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이렇게 빠르다고?
하루가 지나자 진남 일행은 평원에 진입했다.
백횡이 진남에게 설명했다.
"현령종은 낙하 왕국의 북부에 위치했다. 아직 아홉 날이 더 지나야 도착할 수 있어."
"아홉 날 밤낮이요? 그럼 저는 가는 동안 수행해야겠어요."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고 등 뒤에 전신의 혼을 방출했다.
무혼은 무서운 속도로 천지의 영기를 빨아들였다.
옆에 있던 백횡은 입이 떡 벌어졌다.
그는 진남 모습을 지켜보며 질투가 마구 솟아났다. 약간 두렵기도 했다.
황급 팔품의 무혼은 역시나 강대했다.
소경설은 가는 눈썹을 찌푸리며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남아, 이렇게 수련하는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쉬체 경지나 선천 경지, 심지어 무왕 경지도 수련하려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운을 가라앉혀야 해. 걸으면서 수행하는 건 흡수한 영기를 소모해서 체력을 단련하는 효과를 볼 수 없다."
"그렇군요."
진남은 속으로 감탄했다.
소경설은 역시나 무왕 경지의 존재답게 수련 경험이 풍부했다. 전신의 혼을 방출하고 수련했더니 그녀의 말대로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다.
"저번에 네가 싸우는 걸 보니까 신법 무예는 거의 수행하지 않은 것 같더구나."
소경설이 활짝 웃자 주변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진남과 백횡은 넋을 놓고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최종 무예 비적을 가지고 있다. 백현팔보(百玄八步)라고 하는 건데 네가 수행하거라."
"최종 무예요?"
진남은 그녀가 건넨 비적을 보자 깜짝 놀랐다.
소경설이 이렇게 호탕한 성격일 줄 몰랐다. 오히려 진남이 머뭇거렸다.
"뭘 꾸물거려, 얼른 받거라."
소경설이 진남을 흘겨봤다.
진남은 소경설의 자태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이내 진정하고 손을 뻗어 비적을 받았다.
진남은 속으로 언젠가 소경설에게 크게 보답하겠다고 결심했다.
제자 선발 대전에서도 소경설이 의리 있게 손을 내밀어 진남과 그의 가문을 보호해줬다.
게다가 최종 무예 비적까지 넘겨주었다.
옆에 있던 백횡은 진남이 더욱 부럽고 질투 났다.
진남은 재능이 뛰어난 것도 모자라 소경설의 호감까지 얻었다.
진남은 대체 얼마나 운이 좋은 걸까?
소경설이 계속 말했다.
"무도에서 적을 상대할 때 제일 기본적인 건 두 가지다. 하나는 살초이고 다른 하나는 속도야. 너는 신검합일의 대성 경지에 이르렀으니 살초의 위력이 이미 대단할 거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이 백현팔보를 파고들어서 속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진남은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백횡도 귀를 쫑긋하고 들었다. 무왕 경지의 강자가 수행을 가르치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진남이 백현팔보를 배울 수 있게 세 사람은 숲속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백현팔보가 대체 어떤 것인지 한번 보자."
고서적을 들고 있는 진남은 두 눈에서 불을 뿜을 것 같았다.
그는 고서적을 한 장씩 펼치더니 그 속에 푹 빠져들었다.
온몸에서 세상과 단절한 듯한 기운이 풍겼다.
소경설과 백횡은 동시에 그 모습을 보고 눈에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소경설은 눈이 동그래지더니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의외군. 진남이 무예를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잠깐의 시간에 망아의 경지에 돌입하고 심신합일의 상태가 되다니. 나라도 이렇게 빨리는 불가능할 거다."
백횡은 그 말을 듣자 무슨 연유인지 불쾌해졌다.
'진남은 황급 팔품의 무혼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다른 것들도 이렇게 뛰어난 거지?'
오는 내내 굽실거렸던 백횡은 불만이 점점 쌓여갔다.
하지만 그는 이런 불만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방법을 찾아서 이 화를 좀 풀어야겠어. 그래도 내가 현령종 외문 장로인데 이런 취급을 당하다니.'
백횡은 몰래 결심했다.
그는 눈알을 굴리더니 좋은 생각이 난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 사저가 진남을 이렇게 높이 평가할 줄 몰랐소. 소 사저, 가는 길이 심심할 테니 우리 내기 하는 게 어떻소?"
"내기?"
소경설이 그를 힐끗 쳐다봤다.
백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진남 사제가 백현팔보를 깨우치는 동안 우리는 언제 이 무예를 다 깨우칠 수 있을지 내기하는 게 어떻소? 우리 둘이 시간을 예상해보고 더 가까운 시간을 예상한 사람이 이기는 거요."
그 말에 소경설은 흥미가 생겨서 말했다.
"재미있는 내기군. 그럼 선천단 백 알을 걸고 하면 어떠냐?"
"선천단 백 알?"
백횡은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선천단은 쉬체단처럼 이름 그대로 수사들이 수행하는 데 복용하는 약이었다.
그러나 선천단은 가치가 더 높았다. 한 알의 선천단은 백 알의 쉬체단과 같았다.
심지어는 돈이 있어도 물건이 없어서 바꾸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백횡도 한 번에 선천단 백 알을 내놓으려면 아까웠다.
"좋소, 그럼 백 알로 내기합시다."
백횡이 이를 악물고 결심한 듯 말했다.
"그럼 내가 먼저 예상하겠소. 나라면 백현팔보를 깨우치는 데 적어도 사흘이 걸리오. 그러나 진남 사제는 황급 팔품의 무혼이고 망아의 경지, 심신합일의 상태에 빨리 들어갈 수 있으니 시간이 대폭 줄어들 거요. 그래서 나는 하루에 다 깨우칠 거 같소."
백횡은 말을 마치고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백횡이 소경설과 자신있게 이런 내기를 한 이유는 그가 황급 팔품의 무혼을 가진 천재를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도 무예를 깨우칠 때 망아의 경지와 심신합일의 상태에 바로 돌입할 수 있었다.
그때 백횡은 그 천재가 무예를 깨우치는 것을 직접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그 천재가 무예를 깨우치는 데는 하루가 걸렸다.
때문에 백횡은 자신만만하게 선천단 백 알을 걸고 소경설과 이 내기를 시작한 것이었다.
소경설은 백횡의 말을 듣고 가는 눈썹을 찡긋했다.
그녀가 속으로 생각한 시간도 하루 정도였다.
하지만 백횡이 이미 말을 했으니 그녀는 하루라고 말할 수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소경설은 고개를 들고 무예를 깨우치는 진남을 힐끗 쳐다봤다.
갑자기 제자 심사 대전에서 발생한 일들이 떠오른 그녀가 말했다.
"그럼 나는 열한 시진으로 하겠다."
백횡은 그녀의 말에 놀라서 펄쩍 뛸 뻔했다.
'열한 시진에 최종 무예를 깨우친다고?'
황급 구품의 천재가 망아의 경지와 심신합일의 상태에 들어간다고 해도 최종 무예를 익히는 데 열한 시진이 걸린다.
진남이 어찌 황급 구품의 천재들과 비길 수 있는가?
소경설도 당연히 잘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진남에 대해 알 수 없는 믿음이 있었다.
'기적을 만들길 바라마.'
소경설은 묵념한 후 두 눈을 반짝이며 진남을 바라보았다.
소경설과 백횡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련을 시작했다.
무예를 깨우치는 일은 한순간에 되는 일이 아니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 어느덧 다섯 시진이 지났다.
망아의 경지, 심신합일의 상태에 돌입했던 진남의 기운이 흔들렸다.
소경설과 백횡은 민첩하게 그 변화를 느끼고 눈을 떴다.
그들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말도 안 돼! 설마 다섯 시진 만에 깨우쳤다고?'
진남의 몸에서 풍기는 기세가 금세 거둬지고 평온해졌다.
소경설과 백횡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다섯 시진 만에 백현팔보를 깨우친다고? 황급 십품의 뛰어난 천재가 온다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진남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이때, 진남이 벌떡 일어나더니 고서적을 덮으며 기뻐서 말했다.
"역시 최종 무예라서 현묘하기 그지없군요. 족히 다섯 시진이나 소비해야 기초를 익힐 수 있다뇨. 어? 경설, 백횡 왜 그런 표정을 짓죠?"
진남은 이상했다.
'소경설과 백횡의 표정이 왜 다 굳어있지?'
소경설과 백횡은 충격을 받았다.
'진남이 이 시간 만에 해냈다고? 황급 십품의 최고 인재도 못 하는 일을 해냈다고?'
백횡은 충격을 받은 동시에 억울함이 밀려왔다.
진남이 다섯 시진 만에 백현팔보를 깨우치는 바람에 이번 내기에서는 소경설에게 졌다.
백횡을 더 우울하게 만든 것은 진남의 태도였다.
'다섯 시진만에 최종 무예를 익히고 의아해하다니? 설마 다섯 시진 만에 최종 무예를 익힌 것이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백횡은 화가 나서 욕을 하고 싶었다.
'제기랄, 이게 말이 돼?'
소경설은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방금 나와 백횡이 내기를 했는데 네가 무예를 깨우치는데 나는 열한 시진, 그리고 백횡은 하루가 걸린다고 했다. 누가 가장 가까운 시간을 맞추면 이기는 건데 선천단 백 알을 걸었지. 결과는 내가 이겼어."
"선천단 백 알이요?"
진남은 눈썹을 찡긋했다.
선천단의 가치를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소경설과 백횡이 선천단 백 알이 걸린 커다란 내기를 한 것은 의외였다.
"소 사저, 이건 사저의 단약이요."
우울해진 백횡이 옥으로 된 병을 꺼냈다.
그 안에는 선천단 백 알이 들어 있었다.
진남은 얼른 다가가서 살폈다.
선천단은 쉬체단보다 다섯 배는 작았는데 마치 수정처럼 투명하고 맑았다.
선천단에서 나오는 영기는 쉬체단보다 농도가 열 배는 더 짙었다.
진남은 선천단에서 현묘한 힘을 느꼈다.
"만약 선천단 백 알을 먹으면 전신의 혼은 몇 등급 더 올라갈까?"
진남은 몰래 중얼거렸다.
백횡은 마음속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는 진남을 보자 화가 나서 참지 못하고 물었다.
"진남아, 다섯 시진 만에 백현팔보를 깨우쳤다면 방출해 보거라. 백현팔보는 들어보기는 했지만 본 적이 없어서 말이다."
전혀 티 나지 않게 말하려 했지만, 말투에 의심이 다분했다.
진남은 담담하게 웃더니 따지지도 않고 몸을 움직였다.
진남의 몸이 흐릿해졌다.
그가 한걸음 움직일 때마다 몸이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마지막 걸음까지 현묘하고 다 달랐다.
걸음마다 바람이 일어서 진남은 때로는 유령 같기도 하고, 때로는 천둥 같기도 하며 때로는 불길 같아서 붙잡을 수 없었다.
백 보가 되자 진남은 그 자리에 멈췄다.
그의 몸은 제 자리에 있었는데 한 걸음도 움직인 것 같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백현팔보였다.
이 무예는 백 가지 서로 다른 현묘한 걸음을 알려준 것이었다.
전혀 연관이 없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연관성이 있었다.
깨달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발걸음 수가 적어지고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는 여덟 걸음만 걷게 된다.
걸음 수가 적어질수록 이 무예가 발휘하는 위력이 점점 더 커졌다.
백횡은 그 모습에 입을 다물고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진남은 그를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머리를 굴리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백 사형, 방금 경설 사저와의 내기가 재미있어 보입니다. 백 사형, 저와 내기할래요?"
"내기하자고?"
백횡이 약간 놀라더니 안색이 안 좋아졌다.
그는 지금 '내기'라는 단어만 들어도 짜증이 났다.
"네."
진남이 담담하게 말했다.
"현령종까지 아직 아홉 날이나 남았다면서요. 가는 내내 마침 백현팔보도 연습할 수 있잖아요. 아홉 날 동안 제가 백현팔보를 최고의 경지까지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내기해요."
이번에는 백횡이 놀랐을 뿐만 아니라 소경설도 깜짝 놀라서 말했다.
"아홉 날 동안 백현팔보를 최고 경지까지 수련하겠다고? 그건 불가능해."
최종 무예를 최고 경지까지 수련하려면 황급 십품의 천재도 한 달의 시간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진남이 아홉 날 만에 백현팔보의 최고 경지를 수련할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하하."
백횡은 그 소리에 웃음을 터뜨렸다.
"진 사제, 역시 젊은이라서 혈기가 왕성하고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그럼 나도 내기에 임하지. 나는 '진 사제가 아홉 날에 못 한다'에 걸겠다. 대가는 선천단 백 알이다. 어떠냐?"
말을 마친 백횡은 이글거리는 두 눈을 진남을 쳐다보며 덥석 대답하기를 바랐다.
소경설은 가느다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백횡,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리고 진남, 너는 절대 내기……"
소경설은 이런 내기를 걸어봤자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건 완전히 선천단 백 알을 백횡에게 그냥 주는 꼴이었다.
"경설, 이번 내기는 제가 잘 알아요. 저는 꼭 이기려는 게 아니라 저 스스로에게 동기 부여를 하려는 것뿐이에요."
진남은 소경설을 향해 옅게 웃었다.
그리고 백횡에게 말했다.
"백횡 사형, 저는 선천단 백 알이 없어요. 그러니 경설 사저가 증인을 서고 나중에 갚아줘도 될까요?"
"그럼, 당연히 되지."
백횡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소경설이 갚아준다고 하니 진남이 떼어먹을까 봐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