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제발 한 번만 내 말을 들어줘
제삼 정원.
진남은 밖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미친 듯이 수련했다.
진남은 열 방울의 태고 영액을 삼키고 연화시켰다.
보름 동안 그는 세 번의 태고 영액을 삼켰다.
곧이어 그의 체내에서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기운이 마치 맹수가 깨어난 듯 미친 듯이 치솟았다.
진남은 드디어 선천 경지 사 단계를 돌파했다.
“냉봉을 만날 때까지 시간이 좀 더 있어. 그러니 더 수련해야겠어.”
진남은 휴식도 하지 않고 두 눈을 감고 전신의 혼을 운행해 영기를 빨아들였다. 또 한 번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태고 영액은 끊임없이 소비되었다.
수련하는 동안 시간은 흘러 또 보름이 지났다.
전신의 혼이 방대한 영기를 끊임없이 빨아들였다. 진남의 체내 기운은 마치 임계점에 도달한 것 같았다.
보름 동안 진남은 태고 영액을 서른 알이나 복용했다. 지난번보다 세 배는 많은 양이었다.
진남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온몸이 불에 덴 것처럼 빨갛게 되었다.
그의 모공이 기운 때문에 열려있었는데 모공마다 더운 열기를 사방팔방으로 뿜어냈다.
정원의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주 향의 시간이 지나자 진남은 온몸을 떨었다. 체외로 배출했던 열기가 역류하여 체내로 들여갔다.
모든 열기가 체내로 들어오자 진남은 두 눈을 번쩍 떴다. 방대한 진기가 그의 몸에서 활활 타올랐다.
선천 경지 오 단계였다.
“역시 현급 무혼, 태고 영액, 태고 무수구나. 이 세 가지 덕에 한 달 내에 선천 경지 두 개 단계나 진급했네.”
진남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눈빛이 빛나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손에는 아직 쉰 방울의 태고 영액이 있었다. 거기다가 현급 무혼과 태고 무수의 수련 속도가 있기에 한 달이면 선천 경지 팔 단계를 돌파할 수 있었다.
선천 경지 팔 단계를 돌파해야 냉봉과 싸워도 부담이 없었다.
“수련을 계속하자.”
진남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는 두 눈을 감고 수련할 준비를 했다.
그때 청아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제삼 정원 밖에서 울렸다.
“진남아, 문 열어봐. 나야.”
목소리는 소경설이었다.
진남은 소경설이 찾아오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구양군과 진남이 악연을 맺은 이유 중 하나가 소경설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소경설이 이 사건과 커다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냉봉과 대결을 약속한 지 한 달이나 지났는데 왜 지금에서야 소경설이 찾아온 걸까?’
진남은 의문을 가지고 대문을 열었다.
소경설은 오늘 흰 옷차림이었다. 살짝 화장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기도 했다.
“진남, 오랜만이……”
소경설은 진남에게 인사를 하려다가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랐다.
무왕 경지의 강자인 그녀는 진남의 기운이 무척이나 강해졌다는 걸 느꼈다.
진남이 냉봉의 도전에 응했다고 하더니 역시 자신감이 있는 모양이었다.
“경설, 여긴 무슨 일로 왔어요?”
진남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소경설은 정신을 가다듬고 그를 자세히 살피면서 말했다.
“너와 냉봉이 겨룸을 약속할 때 나는 종문을 떠나 임무 수행 중이었어. 돌아와 보니 이렇게 많은 일들이 벌어졌을 줄 몰랐어.”
소경설의 얼굴에 기쁨과 씁쓸함이 공존했다.
그녀가 기뻤던 것은 진남이 사대 종문의 역사 이래 처음으로 무연각의 오 층에 올라 비밀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남의 무혼이 사실 황급 팔품이 아니라 황급 십품이었다는 것도 매우 기뻤다.
황급 십품의 무혼은 현령종에서도 그 수가 손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그녀가 씁쓸했던 것은 구양군이 진남을 상대하려는 것 때문에 진남과 냉봉의 겨룸이 시작되었고 두 달 후에 생사전에서 승부를 가리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래서 처음에 안 온 거군요.”
“내가 올 일이 없었으면 더 좋았을 거야.”
소경설은 탄식하며 말했다.
“진남아, 전에 너에게 경고했잖아. 제발 충동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말라고. 그런데 대체 왜 참지 않았던 거야. 잠시만 참으면 아무 일 없고 모든 게 지나갈 수 있었잖아.”
진남은 곤란해했다. 적을 만나면 상대가 아무리 강대해도 진남은 아무렇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경설의 원망에는 할 말도, 반박할 거리도 없었다.
진남은 화제를 돌리더니 말했다.
“경설, 오늘은 왜 찾아온 거예요?”
“나는……”
소경설은 진남을 보더니 머뭇거렸다.
그녀는 그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진남은 그녀의 고민을 알아차리고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경설, 지금까지 잘 보살펴줘서 고맙습니다. 제가 경설에게 큰 빚을 졌어요. 저는 당신을 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도 됩니다.”
“단지 누이야……?”
소경설은 작게 속삭이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어젯밤 구양군과의 대화를 생각하자 시선이 단호해졌다.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진남아, 이번에 냉봉과의 대결에서 네가 패배를 인정했으면 좋겠어.”
“패배를 인정하라고요?”
진남은 살짝 당황했다.
소경설이 그에게 패배를 인정하라고 할 줄은 몰랐다.
“경설, 제 성격을 잘 알잖습니까? 냉봉이 도발을 했는데 물러날 수는 없습니다. 대결은 이미 결정된 일입니다. 저는 지지 않을 겁니다.”
진남은 소경설의 두 눈을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그리고 경설, 저를 믿으십시오. 이번 대결에서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아직 모릅니다!”
진남은 소경설이 그가 냉봉에게 지고 목숨을 잃을까 봐 걱정되어서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경설의 이어지는 말에 그는 깜짝 놀랐다.
“그런 게 아니다. 네가 질 것 같으니 패배를 인정하라고 하는 게 아니야.”
소경설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진지하게 말했다.
“진남아, 임수성에서부터 네가 한 모든 일은 놀라웠고 행한 기적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난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들도 너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이번 대결에서도 냉봉을 이길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왜……”
진남은 소경설이 말하는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나를 믿는데 왜 패배를 인정하라고 하는 거지?’
소경설은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진남아, 너와 냉봉이 서로 죽자 살자 싸우지 말았으면 좋겠어. 내 말처럼 네가 냉봉을 이겼어. 그 뒤로는? 구양군이 또 화가 나겠지. 그의 성격은 극단적이야. 그러니 반드시 너에게 보복하려 할 테야.
그 사람의 도발은 두렵지 않다만 네가 그가 파놓은 음모와 계략들을 전부 피할 수 있을까? 게다가 너는 누구에게 지는 성격이 아니잖아. 반드시 끝을 보려고 할 텐데 결국은 너에게 안 좋은 결과만……”
“나더러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라는 게 결국은 구양군을 피하라는 말입니까?”
진남은 한참을 듣고 있다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소경설은 구양군이 말했던 것들을 떠올리자 단호한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이번에 패배를 인정하고 참는다면 구양군이 더 이상 너를 공격하지 않을 거야. 내가 보장할게. 그러니 패배를 인정하길 바라.”
진남은 침묵했다.
그는 소경설의 뜻을 잘 알았다. 그녀는 진남이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고 구양군을 피해 은둔하길 바랐다.
소성결은 침묵하는 진남을 보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진남아, 안 들어줄 거야? 지금껏 내가 너에게 부탁한 적 없잖아. 이번에는 제발 들어주면 안 돼? 진남아, 제발, 제발 한 번만 내 부탁을 들어줘. 너에게 패배를 인정한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알아. 하지만 이번 한 번만은 나 좀 도와주면 안 될까?”
진남은 흠칫했다.
소경설이 다른 일을 부탁했다면 진남은 눈썹 한번 찡그리지 않고 들어줬을 것이다. 설사 그 일이 구양군을 공격하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라니? 진남이 어떻게 스스로 패배를 인정할 수 있겠는가?
패배를 인정한다는 말은 생각만 해도 가시에 찔린 듯이 아팠다.
지금껏 늘 싸우고 다투면서 자신보다 수십 배는 강한 적 앞에서도, 위험이 가득한 곤경 속에서도 그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었다. 머리가 터지고 피가 흐른다고 해도 고개를 숙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소경설이 간절하게 부탁하자 진남은 속으로 무척 갈등했다.
그때 체내에 있던 전신의 혼이 진남의 의지를 느낀 것인지 포효했다. 그 소리가 진남의 머릿속에서 터졌다.
그 포효는 분노로 가득했다.
전신의 혼! 전천전지! 무소불전! 무소불승!
이게 바로 전신의 혼이었다. 어떤 적이든 진남은 정면 돌파해야 했다.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절대 질 수 없었다.
진남은 그런 전신의 혼의 주인이었다. 그의 성향도 전신의 혼에 큰 영향을 받았다.
진남의 두 눈에 핏발이 가득 섰다.
그는 한 번도 고개를 숙인 적이 없었다.
‘왜 패배를 인정해야 하지? 전신의 혼의 주인으로서 고개를 숙여서야 되겠는가. 그럴 수 없다! 반드시 싸워야 한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진남의 정서가 순식간에 폭발했다. 그의 기세가 용솟음치더니 하늘을 찌를 듯한 전의를 방출했다.
소경설은 진남의 표정이 화났다가 싸늘해지는 걸 보았다. 갑자기 펑 하고 현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와 진남의 거리가 손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진남의 기세가 다시 평온해졌다. 그는 힘겹게 손을 저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가세요. 제가 패배를 인정할게요.”
“나는…… 그래……”
소경설은 그의 모습에 마음이 칼에 베이는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망연자실했다.
‘이번 일은 내가 잘못한 걸까?’
그녀는 자신이 잘못했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마치 혼이 나간 사람처럼 비틀비틀 정원에서 나왔다.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척 어지러웠다.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진남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끝없는 피곤함이 몰려와 지친 그를 덮어버렸다.
진남은 결국 소경설을 위해… 옛정을 위해… 고개를 숙이기로 했다…….
다음 날.
소식이 현령종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자 다들 충격을 받았다.
“뭐 진남이 패배를 인정했다고?”
“이건 또 무슨 경우야. 그렇게 나대며 냉봉에게 도전하더니 갑자기 패배를 인정했다고?”
“단약도 빌려줬는데 이런 겁쟁이라니. 진짜 열받는군!”
“하지만 진남이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는 것도 그럴 만해. 진남이 냉봉과 대결을 한다면 죽는 거나 다름없잖아. 나라고 해도 패배를 인정하겠어.”
“허허, 어찌 됐든 진남 이놈은 겁쟁이야!”
“……”
현령종의 제자, 장로 할 것 없이 거침없이 진남을 욕했다.
진남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망신이 되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진남의 행동이 이성적이라고 이해를 했다.
하지만 외문 제자들의 생각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