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무연각으로
위호의 신분이라면 진남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진남을 죽인다면 일이 더 커질 것이다.
위호는 상도맹에서 이 소식을 전한 것에 고마워해야 했다.
그러나 진남의 마음속에 살기가 서려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진남은 자신을 조사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런데 상도맹에서는 그의 정보를 샅샅이 조사했다. 게다가 대중에게 공개하여 그의 내막을 알 수 있게 했다.
무도의 세계에서는 자신을 더 깊게 숨길수록, 결정적인 순간에 한 수가 될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은 진남에게 경계심을 심어주었다. 그는 상도맹에 아무런 호감이 생기지 않았다.
가마 속 여인의 목소리는 모든 걸 알아차린 듯 입을 열었다.
“진남 도우, 제가 대전을 피하려고 제멋대로 결정하고 당신의 정보를 사람들에게 공개해서 미안해요. 저에게 황금 성령이 있는데 부디 받아주길 바라요.”
그 말이 나오자 장내가 또 웅성거렸다.
“뭐라고? 황금 성령?”
“황금 성령이라니. 성령을 가지고 상도맹의 경매장에 들어가면 비용을 삼 할 줄일 수 있다고 들었어. 게다가 상도맹의 귀빈까지 될 수 있지.”
“내가 한 가지 소문을 들었어. 낙하왕국 전체에서 황금 성령을 받은 사람이 열 명을 채 넘기지 않는다고 하더군.”
“……”
사대 종문의 장로와 위호, 모두가 그 순간에 부러워하는 기색이 드러났다.
그들의 신분으로는 황금 성령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장태억은 부러움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진남, 운이 정말 좋구나. 황금 성령을 받을 수……”
장태억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남이 거침없이 말했다.
“죄송한데, 필요 없어요.”
그의 한마디가 순식간에 현장 분위기를 죽은 듯 고요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고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황금 성령을 거절한다고?’
그때, 가마 안의 백의 여인의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드러났다. 그녀는 처음으로 황금 성령을 거절당했다.
백의 여인의 곁에 있던 노파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성녀(聖女), 감히 하찮은 신분에 성녀의 호의를 거절하다니. 지금 제가 당장 그를 불구로 만들어 거절한 대가를 알게 해주겠습니다.”
그 노파는 무종 경지의 강자였다.
백의 여인은 멈칫하더니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오히려 저는 진남 도우가 아주 재미있는 사람인 것 같네요. 전에 제가 조사했던 정보가 하나도 틀리지 않았나 봐요.
그를 기분 나쁘게 하면 그는 어떤 사람을 만나도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예요. 임자소를 대적했을 때도 그랬고 남궁성, 대장로와 대적했을 때도 그랬어요. 그는 진짜 의지가 강한 사람이에요.”
노파는 순간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성녀, 저놈이 어디 그렇게 좋은 사람인가요? 아니, 설마……”
거기까지 말하고 노파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백의 여인은 얼굴이 붉어지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백의 여인은 한숨을 내쉬며 이어서 말했다.
“그가 마음에 들긴 하지만 무혼 등급이 너무 낮아요. 황급 팔품 무혼은 아무리 많은 기우를 만나도 무종 경지에 그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황급 십품 무혼이어도 똑같아요.
무도의 세계에선 품행, 의지 등이 아무리 뛰어난 인재여도 결국엔 천부적인 재능이 필요해요.”
말을 마친 여인의 눈빛이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진남의 말에 서로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위호는 잠시 황당해하다가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진남 형제는 정말 한 성깔 하는구나! 황금 성령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다니. 그건 나도 할 수 없는 거야. 탄복하네. 탄복해.”
진남은 담담하게 위호를 한번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호는 그렇게 무시당하자 기분이 언짢았다. 다만 진남의 신분이 걸려 딱히 티를 내지 않았다. 그는 곁에 있던 왕약림과 시시덕거리며 장난치기 시작했다.
황궐은 그 모습을 보고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진남과 위호가 연합하여 그를 공격한다면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황궐이 하는 걱정은 모두 쓸데없는 것이었다.
추성 바다에서 큰 파도의 치솟음에 따라, 큰 파도 위에 있는 무연각이 추산이 있는 위치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현장의 분위기는 난리가 났다. 무인은 물론이고 사대 종문의 제자들까지 추성 바다를 응시했다.
한 주 향이 타는 시간이 흐른 뒤, 한 무인이 나지막이 외쳤다.
“무연각이 도착했다!”
그 한마디에 모두의 눈길이 일제히 추성 바다를 향했다.
추성 바다에는 삼백삼십 척 높이의 큰 파도가 일더니 사람들 앞에서 멈췄다. 마치 거대한 막이 오른 것 같았다.
진남이 가까이서 무연각을 관찰하고 있을 때, 그의 마음에서는 다시 한번 거친 물결이 일어났다.
다섯 층이 되는 누각(楼阁)이 파도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산봉우리와 같았다. 전체 누각이 무한한 노란빛을 풍겼다. 누각의 깊은 곳에서는 한 줄기의 오묘한 힘이 분출되어 온 누각을 덮었다. 무형의 위엄이 넘쳐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사람들이 무연각을 구경하고 있을 때 무연각 전체가 갑자기 흔들렸다. 다섯 갈래의 빛이 솟구치더니 공중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장홍대교(長虹大桥)로 변해 사람들이 있는 산봉우리 위로 떨어졌다.
장태억이 크게 고함을 쳤다.
“이 영패를 들고 빨리 장홍대교에 올라서 누각으로 들어가거라!”
말을 마친 뒤, 장태억은 다섯 개의 낡은 영패를 던졌다. 영패는 진남 등의 손에 떨어졌다.
진남은 망설임 없이 발끝을 구르더니 중간의 한 장홍대교를 골라 재빨리 앞으로 나아갔다.
다른 사대 종문의 제자들도 빠르게 제각기 낡은 영패를 들었다. 그들은 장홍대교 위에 올라 무연각으로 들어갔다.
사대 종문의 모든 제자들이 무연각에 들어선 뒤, 무연각 전체가 또다시 흔들렸다. 무연각 위에서 내뿜는 노란빛과 오묘한 힘이 완전히 사라졌다.
장태억과 세 장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들은 몸을 돌렸고 눈길은 상도맹으로 향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이 이번에 상도맹에서 온 가마에 쏠렸다.
가마의 백의 여인은 부드럽게 말했다.
“아시다시피 상도맹의 보물 중 ‘무경’을 통해 무연각 내에서 일어난 일을 대중에게 보여줄 수가 있지요. 그것 때문에 상도맹에서 성회를 열 수 있어요.”
“먼저 제가 사대 종문의 각 천재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줄게요. 정보를 모두 알려드린 뒤 무경을 가동시킬 거에요.”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흥분했다.
무인들이 이곳에 온 목적은 상도맹의 도박판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백의 여인이 말했다.
“현령종, 대호, 황급 팔품 무혼, 반보 선천 경지에요. 그런데 천성이 나빠요. 현령종 내에서 여러 번 남자를 업신여기고 여인을 강탈했죠. 그 후에 진남에게 혼이 나더니 천성을 조심이 누르고 있는 중이죠. 현령종 서유……묵자삼……황용……진남……”
그녀는 무연각 대회에 참가한 현령종 다섯 제자의 자료를 일일이 훑었다.
백의 여인이 말을 이어갔다.
“청여종, 왕약림, 황급 구품 무혼, 반보 선천 경지…… 진설아, 황급 팔품 무혼, 반보 선천 경지……”
“난염문 위호, 황급 십품 무혼, 반보 선천 경지……”
“비검문 장천천(张天天), 황급 구품 무혼, 반보 선천 경지. 검도 조예가 높아 비술을 익혔어요.”
“비검문 황궐, 황급 십품 무혼, 태고 무수, 선천 경지 이 단계……”
“……”
백의 여인은 사대 종문의 제자 스무 명의 모든 자료를 낱낱이 밝혔다.
현장에 있던 무인의 눈빛이 번쩍였다. 그들은 두뇌를 빠르게 굴려 스무 명 제자 중 누가 더 뛰어난지를 계산하고 있었다.
사실 수치로는 계산하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스무 명 제자의 무혼 단계가 모두 황급 팔품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큰 차이가 없이 무연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았다.
백의 여인은 약간 멈칫하다가 입을 열었다.
“상도맹이 첫 번째 내기를 준비했어요. 지금부터 발표하겠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가마 전방에 있는 무왕 경지 노인 네 명은 크게 고함을 쳤다. 그들은 강대한 비술을 펼쳐 사람들 앞에 광막을 떠올렸다.
그 광막 위에는 정보가 줄지어 쓰여 있었다.
“내기. 첫판.”
“위호 일 위, 배율(赔率, 도박에서 선이 졌을 때 고객에게 도박 자금을 지불하는 비율) 일 대 일.”
“황궐 일 위, 배당률 일 대 일.”
“왕약림 일 위, 배당률 일 대 일.”
“진남 일 위, 배당률 일 대 십.”
“……”
“……”
모든 제자 이름 뒤에는 배당률이 적혀 있었다.
예를 들어 무인들이 선천단 만 개를 위호에게 걸어 만약 위호가 일 위를 차지한다면 수사는 만 개의 선천단을 얻을 수 있었다.
현장은 이내 더없이 떠들썩하고 들끓었다.
“하하하, 첫판은 꼭 위호에게 판돈을 걸 거야. 그는 분명 일 위를 할 수 있을 거야.”
“난 황궐이 일 위할 것 같은데? 그에겐 선천 경지 사 단계에 맞설 실력이 있어. 못 봤어?”
“난 왕약림을 지지할 거야. 얼굴이 저렇게 예쁘니 반드시 일 위할 거야.”
“……”
첫판에는 사대 종문 내의 위호, 황궐, 왕약림이 모두 물망에 올랐다. 현령종에서 물망에 오른 사람은 결국 황용이었다.
이것은 앞서 진남의 내력을 들었던 때와는 다른 전개였다.
진남의 신분 배경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많은 무인들이 그가 황급 팔품 무혼이라는 것을 보고는 이내 포기했다.
진남은 배경이 대단하지만 그의 무혼은 황급 팔 품밖에 되지 않았다.
무연각에서는 배경보다 실력과 자질로 겨뤘다.
물론 진남이 태고 무수이고 선천 경지의 삼 단계에 달하는 실력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렇기에 몇몇은 단약을 약간 꺼내 진남에게 판돈을 걸었다.
진남의 배당률은 일 대 십이었다. 그가 승리하게 된다면 무인들은 크게 한몫할 수 있을 것이었다.
현장이 떠들썩할 때, 백의 여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무경을 가동시키겠어요.”
백의 여인의 말에 따라 흑포 노인이 저장 주머니에서 낡은 거울을 꺼냈다.
낡은 거울 위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로 위에는 낡고 신비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자세히 보면 거울 위에는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무’자가 새겨져 있었다.
흑포 노인은 손을 들고 일어나 힘을 발휘했다. 그 힘이 무경 속으로 들어가자 거울이 빛을 뿜었다.
무경은 이내 거대한 광막을 뿜어내며 사람들 앞에 떠올랐다.
광막 속에는 위호, 황궐, 왕약림, 진남 등 사대 종문의 제자들이 낡고 무너진 광장에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광장은 끝없이 넓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낡아빠진 전당(殿堂)이 우두커니 있을 뿐이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이번 첫 번째 관문 심사는 대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