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친해지고 싶구나
진남은 선노의 처소를 떠난 후 곧장 공법전 삼 층으로 갔다.
그는 공법전의 삼 층을 생각하며 기대했다.
삼 층에는 어떤 무예와 수련 필기가 놓여있을까?
그가 공법전 삼 층에 들어가려 할 때 흑포를 입은 한 노인이 진남의 앞에 나타났다.
흑포 노인은 삼 층의 문지기였다.
흑포 노인은 진남을 쳐다보더니 눈에 귀찮아하는 기색이 드러났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이런 주제 파악도 못 하는 애송이였다.
'여기는 공법전의 삼 층이다. 너희 같은 새로 들어온 제자들은 감히 들어갈 수 없는 곳이란 말이다.'
흑포 노인은 바로 안색이 굳어지더니 냉담한 소리로 말했다.
"새로 들어온 제자들은 삼 층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지금 속히 떠나거라. 그렇지 않으면 규칙대로 처리하겠다."
그 말에 진남은 손에 쥐고 있던 자룡적아령을 꺼내며 담담하게 말했다.
"어르신, 이 영패면 저를 들여보내 주실 수 있나요?"
"당장……"
흑포 노인은 보지도 않고 호통치려 했다.
새로 들어온 제자이고 고작 쉬체 경지 오 단계의 수행밖에 안 되는데 무슨 배경이 있겠는가.
흑포 노인은 '꺼지거라'라는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말을 마치기 전에 눈에 영패가 들어왔다. 영패를 본 그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식은땀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이, 이건……."
흑포 노인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놀란 눈으로 영패를 보았다.
'자룡적아령? 이건 자룡적아령이 아닌가. 새로 들어온 제자가 어디서 자룡적아령을 얻은 거지?'
진남은 흑포 노인의 반응을 보고는 자룡적아령이 심상치 않은 물건임을 알아차리고 다시 그에게 물었다.
"어르신, 저는 들어갈 수 있나요?"
"있다……."
흑포 노인은 병아리가 벼를 쪼아먹듯이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진남이 두려워졌다. 심지어 어서 들어가라는 듯이 손짓도 했다.
"감사해요, 어르신."
진남은 흑포 노인에게 공수하고 몸을 돌려 삼 층에 들어섰다.
떠나가는 진남의 뒷모습을 보며 흑포 노인은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혼자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슨 내력을 지닌 거지? 쉬체 경지 오 단계에 새로 들어온 제자가 태상 장로의 영패를 가지고 있다니. 그렇다면 이 청년이 태상 장로의……"
여기까지 말한 흑포 노인은 입을 다물고 말을 잇지 못했다.
* * *
공법전 삼 층에 들어서자마자 진남은 눈앞의 풍경에 매료되었다.
공법전 삼 층은 전부 한 가지 고목으로 지어졌다. 고목은 선혈 같은 붉은색을 띠고 한 가지 향기를 뿜고 있었다. 향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줬다.
삼 층에는 열 개의 커다란 책장이 놓여있었다.
매 책장에는 고적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진남은 바로 앞으로 다가가 한 권의 고적을 집어 들었다. 그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나타났다.
고적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현령종 내문 제자 강류, 최종 무예 추현검법(追玄劍法)을 수련하면서 느낀 바를 여기에 적어 공법전에 보관한다.
"공법전 삼 층에 있는 고적을 아무거나 한 권 잡았는데 내문 제자이자 무왕 경지 이상인 강자의 수련 필기구나."
진남이 감탄했다.
이어 그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런 무왕 경지 강자의 수련 필기는 매우 얻기 어렵고 진귀하여 보통 사람은 아예 볼 수 없었다.
이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새로 들어온 제자냐?
진남은 이 소리를 듣고 바로 고개를 돌아봤다. 매우 평범하게 생긴 청년이 보였다.
진남은 무혼의 힘 덕분에 뛰어난 시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눈에 현묘한 힘까지 깃들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평범한 청년의 몸에서 들끓는 강한 기운을 눈치챘다.
진남은 깜짝 놀랐다. 평범한 청년은 수행이 무왕 경지에 도달했고 막려, 심지어 소경설보다도 훨씬 더 강대했다.
그러나 진남은 이 평범한 청년이 더 놀랐다는 건 알지 못했다.
이곳은 공법전의 삼 층이었다. 외문 제자가 이 곳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앞에 있는 이 자는 고작 쉬체 경지 오 단계의 새로 들어온 제자에 불과한데……. 대체 어떻게 삼 층으로 들어왔지?'
청년은 의문이 가득했다. 그는 진남을 살피다가 진남의 허리춤에 있는 자룡적아령을 발견했다.
청년이 그걸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건 태상 장로 영패가 아닌가?'
'이 자가 어떻게 태상 장로 영패를 가지고 있지? 도대체 무슨 내력을 지녔길래?'
깜짝 놀랐던 그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웃으며 말했다.
"전 궁양(宮楊)이라고 합니다, 문파의 내문 제자죠, 귀하의 호칭이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진남은 궁양과 처음 만났다. 그는 궁양이 먼저 존중하며 인사하자 바로 호감이 생겨 공수하고 말했다.
"궁양 사형, 전 진남이라고 합니다."
"진남 사제구나."
궁양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진남 사제, 허리춤의 영패는 내놓고 다니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진남이 자신의 허리춤을 보더니, 그의 말뜻을 바로 알아차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사형, 일러줘서 고맙습니다."
자룡적아령은 예사롭지 않은 내력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대로 내놓고 다녔다면 아마 온 현령종의 사람들이 진남을 궁금해할 것이었다.
진남은 얼굴이 알려져 물의를 일으키는 걸 원하지 않았다.
"진남 사제, 삼 층에는 수련 필기를 선택하기 위해 온 것이냐? 아니면 무예를 선택하기 위해서 온 것이냐?"
궁양이 웃으며 화제를 바꾸었다.
진남이 교만하지 않은 걸 본 궁양은 진남에게 호감이 갔다. 때문에 궁양은 진남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
태상 장로 영패를 갖고 있는 사람과 친구가 되는 건 나쁜 일이 아니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형에게 숨기지 않겠습니다. 저는 검법의 수련 필기를 찾기 위해 왔어요. 만약 검법의 무예가 있으면 더 좋겠죠."
"검법?"
궁양은 조금 생각하더니 말했다.
"괜찮은 검법 무예를 알고 있다. 그건 일종의 창조 무예지. 그 안에는 검법 수련 필기도 있다. 깨달음을 얻기에 제일 좋지. 다만 이 무예를 배우려면 매우 높은 무예 천부가 필요해."
진남은 그 말에 눈을 반짝였다.
누군가 삼 층 공법전에 창조한 검법을 남겼다니?
얼른 보고 싶어서 마음이 급해졌다.
진남은 궁양의 제일 마지막 말을 무시하고 서둘러 말했다.
"수고스럽지만 사형 그 무예 서적을 가져다주실 수 있나요?"
"그.……. 아니 그건 문제없다."
궁양은 잠시 멈칫했다. 진남이 그의 뒷말을 무시할 줄 몰랐다. 그는 바로 말했다.
"네가 배우겠다고 하니 가져다주마."
궁양은 몸을 돌려 걸어가 책장을 뒤지더니 곧이어 한 권의 고적을 뽑아냈다.
진남은 얼른 고적을 받아 보았다. 고적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비공검법 초식, 만약 배워낸다면 등급을 건너뛰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간단한 몇 글자에서 자신감과 패기가 뿜어져 나왔다.
진남은 한번 보기만 했는데도 마음이 끌렸다.
"사형, 비공검법이 끌리네요. 이걸 읽도록 하겠습니다."
진남은 궁양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지체하지 않고 고적을 열람하기 시작했다.
궁양은 당황했다. 진남 사제가 이렇게 무예 서적을 얻자마자 읽기 시작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궁양의 시선이 진남의 몸을 향했을 때 그의 눈에 다시 한번 놀라는 기색이 스쳐 갔다.
"천생 무치?"
진남은 비공검법에 취해 바보처럼 웃기도 하고, 깊은 사색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 완전히 자신을 잊고 세상과 단절된 것 같았다.
궁양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는 진남을 처음 봤을 때 태상 장로 영패에 놀랐다. 그때 그는 진남이 거대한 내력을 가지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궁양은 진남이 천생 무치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궁양은 천생 무치가 무엇을 뜻하는지, 무예 천부가 강대하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창람대륙에서 천생 무치와 같은 체질은 무혼의 등급처럼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궁양은 천생 무치를 가지고 있으면 싸우는 중에도 깨달음을 얻고 전력이 급상승하여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매우 무서운 능력이었다.
"진남과 친하게 지내야겠어."
궁양은 진남과 친하게 지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제 진남은 궁양의 인정을 받았다.
진남이 궁양의 인정을 받은 걸 만약 현령종의 외문 제자, 내문 제자들이 알게 되면 아마 현령종 내에서 파문을 일으킬 것이었다. 그러면 진남의 명성도 널리 알려질 것이었다.
하지만 진남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그의 마음은 모두 비공검법에 끌려 있었다.
고적에는 한 초식의 비공검법만이 기재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원주인이 검술을 수련하는 많은 경험들도 있었다.
비공검법이든 아니면 검법 깨달음이든 진남에게는 모두 맛있는 요리와 같았다.
끊임없이 그를 유혹하여 그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무예에 빠지게 했다.
"비공검법을 만들어낸 사람은 분명히 천재일 거야. 비공검법의 하나뿐인 초식인 백보비공(百步飛空)은 펼쳐내기만 하면 백 보 내에 사람의 머리를 취할 수 있어. 그 위력은 무궁하지. 그러나 이 검법을 연마하려면 매우 강한 시력과 의지가 있어야만 해."
"비공검법 외에도 이 고적에는 수많은 검법 깨달음이 있구나."
"싸움터에서는 형세가 계속 변하기에 상황에 맞는 검술을 펼쳐야 한다."
"……"
열심히 고적을 읽던 진남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진남이 견문이 끊임없이 넓어졌다.
다만 진남도 이 시각 그의 몸에서 검의가 떠올라 아래위로 예리하게 떨고 있다는 걸 몰랐다.
옆에 있던 궁양마저 이 모습에 놀란 기색이었다. 그는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역시 천생 무치구나. 고작 쉬체 경지 오 단계인데 검의를 장악하여 신검합일의 대성 경지에 도달하다니. 게다가 검의가 스스로 떠오르는 걸 보니 틀림없이 진남의 검술에 대한 깨달음이 더 깊어졌을 거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궁양의 눈에 부러움이 드러났다.
궁양은 비록 무혼 등급이 초월급 천재였지만 수련 필기 한 권을 보는 것만으로 경지를 높이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
궁양이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만 무도 경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궁양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처음 인기합일 대성 경지를 깨달았을 때 그의 경지는 이미 쉬체 경지 팔 단계에 도달했었다.
앞에 있는 진남이 쉬체 경지 오 단계에 경지에 도달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궁양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수행에 빠져있는 진남을 보다가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진남이 이 수련 필기를 통해 신검합일을 원만의 경지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까?'
이내 궁양은 이 생각이 터무니 없는 생각임을 깨달았다.
신검합일 대성 경지와 원만 경지는 많은 차이가 났다. 하루 사이에 깨달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원만과 대성 경지는 마치 거대한 돌과 개미처럼 큰 차이가 있었다.
궁양의 생각대로라면 설령 천생 무치인 진남이더라도 신검합일 원만의 경지를 깨달으려면 적어도 전심전의로 한 달은 수행해야 했다.
"진남이 나에게 준 놀라움이 너무 컸구나.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나도 참…, 별 실없는 생각을 다 하는구나."
궁양은 미소를 짓더니 책장을 향해 걸어가 한 권의 수련 필기를 뽑아 수련에 들어갔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