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귀허석(归墟石)
용호산맥은 용과 호랑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산속에서 들려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동안은 사람들이 전설로만 알고 믿지 않았다. 진남도 전설로만 믿고 있지 않았다.
‘용호산맥은 범상치 않아. 이제 이상이 출현했으니 기우도 나타날 게 분명해’
진남은 속으로 생각했다.
진남은 용호산맥에서 전신의 혼을 얻었었다. 그런데 다시 용과 호랑이가 울부짖는 소리가 나타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바로 그때, 쭉 침묵을 지키던 묘묘 공주가 입을 열었다.
“사대 가족이 감히 산을 봉해요? 정말 담도 크네요. 진 가주, 철 장로,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여기 있으니 사대 가족은 별거 아니니까요.”
만약 그녀가 나서기만 한다면 사대 가족은 걱정할 것도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은 묘묘 공주의 말투가 변하고 존칭도 썼다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진남도 덧붙였다.
“아버지, 삼숙, 걱정하지 마세요. 묘묘 공주가 있으면 사대 가문을 두려워할 게 없어요.”
진천과 철삼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안전이 보장되기만 한다면 용호산맥에 가는 게 좋았다. 용음호소의 이상이 발생한 이상 기우가 있을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자, 그럼 어서 용호산맥으로 가자.”
묘묘 공주가 재촉했다.
“공주, 떠나기 전에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진남은 망설였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정중히 말했다.
“네가 우리 진씨 가문을 위해 대진을 펼쳐 보호해주길 바라.”
진천과 철삼 두 사람의 눈이 반짝였다.
묘묘 공주는 현령종 종주와 같은 급의 막강한 존재였다. 만약 그녀가 직접 나서서 대진을 펼친다면 앞으로 진씨 가문의 안위는 보장될 것이었다.
‘한데 이런 일을 묘묘 공주가 들어줄까?’
묘묘 공주는 그 말을 웃었다.
“진남,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느냐? 당연히 도와줄 수 있지.”
진남은 얼떨떨했다.
“응?”
진남의 반응에 묘묘 공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닫고는 무언가를 생각했다.
대전에는 묘묘 공주의 침묵에 따라 마치 보이지 않는 위압이 있는 것처럼 파동이 일었다.
진철과 철삼은 묘묘 공주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한참이 지나자 묘묘 공주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분위기가 금방 가라앉았다. 그녀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진남, 너도 참, 내가 당연히 도와줘야지. 그런 걸 굳이 물어보는 거야.”
“……”
진남은 대꾸할 말이 없어 입가가 심하게 떨렸다.
진남은 묘묘 공주의 파렴치함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지금 진씨 가문을 도와 대진을 펼칠게요.”
묘묘 공주가 시원스럽게 바로 앞으로 나섰다.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두 줄기 보이지 않는 신광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무종 경지의 위압이 모두 방출되었다. 전체 대전이 위압 아래에서 심하게 떨렸다. 진씨 가문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진씨 가문의 사람들 중 안색이 변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태고의 거석에 짓눌린 것처럼 마음이 무겁게 눌리는 것 같았다.
“허망파쇄, 무량묘법, 구구귀일, 종자지법, 무극무강……”
묘묘 공주의 표정이 더없이 엄숙하게 변했다. 그녀의 입에서는 뜻을 알기 힘든 단어들이 흘러나왔다.
단어들을 다 뱉은 묘묘 공주가 손가락을 구부리더니 허공에 손짓했다.
쾅!
백 리를 차지하는 진씨 가문의 저택이 심하게 흔들렸고, 임수성도 흔들렸다.
묘묘 공주의 손끝에서 큰 힘이 뿜어져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 그것은 커다란 그물이 되더니 큰 그릇으로 뒤바뀌어 진씨 가문을 감싸 안았다.
진씨 가문의 상공에서 큰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 같이 퍼부었다가 잠시 후에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됐어요.”
묘묘 공주는 손바닥을 털었다. 진천과 철삼을 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남은 전신의 눈을 굴려 진씨 가문의 상공을 바라봤다.
진남이 훑어보니 엄청난 힘이 거대한 그물망을 이루었다. 그 힘은 오묘한 수단으로 거대한 그물망의 맥락을 따라 흘러 진씨 가문을 감싸 안았다.
거대한 그물 같은 힘은 마치 조금이라도 나쁜 영향을 끼치면 모든 것을 멸망시킬 것만 같았다.
‘강한 진법이야. 이 진법은 무왕 경지 정상의 강자도 죽일 수 있을 거야. 심지어 웬만한 무종 경지라도 막아낼 수도 있겠어.’
진남은 내심 놀라 묘묘 공주의 눈빛을 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진남은 가문의 안위를 가장 걱정했다. 그는 강해질수록 더 많은 강자의 미움을 받게 될 테고 그로 인해 임수성을 공격하는 이들도 생길 수 있을 것이었다.
진씨 가문은 이제 보호를 받고 있어 진남은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공주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정신을 차린 진천과 철삼이 상기된 얼굴로 연신 감사를 표했다.
그들은 방금 펼친 대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식은 죽 먹기죠.”
묘묘 공주는 턱을 치켜들고 진남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가도 되지?”
“응.”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묘묘 공주는 손을 내밀어 진남을 붙잡았다. 그녀와 진남이 순식간에 진천과 철삼의 앞에서 사라졌다.
* * *
놀란 기색이 역력한 진천과 철삼은 한참 만에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감탄한 듯 표정이 복잡했다.
“가주, 대단한 아들을 낳으셨습니다.”
철삼이 말했다.
“그래, 참으로 자랑스럽구나.”
진천의 눈에는 자랑스러움이 드러났다.
그때 진씨 가문의 밖에서 한바탕 소통이 벌어졌다.
진씨 가문의 각 장로, 제자들은 진씨 가문에서 발생한 경천동지할 이상에 하나같이 불안에 떨었다. 그들은 상황을 물어보려고 부랴부랴 달려왔다.
“이번 일은 우리 둘만 알면 돼.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릴 필요 없어.”
진천은 밖의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는 가볍게 웃었다.
“네.”
철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임수성에서 벌어진 사건 이후, 진천과 철삼 두 사람은 문경지교(生死之交, 생사를 같이하는 우정)의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 * *
용호산맥, 산밑
두 갈래의 사람 그림자가 허공을 뚫고 땅에 떨어졌다.
그 사람의 정체는 묘묘 공주와 진남이었다.
“자, 이 두 지도대로 위에 있는 물건을 찾아줘.”
묘묘 공주는 진남에게 두 개의 지도를 던졌다. 그러더니 한 줄기 유광이 되어 산맥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진남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두 개의 지도를 들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진남은 보자마자 표정이 약간 변했다.
“귀허석(归墟石)? 구변화(九变花)?”
진남은 놀라서 숨이 막혔다.
귀허석과 구변화는 매우 희귀한 천지보물이었다. 둘 다 최소 삼십만 알에 해당하는 무왕단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묘묘 공주가 진씨 가문에 있을 때, 용호산맥에서 들려오는 용과 호랑이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더니 초조해했어. 감정을 자제하려고 노력했지만, 행동에서 티가 났어. 내 짐작이 맞는다면 용호산맥의 기우를 쫓아간 것 같은데……”
진남이 한참을 생각했지만, 별다른 답이 나오질 않아 더 생각하지 않고 용호산맥을 향해 걸어갔다.
진남이 용호산맥에 발을 들일 무렵 이변이 일어났다.
뜨거운 느낌이 진남의 두 눈동자에서 용솟음쳤다. 마치 그의 두 눈이 불에 덴 듯했다.
“이건……!”
진남은 깜짝 놀랐다.
그는 전신의 눈을 각성한 이래 처음으로 이런 상황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뜨거움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두 눈은 겨우 평정을 회복했다. 그러나 진남의 심신은 더없이 흔들렸다.
“이상하구나, 진짜 이상해. 전신의 눈이 갑자기 왜 이렇게 뜨겁지?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렇게 뜨거워질 수는 없을 거야. 설마 이번 용음호소의 이상과 연관 있는 건가?”
진남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는 용호산맥에서 번개를 맞고는 전신의 혼을 얻었다.
그는 이것이 그저 우연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전신의 눈이 갑자기 뜨거워진 것과 용음호소의 이상이 나타난 것은 모두 전신의 혼과 용호산맥이 연관되어 있다는 걸 확신하게 했다.
“일단 지금 급한 것은 공주의 임무를 마치는 것이야. 그녀의 임무를 마친 후 요수를 사냥하면서 전신의 눈에 이변이 발생한 비밀을 찾으면 돼.”
진남은 오랜 생각 끝에 행로를 결정하고 산맥으로 들어갔다.
* * *
“서쪽으로 백 척 전진.”
“남쪽으로 삼백 보 전진, 고목 세 그루가 여기 있고.”
“북서 방향으로 백 척 전진, 시냇물을 뛰어넘고.”
“......”
진남은 지도를 들고 바삐 걸어 나갔다.
도중에 그는 적지 않은 요수를 만났다. 다만 모두 쉬체 경지의 요수들 뿐이었기에 그냥 지나쳐갔다. 그는 쉬체 경지의 요수들에겐 관심이 없었다.
“이제 이 리만 남았구나. 곧 도착하겠어.”
진남이 중얼거렸다.
이어 그의 몸이 한 줄기의 잔영으로 변하여 신속히 움직이더니 귀허석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진남의 앞쪽 멀지 않은 곳에 하나의 작은 산이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작은 산은 잡초가 빽빽했다. 바위에는 수많은 세월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작은 산은 그냥 보기에는 아무런 특이점이 없었다.
“전신의 눈!”
진남의 두 눈에 한 줄기 현광이 일더니 작은 산 전체를 꿰뚫었다.
전신의 눈을 통해 보던 진남의 얼굴에 놀라움이 드러났다.
평범한 작은 산속에는 거대한 힘이 내포되어있었다. 힘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빛이 내뿜어지고 있었는데, 마치 찬란한 연화보좌 같았다.
이 연화보좌 같은 빛 사이에 엄지손가락만 한 자색 돌이 하나 놓여있었다.
자색 돌의 힘은 마치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작은 산을 뚫고 대지에 박혀 대지에서 부단히 힘의 정수를 흡수했다.
“이것이 귀허석이구나. 소문에 후천지기를 만들려면 반드시 이 돌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어. 만약 내가 이 돌을 가지면 칠종죄를 깨워 후천지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인데…….
진남의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됐어, 이미 공주에게 대답했으니 헛된 욕심을 가지지 말자.”
진남은 고개를 흔들어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욕구를 억누르고는 한 걸음 크게 내디뎠다.
순간 그의 등 뒤의 칠종죄가 윙윙 진동하더니 도의가 사방으로 비쳤다. 그중 한 고도가 쨍!하고 큰 소리를 내더니 날아 나와 진남의 앞에 떨어졌다.
탐욕 고도였다.
“베여라!”
큰 외침과 함께 진남이 큰 손을 내밀어 탐욕 고도를 잡았다. 이어 대성입미지경을 발휘해 강한 도기를 뿜으며 몸을 솟구치더니 작은 산 전체를 강하게 내리쳤다.
쿵!
거대한 소리가 울리더니 작은 산 전체가 한 칼에 두 조각으로 나누어졌다. 수많은 돌 부스러기들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귀허석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진남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귀허석을 잡으려 했다.
이때 이변이 나타났다. 귀허석이 짙은 칠색 빛을 뿜으며 끊임없이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마치 등에서 날개가 자란 것처럼 훌쩍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더니 먼 곳을 향해 달아났다.
진남의 눈에 한 줄기 빛이 스치고 입가에 한 가닥의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