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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전혼-210화 (210/1,498)

210화 수모를 주다

이때 커다란 단목봉의 하늘이 어두워졌다.

방원 수천 리에 무형의 위엄이 가득 찼다.

구천에서 들려오는 듯한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남은 우리 비양 성지에서 데려가겠다!"

비양 성주가 쳐들어왔다.

양대 성지의 등급은 제자, 호법, 사자, 봉주로 나뉘었다.

그 위에 성주가 있었다.

양대 성주는 하역에서 가장 강대한 존재였다.

경지는 무존 경지를 넘은 무성 경지에 도달했다.

무존 경지의 강자가 되면 하역에서는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무성 경지의 강자가 되면 상역에서도 거물급으로 대우해줬다.

평소 양대 성지의 성주는 폐관 수련을 하고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특별히 큰 위험에 봉착하거나 새로운 봉주가 탄생하는 것 같은 큰일이 있어야 직접 나서곤 했다.

그런데 오늘 비양 성지의 성주가 제자를 위해서 십만 리 길도 마다하고 직접 달려온 것이다.

"큰일 났구나……!"

단목 봉주와 다른 봉주들 그리고 사자들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성주가 직접 나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성주를 뵙습니다! 하하하!"

비양 성지의 나 봉주 등은 호탕하게 웃었다.

비양 성지의 성주가 직접 왔으니 청양 성지의 사람들은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음."

단목봉 하늘에 사람 그림자가 나타났는데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우뚝 서서 아무런 기운도 풍기지 않았지만 있는 자체만으로 서른두 명의 봉주들을 전부 진압했다.

비양 성지의 성주는 아무 말도 없이 무술 경기장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태고의 거대한 손 형상이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무술 경기장 전체를 번쩍 들었다.

"이런."

단목 봉주는 얼굴이 상기되었다.

'뻔뻔해! 비양 성주는 너무 뻔뻔하다! 천재를 데려가려고 성주가 직접 오다니? 이제 어떻게 다시 빼앗아 오지? 이대로 진남을 보내야 하나?'

"비양 성주, 지금 하는 행동은 보기 안 좋소. 이 제자는 이미 청룡 성지와 인연을 맺었소."

이때 다른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청룡 산맥의 봉주들은 그 목소리를 듣자 흥분했다.

비양 성주의 커다란 손 형상은 다른 무형의 힘에 의해 부서졌다.

"청룡 성주, 고작 제자 한 명을 위해서 출관했소?"

비양 성주는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청룡 성주! 이제 청룡 성주도 나타났구나! 절세 천재의 탄생에 양대 성주가 모두 나타나서 진남의 귀속 문제로 싸우다니!'

"그게 중요하오? 이 제자는 재능이 남달라서 미래를 예측할 수 없소. 다음 성주가 될 사람일 지도 모르오."

청룡 성주는 형상은 나타나지 않고 목소리만 열여섯 봉우리에서 울려 퍼졌다.

"비양 성주, 다시 한번 말하겠소. 이 제자는 우리 청룡 성지와 인연을 맺었소. 그러니 청룡 성지에 남겨두시오."

"인연? 인연을 맺었다는 게 무슨 말이요? 청룡, 이 자는 내가 반드시 데려가야겠소!"

비양 성주는 두 눈에 신광을 번뜩이며 청룡 성지를 훑더니 청룡 성주의 형상을 찾아 권법을 날렸다.

"그럼 싸워야지!"

청룡 성주가 옅게 미소를 지었다.

두 성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두 성주의 싸움은 다른 수준의 싸움이었다.

봉주들도 성주들의 싸움을 볼 수 없었다.

다만 청룡 산맥이 진동하고 허공이 때로는 일그러지고 때로는 폭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끔 새어 나오는 기운은 천지를 멸망시킬 정도의 힘이었다.

사람들은 놀라서 몸이 오싹했다.

양대 성지의 봉주와 사자들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성주들끼리 싸움이 일어났다. 이게 얼마 만에 일어난 싸움인가? 중요한 것은 이번 싸움은 고작 무왕 경지를 갓 돌파한 제자를 빼앗기 위한 싸움이다.'

한편 진남은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의 심신은 몸속에 깊이 가라앉았다.

용문 금단은 세례를 받고 달라졌다.

그 속에 있는 의지도 무왕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

진남은 용문 금단의 힘을 인도해서 자신의 공법, 의지 등을 모두 합쳤다.

그것들은 하나가 되어 서로 구분이 되지 않았다.

"후, 드디어 안정되었어. 이번 심사가 끝나면 시간을 들여서 더 공고하게 연마하고 힘을 익숙하게 사용하는 연습을 해야겠어!"

진남은 혼잣말하며 천천히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을 뜬 그는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깜짝 놀랐다.

전신의 눈도 정탐 능력이 제고되었기에, 진남은 끝없는 허공의 심연에서 엄청난 존재가 싸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렇게나 쏘아낸 한방이 단목봉을 평지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대단한 싸움이었다.

"진남이 깨어났다!"

"......"

봉주와 사자들은 진남의 변화를 예민하게 눈치챘다.

모든 시선들이 그에게 향했는데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들 같았다.

휙! 휙!

다른 공간에서 진행되던 싸움은 사라지고 두 형상이 동시에 나타났다.

한 노인은 흰 머리에 청색 옷을 입고 자상한 인상을 지닌 청룡 성주였다.

다른 한 노인은 자금(紫金)색의 장포(長袍)를 입고 있었는데, 얼굴각이 칼날처럼 단단하고 시선이 날카로운 비양 성지의 성주였다.

두 성주는 동시에 진남을 쳐다봤다.

"진남! 비양 성지로 오거라!"

비양 성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비양 성지에 들어오면 네가 원하는 건 다 들어주겠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성주의 위엄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아니, 청룡 성지야 말로 네가 지낼 집이다."

청룡 성지의 성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아무런 약조도 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갔다.

양대 성지의 봉주와 사자들의 시선이 이글거렸다. 그들은 시선만으로도 진남을 산채로 삼켜버릴 듯했다.

"선배들,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진남이 공수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잠깐 기다리라고? 무엇을 더 기다리라는 말인가? 무슨 할 일이 남았을까?'

진남은 돌아서서 천재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는 강벽난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번 시합은 제가 이겼습니까? 아니면 성녀가 이겼습니까?"

봉주와 사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진남이 이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다.

모두의 시선이 강벽난을 향했다.

양대 성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봉주들이 전음으로 사건의 전말을 전달하자 그제야 미간이 펴지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녀석, 복수심이 꽤 강하군.'

강벽난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고 몸은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린 것을 느꼈다.

그녀의 얼굴은 불이 붙은 듯 더욱 빨갛게 상기되었고 심장은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했다.

'진남, 그게 무슨 말이야? 그걸 꼭 물어봐야 해? 굳이 뻔한 질문을 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건 나에게 수모를 주려는 거지?'

상도맹의 성녀인 강벽난은 보통 사람들보다 인내심이 훨씬 대단했다.

그러나 전에 없는 수모를 느낀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거의 폭발 직전이었다.

'참아야 해! 오늘의 수모를 반드시 백배로 돌려줄 거야!'

"제가 지금 성녀에게 수모를 주려고 질문한 것 같습니까?"

진남이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은 강벽난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 같았다.

강벽난은 흠칫했다.

'내 생각을 어떻게 알았지?'

"제가 성녀의 생각을 어떻게 알았는지 의심했죠?"

진남은 또 꿰뚫어 보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쉬운 일입니다. 당신은 마음이 좁고 자기중심적이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제가 수모를 준다고 생각하겠지요. 물론……"

진남이 잠깐 쉬더니 이어서 말했다.

"저는 당신에게 수모를 주는 게 맞습니다."

강벽난은 소리가 나게 얼굴을 맞은 기분이 들었다.

"진남! 너……!"

교십일은 눈에 불을 켜고 살기등등해서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너, 뭐?"

진남은 그를 무시하듯이 말했다.

"너처럼 생각 없는 멍청한 놈이랑은 말도 섞기 싫으니 썩 꺼져!"

'교철만 아니었다면 넌 내 손에 진즉에 죽었어.'

"교십일,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마!"

강벽난이 어쩌다보니 교십일을 도와주게 됐다.

그녀는 진남을 노려보며 말했다.

"진남 도우, 오늘의 교훈은 고마워요. 이 검은 이제 당신 것이에요!"

진남은 그녀를 더 혼내주려고 했지만 검을 보자 왼쪽 눈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는 얼른 주의력을 돌렸다.

"이 검은……"

진남이 고검을 받아 들자 검이 웅웅 진동했다. 마치 환호를 지르는 것 같았다.

교철은 그 모습을 보자 눈에 빛이 반짝였다.

마음속의 우울함은 말끔히 사라졌다.

그는 감개무량해서 말했다.

"명검이 영웅에게 갔군. 진남 도우, 이 검은 내가 상고지역에서 우연히 얻은 거다. 너와 이렇게 인연이 있는 걸 보니 나도 시름 놓여."

"나도 계략을 써서 검을 얻느라고 힘들었어. 검은 언젠가 반드시 돌려줄게. 검을 빌려준 은혜는 깊이 간직하고 있겠어."

진남은 표정이 엄숙해서 허리를 꼿꼿이 펴더니 교철에게 공수하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다른 천재들은 그들의 모습에 감동했다.

진남이 누구인가?

양대 성지의 성주까지 나서서 데려가려는 천재이다.

진남이 고검 하나를 얻었다고 교철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또 인정 빚까지 졌다고 하다니.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지만 진남은 진지하게 임했다.

진남은 의리를 중요시하고 은혜와 원한을 분명히 하며 신분으로 사람을 억압하는 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한 셈이었다.

진남에게 원망의 감정이 있던 천재들도 감동했다.

'진남과 강벽난의 일에서 진남이 잘못한 걸까? 아닐 거다!'

"진 형, 그럴 것까지 없어."

교철이 얼른 예를 갖추었다.

진남은 말없이 웃었다.

교철은 인상이 괜찮았다. 인연이 되면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검의 비밀은 나중에 연구하고 먼저 갈 곳을 정해야지."

진남은 혼잣말하며 고검을 저장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들어 두 성주를 바라보았다.

공중에 있던 봉주와 사자들 사이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두 성지의 사람들은 대립 상태에 들어갔다.

비양 성주는 직접적으로 말했다.

"진남, 비양 성지에 오면 네가 원하는 건 다 들어주겠다. 누구를 죽이고 싶으면 죽여주지. 그리고 비양 성지의 예비 성자가 될 수 있다. 경지가 충분해지면 성자지전(聖子之戰)에 참가할 수 있다."

비양 성주의 말에 사람들은 표정이 흔들렸다.

양대 성지에는 성자가 있었다.

성자라고 함은 미래에 성지를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성자가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다.

하나는 무혼 등급이 충분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재능이 뛰어나야 했다.

진남은 그 조건을 갖추었다.

비양 성주가 이어서 놀라운 말을 또 했다.

"그 외에 너를 진전 제자로 임명하고 내 모든 것을 전수해주마."

봉주와 사자들은 입을 떡 벌렸다.

'성주의 제자가 되다니!'

두 성주는 무성 경지의 강자들이라 함부로 제자를 받지 않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비양 성주는 지금껏 제자를 들인 적이 없었다.

청룡 성주는 살황, 단목봉, 장 봉주 이 세 명의 제자를 받았다.

이제 사자들도 부러운 시선으로 진남을 바라보았다.

이런 기회는 그들이 평생 꿈도 못 꿀 기회였다.

단목 봉주는 초조했다.

비양 성주의 기세를 보니 진남을 반드시 데려가겠다는 의지였다.

'청룡 성주께서는 왜 아무 말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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