 내려갔다.
계무명과 범호가 아직 있었다.
범호가 먼저 웃으며 물었다.
"진남, 이제 무슨 계획이 있소?"
"천험산맥에 가서 경지를 좀 연마할까 합니다."
진남이 대답했다.
진남의 전신 원영은 대겁을 불러오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봉황영 선발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경지를 제고 시켜야 순조롭게 도겁할 수 있었다.
범호와 계무명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계무명이 미소를 짓고 말했다.
"경지를 연마하려면 천험산맥에 갈 필요가 없다. 내일 제구성의 벽원동천이 열릴 것이다. 거기에서 수련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거다."
'벽원동천?'
옆에 있던 범호가 설명했다.
"제구성에는 여러 가지 수련지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수련지가 벽원동천이요. 해마다 한 번 열리는데 매번 사흘밖에 열리지 않소."
"그렇군요……."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마음속 의심은 더욱 짙어졌다.
'범호와 계무명이 왜 이렇게 잘해주지?'
둘은 총명한 사람이었다.
진남의 의심을 눈치챈 계무명은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남 소우, 잘 모르겠지만 분천고국에는 백여든여덟 개의 성이 있다. 성마다 경쟁이 치열한데, 몇 해 동안 우리 제구성에서 봉황영에 들어간 인재가 한 명도 없었다. 우리가 벽원동천을 여는 것은 네가 순조롭게 봉황영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서다. 그럼 제구성에도 도움이 되니까."
그의 말은 반은 진짜고 반은 거짓이었다.
몇 해 동안 봉황영에 들어간 제구성 인재가 없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계무명과 범호의 큰아들들이 봉황영에 들어가기에 문제없었다.
진남에게 의지할 이유는 없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단지 진남의 의심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의심이 많이 가신 진남은 찝찝하긴 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두 선배님, 여드레 후, 봉황영 선발대회에서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좋소."
범호는 손뼉을 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벽원동천에 들어갈 수 있는 영패요. 명심하오. 내일 동이 트면 늦지 말고 제구성의 남쪽 거리로 오시오."
진남은 영패를 받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범씨 저택으로 돌아갔다.
범심여는 진남에게 독립적인 정원을 내주었다.
진남은 정원에 금제를 치고 원석 삼만 개를 전부 꺼냈다.
"전신의 혼을 진급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군……."
진남은 혼잣말하며 원석을 잡아 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실망했다.
전신의 혼은 역시 진급하지 못했다.
"그래도 삼백여 개의 혼돈지기가 생겨서 다행이다."
진남은 마음을 추슬렀다.
혼돈지기는 경지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쓰임이 다양했다.
많이 모아두면 쓸모가 있었다.
"구리거울은 어떻게 된 거지?"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난번 죽음의 바다 이후로 구리거울은 더 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혼돈지기가 하나라도 있으면 구리거울은 어떻게든 빼앗았을 것이다.
"됐어. 경지나 잘 연마해야겠어."
진남은 고개를 흔들더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 * *
하루가 빠르게 지났다.
태양이 떠오르자 제구성은 북적거렸다.
범씨 가문과 성주부의 인재들은 모두 제구성의 남쪽 거리에 왔다.
"벽원동천이 대단한가 보네."
진남은 마당에서 천천히 눈을 뜨더니 밖을 둘러보고 얼른 남쪽 거리로 달려왔다.
남쪽 거리에는 많은 젊은 여인들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무종 경지도 되지 않았다.
"벽원동천에 범우와 계천효가 온다면서요?"
"그 둘이 아니라면 제가 여기까지 왔겠어요?"
"호호, 정원은 제구성의 최고급 인재들이 다 가져가서 우리에게는 기회도 없잖아요. 범우와 계천호의 얼굴을 보려고 온 거지 아니면 저도 안 왔어요."
양대 세력의 제자들도 시끌벅적했다.
"진남 오라버니."
범심여는 사람들 틈에서 진남을 보자마자 달려오더니 미소를 짓고 말했다.
"어제 오라버니가 상도맹을 뒤집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범심여의 행동은 적지 않은 제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들은 호기심이 동했다.
'이 사내는 누구길래 범심여가 저토록 다정하게 대하는 거지?'
"네가 진남이냐?"
이때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남은 뒤를 돌아보았다.
청포를 입고 머리칼을 높이 튼 채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는 한 청년이 보였다.
그가 오자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범우! 범우가 왔어!"
"어머, 고작 삼 개월이 지났는데 경지가 또 강해졌어."
"엄청난 기운에 심장이 떨리는구나."
양대 세력의 천재들은 존경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남은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고 범우를 힐끔 봤다.
범우는 지급 삼품의 무혼을 가지고 있고 무황 경지 오 단계의 인재였다.
"맞다. 용건이 있느냐?"
진남은 표정이 담담했다.
"용건이 있냐고? 네가 지난번에 상도맹에서 나를 때렸잖아. 오늘 범우 형님은 너를 혼내주러 온 거야."
범우의 곁에 있던 범소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의 욕설에 제자들은 진남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들은 어제 하역 무인 한 명이 상도맹에서 난리를 치고 사람을 다치게 했다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하역 무인이 범씨 가문의 명예 태상 장로라는 것도 들었다.
범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범우가 진남을 담담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범씨 가문의 명예 태상 장로이니 능력이 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겸손하게 행동하고 심여에게서 멀리 떨어지거라. 아니면 내가 사람 됨됨이를 가르쳐주겠다."
그의 말에 분위기가 고조됐다.
사람들은 범우가 진남에게 직접 도발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범심여는 화가 나서 말했다.
"범우, 너 그게 무슨 말이야!"
범우는 범심여의 말을 무시하고 진남을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제대로 들었느냐?"
"미안하다, 제대로 못 들었다."
진남은 표정이 평온했다.
제자들은 동시에 깜짝 놀랐다.
'배짱이 큰 청년일세, 범우에게 대꾸하다니!'
범우는 당황했지만,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차가운 시선으로 말했다.
"성깔이 있구나. 나에게 이렇게 말한 사람은 처음이다. 내 너를 똑똑히 기억하마!"
말을 마친 범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범소를 데리고 남쪽 거리의 중앙에 갔다.
"어디 아픈가 보네."
진남은 고개를 흔들었다.
"하하! 범우한테 그렇게 말한 건 네가 처음이다."
이때 커다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포를 걸친 건장한 사내 한 명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육신에서 풍기는 기운은 마치 커다란 산으로 상대방을 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자리에 있던 제자들이 눈빛이 반짝거렸다.
'역시 계천효도 왔구나.'
"계천효, 함부로 말하지 마오."
범우는 얼굴이 굳어서 낮게 으르렁거렸다.
"네네네, 범 공자의 요구를 내 어찌 거절하겠습니까요?"
계천효는 눈을 흘기더니 진남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다. 배짱이 있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주제 파악을 잘해야 한다."
계천효는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그는 어두운 빛이 감도는 손바닥으로 진남의 어깨를 두드렸다.
계천효의 무혼 역시 지급 삼 품인데 육체를 강화할 수 있는 무혼이었다.
그래서 그는 연체공법을 연마하여 엄청난 육체를 가지게 되어 무황 경지 칠 단계의 요수처럼 단단했다.
그는 진남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삼 분의 일의 힘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