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오히려 당하다
진남은 이틀 동안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의 몸에서 떠오른 검의는 더욱 사납고 농후하게 변했다.
이틀 사이에 삼 층을 지키는 흑포 노인이 왔었다. 그는 진남과 궁양이 한창 수련하는 걸 보고 아무 말 없이 물러갔다.
곧이어 한 가지 소식이 현령종에 전해왔다.
공법전의 삼 층은 잠시 문을 닫고 손질하기에 최소 열흘 동안은 개방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소식에 많은 외문 제자와 내문 제자들이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는 공법전의 결정이라 모두가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제자들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공법전 삼 층이 열흘간 문을 닫은 이유가 바로 외부 사람들이 와서 진남의 수행을 방해하는 걸 흑포노인이 원치 않아서 였단느 것을.
태상 장로 영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만약 여기서 수행을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아 주화입마(走火入魔)에 걸리면 흑포노인이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있을까?
그런 사정이 있다는 것을 진남은 알지 못했다.
지금은 진남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이틀 동안 진남은 이 고적을 전부 봤다.
지금 진남이 수행을 계속하는 건 비공검법의 백보비공 초식에 있는 수많은 검법의 수련경험이 너무도 심오하였기 때문이었다.
진남도 하나하나씩 깨달아서 겨우 기본만 장악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무왕 경지의 수련 경험을 어찌 그렇게 쉽게 흡수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진남은 지금 곤경에 빠졌다.
마치 어둠 속에 대문 한 짝이 그의 앞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아무리 엿보려고 해도 대문 안을 똑똑히 볼 수 없었다.
오직 이 대문을 부숴야만 이 비공검법의 수련 경험과 백보비공을 장악할 수 있었다.
"백보비공은 백 보 안에 모두 적을 죽일 수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이러한 현묘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지? 온몸의 힘을 폭발시켜 한 점에 모으면 비검을 주위 백 보 이내에 날릴 수 있게 된다…… 아니, 아니야, 백보비공은 절대 이렇게 간단하지 않아."
"그럼 이 수련 경험들은?"
"수련 경험에선 검법이 원활함을 나타낸다. 이렇게 이해해도 정확하지 않은 것 같아. 백보비공의 초식은 매우 포악한 살인 초식이야. 원활함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그렇다면 도대체 내가 어느 곳을 놓친 거지?"
"……"
진남은 머리를 빠르게 굴리고 생각을 짜내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앞에 있는 대문을 부숴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바로 이때 희미한 그림자가 진남의 뒤에 떠올랐다. 그 그림자는 고개를 살짝 들고 마치 하늘을 우러러보는 것 같았다. 그림자는 현묘한 힘을 뿜어 냈다.
전신의 혼이 다시 한번 스스로 떠올랐다.
바로 이때, 한 줄기 영광이 갑자기 진남의 머리를 스쳐 갔다.
진남의 머리를 괴롭히던 수많은 문제와 여러 가지 의혹들이 이 순간 마치 바람에 연기가 사라지고 구름이 흩어지듯 깨끗하게 날아갔다.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진의가 전부 하나하나 드러났다.
진남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깨달았다! 깨달았어! 비공검법은 전신의 힘을 한 점에 모으는 것이 아니라 '심안(心眼)'을 형성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심안은 그저 표현법이지. 그러나 진정한 본질은 바로 나의 의지이다. 이런 의지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백보 안에 있는 적을 죽일 수 있는 것이었어!"
"하하하! 수련 경험은 원활함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본심을 말하는 것이었어."
"칼은 뭉툭할 수도, 원활하게 사용될 수도, 구부러질 수 있지. 또한, 잔인할 수도 있고, 예리할 수 있어. 때문에 칼은 본심에서 따라 나와야 하지. 오직 본심에서 나온 검의야말로 자신에게 속하는 진정한 검의고 그를 통해 진정한 신검합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야!"
그 순간 진남은 감았던 두 눈을 번쩍 떴다.
멀리서 눈을 감고 수련하던 궁양이 마치 무언가 느낀 듯 눈을 뜨고 진남을 바라보았다.
궁양은 충격을 받았다.
진남의 몸에서 끓어오르던 검의가 갑자기 한 자루의 화염을 보탠 것처럼 튀어나왔다.
검의는 이전보다 더욱 웅장하고 힘차게 변했다.
제일 중요한 건 이 검에서 고집이 세고, 과감하며 용맹하고, 오만하여 굽히지 않는 의지가 드러난 것이다.
검의가 원만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이…… 이건……"
궁양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이제 겨우 나흘밖에 되지 않았다.
겨우 나흘 사이에 진남이 한 권의 수련 필기를 이용해 신검합일의 원만 경지에 도달하다니!
이렇게 경악스러운 속도는 궁양이 보았던 몇 명의 진전 제자들도 해낼 수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천생 무치가 이렇게 대단했단 말인가?
"아니다."
궁양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중얼거렸다.
"진남의 무예 천부는 틀림없이 천생 무치를 초월한 걸 거야."
이러한 생각이 떠오르자 진남을 바라보는 궁양의 눈길이 변화가 생겼다.
그는 처음엔 태상 장로의 영패를 보고 진남의 배후의 세력을 두려워했다. 나중에는 진남이 천생 무치인 걸 발견하고 진남을 부러워했다.
지금의 궁양은 진남을 완전히 자신과 동급으로 생각했다.
즉, 만약 진남이 그의 상대라면 궁양은 절대 진남이 고작 쉬체 경지 오 단계의 수행이라고 진남을 멸시하지 않을 거다. 오히려 진남을 존중해서 소홀하지 않게 대할 것이었다.
현령종 내에 전에도 어떤 제자가 철저히 진남에게 굴복했었다.
그 제자는 바로 백횡이었다.
백횡과 궁양은 수준의 차이가 매우 컸다. 때문에 백횡의 마지막에 진남에 대한 태도는 마치 하인이 도련님을 대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진남을 마음속의 신처럼 대해서 감히 무례하게 굴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신검합일의 원만 경지란 말인가?"
진남은 눈을 뜨고 풍부한 검의를 느끼고 희열을 드러냈다.
그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궁양을 발견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궁 사형, 사형은 왜 아직도 여기에 계신 거예요? 엥? 왜 그러세요?"
조금 이상했다.
'멀쩡한 거 같은데 왜 나를 보며 저런 표정을 짓는 거지?'
진남이 묻자 궁양은 정신을 차리고 길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진남에게 말했다.
"오늘 이후로 나를 사형이라고 부르지 말거라. 내가 경력이 너보다 기니 나를 그냥 궁 형이라고 부르는 게 어떠냐?"
진남은 잠시 얼떨떨해하다가 곧바로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궁 형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 * *
진남이 비공검법을 깨닫는 며칠 사이에 공법전의 대문밖에는 매일 두 사람의 그림자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바로 임자소와 막려였다.
임자소는 진남에게 창피를 당하고 평생 공법전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그는 자연히 진남을 뼈에 사무치도록 원망했다.
막려는 그가 발굴한 천재인 임자소를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쉬체 경지 오 단계의 진남이 감히 이렇게 임자소를 방해하다니.
이건 막려의 체면을 깎은 일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막려는 백옥 도장에 있을 때 이미 진남을 죽이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임자소와 막려 두 사람은 공법전 문밖에서 진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진남을 기다려 함께 손을 써 진남을 모욕하려 했다.
하지만 연속 사흘을 기다렸지만, 그들은 진남의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진남 이 자식이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걸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직도 안에 있다고?"
막려는 기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그래도 원래는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흘 동안이나 진남이 나타나지 않자 그도 성질이 날 수밖에 없었다.
임자소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두 개의 사람 그림자가 나란히 공법전의 대문을 걸어 나왔다.
앞에서 걷는 사람이 진남이었다.
막려와 임자소는 동시에 진남을 발견했다.
막려는 흥분하더니 큰 발걸음으로 다가가 말했다.
"진남, 드디어 나왔구나.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 당장 무릎 꿇고 백 번 절하거라. 아니면 후회하게 해주마."
이어 막려의 무왕 경지 수행이 순식간에 폭발하더니 진남을 덮쳤다.
옆에 있는 임자소도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진남이 아무리 무예 천부가 높은들 고작 쉬체 경지 오 단계다. 네놈이 나와 막려를 상대로 굽히지 않고 감히 설칠 수 있겠느냐.'
진남은 살짝 당황했다.
그는 나오자마자 막려와 임자소를 만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정신을 차린 진남은 안색이 싸늘해졌다.
원래 그는 막려와 깊은 원한이 없었다. 그런데 막려는 공법전 문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을 만나자마자 무릎을 꿇고 백 번 절을 하라고 했다. 그럼 얘기가 달라진다.
'막려 네가 뭔데? 무왕 경지고 삼 장로의 아들이면 나더러 무릎 꿇고 절을 하라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정말 남을 너무 업신여기는구나.'
진남이 반격하려고 할 때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궁양이었다.
"대단한 놈이구나. 입을 열자마자 무릎을 꿇으라고 하다니. 실력 하나 믿고 새로운 제자를 억압하는 거냐?"
궁양의 말은 위엄있었다. 그의 모습은 진남하고 지낼 때처럼 담담한 모습이 아니었다.
막려와 임자소는 당황했다.
그들은 진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을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막려와 임자소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고개를 들어 말하는 사람을 바라봤다.
궁양을 알아보곤 막려의 안색이 변했다.
임자소는 궁양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전히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당신은 또 누구요? 권고하는데 이 일에 상관하지 마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거요."
임자소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막려가 낮게 소리쳤다.
"임자소, 입 다물어라. 이분은 궁양 사형이다!"
막려는 순식간에 앞으로 달려와 억지로 웃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생각 밖이네요, 궁양 사형이 여기에 계시다니. 방금 저희들이 실수했다면 궁양 사형이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궁양은 임자소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막려, 이럴 필요 없다. 난 고작 제자 중 하나에 불과해, 굳이 나에게 사과할 필요 없다."
막려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런 막려를 본 임자소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이 상황에선 설사 바보라도 궁양이 내력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막려가 이렇게 굽실거리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임자소는 앞에 있는 이 강대한 제자를 꾸짖었다.
여기는 현령종이라 천재가 수없이 많았다. 설사 임자소가 황급 구품 무혼을 가지고 있고 진정한 초월급 천재라고 해도 현령종엔 그가 조심해야 할 존재가 수없이 많았다.
"제 옆엔 임자소입니다. 현령종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모르는 게 많습니다. 모르고 한 말이니 궁양 사형께서 아량을 베풀어 주세요."
막려가 억지로 웃으며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맞다. 궁양 사형, 방금 일은 오해하지 말아요. 제가 방금 한 말은 사형 옆의 이 폐물에게 한 말이지 사형에게 한 게 아닙니다."
막려가 궁양에게 이 말을 한 건 방금 일은 궁양과는 상관없으니 참견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 말에 궁양은 바로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폐물이라, 진남은 나의 형제다. 그런데 네가 이렇게 모욕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막려,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겠다. 만약 네가 다시 진남 동생을 괴롭히면 나와 생사전에서 만날 것이다!"
궁양이 살기등등한 기세를 막려에게 뿜어냈다.
진남은 막려와 임자소의 굳어진 안색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막려는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진남 이놈은 겨우 쉬체 경지 오 단계인데 어떻게 궁양과 형제가 된 거지?
진남은 분명 아무 배경도 없는 새로 들어온 제자일 뿐이다. 소경설의 마음에 든 건 그렇다 쳐도 이제 궁양마저 그를 보호한다고?'
"실례했습니다, 실례했어요.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막려가 비록 제 마음대로 날뛰었지만, 궁양과 감히 생사전에서 결투를 벌일 용기는 없었다. 그는 화를 꾹꾹 누르고 억지로 웃으며 임자소를 끌고 황급히 떠났다.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아마 화병이 나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들 둘이 사나흘을 기다린 건 바로 진남을 모욕하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지금 진남이 나왔는데 그들이 도리어 모욕을 당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