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연단사(鍊丹士)
같은 시각 진남의 식해는 온통 어둠이었다.
마단 존자가 영혼마화로 진남의 영혼을 태우면서 적지 않은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었다.
궤단대전이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지만 열두 시진이 지나서야 진남의 의식은 깊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깨어났다.
진남은 눈빛이 흐릿했다.
"진남, 마단 존자의 모든 성과는 궤단대전 덕분에 생긴 것이다. 마단 존자가 몰락하면서 존자의 힘을 궤단대전에 불어넣어 이보로 만들었다. 그러니 궤단대전을 잘 연화하면 이득이 많을 것이다."
이때 당청산의 목소리가 진남의 뇌리에 울려 퍼졌다.
"선배!"
진남은 정신이 번쩍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당청산 외에 단목 봉주 등도 있었다.
그는 얼른 인사를 드리려 했다.
그런데 식해에서 뜨거움이 전해졌다.
단목 봉주 등도 그 뜨거움을 느끼고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저었다.
진남은 얼른 의지를 거두고 식해에 깊숙이 들어갔다.
아무런 변화 없는 식해의 변두리에 오래된 경서가 떠 있었다.
"이게 궤단대전인가?"
진남은 호흡을 멈추었다.
그는 조금 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지만 당청산의 말을 들어보니 궤단대전의 가치를 알 것 같았다.
그는 문득 의문스러워졌다.
'왜 궤단대전이 변두리에 떠 있지?'
"이걸 두려워하는 걸까?"
진남은 놀랐다.
신비한 구리거울은 아무도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궤단대전이라는 이보라도 변두리에 물러나야 했다.
"구리거울……"
진남은 구리거울의 평가를 높였다.
그리고 시선을 다시 궤단대전에 돌렸다.
경서는 무척 두꺼워 보였지만 고작 열 면밖에 안 되었다.
그러나 면이 모두 두꺼웠는데 마치 수많은 비밀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의지야 연화하거라!"
진남의 외침과 함께 체내의 용문금단이 웅웅 울리더니 그의 식해에서 피 한 방울을 연화해 경서에 녹여냈다.
무인들은 처음에 법보를 연화할 때 피가 필요했다.
그러나 일정한 경지에 도달하면 자신의 여러 가지 의지로 피를 연화해서 법보를 연화시킬 수 있었다.
법보는 순식간에 진남과 하나로 합쳐졌다.
쿵!
궤단대전을 연화하자 모든 기운이 진남과 하나가 되었다.
신비하고 무궁무진한 힘이 경서에서 폭발하더니 장애를 넘어서 용문금단에 흘러들었다.
"이건 마단 존자의 기운이야.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마단 존자의 가장 순수한 힘이야."
진남은 눈이 뜨거워졌다.
마단 존자의 힘은 예전 같지 않았다.
하지만 순수한 힘은 존자 등급의 신비를 가지고 있고 가히 엄청난 힘이었다.
용문 금단의 기운이 점점 높아지고 그 안에 있던 각종 의지들도 진급했다.
펑!
진남의 몸에 있던 열양금갑체결이 스스로 돌아가며 화염이 타올랐다.
화염은 예전과 달리 금색이었다.
진남의 등 뒤로 열 장이나 되는 금색 화염 장옷이 바람도 없이 흩날렸다.
열양금갑체결의 위력만 변화가 생긴 게 아니었다.
화염의 위력도 생겨나서 일거수일투족이 마치 태고 화신(火神) 같았다.
땡!
이때 거대한 소리가 진남의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수많은 요수가 새겨진 구리 종의 형상이 실체로 변해 허공뿐만 아니라 마음속에도 울려 퍼졌다.
청심당마결도 심상치 않았다. 강대한 살상력을 담고 있어 한 번 울리면 사람을 황천으로 보낼 수 있었다.
"자아도의!"
진남이 낮게 읊조렸다.
그가 어떤 명령도 내리지 않았는데 칠종죄가 스스로 저장 주머니에서 날아와 허공에 떠올랐다.
모든 칼은 놀라운 도의를 날름거렸다. 마치 영성을 띤 것 같았다.
"전신의 왼쪽 눈!"
진남이 나지막이 외쳤다.
금단은 진남의 가장 강력한 살초였다.
용문 금단을 통해 열염금갑체결, 청심당마결, 도의 등을 작동시키는데 모두 위력이 대단했다.
특히 용문 금단은 수많은 수법을 파괴할 정도로 강해졌다.
진남의 몸에서 가장 강한 것은 전신의 왼쪽 눈이었다.
전신의 왼쪽 눈과 용문 금단을 연합하면 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취천일격도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쾅!
전신의 왼쪽 눈에는 금빛이 없어지고 보라색 번개가 생겨났다.
이어서 보라색 번개는 급격히 퍼져 서른 개가 된 후 비로소 완전히 멈추었다.
왼쪽 눈은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보라색 번개가 반짝이는 것이 전보다 더 신비하고 위엄이 있어 보였다.
"응?"
진남은 전신의 왼쪽 눈의 정탐 능력이 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천둥과 번개의 힘을 갖춘 것을 느꼈다.
다만 이 천둥의 힘은 너무 약해서 티가 나지 않았다.
이번 진급을 통해 왼쪽 눈의 새로운 능력이 어느 정도 드러났다.
"마지막은 용문 금단!"
진남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아홉 개의 금문은 지존이었다. 용문 금단은 하늘을 거스르는 힘을 가졌다. 이번에 궤단대전의 힘을 얻은 용문 금단은 무종의 강자가 될까? 아니면 어떤 존재로 변화할까?'
펑! 펑! 펑!
각종 공법이 진급하고 용문 금단은 그제야 연속적인 폭발을 일으키더니 조용해졌다.
금단의 본 모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금단에서 두 손과 두 발이 나오고 점점 길어지더니 이목구비가 생겨나고 체형을 갖추더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금단은 진남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용문 금단이 원영(原影)으로 변한 것이다.
원영이란 사람의 형상이었다.
사람은 천지를 조화하고 만물의 영이었다.
그러나 이전의 내단은 단지 각각의 공법 자신의 의지 등으로 응집된 물건일 뿐이었다.
즉, 생명이 없는 물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내단이 지금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내단은 지혜가 없었지만, 영성을 갖추었다.
무종 경지의 강자라는 이름도 이렇게 생겨났다.
무종. 무도 종사.
즉 내단이 영으로 변신하면 각 공법, 의지 등등 모두 원만히 훈련되고 영성을 갖추는 것을 가리킨다.
열양금갑체결, 청심당마결 등은 불완전한 것이었다.
진남이 노력해서 그 능력이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원영이 만들어지고도 탈바꿈은 끝나지 않았다.
원영 위에 금색 용 무늬가 천천히 내부에서 세차게 솟구치더니 어린아이의 온몸을 둘러싸고 감더니 무려 여섯 줄이나 감은 후 멈추었다.
"육룡금문원영?"
진남은 살짝 놀랐다.
진남의 기운이 빠르게 상승했다.
아직 무왕 최고 경지지만 무종 경지 육 단계의 기운과 다를 바 없었다.
예전의 여섯 개의 금문 내단의 기운은 무왕 경지 삼 단계밖에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무종 경지에 맞먹었다.
* * *
섬 위에 서 있던 삼대 봉주와 당청산은 놀란 표정으로 두 눈을 크게 뜨고 얼른 내려다보았다.
"이게……"
네 사람 모두 깜짝 놀랐다.
'이 기운은…… 설마 진남의 원영이 육문 원영인가?'
'내단에 이어 하늘을 거스르는 힘을 가진 원영도 만들어 낸 걸까?'
"진남은 완전히 다른 길로 갔구나."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당청산이 느긋하게 말했다.
그는 진남의 상태를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도 살황경을 연마해서 내단과 원영이 달라졌다.
* * *
"성공적으로 진급했어!"
진남은 바깥의 상황을 전혀 몰랐다.
그는 크게 기뻐했다.
이번에 궤단대전과 융합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
궤단대전이 흔들리더니 수많은 광채를 풍겼다.
광채는 진남의 식해 깊숙한 곳으로 쳐들어갔다.
지독한 통증이 진남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이, 이건……"
수많은 기억 조각들이 뒤엉켜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어 내고, 진남이 그 속에 서 있었다.
그는 마치 기억의 주인이 된 듯 그 안에 있는 온갖 일들을 겪고 있었다.
궤단대전은 마단 존자의 영혼과 융합된 후 자체의 신비한 단약 제조법 외에 마단 존자가 수백 년 동안 연단하면서 얻은 경험들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진남은 이 경험들이 큰 수확이라는 것을 알기에 게으름 피울 새도 없이 정신을 집중하고 그 속에 빠져들었다.
* * *
섬의 허공.
"하하, 청룡 성지에 월급(月級) 단약사가 나타나겠구나."
단목 봉주는 지켜보다가 그 속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변화를 눈치채고 크게 기뻐했다.
창람 대륙에서 연단은 무도보다 못했다.
하지만 일정한 경지에 오르면 크게 환영받을 수 있었다.
예전의 마단 존자가 그랬다.
사람들은 그를 언급할 때면 지독한 성격이 첫 번째, 연단이 두 번째 가장 마지막이 무도 경지였다.
그러나 연단하는 길은 속도가 느렸다.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무인들은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기 전에 수명이 다하여 한 줌의 흙이 되었다.
진남은 마단 존자의 평생 경험을 흡수했기에 짧은 시간에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으음……. 나는 가봐야겠소."
나 봉주는 답답해서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찢어진 허공 사이로 사라졌다.
"큰형님, 둘째 형님. 저는 별로 할 일이 없습니다. 먼저들 들어가세요."
장 봉주가 웃으며 말했다.
"진남이 전음 영패를 보냈을 때 마단 존자 때문은 아니었을 거요. 잠시 후에 진남이 그에 대해 말하면 자세히 말해주시오."
당청산은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나는 가서 소문을 차단하겠다."
단목 봉주도 사라졌다.
"진남아. 대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기대되는구나."
장 봉주가 중얼거렸다.
그는 강한 기운을 풍기며 섬 전체를 봉쇄했다.
섬은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 * *
단목 봉주가 진실을 감췄다.
사람들은 이변 때문에 무종비경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만 알았다.
홍풍 제국의 사람들은 아쉬워했다.
양대 성지도 모두 침묵했다.
제자들을 데리고 온 사자들도 무종비경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
묘묘 공주와 다른 사람들도 진남이 안전하다는 소식을 듣자 성지로 돌아갔다.
상도맹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아무런 수상한 낌새도 없었다.
시혈성 성주는 소비봉의 소식을 알아보다가 소비봉이 사내를 사모하게 됐다는 소식에 화가 잔뜩 나서 사람을 마구 죽였다.
시혈성 성문 어귀는 피가 강이 되어 흘렀다.
교철은 동생이 중독되었다는 소식에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몰랐다.
교십일은 강벽난을 사모하더니 이제는 사내에게 푹 빠졌다.
교철은 탄식을 하더니 해독약을 찾아 나섰다.
이들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큰 사형 조방이었다.
이번 일로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예전과 똑같이 인재들은 끊임없이 수행할 뿐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 * *
그 시각 섬.
진남의 모습은 석상처럼 아무런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가끔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이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번쩍.
진남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에는 온갖 세상일을 다 겪은 듯 노련함이 드러났다.
"상상 그 이상이야. 연단사가 되는 길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내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야.
마단 존자가 나를 해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그의 귀한 경험을 흡수했으니 빚을 진 거나 다름없어. 궤단대전, 언젠가 네게 영성이 생겨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
진남이 감개무량해서 말했다.
하역에 연단사는 흔치 않았다.
진남은 무력이 가장 우선이고 전투가 일 순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단약이라고 해야 무종단, 무황단 같은 것들만 접촉했다.
그러나 마단 존자의 기억으로 단도(丹道)의 세계가 생각보다 크고 화려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