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필요한 단약이 너무 많아
“왜 그렇게 많아?”
묘묘 공주는 득의양양하게 진남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노가 십만 알을 빌려줬고, 각 대전 전주들에게서 이만 알씩 빌려왔으니 이것만 해도 이십만 알이다. 게다가 내문 장로들, 외문 장로들도 십만 알을 빌려줬지. 그중 저번에 너희를 무연각에 데리고 간 장태억이라는 장로가 삼만 알, 양궁이라는 내문 제자는……”
대번에 진남의 안색이 변했다.
그와 묘묘 공주가 합의 본 계획은 원래는 이랬다. 외문 제자와 내문 제자들 그리고 외문 장로들에게 조금씩 빌려 무왕단 이만 알 정도만 돼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묘묘 공주는 진남의 뜻과 달리 선노와 전주들, 내문 장로들까지 다 찾아간 것이다.
“너……!”
진남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도 않았다.
“너는 무슨 너!”
묘묘 공주는 그를 흘겨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너처럼 멍청한 하인을 뒀을까!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들게 뛰어다녔는데, 이 단약들을 구하느라고 내가 얼마나 많은 귀한 시간들을 낭비했는지 아느냐? 그런데 감히 나를 탓하다니! 단약이 충분하면 남은 단약은 다 돌려주면 되잖아!"
“그게……”
진남은 순간 당황했다. 묘묘 공주의 말이 맞았다. 오만 알의 무왕단만으로 전신을 승급할 수 있다면 남은 단약을 돌려주면 될 일이었다.
“미안해, 너를 오해했어.”
진남이 표정을 풀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단약을 빌리는 일은 묘묘 공주의 도움이 컸다.
“흥, 그래야지.”
묘묘 공주는 턱을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눈을 굴리더니 말했다.
“진남아, 너를 위해 계획도 세워줬고 실행하느라 종일 힘들었는데, 내 작은 소원 하나 들어줄 수 있느냐?”
진남은 순식간에 표정이 변하더니 말했다.
“안돼. 여기 있는 단약 오십만 알은 다 빌려온 거라서 다 돌려줘야 해. 너에게 나눠줄 수 없어.”
그 모습에 묘묘 공주는 화가 나서 말했다.
“단약을 달라는 게 아니다. 내가 설마 너에게 단약을 달라고 하겠느냐?”
진남은 믿을 수 없었다. 그는 경계하는 시선으로 말했다.
“그럼 무슨 소원인데?”
“내 소원은, 쉬워”
묘묘 공주는 진남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내 추측이 맞는다면 너 단약을 빌리는 게 무혼 때문이지? 냉봉의 도전을 받아들인 것도 무혼 때문이고? 그래서 내 소원은 간단해. 네가 이 단약으로 무혼을 어떻게 하는지 그게 궁금해.”
묘묘 공주의 목적이 바로 이거였다.
그녀는 인간 모습으로 변하기 전 진남의 몸속에 있는 전신의 혼이 가진 엄청난 힘을 느꼈다. 그녀는 인간의 모습이 되고 전신의 혼과 한번 싸워보려고 했다. 하지만 진남의 몸속에 있는 전신의 혼이 그녀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묘묘 공주는 진남이 이 많은 단약을 가지고 대체 무혼을 어떻게 하려는지 무척 궁금했다.
진남은 그 말에 표정이 어두워지고 말투가 차가워졌다.
“그건 불가능해. 이 단약 오십만 알을 하나도 못 가진다 해도 네 소원을 들어줄 수 없어.”
다른 부탁이라면 진남은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묘묘 공주의 부탁은 절대 들어줄 수 없었다.
전신의 혼은 진남의 최대 비밀이었다. 특히 전신의 혼이 단약을 삼키면 무혼 등급을 승급할 수 있다는 것은 더 큰 비밀이었다.
그와 묘묘 공주는 단지 협력관계였다. 막역한 사이라고 해도 전신의 혼에 관련된 비밀은 절대 알려줄 수 없었다.
“너……”
묘묘 공주는 진남의 강경한 태도에 화가 나서 말했다.
“안 들어주면 말라지! 이 좀생이야!”
진남을 혼내주려던 묘묘 공주는 그의 표정을 보자 저장 주머니를 바닥에 던지고 씩씩거리며 단호하게 자리를 떴다.
진남은 그 모습에 살짝 놀랐다. 자신이 거절하면 묘묘 공주가 버럭 화를 내며 단약을 가져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단약을 그에게 주고 갔다.
“고마워!”
진남은 텅텅 빈 정원에서 낮게 외쳤다.
그는 다가가 저장 주머니를 들었다.
“무왕단 오십만 알인데,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진남은 전신의 눈을 움직여 주변을 살펴보았다. 정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심호흡하며 저장 주머니의 단약을 다 꺼냈다.
단약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영기가 용솟음쳤다.
무왕단 오십만 알을 꺼내 놓으니 작은 산이 되었다. 영광이 반짝이는 것이 투명하고 감격스러웠다.
진남은 전신의 혼을 방출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무왕단 백 알을 집어 들고 삼키기 시작했다. 손의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잔영(殘影)으로 변했다.
천 알!
삼천 알!
팔천 알!
한 주 향이 타는 시간 동안 진남은 이만 알이나 되는 무왕단을 삼켰다.
다만 아직도 전신의 혼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계속, 계속!”
진남은 미친 듯이 단약을 집어 들고 입에 넣었다.
삼만 알!
오만 알!
칠만 알!
진남의 입가가 감각이 없어지고 오른손이 힘이 빠졌다. 그는 이미 무왕단 십만 알을 삼켰다.
그는 한 번에 무왕단을 백 알밖에 삼킬 수 없었는데 그것도 힘들었다. 십만 알의 무왕단을 삼키느라 그는 백여 번이나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무왕단 십만 알이야! 십만 알이나 삼켰는데 전신의 혼은 왜 아직 진급하지 못한 거야!”
진남은 행동을 멈추었다. 실망스럽고 가슴 아팠다.
무왕단 십만 알이었다.
‘이렇게 많은 양의 단약으로도 전신의 혼을 진급할 수 없다니?’
“오늘 한번 보겠어. 현급 무혼이 되는데 대체 얼마나 많은 단약이 필요한지!”
진남은 이를 악물고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가 다시 무왕단을 미친 듯이 삼켰다.
십삼만 알!
십육만 알!
이십만 알!
전신의 혼은 여전히 아무런 기미가 없었다. 진남은 쉬지도 않고 단약을 계속 삼켰다.
이십오만 알!
이십구만 알!
삼십육만 알!
사십만 알!
진남은 족히 사십오만 알의 무왕단을 삼켰다. 그의 등 뒤에 있던 전신의 혼이 드디어 웅웅 소리를 내더니 열 갈래의 노란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강대한 존재로 변하고 있었다.
진남은 흠칫했다. 상황을 보니 전신의 혼이 현급 무혼으로 진급을 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전신의 혼은 웅웅 거리며 한참 동안을 진동하더니 이내 다시 평온해졌다. 아무런 이변도 생기지 않았다.
“아직도 진급할 수 없다고?”
진남은 힘이 쭉 빠졌다. 그는 심장이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묵직하게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양의 단약을 삼켰는데 진급할 수 없다고?’
전에 전신의 혼이 황급 오품에서 육품으로 진급할 때는 단지 쉬체단 백 알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그때의 사천오백만 배나 되는 대가를 치렀다.
“마지막 오만 알의 무왕단으로 반드시…! 반드시 성공해야 해!”
진남은 한참이 지나 정신을 차리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는 단호한 시선으로 다시 단약을 집어 입에 넣었다.
사십육만 알!
사십칠만 알!
사십구만 알!
사십구만 구천구백 알!
진남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마지막 백 알의 무왕단을 집은 손이 덜덜 떨렸다. 진남은 이를 악물고 마지막 백 알의 무왕단을 삼켰다.
드디어 전신의 혼이 떨리며 노란빛이 반짝이고 위압이 일렁이었다.
“드디어 진급이다!”
진남은 무겁게 누르던 압력을 벗어난 듯 홀가분했다. 드디어 기쁜 기색이 떠올랐다.
그러나 전신의 혼은 한참을 그 상태를 유지하더니 점점 평온해졌다. 마치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 같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진남은 멍해졌다.
‘전신의 혼이 승급할 수 없다니? 설마 전신의 혼이 현급 무혼으로 진급할 수 없는 걸까?’
“어,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진남은 한참이나 중얼거렸다. 흐릿했던 두 눈이 점점 또렷해지더니 말했다.
“이럴 수가 없어. 전신의 혼은 누구보다 강해. 현급 무혼으로 승급할 수 없다는 건 말도 안 돼. 그렇다는 건 전신의 혼이 현급 무혼으로 승급하는 데 오십만 알의 무왕단으로 부족하다는 거야.”
진남은 전신의 무혼이 현급 무혼으로 될 수 없다고 믿지 않았다. 그는 전신의 무혼이 천급 무혼, 심지어 천급 무혼을 초월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무왕단 오십만 알을 가지고도 진급할 수 없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단약이 필요할까 하는 문제였다.
“전신의 혼은 강대하다. 하지만 진급에 필요한 단약이 너무 많아.”
진남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어디 가서 또 단약을 얻어올 수 있을까…….’
전신의 혼이 현급 무혼으로 승급하는데 오십만 알이 더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탈탈 털어 먼지 하나 나올 것 없이 가난한 진남이었다. 그에겐 오십만 알이 아니라 단 한 알의 쉬체단조차도 없었다.
진남은 정신을 가다듬고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에 빠졌다.
한참이나 고민해봤지만 아무런 방법도 없었다. 그는 상도(商道)에도 능하지 않아 장사를 할 수도 없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빌리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선노나 궁양 같은 사람들, 혹은 악패 오호처럼 현령종 제자들을 강탈해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두 가지 방법 모두 하고 싶지 않았다.
“됐다. 진짜 방법이 없을 때면 선노에게 빌리지 뭐. 그리고 기회가 되면 갚아야지.”
진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어 중얼거렸다.
“지난번에 구양군은 격장지계로 나를 상대했잖아. 그러니 나도 같은 방법을 그들에게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진남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 * *
내원봉, 제일 정원.
구양군은 윗자리에 앉아있고 그 아래에 냉봉이 앉았다.
“요즘 진남이 명예 장로를 시켜 현령종 모든 사람들에게서 단약을 빌렸다고 합니다. 대체 뭘 하려는 걸까요?”
냉봉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엄청난 비술을 수련하려고 이렇게 많은 단약이 필요한 건 아닐까요?”
많은 제자들이 냉봉이 잔인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사실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들이 진남을 도발하긴 했지만, 두 달 후에 생사전에서 겨루자고 하자 냉봉은 의심스러웠다.
진남이 그렇게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죽을 걸 뻔히 알면서 도전에 스스로 응했다는 건 믿을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고 냉봉은 생각했다.
구양군은 냉봉을 힐끗 보더니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뭘 걱정하는 거야. 현령종 사람들에게 단약을 빌리는 일이 무슨 의도가 있던지 네가 왜 신경 써? 걱정하지 마. 이미 공법전에 말해뒀어. 너는 나와 함께 명월각 천자방에 들어가 두 달 동안 수련하면 돼. 두 달 동안 영약의 힘까지 더해지면 반보 무왕까지 승급하지 못해도 선천 경지 구 단계까지는 문제없을 거야.”
“명월각 천자방 말씀입니까?”
냉봉은 그 말에 너무 기뻐서 모든 고민이 말끔히 사라졌다. 그는 공수하고 말했다.
“구양군 고맙……”
말이 끝나기 전에 슉하고 공중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편지 하나가 허공을 가로질러 대전의 문패를 향해 날아갔다.
“배짱 한번 대단하구나!”
구양군은 화가 나서 한걸음 크게 내디뎌 편지를 잡았다. 그의 두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그는 외문 서열 일 위의 제자이자 종주의 아들이었다. 그에게 이런 행동을 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종문 장로라고 해도 그에게 소식을 전할 때는 공손하게 했다. 혹시 예의에 어긋나는 곳이 있을세라 조심스러워했다.
구양군은 화를 참으며 무표정하게 편지를 꺼냈다. 대체 누가 이토록 배짱이 큰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편지를 펼친 구양군은 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