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마왕곡
비양성, 제일 천교전(天驕殿) 안.
대진 안에 소중황이 상석에 앉아있었다.
그는 싸늘한 눈길로 아래에 있는 여인을 보며 호통쳤다.
"강벽난! 나는 이미 많은 강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앞으로 상역 동주의 제자가 될 것이다. 이런 신분은 하역 전체에서 아무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너는 여전히 나에게 시집오지 않겠다는 거냐?"
"소중황 오라버니, 진남이 죽지 않으면 저는 시집갈 생각이 없습니다."
강벽난이 말했다.
이번에 비양 성지에서 비양 연맹과 인재 연맹을 맺은 것은 모두 소중황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설사 그녀가 상도맹의 성녀라지만 소중황 앞에서는 신분이 낮았다.
하지만 그녀도 자신만의 고집이 있었다.
"진남, 진남, 또 진남이구나!"
소중황의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왔다. 그가 악마처럼 울부짖었다.
"나의 셋째 동생이 그 자식 때문에 짐승보다 못한 처지가 되었고, 나의 둘째 동생은 그 자식 때문에 죽었다. 그런데 너는 아직도 내 앞에서 그 자식을 들먹이는 거냐?
반년 후의 대결에서 그 자식은 반드시 나에게 맞아 죽을 것이다! 다만 오늘 폐관에 들어가야 하기에 당장 그 자식을 죽일 순 없다."
"저는……."
그가 울부짖자 강벽난은 가슴이 떨렸다. 강벽난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드러났다.
"나는 줄곧 진남을 죽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진남이 죽으면 나는 진짜 소중황에게 시집가야 하는 걸까?"
소중황은 절세 인재가 맞았다.
그러나 그녀는 왠지 그가 싫었다.
"왜? 너 혹시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거냐?"
소중황의 눈에 싸늘한 살기가 드러났다.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요?"
강벽난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려 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서 진남이 그녀를 거절하고 반항하고 격파하던 형상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 광경에 놀라 식은땀이 났다.
이때 그녀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전음영패가 반짝거렸다.
강벽난은 전음영패를 들어 자세히 살피더니 의아한 듯 말했다.
"진남이 청룡 성지를 떠났네요?"
"뭐라고?"
소중황은 어리둥절했다.
바로 실눈을 하고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진남아. 조용히 청룡 성지에 있으면서 그 영감탱이더러 보호해달라고 할 것이지 죽고 싶어서 나온 것이냐?"
* * *
진남은 지금 묘묘 공주에게 끌려 마왕곡으로 가고 있었다.
"잘 듣거라, 이따 방심하지 말거라."
묘묘 공주가 중얼거렸다.
"이번 무황 진급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네가 만약 나를 제대로 돕지 않으면 나중에 너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
진남은 살짝 머리가 아팠다.
삼백 리 되는 거리를 오면서 묘묘 공주는 이 말을 적어도 삼백 번은 반복했다.
그는 듣기 싫었다.
그러나 진남도 항상 난폭하여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던 묘묘 공주가 이번에는 진짜 긴장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무황 진급이 묘묘 공주에게 매우 중요한가 보구나."
진남은 중얼거리며 저도 모르게 묘묘 공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자신이 종래로 그녀를 똑바로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느새 그녀는 이미 열세 살짜리 어린아이가 아닌 늘씬하고 피부가 하얀 매력적인 여인이 되어 있었다.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진남은 넋을 잃었다.
"너 이 자식, 뭘 보는 거냐?"
묘묘 공주의 예쁜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처음부터 진남의 시선을 느꼈다. 그런데 그는 오래도록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어……."
진남은 정신을 차렸다. 마음속으로 살짝 놀랐다.
"어떻게 된 거지?"
"다음에 다시 보면 너를 죽도록 때릴 거다!"
묘묘 공주가 투덜거리며 위협하듯 주먹을 휘둘렀다.
"그래?"
진남이 저도 모르게 실소하며 말했다.
"지금의 너는 아마 나를 이기지 못할걸?"
"뭐?"
묘묘 공주가 눈을 부릅뜨고 두 손을 내밀어 진남의 몸을 향해 다가갔다.
"전에는 그토록 얌전했는데 이제는 감히 말대꾸를 해? 다른 사람은 참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참을 수 없다!"
그들은 그렇게 장난을 치며 마왕곡에 도착했다.
마왕곡 멀리에는 두 개의 산봉우리가 우뚝 서 있는데, 모두 어둠이 덮여있었다.
그 안에서는 머리카락이 곤두서게 만드는 소름끼치는 울부짖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두 산봉우리 사이에는 입구가 하나 있었다.
어두워서 안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 출입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역 십대 금지의 한 곳으로 설사 서열이 꼴찌였지만,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마왕곡에는 일 년 내내 무인들이 오지 않았다.
일부 강자들이 공법의 수요로 이곳에 올 뿐이었다.
"가자!"
묘묘 공주가 먼저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진남이 뒤를 따랐다.
그들이 안에 발을 들여놓자 수많은 울부짖는 소리가 사방팔방에서 울려 퍼졌다.
해골, 유령 등이 일제히 나타나 껄껄 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들이 진남과 묘묘 공주를 보는 시선은 마치 맛있는 음식을 보는 것 같았다.
"꺼져라!"
진남이 길게 소리치자 식해 안의 큰 종이 바로 나타나 수많은 영기를 뿌려 호되게 두드렸다.
땅!
방원 삼 리 내의 마물들이 모두 비명을 질렀고, 보이지 않는 힘에 맞아 몸이 부서졌다.
진남은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경지가 무황 오 단계와 맞먹어 마물들이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그들은 빠르게 앞으로 전진했다.
그들이 지나가는 곳의 모든 마물이 전부 살해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옆에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방원 일 리 이내가 오염이 되지 않은 것처럼 마기가 조금도 없었다.
"바로 저기에 봉영도장(封靈道場)이 있다!"
묘묘 공주가 입을 열었다.
진남은 고개를 들고 보았다.
마왕곡의 중앙에 핏자국이 얼룩진 오래된 도장이 있었다.
도장은 방원 삼 리로 그리 크지 않았다.
도장 위에는 시커멓게 부패한 시체도 있었다.
시체는 무종의 기운을 내뿜었다. 생전에 모두 무종 강자였던 게 틀림없었다.
"응?"
진남의 왼쪽 눈에 번개가 번쩍거렸다.
겉보기에 평범한 도장 안에 강대한 봉인의 힘이 있는 걸 그는 똑똑히 보았다.
경지가 무황에 도달했지만 그는 여전히 두려웠다.
"진남, 난 봉영도장에 올라가 이 봉인의 힘을 빌릴 것이다. 이따 강대한 마두가 나올 것이니 네가 나를 보호하거라!"
묘묘 공주의 굳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놀려 봉영 도장 위에 올라갔다.
"구! 전! 광! 령! 묘! 성! 천!"
묘묘 공주가 크게 외쳤다.
마지막 글자를 내뱉자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엄청난 빛이 활짝 펼쳐져 마왕곡을 밝게 비추었다.
"근원의 힘! 깨어나라!"
묘묘 공주가 큰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온몸에서 기세가 솟아올랐다.
그녀의 방원 삼 리 안의 영광이 감도는 꽃, 풀, 영약 등이 전부 활짝 피어나 마왕곡이 선경으로 변했다.
"실로 강대한 힘이구나!"
진남은 눈을 찌푸렸다.
"묘묘 공주의 기운은 지금의 나의 경지를 훨씬 초월했잖아!"
후! 후! 후!
이때, 마왕곡 안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온몸이 검고 마기를 뿜는 자들이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묘묘 공주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이들은 모두 지난날 마왕곡에 들어왔다가 강제로 악마가 된 무인들이었다!
"꺼져라!"
진남의 왼쪽 눈에서 엄청난 천둥이 뿜어 나왔다.
뇌신이 강림한 듯 사방을 휩쓸었다.
* * *
같은 시각, 비양성 백 리 밖의 한 산봉우리 위.
휙! 휙! 휙!
하늘을 가르는 소리가 격렬하게 울려 퍼지고 허공이 끊임없이 흔들렸다.
여러 개의 그림자들이 일제히 강림했다.
바로 양 봉주, 한 봉주, 시혈성 성주, 도성 성주 등등 한 무리의 봉주들이었다.
휙! 휙! 휙!
봉주들을 따라 또 여러 개의 그림자가 일제히 강림했다.
그들은 지난날 청룡 성지의 성자 주현, 예비 성자 이도, 엽호, 만상언, 도파립, 용쌍, 용헌, 육금, 그리고 비양성의 성자 노천강, 상도맹 성녀 강벽난, 그리고 하역 일 위라 불리는 소중황이었다.
"이번에는 강벽난의 계획에 따라 진행한다. 명심하거라, 너희에겐 오직 반 주 향의 시간밖에 없다! 반 주 향의 시간 내에 꼭 죽여야 한다!"
양 봉주가 사납게 소리쳤다. 그의 눈에 흉악한 빛이 스쳤다.
"진남! 이번에 꼭 너를 매장하겠다!"
"조천신경(照天神鏡), 천지를 비춰라!"
양 봉주가 손을 휘젓자 조천신경이 솟아올라 신광을 뿜으며 허공에 들어갔다.
한참 후 조천신경에 마왕곡이 나타나고 마왕곡에 있는 진남과 묘묘 공주의 형상이 뚜렷하게 보였다.
"다들 손을 써 천기를 가리시오!"
양 봉주가 크게 소리치자 열여덟 명의 봉주가 모두 동시에 조천신경을 향해 공법을 펼쳤다.
마왕곡 위쪽의 기운이 변하더니 다시 평온을 찾았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강벽난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계획이었다.
봉주들을 출동하여 마왕곡의 기운을 가린 다음 인재들을 마왕곡에 들여보내 진남을 죽이려 했다.
이렇게 번잡스러울 수밖에 없는 건 청룡 성주가 아직 청룡 성지에 있기 때문이었다.
설령 청룡 성주가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해도 그는 죽음의 바다의 신물이 변한 것이라 경지가 엄청났다.
상역의 우두머리 혹은 하역의 비양 성주라도 감히 그를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만약 봉주들이 마왕곡에 강림하면 기운이 너무 강하여 천기를 가린다 해도 청룡 성주는 분명 순식간에 발견할 수 있었다.
때문에 봉주들더러 천기를 가리게 하고 다시 인재들을 보내야 했다.
설령 청룡 성주의 경지가 뛰어나다 해도 이상을 발견하려면 적어도 반 주 향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이렇게 강한 수단과 함께 내가 직접 나섰으니 진남은 죽어도 영광스러울 것이다!"
소중황의 얼굴에 멸시가 가득했다.
봉주들이 강벽난의 계획에 동의한 것은 죽음의 바다가 열렸을 때 진남이 그들에게 위협이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중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진남은 고작 현급 십품 무혼이라 그와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현급 무혼과 지급 무혼은 하늘과 땅 차이었다.
그가 직접 나선 것은 진남이 그의 둘째 동생, 셋째 동생을 해하고 또 진남 때문에 지금까지 강벽난을 얻을 수 없어 진남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진남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않으면 원한을 풀 수 없었다.
"허공동파(虛空動破), 나이대법(挪移大法)!"
시혈성 성주가 나섰다.
그의 주먹 끝에서 수많은 혈광이 뿜어 나와 허공을 쳤다.
핏빛 무늬의 대진이 펼쳐졌다.
"가자!"
소중황이 크게 외치며 엄청난 기세로 먼저 대진 안으로 들어갔다.
강벽난, 주현, 노천강 등이 서로를 한 번 마주 보더니 소중황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 * *
그 시각, 마왕곡.
진남과 묘묘 공주는 밖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끝이 없구나!"
진남이 중얼거렸다.
마왕곡 주위에서 악마가 된 무인들이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그들의 경지는 무종 경지 일 단계에 도달했다.
진남은 전신의 왼쪽 눈을 이용하여 마왕곡의 내막을 살피려고 했지만, 그 안의 기운이 너무 신비하여 꿰뚫어 볼 수 없었다.
"저는 예전의 약원 공주예요. 전 큰 시련을 겪었지만 죽지 않고 다시 황위에 오르려고 해요. 하늘이시여, 지난날 선조들의 공로와 약원에서 겪은 고난을 높이 사 신약 황겁(神藥皇劫)을 내려주십시오. 제가 신약으로 진급하면 반드시 보답하겠……."
묘묘 공주는 비범한 기세로 두 손을 맞잡고 나지막하게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몸에서 부드럽고 깨끗한 빛이 뿜어 나왔다.
그 빛은 마기 속에서 유난히 눈부셨다.
그녀의 노랫소리와 함께 허공에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응?"
여덟 마리의 무종 경지 삼 단계의 마물들을 한 번에 차버린 진남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