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엄청난 의지
"하하하!"
설무흔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진남, 진짜 오만하구나. 무혼을 드러내지 않다니! 너는 네가 대단한 줄 아느냐? 무혼도 드러내지 않고 지나가려고? 무혼이 없으면 일반사람과 무슨 다른 점이 있느냐! 우습다, 진짜 우스워!"
응심룡 그리고 호수 맞은편의 금 당주, 진비, 진영 그리고 많은 무인들은 모두 표정이 흔들렸다.
'진남이 진짜 무혼을 쓰지 않았어!'
진영은 설무흔보다 한발 늦게 반응하여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진남은 진짜 쉽게 반응하네요! 보셨죠? 무혼이 없으면 그도 별거 아니에요."
금 당주, 진비 그리고 모든 무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진영의 말은 듣기 거북했지만 틀린 건 없었다.
진남은 무혼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이때 설무흔과 진비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일제히 고개를 젓던 사람들도 표정이 흔들렸다.
"계속…… 전진…… 해야 해……."
낮고 쉰 소리가 들려왔다.
진남의 피투성이였고, 몸은 이미 붕괴되었다.
다만,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없는 의지가 그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는 휘청거리며 천천히 일어나 오른발을 들어 앞으로 내디뎠다.
쿵!
엄청난 압력이 다시 밀려왔다. 압력이 진남의 몸을 덮쳤다.
진남의 몸은 즉시 짓눌려 쓰러졌다. 온몸에 난 상처가 다시 터지더니 피가 청색 석판의 대로를 물들였다.
진남은 커다란 망치가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것만 같았다.
이백서른아홉 보를 걸으면서 쌓인 피로가 폭발해 통증과 섞여 진남의 정신을 조금도 남김없이 삼켜 버렸다.
그런데 통증과 피로 속에서 약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확고한 빛이 반짝거렸다.
진남이 몸을 휘청거리며 다시 발을 내디뎠다.
쿵!
압력은 무정하게 다시 내리눌렀다.
진남은 몸부림쳤다. 그의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두 눈에 비낀 확고한 빛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확고한 의지가 상처투성이인 몸을 지탱하여 다시 일어서고 다시 도전하게 했다.
쿵!
압력이 그의 몸을 세게 짓눌렀다.
응심룡과 설무흔뿐만 아니라, 호수 맞은편의 금 당주 일행과 모든 무인들은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랐다.
'무혼을 드러내지 않았어……. 법보를 쓰지도 않았어…….'
그는 상처투성이 몸으로 말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 끊임없이 휘청거리며 일어섰다.
매우 처참했지만, 그 장면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의 모습은 신성하고 장엄하게 느껴졌다.
더는 아무도 비웃지 않았다. 수군거림이 사라졌다.
모두가 진남을 주시하고만 있었다.
넘어지고 또 일어났다.
그는…… 성공할 수 있을까……?
일곱 번!
여덟 번!
아홉 번!
열 번 짓눌린 후 진남이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섰다.
몸을 일으키는 데만 힘을 많이 쓴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발을 들어 앞으로 내디뎠다.
엄청난 압력이 그를 짓눌렀다.
쿵!
사람들은 진남의 몸이 산산조각 날 것만 같았다.
진남의 몸은 짓눌려 허리가 휘어 있었다.
진남은 몸 안에서 미지의 힘이 폭발해 압력을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
진남의 두 눈에는 확고한 빛이 반짝거렸다. 작지만 꺼지지 않았다.
그의 의지가 그를 엄청난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버티게 했다.
쿵!
진남의 오른발을 천천히 내디뎠다.
'이백마흔 보! 진남이 이백마흔 보까지 걸어갔다!'
응심룡, 설무흔, 금 당주, 진영, 진비, 많은 무인들이 일제히 얼굴에 놀라움을 드러냈다.
'성공했어! 진남이 진짜 해냈어! 무혼을 쓰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이백마흔 보를 걸었어!'
'예전의 어떤 인재가 그와 어깨를 견줄 수 있을까?'
진영과 설무흔은 뺨을 맞은 것처럼 얼굴이 얼얼했다.
그들은 진남이 무혼에만 의지한다고 비웃었다.
그리고 무혼이 없으면 진남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진남은 무혼 없이 해냈다. 그들이라면 절대 불가능했다.
고요해졌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시끄러워졌다.
"진남은 정말로 대단하구나!"
"그의 의지는 과연 누가 비교할 수 있을까?"
"진남이 오늘의 성과를 이룬 건 결코 무혼 때문이 아니다!"
"……."
무인들은 좀 전의 광경에 놀라 칭찬하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진남이 진짜 해냈어……."
이때 응심룡이 중얼거렸다.
그는 처음에 진남이 설무흔의 내기에 동의한 것이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었다.
이제 그는 깨달았다. 진남이 도발에 넘어간 것이든 아니든 그의 의지는 탄복할 만했다.
그런데 이때.
진영이 소리를 질렀다.
"이백마흔 보 걸었으면 뭐 해요? 진남은 삼백 보 걷겠다고 큰소리쳤어요! 설사 그가 무혼을 드러낸다고 해도 삼백 보를 걷는 건 하늘의 별 따기에요. 절대 불가능해요!"
칭찬하던 무인들은 모두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들은 짜증 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넌 이백마흔 보까지 갈 수 있어?'
"진영아, 말조심하거라!"
진비가 호통쳤다.
"후."
금 당주가 고개를 저으며 한탄했다.
"진남의 의지는 청룡 성지에서는 이미 정상급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삼백 보를 걷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니 설사 그가 이백아흔아홉 보를 걷는다고 해도 삼백 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세상에 이름을 날릴 수 없을 것이다."
진비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무인들은 모두 동감하는 듯 일제히 한숨을 쉬었다.
지금의 형세로 보아 진남이 만약 무혼을 드러내면 예전의 이백육십 보의 기적을 깨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진남은 이미 선언했기에 만약 그 말을 지키지 못하면 사람들에게 꼬투리를 잡힐 것이었다.
* * *
같은 시각, 삼중문의 청색 석판의 대로.
설무흔은 놀라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비웃었다.
"진남, 나는 너의 의지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넌 이백마흔 보 걷고도 이미 죽을 지경이구나. 설사 네가 무혼을 드러낸다 해도 삼백 보까지 갈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그만 애쓰지 말고 포기하거라."
응심룡은 화난 표정으로 뭔가 말하려 했다.
그러나 휘청거리는 진남을 보더니 저도 모르게 침묵했다.
진남의 몸은 계속 전진하고 있었다.
그의 대뇌는 이미 아픔과 피로에 침식되어 흐리멍덩했다.
계속 전진하려는 생각만이 마음속에서 회오리쳤다.
누군가 그를 칭찬하건, 비웃건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다만 전진할 뿐이었다.
진남이 이백마흔 한 보를 내딛자 이변이 발생했다.
첫 번째 문과 두 번째 문에서 칠색 빛이 뿜어 나와 살아있는 것처럼 생동한 용 모양을 이루더니 진남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진남의 몸에 칠색 빛이 반짝거렸다.
순식간에 엄청난 압력이 사라졌다.
진남은 한 걸음 한 걸음 조금도 멈추지 않고 발을 들었다 내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백오십 보를 걸었다.
갑작스런 변화에 응심룡, 설무흔, 금 당주 등과 무인들은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종래로 저런 칠색 빛이 나타났던 적은 없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거지?"
"……."
금 당주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길게 숨을 들이쉬더니 말했다.
"삼중 무황이 이 삼중문을 만든 건 제자들의 의지를 단련하기 위해서이다. 진남이 자신의 의지로 이백마흔 보를 걸어 첫 번째 문과 두 번째 문의 인정을 받았다. 때문에 진남은 아무렇지 않게 걸을 수 있는 게야."
그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들은 전에 삼중문을 돌파할 때 모두 무혼을 드러내고 심지어 법보도 사용했었다.
종래로 아무도 진남처럼 자신의 의지로만 나아가지 않았었다.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남은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의 속도는 삼중문을 돌파했던 그 누구보다도 빨랐다.
무인들이 다시 환호를 질렀다.
"이백일흔 보!"
"기록을 깼어!"
"……."
진남이 이백일흔 보를 걸었을 때도 그의 몸에 나타난 칠색 빛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계속 앞으로 전진했다.
다만 속도가 꽤 느려졌다.
반주 향이 타는 시간이 지난 후 사람들은 모두 숨을 들이켰다.
'이백아흔아홉 보! 진남이 이백아흔아홉 보를 걸었다! 삼백 보까지 한 보 남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진영은 표정이 크게 변했다.
"이런!"
설무흔은 안색이 아주 안 좋아졌다.
그는 진남이 이렇게 쉽게 이백아흔아홉 보를 걸을 줄 전혀 예상치 못했다.
만약 진남이 진짜 삼백 보를 내디디면 그는 이백 개의 원석을 배상해야 했다.
그들의 생각과 달리 금 당주와 모든 무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긴장감에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만 같았다.
만약 진짜 삼백 보를 내디딘다면 그건 역사적인 장면이 될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남의 몸에 나타났던 칠색 빛이 천천히 사라졌다.
진남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계속 전진했다.
천천히 왼발을 들어 삼백 보를 향해 내디뎠다.
쿵!
천둥이 우는 것 같은 커다란 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동시에 진남의 머리 위에 엄청난 압력이 솟아올라 거탑 형상을 이루더니 진남을 향해 떨어져 내려왔다.
거탑 형상은 진남의 몸을 세게 눌러 순식간에 쓰러뜨렸다.
뚝 뚜둑!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헉……!"
금 당주와 모든 무인들을 물론 비웃던 진영과 설무흔도 깜짝 놀랐다.
"계…… 소옥…… 저언…… 진……."
진남이 힘겨운 소리를 냈다.
그는 격렬하게 발버둥치며 천천히 땅에서 일어섰다.
오른발을 앞으로 움직였다.
쿵!
보이지 않는 거탑이 다시 짓눌렀다.
"악!"
진남의 비명이 허공을 갈랐다.
이번에 짓눌리자 진남의 상처가 다시 터졌다.
피가 분수처럼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그의 두 손, 가슴, 두 발의 뼈와 경맥이 모두 끊어졌다.
그는 폐인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진남은 무너지지 않고 부러진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며 내밀어 땅을 받치고 자신의 몸을 떠받들더니 천천히 일어섰다.
쿵!
거탑이 다시 무정하게 내려왔다.
그의 끔찍한 비명이 울렸다. 온몸의 상처가 더 심해졌다.
모든 사람의 안색이 변했다.
'미쳤어! 진짜 미쳤어! 이대로 가면 그는 산 채로 눌려 죽을 것이다!'
진영과 설무흔도 조롱을 멈추었다. 그들도 이 광경에 큰 충격을 받았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저토록 미친 듯이 노력했던 적 있던가?'
금 당주가 뭔가 생각난 듯 기뻐하며 말했다.
"진남은 아직 무혼을 쓰지 않았다! 만약 지금 무혼을 쓰면 그는 삼백 보를 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맞다! 지금까지 진남은 무혼을 쓰지 않았다!'
"그가 진짜 해낼 수 있을까요?"
진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청색 석판의 대로 위의 설무흔은 진남이 아직 무혼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니 안색이 더없이 창백해졌다.
'이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진남이 해냈다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남의 짓눌렸던 몸이 다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쿵!
거탑이 다시 짓눌렀다.
쿵!
쿵!
쿵!
짓누르는 소리가 연거푸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표정이 다시 변했다.
진남이 무혼을 드러내지 않았다.
'설마…… 진남은 무혼을 드러내지 않을 생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