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황급 구품 무혼
소냉이 지도를 집어 들었다.
지도 위에 있는 호수에 동그라미를 긋고는 청룡영패의 모습을 그려놨다.
"맞소. 이런 지도를 다섯 조각만 모으면 남은 스무 개의 청룡영패도 찾을 수 있소."
소냉이 말하며 지도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리고 기대에 찬 시선으로 진남을 바라봤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시오? 이 지도는 내 거요."
진남은 본체만체하며 거리낌 없이 지도를 독차지했다.
'양심이 없군. 왕맹 등 세 사람을 죽일 때 한 것도 없으면서.'
심지어 소냉은 진남이 왕맹과 싸울 때 그를 비웃었다. 진남이 그에게 청룡영패를 하나 나눠준 것도 많이 봐준 것이었다.
진남은 또 다른 지도를 들고 자세히 연구했다. 잠시 뒤 그가 소냉에게 말했다.
"이 지도 좀 보시오. 위에 연꽃이 그려져있는데 무슨 영약이요?"
소냉이 다가와서 보더니 놀라서 소리쳤다.
"삼판 금련(三瓣金蓮)? 이거 삼판 금련이오! 이 지도를 통해 삼판 금련을 찾을 수 있소!"
"삼판 금련?"
진남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그런 영약을 아직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소냉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
"우리가 보물 지도를 주웠소. 삼판 금련은 자염화 같은 영약보다 훨씬 진귀한 거요. 삼판 금련을 복용하면 경지가 금방 올라갈 뿐만 아니라 깨달음을 향상시킬 수 있소. 즉 무예의 천부적인 재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오. 그리고 만약 삼판 금련을 경매에 내놓는다면 적어도 선천단 이천 알을 바꿀 수 있을 것이오."
흥분한 듯이 빠르게 말을 마친 소냉이 진남을 애원하듯 쳐다보았다.
"뭐?"
진남도 깜짝 놀랐다. 삼판 금련이 그렇게나 비쌀 줄이야.
겨우 마음을 진정한 진남이 소냉의 시선을 느끼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쳐다봐도 소용없소. 이 지도는 내 거요."
진남의 말에 소냉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하지만……, 당신 누이를 생각해서 이번 한 번만 봐주겠소. 나와 함께 삼판 금련을 뜯으러 갑시다. 그때 가서 반반씩 나눕시다."
소냉은 진남의 이어진 말을 듣고는 놀라며 기뻐했다.
"진남 사형, 고맙소!"
진남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가지는 않겠소. 나를 따라와서 경지를 올리시오."
진남은 이번에 무려 백 알의 선천단을 수확했다. 게다가 여러 가지 잡다한 영약까지 얻었기에 진남은 폐관 수련을 해야 했다.
그의 실력이 강해졌다지만, 이 정도로는 왕맹은 몰라도 임자소에 비해서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좋소."
소냉은 거절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던 소냉은 갑자기 뭔가 할 말이 생겼는지 잠시 머뭇거렸다.
진남은 그런 그를 보고는 말했다.
"말해보시오."
소냉이 이를 악물고 눈을 감고 말했다.
"진남 사형, 처음에 내가 당신을 무시한 건 맞지만 그건 당신이 너무 날뛰어서 임자소에게 밉보였다고 생각해서였소. 게다가 혼자서 다섯 장로와 다른 제자들까지 모두 화나게 하는 걸 보니 너무 안하무인인 것 같았소."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했다.
"나는 사실 모르겠소. 당신 정도의 천부이면 십 대 천재 중 서열 팔 위도 당신의 상대가 안 될 거요. 그런데 이런 재능을 가지고 왜 참지 못하는 거요? 당신이 좀만 참으면 되지 않소. 당신이 많은 사람들과 임자소에게 밉보이면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남이 그의 말을 잘랐다.
진남은 의문스러워하는 소냉을 보고 웃었다.
"무슨 질문을 할지 알기에 말을 끊었소. 한마디만 하겠소. 무인은 뜻을 두고 수행을 하여야 하오. 내가 무인이 되려고 하고 강대해지려고 한 건 언젠가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만인의 존경을 받고 여러 왕들의 숭배를 받기 위해서였소.
그러기 위해 수행하는 내가 이런 조그만 일에도 울분을 참아야 한다면 되겠소? 나는 절대로 굽실거리지 않고, 억울하게 참지 않을 거요. 기껏해야 죽기밖에 더 하겠소?"
소냉은 그 말을 듣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진남은 그를 한번 쳐다보곤 몸을 일으키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한 말을 진지하게 들을 필요는 없소. 내가 임자소와 제자들 심지어 다섯 장로들에게도 그렇게 대하는 건 그들은 내가 참을 만한 수준의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오."
말을 마친 진남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진남은 안전을 생각해서 소냉을 데리고 수련하던 석굴로 갔다.
소냉에게 몇 마디 당부를 건넨 뒤 진남은 지체하지 않고 석굴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소냉은 그런 진남의 뒷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지금껏 저렇게 오만한 사람은 처음 보는구나. 임자소와 다섯 장로들조차도 안중에 없다니."
소냉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진남이 왕맹 등 세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고 소냉은 진남의 잠재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남에게 어떨 때는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고 권고하려고 했다.
하지만 진남은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더욱 오만하게 임자소와 다섯 장로를 안중에 두지 않는다고 했다.
임자소가 어떤 사람인가? 그는 황급 구품의 무혼을 가진 초월급 천재였다. 그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했다.
다섯 장로는 또 어떤 사람인가? 그들은 현령종의 거물급 인사였다. 그들은 지위가 높을 뿐 아니라 경지 또한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진남은 고작 황급 팔품 무혼이었다. 그런데 임자소와 다섯 장로를 안중에 두지 않는다고 했다.
"됐다. 진남은 아직 너무 젊어서 임자소와 다섯 장로의 무서움을 모르는 거겠지. 나중에는 차차 알게 되겠지."
소냉은 고개를 흔들며 잡생각을 그만두었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무혼을 방출했다.
진남은 그런 소냉의 생각을 알지 못한 채 석굴에 가부좌를 틀고 전신의 혼을 방출했다.
"선천단 오십 알로 황급 구품까지 높일 수 있는지 한번 보자."
진남은 오십 알의 선천 단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전신의 혼은 여느 때처럼 폭발적인 흡입력으로 선천단 오십 알을 모두 흡수했다.
사람 형상의 전신의 혼이 파르르 떨더니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아직도 부족하다니……."
진남은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선천단 오십 알을 더 먹어보자."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나머지 선천단 오십 알을 꺼내 다시 단숨에 삼켰다.
전신의 혼이 선천단 오십 알의 약효를 흡입하는 순간에 진남은 심장이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긴장했다.
지금까지 진남은 무려 이백 알의 선천단을 복용했는데 이는 쉬체단 이만 알에 해당했다. 적지 않은 재산이었다.
만약 전신의 혼이 이번에도 진급하지 못한다면, 전신의 혼을 전설 속의 현급, 심지어 천급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단약이 필요할지 상상조차 안 되었다.
그러나 전신의 혼은 이번엔 진남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세찬 기운이 전신의 혼에서 뿜어져 나왔다.
전신의 혼 뒤에서 반짝이던 여덟 갈래의 노란빛이 눈이 멀 것만 같은 빛을 내뿜으며 아홉 갈래의 노란 빛으로 변했다.
전신의 혼이 마침내 황급 구품의 무혼이 된 것이었다.
"드디어……!"
진남은 전신의 혼이 뿜어내는 강대한 기운을 느끼고는 밝은 표정을 지었다. 만약 그의 무도지심이 단단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흥분해서 펄쩍 뛰었을 것이었다.
황급 구품의 무혼은 현령종에서도 초월급 천재라고 불렸다.
현령종이 이번에 뽑은 삼백 명의 제자들 중 황용과 임자소의 무혼만이 황급 구품이었다. 그러니 황급 구품 무혼이 얼마나 강하고 귀한지를 알 수 있었다.
"침착하자."
진남은 몇 번 심호흡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전신의 혼이 황급 구품을 돌파했지만 제일 중요한 건 황급 구품의 수련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는 거야."
진남은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진남의 심신이 전신의 혼과 소통하며 천지의 영기를 받아들였다.
영기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전신의 혼이 거대한 흡입력을 발휘하여 천지에 뿌리내리고 천지의 영기를 쓸어 담기 시작했다.
흡수되어 온 이러한 영기는 용의 모습으로 변하여 진남의 몸을 둘러싸고 위아래로 빙빙 돌며 날아다니다가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모습이 마치 여러 마리 용들이 에워싼 것 같아서 용왕이 강림하는 것처럼 보였다.
진남은 이 모습을 보고는 매우 놀랐다.
"영기가 용이 되다니? 영기화룡(靈氣化龍)이 아닌가!"
영기는 천지 사이를 떠돌았다.
오직 무혼을 통해서만 천지와 소통하고 영기를 흡수할 수 있다.
이때 흡수되는 영기가 거대하면 실체를 이루고 각종 신수(神獸)로 변할 수 있었다.
진남이 흡수한 영기의 용은 그가 황급 팔품 무혼을 방출하여 하루 동안 힘들게 수련한 것과 같았다.
그러니 이 차이는 천지 차이였다.
진남은 깨달은 듯이 말했다.
"이래서 종문 장로들이 임자소와 황용을 그토록 아낀 것이었구나. 황급 구품 무혼과 팔품 무혼이 한 등급 차이밖에 안 나지만 수련 속도는 하늘과 땅 차이였어. 임자소가 하루 수련하는 것이 예전의 내가 열흘을 수련한 것과 같았으니……."
무혼 등급은 한 등급에도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더 잘 알게 된 순간이었다.
생각에 잠겼던 진남이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잡념을 없애야 해. 만상 대회는 한 달 동안 진행되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어서 집중해서 수련해야 해."
진남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즉시 전력으로 영기를 몸속으로 끊임없이 빨아들였다.
시간이 흘러 진남이 수행한 지 닷새가 지났다.
진남은 평온한 기색으로 끊임없이 영기 장룡을 집어삼켰다. 그가 방출하는 기세는 웅장한 느낌이 들었다.
그 기세는 쉬체 경지 육 단계보다 훨씬 강했다.
바로 이때, 진남의 몸에서 신비한 흡입력이 폭발하여 그의 곁에 떠 있는 십여 마리의 영기 장룡을 한숨에 삼켰다. 그의 온몸에서 기운이 일렁이었다.
다음 순간, 진남의 몸에서 마치 거대한 바위가 터지듯 연이어 쾅쾅거리는 폭발음이 울렸다.
서른 번 호흡하는 시간이 지나서야, 진남의 몸속은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줄곧 진남의 등 뒤에 떠 있던 전신의 혼도 자취를 감추었다.
"닷새 만에 쉬체 경지 칠 단계를 돌파했어."
진남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체내의 살갗, 근골, 내장이 모두 흩어진 모래에서 단단한 철판으로 바뀐 것 같았다. 체내의 힘이 끊임없이 생겨나서 써도 써도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지금 진남이 왕맹을 만난다면 가벼운 한 초식만으로도 단숨에 죽일 수 있었다.
만약 진남이 십 대 천재 가운데서도 쉬체 경지 팔 단계가 되는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똑같을 것이었다.
"자, 이제 출관해서 삼판 금련을 찾자."
진남은 마음을 안정시키고는 몸을 일으키더니 돌아서서 석굴을 빠져나왔다.
석굴 바깥에는 소냉이 가부좌를 하고 앉아 무혼을 방출한 채 힘들게 수련하고 있었다.
그는 닷새 동안 수련한 결과 쉬체 경지 칠 단계의 절정에 이르렀다.
그는 동굴 입구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를 알아챘다. 소냉이 천천히 눈을 뜨며 무혼을 거둬들였다.
"진남, 당신 출……"
소냉은 말하면서 진남을 바라봤다. 그는 큰 충격을 받아서 말을 끝내지 못했다.
'진남의 수행이 닷새 만에 쉬체 경지 칠 단계를 돌파하다니!'
하지만 소냉이 가장 충격받은 건 그의 경지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가장 놀란 것은 진남의 몸에서 느껴지는 보이지 않는 위엄이었다. 그 위엄은 소냉 체내의 황급 팔품 무혼도 떨게 만들었다. 마치 신하가 군주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냉은 이런 위압을 황용과 임자소에게서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진남에게서 그런 위압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진남의 무혼은 황급 팔품 아니었어? 어떻게 황급 구품의 위압이 느껴지는 거지?'
"이,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소냉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진남은 소냉을 쳐다봤다. 그는 전신의 혼이 황급 구품이 되면 무혼의 위압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충격받은 소냉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진남이 말했다.
"깊게 생각할 거 없소. 얼른 움직여서 삼판 금련을 따러 가기나 합시다."
소냉은 삼판 금련이란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소냉의 충격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비장의 무기를 숨기고 있는지 모르겠어. 저번에 진남이 한 말대로 그는 그저 날뛰는 게 아니라, 임자소와 싸울 능력이 있는 것 같아."
소냉은 진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이내 신법을 사용해서 진남을 바싹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