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18. 소소한 휴일(1)
몸속 전기적 신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정확하게 신호를 인식하고 의지를 발하는 것이 방아쇠가 된 듯하다.
물론 기를 느끼듯이 온몸의 전기적 신호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시도를 해봤다가 몸의 3분 1도 보지 못하고 두통에 머리가 깨질 뻔했다.
맥과 혈이 도로와 정류장이라면 전기적 신호는 공기나 다름없었다. 그 무수한 양을 한꺼번에 보려고 했으니 머리가 과부하가 걸리는 건 당연했다.
쪼르르르~
타인이 오줌 누는 모습을 보며 변기에 오줌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데 기분이 좋다.
“형! 됐어요! 하하하! 된다고요! 하하하하하!”
“잘됐다. 하하하!”
나연섭은 바지를 깐 채 미친 듯이 웃었다. 두삼도 그를 따라 좋다고 웃었다.
전기적 신호를 보게 된 후 사흘만이다.
전기적 신호 역시 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했는데 그를 이용해 가느다랗게 이어진 신경들을 자극해 이음으로써 요도조임근을 정상화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축하한다. 하나는 마쳤구나.”
“고마워요, ···형. ···진짜, 형이 날··· 살려준 거예요. 정말··· 흐윽, 정말로 감사해요.”
한참 웃던 나연섭은 갑자기 비참했던 예전의 자신이 떠오르는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그리고 서서히 다가오며 안으려 했다.
두삼은 한 발 뒤로 물러나며 안겨오는 그가 다가오지 못하게 머리를 잡았다.
“···안기려면 일단 바지나 입어라. 그리고 웃다가 울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
후다닥 바지를 추켜올리는 나연섭. 쪽팔린지 울음을 멈추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 진짜, 감동을 그렇게 파괴해야겠어요? 고마워서 그런 건데.”
“그렇게 고마우면 화장실 청소는 네가 해라.”
“아! 형!”
나연섭을 화장실에 두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선 오향희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정말 고마워.”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그리고 아직 끝난 것도 아니잖아요.”
“요도를 고쳤으면 항문도 가능하지 않을까?”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요도의 경우 신경이 거의 뻗어 있는 상태였기에 연결지점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에 조금 더 자극해 연결했을 뿐이다.
하지만 항문의 경우 아직 어디로 향해 뻗어가는지 알 수가 없는 상태였다.
물론 요도에서 한 것처럼 강제로 자극해 빠르게 연결시킬 수는 있었다. 그러나 괜스레 성급하게 했다가 이상이 생기는 것보단 섭리에 따르는 게 나았다.
“혹시나 했는데 확실하게 고칠 방법이 생겼나 보네. 말투에 확신이 있어.”
“그렇게 들리셨어요?”
“아냐?”
“누님은 못 속이겠네요. 맞습니다. 방법이 생겼어요. 하지만 샴페인은 확실해진 후에 터뜨려요.”
“그래!”
그녀는 처음으로 근심 없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참! 연섭이 아빠가 고맙다고 한번 보재.”
“그새 연락하셨어요?”
“아니. 어제 연락했어. 어제 이미 나은 거나 다름없었잖아.”
“언제요?”
“너 편한 시간에.”
“그럼, 사흘 뒤에 만나는 걸로 할게요. 이틀간 개인적인 시간 좀 보내야겠어요.”
“자신에게 주는 상인가? 잘 생각했네. 여행이라도 다녀와.”
“여행은 완전히 고치고 나면요.”
두세 시간마다 소변 누게 할 일이 없으니 자유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거기에 병원도, 이효원도 당장 급한 일은 없었다.
***
“자! 가볼까.”
[개인적인 사정으로 오늘 쉽니다.]
휴일을 알리는 종이를 대문에 붙였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두고 지하철을 타러갔다. 간만에 밖에서 술을 마실 생각이다.
지하철을 탄 후 스마트폰을 꺼내는 대신 사람 구경을 했다. 웬 구경이냐고? 그냥 건강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은 것뿐이다.
엄마와 어딘가 가는 아이, 산을 가는지 커플 아웃도어를 입은 노부부, 데이트를 가는지 한껏 꾸민 남자, 속닥이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결혼식에 가는 여자들.
두리번거리는 아이를 제외하곤 다들 무표정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데 구경할 것이 뭐가 있냐고 하겠지만 그냥 평범함이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저 학생 척추측만증이 있는 것 같은데 계속 저런 자세면 큰일 나겠네. 저 아저씨 간이 많이 안 좋아. 이 아가씨 계속 하이힐 신고 다니면 안 되는데······.’
어느새 직업병이 발동되어 표정보다는 그들의 몸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찌릿! 바로 앞에 있던 하이힐 신은 아가씨가 자신을 훑어본다고 생각한 건지 살짝 노려본다.
아차! 싶어 얼른 고개를 숙였는데 늦었다.
“사람을 그렇게 훑어보면 무안하지 않겠어요?”
“미안합니다. 직업병이라······.”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기에 사과했다.
“그럴싸한 핑계네요. 같이 사는 사회인데 배려 좀 하며 살죠.”
여자는 한마디 더 하곤 다른 자리로 이동해 버렸다.
“······.”
억울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이미 파렴치한을 보는 듯했다.
지하철에서의 기분 나쁜 감정은 지하철에서 나오면서 날려 버렸다. 내가 잘못한 일인데 억울해해 봤자 소용없었다.
도착한 곳은 강남역. 서둘러 근처에 있는 영화관으로 갔다. 약속은 1시였는데 일찍 나온 이유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예약해 뒀던 표를 받고 음료수와 팝콘을 샀다. 그리고 상영까지 남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영화 본 지 얼마만이지?’
대학교 시절 데이트할 때 보곤 못 봤으니 벌써 7년이 훌쩍 넘었다.
영화를 보고,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며 얘기를 나누고, 헤어지기 싫어 집 앞에서 몇 번이고 같은 길을 오가던 기억이 떠올랐다.
전엔 애써 떠오르며 지웠는데 이젠 ‘그런 때가 있었지’ 하고 담담하게 떠올릴 수 있게 됐다.
그러고 보니 주변엔 온통 연인들이다.
“좋을 때······!”
천천히 훑어보는데 옆 테이블에 아까 지하철에서 본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눈이 마주쳤다.
여자와 두삼은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여자는 자신의 치마를 아래로 당겼고, 두삼은 선글라스를 쓰든지 해야겠다고 생각하곤 스마트폰을 꺼내 코를 박았다.
‘오늘 왠지 불안하네. 아냐! 간만에 휴일인데 그래선 안 돼.’
가급적 여자에게서 멀어지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여자와 그녀의 애인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남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다행히 여자가 재빨리 잡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크게 다칠 뻔했다.
여자는 잡은 남자를 눕히고 얼른 자신의 백을 남자의 목에 받혔다. 그리고 옆으로 눕히며 목의 티셔츠 단추를 풀었다.
많이 해본 솜씨였다.
여자가 조치를 취하는 동안 두삼은 남자가 발작을 하다가 다치지 않게 주변에 있는 테이블을 한쪽으로 치웠다.
“···감사합니다.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여자는 의외라는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뇌전증이군요. 119는 안 불러도 괜찮겠습니까?”
뇌전증. 예전엔 간질이라고 부르는 병이다.
갑자기 경직이 일어나며 쓰러져서 발작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이니 전염병이 아닌가 싶어 두려워하는데 알고 보면 감기보다도 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뇌에 있는 수백억 개의 신경세포들은 전기적 신호로 연결되어 있다. 한데 그 신경세포 중 일부 불안정한 신경세포가 과도한 전류(뇌파)를 만들어냄으로써 발작과 경련이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심하게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얘기를 나누다 갑자기 멍해지거나, 틱 장애처럼 손과 발이 멈칫거리는 경우도 뇌전증이다.
“아, 네네. ···보통 10분 내로 괜찮아져요.”
“다행이네요. 병원 치료는 받고 계시죠?”
“···네.”
내버려 두면 점점 심해진다. 그러다 더 심해지면 정상적인 생활도 할 수 없게 되고 경우에 따라선 뇌에 심각한 손상이 생길 수도 있다.
“···혹시 의사세요?”
“한의사입니다.”
“아··· 네, 죄송해요. 아까는 너무 어리게 보여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닙니다. 제가 실수를 한 건 사실인데요. 잠깐만요! 환자가······.”
여자가 토닥거리고 있는데 남자의 증상에 변화가 보였다. 갑자기 입이 벌어지며 경련이 심해지는 것이 혀가 말려 들어간 듯했다.
서둘러 그의 목 부분을 잡고 목과 척추 부근을 누르며 뇌 아래 부분을 마비시켰다.
뇌의 전기적 신호가 목 아래로 내려오는 걸 막아버린 것이다.
남자의 경직된 몸이 풀리며 축 쳐졌다.
“···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예요?”
“걱정 마세요. 혀를 깨물거나 숨이 막힐 것 같아서 마비를 시킨 겁니다. 정신을 차리면 풀면 됩니다.”
“아! 그, 그런가요?”
“잠깐만, 좀 더 볼게요.”
혹시 마취를 시켜서 뇌가 더 뜨거워지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진료 기록을 보면 할아버지는 여러 명의 뇌전증 환자를 고쳤다. 전엔 기를 이용해 고친 줄 알았지만 이젠 전기적 신호를 통해 고쳤다는 걸 안다.
남의 불행을 지적 탐구에 이용하는 것 같아 미안하긴 했지만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집중했다.
수백억 개가 넘는 신경세포의 신호를 다 보려 했다간 아마 자신의 머리가 먼저 타버릴 것이다.
그에 뇌의 심부에서 -이상이 있는 위치에 따라 경련, 발작 증상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남자는 심부의 일어나는 증상이다- 전류의 세기가 다른 신호를 먼저 찾으려 했다.
정확히 인식을 해서일까, 세기가 강한 전류는 진한 파란색으로 보였다.
진한 파란색을 타고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찾았다!’
상당한 영역의 신경세포들이 열심히 과도한 전류를 내뿜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죽여볼까?’
뇌신경세포는 재생이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한 대학병원에서 새로 만들어진 세포가 기존의 신경세포와 결합되면 신경세포가 재생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남자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뇌신경세포의 재생은 아주 느릴 것이다.
‘나중에 뇌에 대해 공부해 봐야겠어. 일단 가장 강한 전류를 뿜는 녀석들만 죽여보자.’
이상 뇌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뇌의 일부를 잘라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확신이 없는 이상 마구잡이로 죽일 순 없었다.
잠깐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기를 이용해 눌러 죽이거나 자신의 강한 전류를 넣어 죽일 수 있었다.
성질 더러운 신경세포들을 어느 정도 죽이자 뇌파는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으~ 또 ···바, 발작이 ···일어난 거야?”
남자가 정신을 차렸다. 여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미안.”
“미안하단 말 하지 말랬지. 자기가 이러는 줄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고마워, 얼마나 됐어?”
“10분쯤.”
“휴우~ 다행이네. 점점 시간이 길어져서 불안했는데. ···어? 근데 몸이······.”
“아! 풀어드릴게요.”
두 사람의 절절한 사랑을 보다가 혈을 풀어준다는 걸 잊고 있었다. 얼른 혈을 막고 있던 기를 흡수했다.
“···누구?”
“한의사 선생님. 경련이 심할 때 도와주셨어.”
“아! 그러시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요. 괜찮아진 것 같으니 전 이만. 영화를 봐야 해서.”
“···그러셔야죠. 근데 전화번호라도 알 수 있을까요? 오늘 일에 대한 사례라도 하고 싶습니다.”
“사례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사양하고 음료와 팝콘을 챙긴 후 서둘러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재벌의 망나니 아들을 잡는 경찰 얘기로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듯했다.
“슬슬 내려가야겠다.”
약속 시간 15분 전이었다. 어차피 영화관 앞에서 보기로 했기에 느긋하게 내려갔다.
극장 앞에서 서성이길 10분. 양복을 입고 두리번거리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우중충한 체육복에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다니던 사람이 양복을 입고 단정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 것이 어색하긴 했지만 분명 그였다.
“총통 형!”
활짝 웃으며 그를 불렀다. 오늘 만나기로 한 이는 3년 간 지냈던 고시원 총무 노대우였다.
“야! 두삼아!”
많은 이들이 보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았다.