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이보전
진남은 목소리가 난 쪽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진남을 부른 사람은 바로 백횡이었다.
백횡이 얼른 말을 이었다.
"진남 공자, 소 사저에게 이곳에서 폐관 수련한다는 말을 들었어. 그래서 계속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 외원의 일은 내가 다 처리했어. 너는 이제 진정한 외문 제자야.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가면 돼."
진남이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며칠 동안 계속 여기서 지키고 있었다고요?
"그래."
백횡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그런데 방금 내문 제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아마 누가 그들을 훔쳐봤다고 하나같이 화를 내는 것 같았어. 나도 괜히 겁먹었지 뭐야."
진남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백횡은 금제를 뚫고 그들을 관찰한 사람이 진남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 수 없었다.
"수고 많았어요. 이건 무왕단 백 알이에요. 받으세요."
진남은 아까운 마음을 참고 단약을 꺼내 백횡에게 줬다.
임수성에서 진남과 백횡은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 백횡은 쭉 태도가 좋았다.
외문 제자가 된 진남은 많은 곳들이 이해되지 않아서 백횡에게 물어야 했다.
"무왕단 백 알?"
백횡은 깜짝 놀라더니 얼른 손을 저었다. 하지만 그는 진남이 눈을 부릅뜨자 놀라서 얼른 단약을 받았다. 기분이 좋아진 그는 연신 인사를 했다.
"진남 공자, 고마워.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나에게 얘기하면 돼."
진남이 웃더니 말했다.
"저는 외원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저를 좀 데려다주세요."
"외원에 돌아가려고?"
백횡이 그 말에 놀랐다.
"왜요?"
진남이 물었다.
"아니, 아니, 아니야. 별 뜻은 없어."
백횡이 얼른 손을 흔들었다.
"듣자 하니 이보전에서 외원 경매를 한다더군. 나는 네가 경매에 관심이 있을 줄 알고 데려가려고 계속 여기서 기다렸어. 외원에 돌아갈 생각이라니 데려다줄게."
진남의 눈에서 호기심이 반짝거렸다.
"외원 경매요? 그게 뭐예요?"
"이보전에서 진행하는 경매야. 외문 제자들만 참가할 수 있어. 그때 수많은 보물들이 올라올 거야."
백횡은 진남의 허리에 걸린 칼을 훑어보더니 어색하게 말했다.
"나는 진남 공자가 칼을 바꾸려고 하는 줄 알았어."
여기까지 말한 백횡은 말을 멈추었다.
"좋아요. 우리 그 외원 경매에 가요."
진남은 흥미진진해졌다. 그는 계속 칼을 바꾸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
진남은 백횡을 쳐다봤다. 백횡이 적지 않게 신경을 쓴 것 같았다.
백횡이 그 말을 듣고 만면에 희색을 띠었다.
"좋아. 어서 가자."
* * *
백횡의 안내에 따라 진남은 이보전에 도착했다.
눈앞에 우뚝 솟은 휘황찬란한 궁전은 방원 수십 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더없이 호화롭게 느껴졌다. 고풍스러운 공법전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이보전 밖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가서 매우 북적거렸다.
백횡은 진남에게 영패를 건넸다.
"이건 외문 제자 영패야. 이보전에 들어가려면 등기를 해야 해. 그리고 외문 제자는 일 층까지만 들어갈 수 있고, 내문 제자는 이 층과 삼 층까지 들어갈 수 있어. 사 층은 진전 제자에게만 개방한다고 해."
영패를 받은 진남은 영패에 '오'자가 적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백횡을 따라 등록한 뒤 이보전 일 층으로 들어갔다.
일 층에 들어선 진남은 놀랐다.
대전에는 사람이 꽉 들어찼는데 제자들이 노점상을 차린 것이 있는가 하면 좌석을 갖춘 가게도 있었다.
그중에는 각종 병기와 천지 영물들이 부지기수였다. 마치 보물성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보전의 일 층에서 제자들이 노점상을 차릴 수도 있구나."
진남은 혼잣말하면서 한 노점상에게 시선을 돌렸다.
주인은 쉬체 경지 팔 단계의 외문 제자였다. 그는 진남과 백횡이 풍기는 기운에 가슴이 쫄깃해서 아부했다.
"두 분, 마음껏 보세요. 여기 있는 보물은 상고 유적에서 찾은 것들이라서 그 가치가……"
진남은 그를 무시하고 몰래 전신의 눈을 굴려 한 바퀴 살폈다. 가판대에 있는 각종 보물들은 특이한 점이 없었다.
진남은 말없이 전신의 눈을 거두고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거니는 도중에도 진남은 전신의 눈을 굴려 몰래 관찰했다. 그리고 그는 놀라서 중얼거렸다.
"역시 이보전이야. 방금 그 노점상의 고검은 대단한 위력을 가진 날카로운 무기였어. 아까 그 점포의 구리 거울도 여러 가지 기능을 품고 있던데…….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진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전신의 눈으로 여러 보물들을 살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서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는 무왕단을 전부 전신의 혼을 진급시키는 데 사용해야 했다. 한 알이라도 허튼 곳에 낭비할 순 없었다.
이때 진남이 한 노점상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응?"
노점상의 주인은 흑포를 입은 외문 제자였다. 그는 쉬체 경지 십 단계의 기운이 느껴졌는데 진남과 백횡이 다가오자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보기만 하오, 만지는 건 안 되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낮추고 눈앞의 이물을 관찰했다.
그 이물은 사실 영삼이었다. 하지만 다른 영삼과 달리 온몸이 검고 어떤 곳은 썩기까지 해서 그 효능을 잃은 것 같았다.
하지만 전신의 눈으로 살펴본 결과 영삼에서 신비한 힘이 보였다. 심지어 있는 듯 없는 듯한 생기가 떠다녔다.
진남의 식견으로는 이 힘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무척 강대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 영삼을 내가 사겠소."
진남이 흥취가 생겨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흑포를 입은 청년은 담담하게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선천단 천 알이요."
"선천단 천 알?"
백횡은 그의 말에 펄쩍 뛰었다.
"이건 그저 영삼이잖소. 분명 뿌리도 썩었는데 선천단 천 알이나 받겠다니?"
흑포 청년이 냉랭하게 말했다.
"사기 싫으면 마시오."
"선천단 천 알이라고? 그럼 무왕단 열 알 주면 되겠소?"
진남은 마음 아팠지만 관찰한 결과 이 영삼이 간단한 물건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서 더는 흥정할 수 없었다.
"음."
흑포 청년은 무왕단을 받자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가져가시오."
진남은 두말없이 영삼을 들어 품에 넣었다.
백횡은 처음부터 끝까지 황당한 표정이었다. 그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진남 공자. 방금 그 영삼은 왜 산 거야? 그 영삼은 분명 썩기 시작했어. 가져간다고 해도 쓸 순…"
진남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순간적으로 사고 싶어져서 산 거예요. 고작 무왕단 열 알일 뿐이잖아요."
백횡은 진남의 말에 감탄했다. 역시 진남다웠다. 무왕단 열 알인데,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사실 백횡이 모르는 게 있었다. 진남은 입가가 계속 떨리고 있었다.
"외원 경매가 곧 시작할 것 같아."
백횡이 얼른 말했다.
"우리도 얼른 가서 등기하고 참가하자."
진남이 고개를 끄덕이며 백횡이 이끄는 대로 경매장에 들어섰다.
경매장은 이미 사람이 가득했다. 대충 세어봐도 백여 명도 넘는 외문 제자들이 와 있었다. 그중 적지 않은 외문 제자들이 쉬체경지 십 단계였는데, 사람들이 그들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진남과 백횡은 등록을 마치고 선천단 백 알을 보증금으로 낸 후 경매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네가 진남이지?"
갑자기 오만한 목소리가 두 사람의 귓가에 울렸다.
진남이 미간을 찌푸리고 바라보니 화려한 도포를 입은 청년이 오만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만한 청년은 쉬체 경지 팔 단계였다. 하지만 진남은 오만한 청년을 따라다니는 두 제자의 수행이 쉬체 경지 십 단계라는 것을 발견했다.
"너는 누구냐?"
상대방이 착한 의도로 온 게 아니니 백횡이 싸늘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꺼져. 네가 낄 일이 아니다."
오만한 청년은 백횡을 하찮다는 시선으로 훑더니 진남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나는 남궁 이소(南宮二少)다. 남궁성(南宮城)의 동생이지. 나는 네가 무척 거슬린다. 그러니 이번 경매에 참가할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만약 거절한다면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거라."
말을 마친 청년은 차갑게 콧방귀를 끼더니 고개를 쳐들고 오만방자한 표정을 지었다.
남궁 이소가 진남에게 시비를 건 것은 초운 때문이었다.
그는 초운을 처음 봤을 때 미모에 깜짝 놀라 그녀에게 말을 걸었었다. 하지만 초운은 그를 아예 무시해버렸다.
남궁 이소는 그 일 때문에 끙끙 앓고 있다가 여러 가지로 알아본 끝에 그녀가 진남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것 때문에 남궁 이소는 진남이 보기 싫었다.
그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뭐? 남궁성의 동생? 저자가 남궁성의 동생이야?"
"남궁 이소군. 저자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 오만방자하기로 유명하고 얼마나 많은 여제자들을 추행했는지 몰라. 다만 그 여제자들이 화가 나도 말을 못 해서 그렇지……"
"남궁성의 동생이라서 건드릴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그렇겠지."
"하이고, 저놈 재수 없게 걸렸군."
"……"
백횡은 사람들의 말에 안색이 살짝 변해서 진남의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
"남궁성은 외문 제자들 중 서열 일 위다. 황급 구품의 무혼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행이 반보선천 경지까지 올라서 외문 대장로가 특별히 아끼는 제자지."
진남은 그 말을 듣고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남궁 이소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때? 두렵지?"
진남은 그를 쳐다보며 천천히 차가운 단어를 뱉었다.
"꺼져!"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이 하나 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남은 원래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상대방을 건드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남궁 이소와 그는 아무런 교류가 없는데, 만나자마자 횡포하게 그에게 외원의 경매에 참석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진남은 그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았다.
남궁 이소는 약간 당황했다.
현령종에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그를 꺼지라고 하는 사람을 만났다.
주변의 외문 제자들이 이내 웅성거렸다.
"저 자식 배짱 한번 대단하군. 남궁 이소의 형님이 남궁성이라는 걸 모르나 봐?"
"응? 나 저 녀석 낯이 익어. 어디서 봤더라…? 맞다! 진남이야! 이번 만상 대회에서 일 위를 하고 난심고죽림에서 천 보를 걸은 그 진남!"
"뭐? 진남이라고?"
제자들이 진남의 신분을 알아차렸다.
"쯧쯧, 그렇다고 해도 남궁 이소와 맞설 줄이야."
"허허, 진남의 소문을 적지 않게 들었는데. 오늘 재미있는 구경이 되겠군."
"진남이 재수가 없군. 남궁 이소에게 밉보이면 보통 사람은 감당하기 힘들지."
"……"
제자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비웃거나 고개를 흔들며 진남을 좋지 않게 생각했다.
만상 대회에서 일어난 일은 그들이 직접 겪은 것이 아니라 소문만 들었기 때문이었다.
남궁 이소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진남, 너……"
"너는 무슨."
진남이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는 두 눈에 차가운 빛을 띠고 말했다.
"남궁 이소, 나는 너와 아무런 원한이 없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나더러 이번 경매에 참가하지 말라는 헛소리를 하다니, 내가 만만하게 보였어? 꺼져라. 계속 귀찮게 할 거면 생사전에서 승부를 가리든지."
남궁 이소가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남궁 이소가 음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무도의 경지가 너보다 낮다는 걸 인정해. 하지만 네가 주제 파악을 못 하니 내 솜씨를 보여주지. 네가 이번 경매에 참가할 수 없게 할 거야."
남궁 이소는 싸늘하게 웃으며 오른손을 흔들었다. 이미 기다리고 있던 흑포 노인이 쫄래쫄래 달려와서 무릎을 굽히며 인사를 했다.
"집사 대인, 이 사람이 경매장의 질서를 어지럽힙니다. 이런 놈은 경매에 참가시키면 안 됩니다."
남궁 이소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