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 대단한 계략
소중황은 안색이 굳어졌다.
그는 진남이 이토록 건방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마음속의 화가 걷잡을 수 없이 솟아올랐다.
입을 열어 말하려던 그는 진남의 엄청난 기운을 보자 반년 전에 진남이 비양 성지로 쳐들어와 열여덟 명의 예비 성자를 연속으로 폐인으로 만든 것이 생각나 마음속의 화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가라앉았다.
'진남이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어서 소중황은 얼굴이 불타는 것 같았다.
그는 이를 깨물고 말했다.
"진남, 죽음의 바다가 방금 열렸다. 우리의 결전 장소는 사신대이지 여기가 아니다. 사신대에 가서 우리 둘의 천부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잘 보여주마."
그의 말에 제자들은 실망했다.
'이유를 듣기 좋게 댔지만 소중황은 겁이 난 게 분명하다.'
'소중황은 지급 일품의 무혼이고 진남은 고작 현급 십품의 무혼이다. 그러니 사신대에 가면 진남이 질 게 뻔하잖아.'
진남은 무덤덤한 얼굴로 긴 칼을 거둬들이며 말했다.
"사신대에서든 여기서 생사 대결을 하든 결과는 마찬가지야. 어디서든 너는 다 진다."
말을 마친 그는 더 이상 소중황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진남은 소중황을 죽이고 싶었지만 비양 성지에는 문도 노조가 직접 지휘하고 있으니 그럴 수 없었다.
그렇다면 사신대에서 소중황을 이기고 신물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 진다고?"
소중황은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정말 건방지구나. 나는 진남의 도발에 응할 수 없지만, 지급 일품 무혼을 가지고 있고 무예 재능이 매우 높다. 그런데 고작 현급 십품무혼으로 나와 겨루겠다고? 게다가 문도 노조가 강한 수단으로 나를 도와줄 텐데?'
소중황은 비아냥거리려고 하다가 묘어심 등을 보자 계략이 떠올랐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묘어심 등에게 말했다.
"세 분께서 나에게 도움을 청하니 거절할 수 없소. 그러나 이 영약은 하나뿐이오. 그럼 세 분 중 진남을 무릎 꿇게 하는 사람에게 영약을 주는 게 어떻소?"
무인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소중황의 의중을 파악했다.
'소중황은 참 비열하구나! 삼대 세력을 이용해서 진남을 상대하려 하다니!'
송옥, 육간, 묘어심은 당연히 소중황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들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영약을 얻을 수 있다면 진남을 무릎을 꿇기는 건 물론 죽이라고 해도 할 수 있었다.
"진남!"
송옥이 제일 먼저 나섰다.
그는 뒷짐을 지고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분천고국은 저 영약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소중황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 우리 분천고국에서 사례를 두둑하게 하겠다."
"진남 도우, 소중황에게 무릎 꿇고 절을 하거라. 우리 만향루는 반드시 좋은 조건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만향루와 척지는 것이다."
묘어심이 나서서 말했다.
그들에 비해 창을 든 육간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그는 바로 창을 뽑아 들었다.
"진남, 소중황에게 무릎을 꿇든지 나와 생사 대결을 해서 목숨을 잃든지 선택하거라."
육간은 상도맹의 호법이었다.
묘어심 등 내문 제자들과 실력이 비슷했다.
그는 무황 경지 정상급이었는데, 호통을 치자 여기저기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비양 성지의 제자들은 그 장면을 지켜보며 냉소를 금치 못했다.
소중황이 비아냥거리며 입을 삐죽거렸다.
무인들은 일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남은 이미 문도 노조의 미움을 샀다. 지금 다른 삼대 세력도 그를 억압한다. 과연 진남이 어떻게 할까? 만약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그는 상역 동주의 사대 세력모두의 미움을 사게 될 것이다.'
진남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는 삼대 세력과 아무런 원한이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소중황의 한마디에 모두 나를 공격하다니.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싸울 거면 덤벼라. 문도 노조의 미움도 샀는데 고작 내문 제자인 너희들이 대수냐?"
진남은 사정없이 다시 긴 칼을 뽑아 들고 살기등등해서 말했다.
송옥, 묘어심, 육간은 약속이나 한 듯 얼굴이 굳었다.
'배짱 한번 두둑하구나!'
보라색 보좌에 앉은 문도 노조는 그 말에 입꼬리가 움찔했다.
"그럼 내 창을 받아라!"
송옥과 묘어심은 청룡 성주의 눈치를 봤다.
그러나 육간은 별로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창을 날렸다.
창은 폭발하면서 수많은 그림자로 변해서 진남에게 날아들었다.
육간은 단번에 무서운 살초를 사용했는데 그 위력이 엄청났다.
소중황은 그 모습을 보고 입가의 웃음기가 점점 짙어졌다.
육간이 진남을 죽일 수 있을지 없을지 상관없었다.
어찌 됐건 진남은 삼대 세력에게 모두 미움을 샀다.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진남의 두 눈에서 엄청난 뇌정이 뿜어 나왔다.
그가 발을 내디뎌 번개같은 창의 형상들을 왔다 갔다 하며 전부 피해냈다.
지켜보던 육간, 묘어심, 송옥은 표정이 살짝 변했다.
'대단한 신법이구나!'
"꺼져!"
진남은 순식간에 육간의 앞으로 와서 봉황지권으로 힘껏 내리쳤다.
"주천둔!"
육간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그는 진남의 힘이 이렇게 강할 줄 몰랐다.
자신의 힘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는 얼른 왕도지기인 방패를 꺼냈다.
쿵!
방패는 순식간에 깨졌고 남은 권법의 힘은 육간의 몸에 떨어졌다.
육간은 연신 뒤로 물러섰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상역에서 온 천재잖아! 그런데 진남의 한방에 그를 물러서게 한 거야?'
특히 소중황은 놀라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런 힘이면 진남이 그에게 백 초식을 양보한다고 해도 그는 진남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둘 다 뭐 하는 거요? 함께 싸워야지!"
육간이 고개를 돌려 호통쳤다.
송옥과 묘어심은 머뭇거리더니 손을 쓸 준비를 했다.
상역의 천재 셋이 연합하여 하역의 인재를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목표는 진남이 소중황에게 무릎을 꿇게 하려는 것이지 실력의 우열을 가리는 싸움이 아니었다.
쿵!
그때, 죽음의 바다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왔다.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죽음의 바다의 문이 어느새 완전히 열렸다.
문에서 광풍이 용솟음쳤는데 마치 절세의 요귀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것 같았다.
죽음의 문이 드디어 완전히 열렸다.
육간, 송옥, 묘어심은 동시에 공격을 멈추었다.
죽음의 문이 열렸기에 그들은 진남에게 도전할 수 없었다.
진남과 소중황이 사신궁에서 최종 결전을 치러야 했다.
그들이 참견한다면 청룡 성주 등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손을 쓸 것이다.
"소 사제, 죽음의 바다가 끝나면 다시 진남을 죽이겠소."
육간, 송옥 그리고 묘어심이 얼른 말했다.
소중황은 눈이 반짝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의 바다가 끝나 내가 신물을 얻으면 문도 노조는 신물로 청룡 성주를 상대할 것이다. 또한 비양 성지와 청룡 성지는 다시 싸움할 것이다. 존자 이상의 강자는 모두 싸움에 참가하여 진남을 상대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진남을 죽이려면 역시 무황 경지의 강자인 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무인들은 급히 죽음의 문으로 달려들지 않고 고개를 돌려 진남과 소중황을 쳐다봤다.
이번 죽음의 바다는 두 사람의 무대이기 때문이었다.
"가자!"
진남을 바라보는 소중황의 시선에 못마땅한 기색이 드러났다.
그리고 몸을 가볍게 날려 가장 먼저 죽음의 문으로 들어갔다.
뒤에 있던 양 봉주 등 열여덟 봉주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뭐 하는 거지?"
"봉주들은 뭐 하려는 거지? 지금 싸움을 시작하려는 걸까?"
"말도 안 돼. 지금 상황에 무슨 싸움?"
무인들은 눈빛이 반짝였다.
진남 등도 열여덟 명의 봉주를 쳐다봤다.
"혈사대법!"
양 봉주 등은 동시에 외쳤다.
그들 몸에서 혈사(血蛇, 피로 만들어진 뱀)가 꿈틀거리며 나오더니 소름 돋는 소리를 냈다.
혈사들은 그들을 감싸더니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그러자 그들이 가지고 있던 존자의 기운이 무황 경지 정상급으로 떨어졌다.
무인들은 모두 안색이 어두워졌다.
'기운을 존자에서 무황 경지 정상급으로 누르다니……. 설마 열여덟 존자도 죽음의 바다에 들어갈 예정인가?'
"이거 큰일이군."
단목 봉주 등은 모두 안색이 살짝 변하였다.
비양 성지에서 이런 비겁한 수단을 쓸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열여덟 봉주들이다.
그들은 강한 무혼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예 실력도 엄청났다.
보통의 무황 경지 정상급 실력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청룡 성주만이 놀란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그들의 음모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하하! 진남, 안에서 기다리마."
양 봉주는 진남을 보며 흉악하게 웃었다.
그는 진남에 대한 한이 뼈에 사무쳤다.
진남의 뼈까지 갈아서 마셔도 시원찮았다.
진남이 청룡 성지에 있을 때는 살황 등의 보호가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죽음의 바다에 들어가면 경지를 억제했다고 해도 진남을 상대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열여덟 봉주가 동시에 죽음의 문으로 날아갔다.
"우리도 가자!"
비양 성지의 무황 경지 정상급의 강자들도 큰소리로 외쳤다.
그다음에 무려 몇천 명의 무황 경지 존재들이 몸을 날렸다.
그들은 차가운 시선으로 진남을 보더니 한 걸음 내디디며 기다란 용처럼 죽음의 문으로 쳐들어갔다.
넋을 놓고 있던 무인들은 놀라 할 말을 잃었다.
'대단한 계략이다!'
열여덟 봉주가 호위하고 몇천 명의 제자들이 도와준다.
이토록 방대한 세력은 예전에 죽음의 문이 열렸던 이래로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었다.
무인들은 드디어 깨달았다.
이렇게 방대한 세력이 있으니 진남은 사신대에 올라 소중황을 죽일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 전에 비양 성지의 사람들이 연합하여 그를 죽일 수도 있었다.
"진남, 이번에는 네가 어떤 재간을 부리는지 보자꾸나!"
보라색 보좌에 앉은 문도 노조가 차가운 시선으로 처음 말했다.
목소리는 천둥처럼 울려 퍼져 무인들은 피가 들끓었다.
"그렇습니까?"
진남은 무표정했다.
그는 열여덟 봉주가 나설 줄은 정말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많고 상대방이 아무리 대단해도 그는 두렵지 않았다.
"진남, 이번 죽음의 바다는 유난히 험하니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 청룡 성지에서 너에게 도움을 많이 줄 수 없다. 모든 것이 너 자신에게 달렸다. 그리고 사시관(死侍官)을 조심하거라. 그도 문도 노조의 사람이다. 사신대에 올라 소중황을 이기게 되면 반드시 제 일 지보를 가지거라. 그리고 중생영도 잊지 말거라. 이 두 보물을 은 반드시 챙겨야 한다."
당청산이 진남에게 진지하게 당부했다.
"사시관을 조심하라고요? 제 일 지보와 중생영 맞죠?"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는 당청산과 청룡 성주 등에게 공수하고 인사했다.
"가자!"
진남은 번개처럼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하하! 죽음의 바다, 내가 왔다!"
용호요종은 큰소리로 외치며 묘묘 공주와 사마공을 태우고 죽음의 문으로 날아갔다.
비양 성지에 비하면 그들은 고작 넷이라서 무척 초라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