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누가 와도 소용없어!
"진남 도우, 하역에서 상역에 온 목적은 더 강해지기 위해서요?"
범호는 두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맞습니다."
진남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범호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짐짓 난감한 말을 꺼내려는 듯 잠시 머뭇거리고는 조심스레 말했다.
"심여를 구해줬으니 영패만으로 내 고마움을 표현하기는 어렵소. 봉황영 선발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정원이 범씨 가문에 두 개 있소. 그중 하나를 자네에게 주겠소."
"봉황영 정원이요?"
범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분천고국은 황실의 통치하에 있소. 황실에는 삼대 군단이 있는데 분천고국의 인재들이 다 모여있지! 이 삼대 군단은 현무영(玄武營), 봉황영, 백호영(白虎營)이요. 그중 봉황영은 서열 이 위인데, 강자가 무예를 가르치기도 하지만 자원이 많소. 게다가 봉천고국의 보호를 받을 수도 있소. 봉황영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나중에 반드시 존자 이상의 성과를 이룰 것이요!"
진남은 두 눈에 빛이 반짝였다.
'분천고국의 인재들이 다 모인다고? 봉황영이라는 곳은 재미있겠구나!'
범호는 진남의 모습을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진남을 범씨 가문에 남기는 데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겠군.'
범심여는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진남 오라버니라면 봉황영에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진남은 상역의 인재들이 기대되었다.
"선배님, 봉황영 선발대회는 언제 시작합니까?"
"아직 여드레 남았소."
범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드레……."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손을 맞잡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선배님. 이 도움을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이후에 제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말씀만 주십시오. 힘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하하, 별일 아니오. 심여야, 진남 도우에게 범씨 저택을 구경시켜주려무나."
범호는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둘이 대전에서 나가고 한참 후에도 범호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진남을 순조롭게 잡아두었어. 이제 노조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진남을 해결하면 돼! 진남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빼앗을 수 있다면 범씨 가문의 미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할 거야!'
"노조."
범호는 기뻐하는 한편 영패를 꺼내서 신념을 실어 보냈다.
잠시 후, 영패에서 신념이 전해왔다.
신념을 확인한 범호는 미간을 찌푸렸다가 펴며 중얼거렸다.
"사흘 후에 온다고? 사흘 정도야 뭐, 금방이겠지."
* * *
범심여는 진남을 데리고 범씨 저택의 연무장에 왔다.
연무장은 널찍했는데 방원 몇십 리는 되는 것 같았다.
그 아래에 여러 가지 대진들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천지의 영기가 모여 뿌연 안개로 변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현급 일품, 황급 십품, 현급 육품……."
진남은 왼쪽 눈으로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범씨 가문의 제자들은 역시나 대단했다.
가장 실력이 낮은 사람이 황급 십품의 무혼을 가지고 있고 가장 높은 무혼은 현급 구품의 무혼이었다.
이때 호통이 울려 퍼졌다.
"네가 하역에서 왔다는 그 녀석이냐?"
진남은 미간을 찌푸리고 돌아보았다.
화려한 장포를 입은 무종 경지 정상급의 청년이 적의가 가득한 시선으로 진남을 노려보고 있었다.
범심여는 얼굴에 싫은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범소(範嘯), 말조심하거라! 진남 오라버니는 우리 가문의 귀한 손님이다!"
"귀한 손님?"
범소는 경멸스런 시선으로 진남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잘 들어. 여긴 상역이다. 그깟 경지로 뭐라도 된 줄 착각하지 마. 그리고, 명심하거라. 범심여는 내 형님의 여인이다. 알아서 멀찍이 떨어지거라. 아니면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거다!"
범심여가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범소, 그게 무슨 소리……."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진남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내가 하역에서 왔는데 뭐? 하역에서 온 게 문제라도 있어? 내가 거슬려? 그럼 한 번 겨루든가. 나는 한 초식만 사용할게."
"뭐?"
범소는 화가 났다.
'한 초식만 사용하겠다니? 이놈이 나를 조롱하는구나!'
화가 잔뜩 났지만, 범소는 함부로 달려들지 못했다.
그는 진남이 혈안우왕도 한 방에 죽이는 실력자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두고 봐!"
범소는 악에 받쳐 진남을 노려보더니 자리를 떴다.
"범소 저 녀석이……!"
범심여는 심호흡하며 화를 가라앉히고 진남에게 사과했다.
"진남 오라버니, 저 때문에 또 이런 일을 당하셨네요. 걱정 마세요.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저 녀석이 다시는 오라버니께 시끄럽게 굴지 못 하게 할게요."
"괜찮소."
진남은 고개를 저었다.
별안간 무언가 떠오른 진남이 말했다.
"아, 원석이 좀 있소? 뭣 좀 사려고 하는데 조금만 빌려줄 수 있겠소?"
"빌릴 필요 없어요. 오라버니는 범씨 가문 명예 태상 장로잖아요. 제구성에서 이만 개의 원석을 가불할 수 있어요."
범심여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렇소?
진남은 얼떨떨했다.
범씨 가문의 명예 태상 장로가 또 이런 작용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는 얼른 말했다.
"나는 제구성에 가서 좀 돌아보겠소. 낭자는 함께 가지 않아도 되오. 혼자 갈 수 있소."
진남은 범씨 저택에서 나와 기억을 더듬어 상도맹 지부로 향했다.
상도맹에서는 여러 가지 영약과 법보를 팔뿐만 아니라 정보들도 팔았다.
진남은 묘묘 공주와 당청산 일행의 종적을 알아보려고 했다.
물론 그들의 실력이라면 상역에서도 별문제는 없을 테지만 종적을 안다면 미리 만날 수도 있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진남은 상도맹에 도착했다.
방원 오 리에 달하는 화려한 삼 층 건물이었다.
대문 어귀에 사람들이 들락날락하고 있어서 여간 북적한 게 아니었다.
진남은 안으로 들어섰다.
일 층에 걸린 알림을 읽어보니 정보를 사려면 이 층으로 가야 했다.
진남은 돌아서서 이 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반쯤 올라갔을 때 갑옷을 입은 무종 경지의 무인이 나서서 말했다.
"이 층으로 가려면 초대장을 제시하시오."
"초대장이 필요하오?"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무인은 귀찮아하면서 말했다.
"하역에서 왔소? 그러니 규칙을 모르지. 초대장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소!"
상도맹의 이 층에서는 정보를 팔았다.
정보를 사려면 신분과 세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정보라는 것은 모든 이들이 다 알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역에서 왔는데 무슨 문제 있소?"
진남은 표정이 차가워졌다.
범소나 상도맹의 호법이나 입만 열면 하역 타령이었다.
'내가 규칙을 모르긴 하지만 하역에서 왔다고 아랫사람 취급하다니!'
"하역 같은 지역에서 무슨 인재가 나온다고?"
진남이 대꾸를 하지 않으니 호법은 그를 더욱 무시했다.
호법은 진남을 이미 살펴봤다.
차림새나 기운이 모두 대단한 인재는 아니었다.
"그렇소?"
진남은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때,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일로 이리들 소란이냐?"
중년 사내가 배를 내밀고 번들거리는 얼굴로 의도한 듯 느릿느릿 다가왔다.
"장로!"
호법은 안색이 변해서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역에서 온 녀석이 있는데 규칙을 모르고 이 층으로 올라가려고 하기에……."
"그래?"
중년 사내는 고개를 돌리고 진남을 보았다.
그의 눈에 빛이 반짝이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상도맹은 개나 소나 다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썩 꺼지거라!"
"꺼지라고?"
진남은 눈빛이 서늘해졌다.
'이놈의 상도맹! 하역에서는 나를 건드리더니 상역에서는 나를 업신여기려고 드는구나!'
"그래, 꺼지라고 했다. 못 들었느냐?"
중년 뚱보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기고만장하게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는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방금 전에 범소가 진남을 단단히 혼내주라고 하면서 보수를 두둑이 챙겨줬다.
하역에서 온 놈을 혼내는 건 그에게 일도 아니었다.
"저기 봐봐,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아."
"봤어. 하역에서 온 녀석이 규칙을 몰라서 혼나는 중이야."
"허허, 하역 촌뜨기구나."
상도맹 일 층 대전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수군거렸다.
그들은 진남을 무시했다.
하역에서 온 다른 무인들은 한탄할 뿐 나서지 못했다.
상역과 하역의 차이 때문에 많은 상역 사람들이 하역 사람들을 무시했다.
상역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우월감을 가지고 하역 사람들보다 신분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무릎 꿇어라!"
진남의 두 눈에 번개가 번쩍이더니 전신의 위엄을 드러냈다.
진남은 오랫동안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년 뚱보와 호법이 사람을 너무 얕잡아봤다.
쿵!
중년 뚱보와 호법은 안색이 확 달라졌다.
죽음의 기운이 그들을 덮쳤다.
그들은 겁에 질려서 다리를 구부리더니 쿵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일 층 대전에 있던 사람들은 눈빛이 흔들렸다.
'경지가 대단하구나! 말 한마디로 무종 경지 정상급과 무황 경지 이 단계의 무인이 무릎을 꿇게 하다니!'
"너, 너……."
중년 뚱보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진남을 노려보며 말을 더듬었다.
그는 무왕 경지의 기운을 가진 진남이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내가 뭐? 하역의 사람들을 무시했지? 그런데 왜 나한테 무릎 꿇었느냐?"
진남은 중년 뚱보를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진남! 배짱이 크구나! 감히 상도맹의 장로를 공격하다니!"
이때, 이 층 대전에서 호통이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범소였다.
진남이 범씨 저택에서 나오자 범소는 그의 뒤를 밟아 상도맹까지 따라오게 되었다.
범소는 진남을 혼내주려고 마음먹었다.
"너 이제 큰일 났어. 성주부의 집법대가 너를 단단히 혼낼 거다!"
범소는 진남을 비웃었다.
'경지가 대단하면 뭐 해? 집법대가 오면 진남을 단단히 혼내겠지.'
일 층 대전의 무인들은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지켜봤다.
진남이 대놓고 상도맹에서 무력을 사용한 것은 도발이나 다름없었다.
제구성의 규칙에 따르면 성주부의 집법대는 진남을 붙잡을 수 있고 가둘 수도 있었다.
"나를 혼낸다고? 네가 먼저 좀 혼나야겠다!"
진남의 눈에서 번개가 번쩍였다.
별거 아닌 일로 범소는 진남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다.
그러니 진남도 그를 쉽게 용서할 수 없었다.
진남은 손을 뻗어 범소를 가뒀다.
범소는 눈을 크게 떴다.
진남이 자신을 공격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범소는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무엄하다! 집법대가 왔다! 행동을 멈추거라!"
"이마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감히!"
두 개의 노여움이 가득한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상도맹 대전 밖에 화가 잔뜩 난 무황 경지 오 단계의 장로가 나타났다.
상도맹의 삼 층에는 무황 경지 사 단계의 중년 사내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무인들은 깜짝 놀랐다.
둘은 각각 상도맹의 강자와 집법대의 강자였다.
"누가 와도 소용없어!"
진남은 어림없다는 듯이 크게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