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도겁할 수 있겠구나
반 시진 후, 범심여는 옛 지도를 들고 수림에서 한참 동안 헤매더니 기뻐서 외쳤다.
"영후과! 진짜 영후과예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아요!"
두 청년은 그 소리에 기쁜 표정으로 달려갔다.
진남은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전신의 왼쪽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수림의 깊숙한 곳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풀이 있었다.
그 풀 위에 손톱만 한 과일이 달려있었는데, 모양이 원숭이 같았다.
과일은 모두 열여덟 개였다.
"응?"
진남의 눈에 이상한 빛이 반짝였다.
영후과는 방대하고 순수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그것을 삼킨다면 원영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묘묘 공주가 이곳에 있었다면……."
진남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공주는 아마 사흘 내로 천험산맥을 싹쓸이했을 것이다.
"진남 오라버니, 여기 영후과 여덟 개를 받으세요. 저를 구해줘서 고마워요. 오라버니가 아니었다면 이 과일을 따러 오지도 못했을 거예요."
범심여는 진남에게 과일 여덟 개를 건넸다.
그녀는 과일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 채 가시지 않아서 두 볼에 홍조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진남은 거절하려고 했다.
두 청년은 그 모습에 안색이 굳어졌다.
그중 한 청년이 말했다.
"심여 누이, 어떻게 이자에게 여덟 개나 줄 수 있습니까? 이자는 우리의 적일지도 모릅니다. 영후과를 노리고 일부러 누이를 구해줬을 수도 있습니다. 이자에게 속지 마십시오!"
다른 청년은 진남에게 경고했다.
"명심하거라! 여기는 상역이다. 그깟 경지로 허튼 생각을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다."
범심여는 순식간에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녀는 동생들이 이 정도로 안하무인일 줄 몰랐다.
진남도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가만히 있으니 만만하게 보는 건가?'
"고맙소!"
진남은 사양하지 않고 영후과를 저장 주머니에 넣었다.
진남의 행동에 범심여는 기쁨에 겨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너……."
두 청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저놈이 주제도 파악 못 하고 우리의 위협을 무시하다니!'
진남이 여덟 개의 영후과를 가져가는 바람에 이제 열 개밖에 남지 않았다.
'범심여가 적어도 다섯 개는 가질 것이다. 그럼 우리는 두 개 정도 밖에 못 가지는 거잖아.'
"심여 누이, 이자에게 영후과를 주는 것까지는 뭐라고 안 하겠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자가 한 일이 뭐가 있습니까? 뭣 때문에 여덟 개나 주는 겁니까?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한 청년이 나서서 단호하게 말했다.
"저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두 개만 줘도 충분합니다!"
다른 청년도 외쳤다.
범심여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동생들은 영후과를 나누는 것 때문에 진남을 적대시한 것이다.
그녀는 동생들에게 실망했다.
'영후과 몇 개가 내 목숨과 가치가 비슷하다는 거야?'
진남은 그녀를 구했다.
목숨을 구해준 은혜는 그 무엇으로 보답한다고 해도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음모!
그때,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수림에서 엄청난 포효소리가 들렸다.
사지가 굵고 소의 모습에 두 눈이 시뻘건 요수가 엄청난 기운을 풍기며 달려왔다.
"혈안우(血眼牛)다! 도망가야 해!"
범심여는 안색이 확 바뀌었다.
혈안우는 요황 경지의 요수였다.
두 청년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음모!
그들이 피하기 전에 짐승의 울음소리가 연속으로 울려 퍼지더니 한 마리, 또 한 마리의 혈안우가 수림 속에서 달려 나왔다.
모두 여덟 마리였다.
"인간아, 영후과를 내려놓으면 곱게 죽여주마!"
이때, 엄청난 고함이 울려 퍼졌다.
높이가 세 장이나 되고 머리에 뿔이 달렸으며, 온몸에 털이 촘촘하게 난 요수가 혈안(血眼)을 부릅뜨고 엄청난 기운을 풍기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혈안우왕(血眼牛王)이다!"
범심여와 동생들은 그를 보자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혈안우왕은 요황 경지 오 단계의 요수였다.
'이제 우리는 죽었다!'
"심, 심여 누이……. 저것들을 막아주십시오. 우리는 가서 지원병을 찾아오겠습니다."
두 청년은 다리가 후들거리고 말도 더듬거렸다. 말을 마친 그들은 부리나케 도망을 갔다.
행동이 조금만 늦었더라도 그들은 다 죽었을 것이다.
"너희들……."
범심여는 심장이 둔탁한 망치에 맞은 것 같았다.
호형요수를 만났을 때 그녀는 동생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줬다.
그런데 위급한 상황에서 동생들은 그녀를 버렸다.
범심여는 그래도 개의치 않고 다시 그들을 데리고 영후과를 찾으러 왔다.
그런데 다시 위험한 상황이 되니 동생들은 또 그녀를 버리고 도망갔다.
"도망가려고? 어림도 없다!"
혈안우왕의 시뻘건 두 눈에서 핏빛이 뿜어 나왔다.
쿵!
여덟 마리의 혈안우는 고개를 젖히고 포효하더니 몸을 날렸다.
그것들 눈에서 나오는 핏빛은 마치 커다란 장막처럼 하늘에서 펼쳐지더니 그들을 전부 감쌌다.
도망가던 두 청년은 발걸음을 멈추고 두려움에 떨었다.
범심여의 몸도 살짝 떨렸다.
방대한 세력의 요수들을 만났으니 살아남을 희망은 거의 없었다.
"진남 오라버니, 미안해요. 저 때문에……."
범심여는 창백한 얼굴로 진남에게 사과했다.
범심여는 진남은 실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혈안우왕을 이길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괜찮소."
진남은 고개를 저었다.
하늘을 가득 채운 혈막이 덮치려는 순간 진남이 담담하게 말했다.
"먼저 떠나시오. 나는 반격하지 않겠소."
범심여는 어안이 벙벙했다.
두 청년도 어리둥절했다.
혈안우왕이 이내 귀가 울릴 정도로 크게 웃었다.
"하하하! 반격하지 않겠다고? 건방진 인간이구나! 아우들아, 저놈을 토막 내서 먹어버리자!"
음모!
여덟 마리의 혈안우는 흥분해서 연신 외치더니 혈막으로 진남을 뒤덮었다.
"그래?"
진남은 기세가 확 바뀌었다.
쿵!
그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딛더니 태고 거인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그대로 혈막에 부딪혀 혈막을 산산조각을 냈다.
남은 힘이 여덟 마리 혈안우의 몸을 때려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
진남은 마신처럼 몸을 움직이며 혈안우왕의 앞에까지 다가왔다.
"헉……!"
혈안우왕은 털이 곤두섰다.
그는 크게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고작 무왕 경지 정상급의 기운을 가진 녀석이 이토록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니?'
"죽어라!"
혈안우왕의 말이 끝나기 전에 진남의 주먹이 사정없이 날아왔다.
쿵!
커다란 소리와 함께 혈안우왕의 세 장이나 되는 거대한 몸집이 맞아서 흩어지더니 한 무더기 피로 변해 사방팔방의 나무에 흩날렸다.
나무들은 혈안우왕의 피를 맞고 산산조각이 났다.
진남은 한 방에 혈안우왕을 죽였다.
"이게……."
범심여와 두 청년은 깜짝 놀랐다.
혈안우왕은 요황 경지 오 단계였다.
'그런데 한 방에 죽었다고? 그렇다면…….'
세 사람은 헛숨을 들이켰다.
'이 정도에 도달하려면 적어도 무황 경지 칠 단계에 도달해야 한다. 진남처럼 젊은 나이에 무황 경지 칠 단계라니, 제구성의 최고의 인재도 진남과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조금 전까지 위풍당당하던 여덟 마리의 혈안우들은 그 광경에 비명을 질렀다.
놀란 혈안우들은 두 눈이 흰색으로 변하더니 미친 듯이 사방팔방으로 도망갔다.
진남은 기운을 거둬들이고 담담한 표정으로 두 청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나만 묻자. 내가 이 여덟 개의 영후과를 가져갈 자격이 되느냐?"
두 청년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진남의 도움이 별 필요 없었다고 비아냥댔다.
그럼 그들의 목숨을 구한 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진남의 실력이 이렇게나 대단한데 그들이 감히 건드릴 수 있을까?
하역에서 온 사람이라고 해도 진남은 그들이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혀, 형님, 우리 영후과도 다 가지십시오!"
두 청년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진남은 고개를 젓더니 그들을 무시하고 범심여에게 말했다.
"이만 갑시다."
"조, 좋아요."
범심여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두 눈에 이상한 감정이 반짝였다.
"진남 오라버니, 또 저를 구해주셨군요. 정말 대단해요. 어떻게 요황 경지 오 단계인 요수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어요? 하역에 있을 때도 유명한 분이셨죠?"
두 청년은 귀를 쫑긋 세웠다.
이렇게 대단한 실력을 가진 걸 보니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게 분명했다.
진남은 머뭇거렸다.
문득 그의 뇌리에 죽음의 바다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름 없는 무인이었소."
범심여는 진남이 대답을 피하자 더 묻지 않았다.
그녀는 진남을 데리고 제구성으로 향했다.
제구성으로 가는 길에 진남은 영후과를 삼켰다.
영후과는 입에 넣자마자 녹아서 맑고 순수한 힘으로 변했다.
힘은 자연의 기운을 담고 경맥을 따라 원영에까지 이르렀다.
전신 원영은 그 힘을 냉큼 흡수하더니 점점 기운이 강해졌다.
진남은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나머지도 마저 삼켰다.
쿵!
전신 원영이 마구 떨리더니 수많은 보라색 빛이 터져 나왔다.
빛은 신비한 갑옷 형상으로 모이더니 온몸을 뒤덮었다.
별안간 진남의 기운이 흔들리더니 더 강해졌다.
그의 옆에서 걷던 범심여와 두 청년은 그 기운에 심신이 흔들리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남의 경지는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대단했다.
"응?"
진남은 모든 신경을 원영에 집중했다.
그는 갑옷 형상이 만들어진 후 원영의 힘이 정상급으로 되었다는 걸 느꼈다.
'그럼 원영에 갑옷이 완전히 모이면 천지뇌겁을 불러올 수 있을까?'
진남은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진남의 원영은 세 번의 대겁을 겪었다.
전무후무한 상황에 사망대제도 놀라고 문도 노조도 놀랐다.
이번에 전신 원영이 도겁을 한다면 또 얼마나 놀라울까?
"내 손에 아직 일곱 개의 지보가 있어. 그중 두 개는 도겁할 때 사용하면 되겠구나."
진남은 중얼거렸다.
그의 마음속에서 흥분과 기대가 떠올랐다.
진남과 두 청년은 범심여를 따라 천험산맥을 벗어났다.
"응?"
진남은 공중에 떠올라 왼쪽 눈으로 아래를 살폈다.
이곳의 땅은 영기를 조금씩 머금고 있었다.
거기에서 자란 화초와 나무들은 산뜻하고 아름다워서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천지의 영기나 토지들도 역시 상역이 더 좋구나."
진남은 혼자 중얼거렸다.
지방의 풍토는 그 지역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상역의 인재들이 하역의 인재들보다 실력이 훨씬 강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진남은 의혹이 생겼다.
'왜 창람대륙은 상역과 하역이 다를까?'
"진남 오라버니, 이제 분천고국에 들어섰어요."
범심여가 설명했다.
"분천고국은 다른 세력들과 좀 달라요. 면적은 동주의 절반이나 차지해서 무척 넓고 방대해요. 분천고국에는 몇십만 개의 마을, 진, 성, 세력이 있어요."
그녀의 말에 진남은 살짝 놀랐다.
진남은 분천고국이 낙하왕국과 비슷할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