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무르면 다 고칭-79화 (78/122)

# 79

23. 개원(3)

“육체는 스스로 복구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 기준을 50퍼센트라 생각할 때 50퍼센트 이상이면 자고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70퍼센트, 80퍼센트로 복구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50퍼센트 아래로 내려가면 그때부턴 몸을 갉아먹게 됩니다.”

“…제 상태가 50퍼센트 이하라는 소리인가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

윤혜원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믿고 싶지 않았다는 눈빛이다.

설명을 통해 환자에게 정확하게 병을 설명하는 건 의사의 몫이었다.

“아마 스스로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을 겁니다. 생리가 뜬금없다할 정도로 불규칙하고, 피부는 광채를 잃어가고,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을 겁니다. 현재 소화 기능도 좋지 않아 뭔가를 먹어도 더부룩할 겁니다. 거기에 변에서 냄새도 많이 날 거고요. 두통도 꽤 심했겠네요. 눈도 쉬이 충혈될 테고요.”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몸 전체가 약해져 있는 것이 어떤 병이든 시작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읊은 말들이 다 맞았는지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한약을 먹어야 하나요?”

“한약도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쉬면서 음식으로 몸을 보하는 게 우선입니다.”

“쉴 수가 없어요. 다음 주부터 촬영 시작이고 각종 스케줄도 시작돼요.”

“미룰 순 없습니까?”

“없어요. 잘하면 몇 개쯤.”

윤혜원의 말투에서 두삼은 자신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당신은 암입니다’라고 말했을 때도 스케줄을 걱정했을까?

“처음 진맥을 해서 제 말이 믿기 힘든가 보군요?”

“…솔직히 그러네요. 며칠 전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했거든요.”

“그럼 이 선생님께 진료를 받아보시겠어요?”

“이해해 주신다면.”

천 간호사에게 이방익을 불러달라고 했다.

“허어~ 도대체 무슨 일인데 날 부른 거야? 검증받을 일이라도 있나?”

“설명은 조금 뒤에 드릴 테니 혜원 씨 진맥을 해보시죠.”

“음! 이런 분위기 별론데…….”

그는 너스레를 떨며 윤혜원의 맥을 잡았다. 그리곤 잠시 후 표정이 심각해졌다.

“잠깐만 엎드려 볼래?”

그는 혈을 눌렀다가 떼고 원래대로 돌아오는 반응을 보며 장기의 상태를 파악했다.

두삼만큼 손쉽고 상세하게 증세를 찾을 수 없다 뿐이지 진단은 일가견이 있는 그였다.

“혜원 씨, 안 보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어?”

“…많이 안 좋아요?”

“응.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야. 도대체 그동안 몸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혹시 한 선생도 같은 진단을 했나?”

두삼은 고개를 끄덕인 후 좀 전에 봤던 그대로 설명했다.

“음,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심각한 병이 있느냐는 질문.

“원인은 잦은 다이어트와 힘든 생활로 몸의 균형이 깨진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마 최근 거의 잠을 자지 못했을 겁니다. 그에 잠들기 위해 술을 마셨을 테고요.”

“…그걸 어떻게?”

“잠이 들지 않을 때 사람들은 보통 약을 먹거나 술을 마시죠.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근육량을 볼 때 그건 아니고요.”

“…….”

이방익까지 같은 결론을 내리자 윤혜원은 두삼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다시 자신의 최근 생활 패턴까지 맞추자 기겁을 할 만큼 놀랐다.

대답은 이방익이 했다.

“말했잖아. 이 친구 진짜 최고라고. 근데 한 선생, 치료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글쎄요. 한 달 정도 입원시켜서 완전히 회복시키는 게 좋을 것 같긴 하지만…….”

“쉬면 좋다는 걸 누가 모르나. 하지만 한창 바쁜 시기라 쉽지 않을 거야, 그렇지 않아, 혜원씨?”

“일주일 정돈 괜찮아요.”

“일주일이면 솔직히 난 자신 없어. 한 선생은 어때?”

“일주일 만에 몸을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선… 아닙니다.”

방법은 있었다.

자신의 기를 불어넣어준 후 그녀의 몸에 스며들게 해주면 됐다.

하지만 말하려다 보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쉬면서 조금만 신경 써도 나을 수 있는 일에 기운을 소모했다가 혹시 갑작스레 일이 발생하면 그보다 낭패일 수 없을 것이다.

이방익은 한쪽 구석으로 두삼을 이끌더니 윤혜원이 듣지 못하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뭔 말을 하다가 말아? 일주일 만에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말이군?”

“잘하면요. 하지만 이 치료에 제 기를 다 소모해 버리면 다른 일을 못 합니다.”

“부탁하지. 해줘. 다 소모하라는 얘긴 안 할게. 다만 일주일간 최선을 다해줘.”

“스타 마케팅이야 다른 사람으로 하면 되지 않아요?”

“물론 그렇지. 다른 사람들도 몇 불렀거든. 하지만… 내가 혜원 씨 광팬이라 그녀가 나오는 드라마가 보고 싶은 것뿐이야.”

믿으라고 하는 소린지. 물끄러미 바라봤는데 사뭇 진지하다.

‘드라마 광이라는 건가? 음… 내가 효원이를 치료하게 된 것도 비슷한 이유이니 탓할 순 없지. 게다가 첫 손님을 그냥 보내기도 뭐하고…….’

머리를 긁적이던 두삼은 윤혜원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안마를 해드릴 테니 직접 겪어본 후에 저에게 치료를 받을지 결정하세요.”

당연한 말이지만 두 사람이 왈가왈부해 봐야 윤혜원이 싫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요.”

“안마를 통해 제 기운을 혜원 씨의 몸에 스며들게 한 후에 온전히 혜원 씨의 것이 되게 할 거예요. 많은 양은 아니지만 한결 편해질 겁니다.”

“기 치료란 소린가요?”

“네. 가볍게 머리 마사지부터 할 거예요. 아픈 곳이 있다면 그만큼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이니 조금 참으세요. 그 후엔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두삼은 가볍게 손을 푼 후 그녀의 작은 머리에 손을 올렸다.

“시작할게요.”

은은하게 빛나는 두삼의 손이 움직였다.

* * *

스타 윤혜원은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일 년에 300일 이상 일했다. 물론 무분별한 이미지 소비를 막기 위해 1년의 절반 이상은 해외에서 활동했다.

한데 최근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아도 그때뿐이고 설명하기 힘든 묘한 기분에 잠을 못 자서 술에 의지해 잤다.

나이 때문인가 싶어 계획된 스케줄을 마치고 일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과거 인연이 있던 이방익에게 전화가 왔다.

-건강 검진 받는다고 생각하고 한번 와.

한강대학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그가 왜 전화를 걸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이미지를 이용한 스타 마케팅을 하기 위함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트렌드 세터(trend setter)로 좋은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과 알리고 공유하는 걸 좋아했다.

그렇다고 공짜로 서비스를 받고 좋지 않은 걸 좋다고 말하진 않았다.

만일 실력이 없는 이가 이방익처럼 눈에 보이는 행동을 했다면 절대로 방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이방익은 달랐다.

좋지 않은 건 권하지 않았고, 꼭 스타 마케팅 때문에 권하는 것도 아니었다. 삼촌이 어린 조카를 보는 것처럼 본달까.

아무튼 그의 실력을 알기에 진맥을 받아볼 겸해서 방문을 했다.

한데 뜬금없이 젊은 한의사를 자신에게 붙여주는 게 아닌가.

약간 불만이 있었지만 실력이 좋다니 일단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설왕설래 끝에 의심을 다 거두지 못하고 머리 마사지를 받기 시작했다.

만약 아플 거라고, 아픈 게 몸이 좋지 않아서라고, 곧 시원해질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당장 일어나 욕을 퍼부었을 만큼 그의 손은 매섭도록 아팠다.

정말 오랜만에 욕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한데 잠시 후 똑같은 곳을 누르는데 거짓말처럼 아프지 않았다.

시원하고 맑은 하늘처럼 세상이 또렷해지는 느낌이었다. 직접 경험을 해서인지 믿음이 조금씩 생겼다.

머리가 끝나고 그의 보드라운 손은 목으로 내려갔다.

‘악! 이런 거지 신발 같은 놈!’

조금 생기던 믿음은 순식간에 깨졌다.

눈앞이 새하얗게 보일 정도로 아팠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평화.

어깨, 등, 허벅지, 다리, 발바닥까지 정말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아픈 건 끝났어요. 이제부턴 편안할 거예요.”

아픔을 참느라 지친 그녀는 그의 말이 사실이길 간절히 빌었다.

“으음~”

사실이었다.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묘한 기분이었다. 편안함이 극에 이르면 이럴까, 아님 쾌락의 끝에 닿으면 이럴까.

‘아!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두삼의 손길이 끝나지 않길 바라며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때 잠들어서 지금까지 잤다고?”

막 침대에서 일어난 윤혜원은 매니저에게 물었다.

“응. 코까지 골며 하도 곤히 자기에 저녁에 약속 있는 건 내가 취소시켰다. 기분은 어때?”

“글쎄, 잠을 푹 자서 날 것 같은 기분이면 좋을 텐데 그저 평소에 비해 조금 좋아진 정도?”

이상했다. 잠들기 전의 기분이었으면 지금도 기분이 좋아야 정상인데 그저 그렇다.

“헐~ 젊은 의사 말이 맞았네.”

“뭐라고 했는데?”

“자고 일어나도 컨디션이 안 좋을 거라고 그러더라. 자기의 기운을 아무리 보탰다고 해도 부족하다나 뭐라나. 그러니 데리고 갈 생각 말고 입원시키래.”

“입원하래?”

“응. 협박 비슷한 말도 하더라.”

“웬 협박?”

“입원 안 하면 자신도 치료를 포기하겠대. 뭐라더라? 너한테 쏟는 힘을 다른 곳에 쓰면 수십 명의 병은 낫게 할 수 있다나 뭐라나.”

“…재미있는 의사네.”

“얘기해 보니까 괜찮은 친구더라. 어떻게 할 거야?”

“배고파. 일단 먹고 생각해 볼래.”

“알았어. 잠시만.”

배고프다는데 매니저는 전화기를 들었다.

“뭐야? 배달 음식 먹으라고? 싫어. 그냥 오빠가 푸드코트에 가서 사와.”

“아닌데. 너 일어나서 밥 찾으면 그 의사가 자신이 갖다 준다고 연락하라고 했어.”

“병원식은 싫은데…….”

“전해줄게. 아~ 여기 7층 특실인데요. 혜원이 이제 깨어났어요. 배고프다는데… 아! 그리고 병원식 말고… 아하~ 병원식이 아니라고요. 네네.”

전화를 끊는 것을 보고 물었다.

“…뭐래?”

“병원식 아니래. 대신 데워야 할 것이 있어서 20분만 기다리래. 배 많이 고프면 냉장고 안에 넣어둔 차 마시고 기다리란다.”

“배고픈데… 차라도 줘.”

한의사가 준 차라고 해서 쓴 한약을 달인 물이라고 생각했는데 포도주처럼 진한 자주색이었다.

“달콤하고 맛있어. 복분잔가?”

달콤한 걸 먹어서인지 음식이 올 때까지 배고픔을 잊을 수 있었다.

똑똑!

“식사 가져왔습니다.”

문이 열리자 두삼이 카트에 뭔가를 잔뜩 싣고 들어왔다. 카트 밑 공간엔 커다란 압력솥까지 있었다.

“…뭐예요?”

“한약재를 넣어 끓인 백숙과 원기 회복에 좋은 음식들입니다. 천천히, 가급적 다 드세요.”

“이걸 다요? 저 다이어트 중인데?”

“다이어트는 잊으세요. 어차피 다 먹어도 살찔 일은 없을 거예요. 매니저님, 매니저님도 한 마리 드시면 될 거예요. 다른 건 많이 먹지 마세요. 대부분 음기가 강한 것들이라 많이 먹으면 오히려 건강에 안 좋아요.”

“아! 전 신경 안 써도 되는데. 아무튼 감사합니다.”

“참! 치료는 하기로 하셨어요?”

윤혜원은 대답 대신 카트 위에 있는 음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반문했다.

“매끼 이렇게 먹는 거예요?”

“글쎄요. 아침은 병원식으로 먹거나 사먹어야 할 거예요. 점심과 저녁은 제가 시간이 되면 가급적 해드리겠지만 힘들 땐 제가 지정해 주는 걸로 먹으면 돼요.”

“…이걸 선생님이 했다고요?”

“맛이 이상할까 걱정되는 거라면 염려 놓으세요. 나쁘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설령 나빠도 드세요. 이거 보기엔 이래도 약이에요.”

‘이 의사 도대체 뭐야?’

한의사니 약이야 직접 끓일 수 있지만 음식까지 직접 할 줄이야…….

음식이 웬만한 음식점에 견주어도 될 만큼 깔끔하다.

게다가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얼른 결정해 주세요. 내려가서 또 다른 손님도 봐야 하고 틈틈이 저녁 준비도 해야 합니다.”

“…입원할게요.”

“잘 생각하셨어요.”

“근데 아까처럼 마사지를 받는 거예요?”

솔직히 아까 느꼈던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가급적 잠들지 않고 끝까지.

“지금 두 시니까. 다섯 시에 와서 다시 안마를 할 거니까 그렇게 아시고 쉬세요. TV는 괜찮지만 스마트폰은 자제하시고 담배는 피우지 마세요. 정 당기면 전자 담배로 피워요.”

할 말을 마친 두삼은 살짝 고개를 숙인 후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윤혜원은 매니저를 날카롭게 쳐다보며 말했다.

“담배 피운다는 거 오빠가 말했어?”

“아니! 숨겨도 시원찮을 판국에 내가 왜?”

“진맥으로 안 건가? 그나저나 오빠가 피우는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더 나쁜 거 아냐?”

“아니거든! 90퍼센트 이상 덜 나빠. 다른 나라에선 금연보조제로 이미 인정받고 있어.”

“근데 TV에서는 왜 더 나쁘대?”

“그건 말하자면 길어 나라에서 세금…….”

“길면 됐어. 일단 밥부터 먹자. 냄새 때문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지가 물어놓고… 기다려. 손 데면 어쩌려고 내가 챙겨줄 테니까 넌 가만히 앉아 있어.”

매니저는 얼른 다가가 압력 밥솥 뚜껑을 열었다. 순간 입맛을 당기게 하는 한약재 냄새가 확 올라왔다.

“이야! 보약이네, 보약. 어서 먹자.”

매니저가 퍼서 주는데 작은 영계가 아니라 토종닭인 듯 아주 컸다.

‘다 먹으라는데 돼지도 아니고 어떻게 다 먹어?’

사실 닭 말고도 샐러드, 전, 반찬 등 먹을 게 너무 많았다.

못 먹으면 남기면 되겠지, 라고 생각을 하며 숟가락으로 고기의 일부와 국물을 떠먹었다.

“……!”

“헐~ 그 친구 의사가 아니라 식당을 해야겠다. 너무 맛있지 않냐? 게다가 몸도 마구 좋아지는 기분이고.”

매니저의 말이 자신이 하고픈 얘기였다.

맛있게 허겁지겁 먹는 그녀.

어느새 모든 접시들은 서서히 비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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